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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야구선수들을 통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얻자는 생각에서 쓴 내 글에 많은 일게이들이 과분할 정도로 칭찬을 해주어 참으로 보람을 느낀다.
지금 한국은 386좌파가 뿌린 독이 갑자기 빠지고 있는 단계라고 본다. 그리고 그 독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은 다름아닌 일게이들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앞으로의 한국사회는 더 이상 386들이 여전히 그리는 학연, 지연, 진영논리에 묻혀가도 되는 사회가 아니라 프로야구처럼 개개인의 노력이 중요해지는 사회라고 본다.
나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하자면, 문돌이 맞다. 그리고 공부의 신 같은 새키들을 보면서 절망도 느꼈다. 당시 내가 마츠이 히데키의 팬이었는데 마츠이의 명언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 곧 재능이다를 듣는 순간 이대로 넘사벽 넘사벽 타령만 하다가 주저앉지 말고 죽을 때까지 한번 노력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스포츠를 보니 스타 선수들보다 묵묵히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더 마음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마츠이 같은 위대한 스타 선수가 아닌 나에게 어울리는 롤모델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를 생각하면서 역시 노력 밖에 답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내 스펙이나 실력은 마츠이급에 도저히 미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사람처럼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게이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하도 일뽕이네 좆본이네 욕을 먹어서 묻히면 어떡하나 반신반의했는데 최근의 호응을 보니 자신이 생겼다. 일베에서 내가 본받고자 하는 위대한 선수 카와이 마사히로를 소개할 수 있음을 큰 영광이라 생각한다.
사진 찍는 타이밍을 제대로 못 맞춘듯... 그런데 현역시절부터 소문난 노안이었다.
카와이 마사히로는 1964년에 태어났다. 사실 나는 카와이를 라이브로 본 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카와이는 결코 무명선수는 아니다. 그는 커리어 통산 최대 희생번트(533개)라는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야구 잘 모르는 게이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희생번트는 주자가 있을 때 번트를 대서 주자를 다음 베이스로 보내고 자신은 1루에서 아웃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희생번트는 타수에 포함되지 않으며 따라서 타율을 낮추지 않는다.) 메이저리그의 최다 희생번트 기록은 에디 콜린스의 512개이며 따라서 카와이의 최다 희생번트 기록은 일본이 메이저리그를 능가한 몇 안되는 귀한 기록들 중 하나이다.
카와이는 1982년 드래프트 4위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당시는 80년대고 요미우리가 일본에서 제일 인기있는 구단이었을 시절이니까 요미우리 입단은 카와이에게 큰 자랑스러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미우리 입단 직후부터 카와이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당시 카와이는 투수로서 입단했었다. 그러나 입단해서 보니 요미우리에는 이미 걸출한 투수 자원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카와이는 고향 오카야마현에서는 알아주는 에이스 투수였지만 요미우리에서는 평범한 수준의 투수에 지나지 않았다. 덩치 큰 투수를 유난히 선호하던 시절이니 176cm의 카와이로서는 가뜩이나 어필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카와이의 운동신경과 성실함을 높게 평가한 구단에서는 그를 투수에서 내야수로 바꾼다는 방침을 세웠다.
카와이는 내야수들이 받는 기초적인 훈련은 물론이고 지옥의 펑고 훈련까지 집중적으로 받았다. 카와이는 타격이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2군 감독이자 카와이의 은사인 스도우 유타카는 카와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수비를 지녀야 한다. 네 쪽으로 굴러가는 공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수비해라. 그렇지 않으면 넌 1군이 될 수 없어."
당시의 수퍼스타 하라 타츠노리. 어느 분야에나 이렇게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놈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력을 포기해야 할까?
당시 요미우리에는 강타자 내야수들이 즐비했다. 요미우리의 스타 하라 타츠노리가 3루수를 보던 시절도 이 때였다. 타격으로 1군에 올라갈 길이 없다면 수비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수 밖에 없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투수를 하던 선수를 ㅆㅅㅌㅊ 내야수로 만들기 위해서는 오로지 엄청난 연습량과 꺾이지 않는 의지력만이 필요했다. 카와이는 그 두개를 모두 가진 인물이었다.
2군에서 내야수 전향 훈련을 2년간 받은 카와이의 수비력은 학창시절부터 내야수를 보던 선수들도 능가하는 일류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요미우리 감독 오 사다하루에게 수비력을 인정받은 카와이는 1984년 드디어 1군으로 승격되어 유격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다만 주전은 아니었다. 18시합에 출전한 것이 전부였다.
다만 희망은 있었다. 당시 요미우리의 주전 유격수인 코노 카즈마사의 나이가 많다는 점이었다. 유격수가 워낙 체력 소모가 심한 포지션이다 보니 30대의 코노가 곧 주전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카와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프로구단은 지금까지 잘 쓰던 주전을 빼야 하는 상황이 되면 여간해서는 후보선수들을 발탁하지 않고 밖에서 헤드헌팅을 해온다는 사실. 코노가 부진해지자 요미우리에서는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한국계 일본인 유격수 홍순기(일본이름은 고우노 쥰키)를 영입했다. 주전 유격수가 될 꿈에 부풀어 있던 카와이는 또 한번 찬물을 덮어쓰게 되었다.
경쟁사회에서 위기는 계속 되는 법. 이번엔 후배 내야수 스구로 히로노리가 수비력으로 요미우리 수뇌부의 눈길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수비를 장사 밑천으로 삼는 카와이로서는 1군 주전 유격수는 고사하고 2군으로 쫓겨갈 위기에 빠진 것이다. 주전 유격수가 나이 많으니 알아서 빠지겠고 그러면 자기가 주전이 되려니 하고 기다렸더니 지금 갖고 있는 밥그릇까지 빼앗기게 생겼다. 수뇌부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어필하기 위해 카와이는 그때부터 타격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7년부터 스위치히터로 변신했다.
홍순기나 스구로를 비롯한 경쟁자들이 조금이라도 불안정하다 싶으면 카와이는 아침에 가장 일찍 경기장에 나와 몸을 풀고 셔틀런을 하며 자신의 컨디션을 어필했다. 카와이는 좋은 의미로 늘 위기 의식을 갖고 뛰는 선수이기 때문에 그는 실책이 매우 적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 평가가 그를 2군으로 쫓겨나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전도 아니었다. 1988년까지 카와이는 매시즌 1군에서 60시합 이상 출전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1988년에는 유격수가 아니라 외야수로 출전하는 일이 더 많았다. 좋게 말해서 '만능형 수비요원'이니까 2군으로 쫓겨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1군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확실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카와이는 자신의 무기를 늘려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보통 카와이처럼 타격이 약하고 수비가 좋은 선수는 도루로 어필하는 게 일반적이다. 카와이는 자신이 도루도 할 수 있음을 어필하려 했지만 이 작전은 실패했다. 88년에 성공한 도루는 3개가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안정감 있는 유격수인만큼 반사신경은 뛰어나지만 도루에 적합한 주파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카와이는 또 한번 좌절을 맛보았다. 테이블세터로 기용되는 선수가 도루를 잘 못한다면 정말로 수비요원으로만 투입될지 모른다.
1군 주전을 간절히 원하는 카와이의 발목을 잡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물방망이였다. 2할 초반대의 빠따질로서는 도저히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스위치히터로 바꾸었으나 성적은 나아진 게 없었다. 게다가 감독은 '장타력 성애자'라 해도 좋은 오 사다하루이다. 카와이는 자신의 무기를 만들지 못해 고뇌하고 있었다.
고민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소한 일이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된다. 어느날 희생번트를 대는데 코치가 "나이스!"하고 외쳤다. 그 순간 카와이의 머리에서 어떤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바로 이거다. 희생번트다. 아무도 나에게 홈런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희생번트라면 잘 할 수 있다. 희생번트라는 무기를 갖추자."
그때부터 카와이는 연습이 끝난 다음, 홀로 그라운드에 남아 희생번트 연습을 했다. 자기가 원하는 방향에 공을 자기가 원하는 정도의 세기로 보내는 기술을 갈고 닦았다.
1989년이 되자 오 사다하루가 사임하고 새 감독 후지타 모토시가 부임했다. 후지타는 카와이를 발탁해 주전 유격수로 앉혔다. 홍순기는 수비가 안정적이지 않았고 스구로의 타격은 카와이와 도토리 키재기였다. 결국 내야수, 외야수 가리지 않고 소화해낼 수 있는 안정된 수비력과 희생번트를 기가 막히게 댄다는 두가지 강점을 눈여겨보고 카와이를 주전으로 발탁한 것이다. 이 시즌에 카와이는 98시합에 출전하며 드디어 꿈에 그리던 주전자리를 차지했다. 88년까지 통산 16개 불과하던 희생번트는 89년 한 시즌에서 단숨에 32개를 기록했다. '검증된 수비력을 갖추고 뛰어난 희생번트 능력을 갖춘 2번타자/유격수'라는 자신이 있을 곳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 시즌에서 카와이는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
해리포터와 희생번트의 귀신
그리고 1990년부터 '번트왕'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1999년까지 주전 내야수로 뛰면서 그는 한 시즌에 평균 40개 이상의 희생번트를 성공시키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번트라는 주목받지 않는 기술을 갈고 닦아 주전자리를 차지한 카와이의 이야기는 대중적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팀을 위해, 동료를 다음 베이스로 보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점이 부각되어 희생번트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을 응축시킨 야구 기술'로도 부각되었다. 그리고 그 희생번트의 달인 카와이의 인기는 이제 홈런타자들급으로 성장했다.
전성기 떄의 카와이는 희생번트에만 의존하지 않았고 두가지 무기를 가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것은 희생번트지만 그의 진정한 상품가치는 안정된 수비력이었다. 이케야마 타카히로(야쿠르트), 미야모토 신야(야쿠르트), 노무라 켄지로(히로시마) 같은 수비 천재들이 즐비하던 90년대에 골든글러브를 5번이나 수상했다.
카와이를 응원하는 관중들. "인생은 희생번트"라고 씌여져 있다.
우흥우흥
편피노? 지잡대? 그게 무슨 상관이냐? 메이저리그에서 잘 나가도 크보에서 먹튀소리 듣고 쫓겨가는 놈들도 적지 않은데. 과거를 후회한다면 지금 무기를 찾아라. 내일을 위해.
카와이는 1999년 이후부터는 나이 탓에 유격수로 출전하는 횟수는 줄었다. 그러나 그 희생번트 능력은 여전히 천하일품이어서 감독이 득점찬스에서 급히 대타로 내보내는 일이 많았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희생번트 533개를 기록했는데 번트 성공률이 (3할이 아니라) 무려 9할이라는 점. 한번 번트를 대면 기어코 주자를 다음 베이스로 보낸다는 의미다. 자기가 맡은 일은 반드시 해낸다는 그 철저한 프로정신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희생번트 세계신기록을 수립할 때의 만평. 카와이는 역시나 노안으로 그려진다.
카와이는 2003년 요미우리에서 은퇴 권고를 받고 현역생활을 그만둘까 했는데 당시 주니치 드래곤즈의 감독이었던 오치아이 히로미츠의 요청에 의해 주니치로 옮겨 현역생활을 계속했다. 그리고 2006년 주니치에서 프로생활을 마쳤다.
번트를 댄 다음에 1루로 전력 질주. 카와이는 발도 빠르지 않고 이미 아웃은 각오했지만 내야안타의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는 한 달린다.
그 성실함 때문에 카와이는 은퇴하자마자 코치 요청을 받았다.
사람이 무기를 하나 가지면 사회인이 되고,
무기를 두개 가지면 지도층이 되고
무기를 세개 가지면 레전드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무기를 3개 갖는 사람은 하늘이 내린 재능과 노력이 겹쳐야 한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무기를 2개까지만 가질 수 있다고 한다.
투수로 입단했다가 내야수로 빠지게 된 비운의 야구선수 카와이는 노력으로 무기를 2개 가졌다.
카와이는 자신의 노력으로 무기를 2개까지 만들어냈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니까 2개의 무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들인 노력을 후배들에게 전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렇게 하여 '남을 지도할 자격'이라는 제3의 무기가 만들어졌다. 카와이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주니치의 코치로 뛰었고 2011년부터는 요미우리의 2군 감독으로 다시 자신의 친정팀에 돌아왔다.
카와이가 늘 선수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남이 보지 않을 때 하는 노력이 진짜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는 1군에 가지 못해 끙끙대는 젊은선수들에게 남들이 하는 걸 하는 정도로 그걸 노력이라고 부르는 건 창피하지 않냐고 질타한다. 현역시절 다른 선수들과 같이 연습을 하고 그들이 떠난 후에야 희생번트 연습을 시작했던 번트 세계기록 보유자의 말은 그 설득력이 남다르다.
하라 타츠노리 감독이 물러나면서 선수들에게 인망이 높은 카와이 2군 감독이 1군 감독이 되는 거 아니냐는 예상이 있었지만 요미우리 구단은 화려함을 갖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을 지나치게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카와이는 데뷔 때부터 날렸던 스타 선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1군 감독 오퍼는 카와이 대신 천재타자로 칭송받았던 요미우리의 프랜차이즈 스타 타카하시 요시노부에게 갔다. 그리고 카와이는 선수들 육성에 더욱 전력해달라는 의미로 3군 감독으로 발령 받았다.
3군이란 프로야구 구단이 최저연봉을 주어가며 데리고 있는 육성선수들을 의미한다. 등번호는 3자리수인 그들은 구단 선수단에 등록되지도 못한 비정규직들이다. 카와이는 그 육성선수들을 훈련시켜 2군에 올려보내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1군으로 올라갈 희망이 0.1%라도 있는 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3군 선수들. 카와이 마사히로는 그들의 멘토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카와이 마사히로의 둘째아들 카와이 타쿠야가 요미우리의 3군에서 뛰고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를 본받아 내야 수비는 잘하는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장타력이 없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그런 아들에게 카와이 3군감독이 한 말은 세가지였다. "부상은 당하지마라. 몸관리가 안되면 1군은 불가능하다", "너의 성적이 부진하면 다른 사람이 해고하기 전에 내가 널 해고하겠다", 그리고 "남이 보지 않을 때 하는 노력이 진짜 노력이다."
아버지의 후광 덕분에 아직 육성선수이면서도 요미우리 입단 때 기자회견까지 가진 '금수저' 카와이 타쿠야. 아들 옆에서 카와이 마사히로도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시간이 지나면 부모의 후광은 무의미하고 개인의 능력만이 중요하다.
2016년말, 카와이 타쿠야는 지금도 3군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나는 카와이 마사히로로부터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
1. 자신의 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위기 의식의 중요성
2. 하나의 무기를 갖추었다 해도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노력해서 또 하나의 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점
3. 화려하지 않은 일이라도 자신이 맡은 일은 철저히 하는 프로의식
마지막으로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노무상(노무라 카츠야)의 말을 인용하겠다.
노력은 즉효성이 아니다. 3년 후 쯤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게 진짜 노력이다
아마 앞으로 5~10년 정도는 여전히 금수저들이 잘나가고 좌파들은 사회의 단물을 빨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15~20년 후에는 묵묵히 노력을 쌓아올린 사람들이 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일게이들은 감성팔이에 휩쓸리지 않고 팩트를 중요시할 줄 안다는 점에서 노력만 하면 무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게이들은 사회의 빈틈을 헤집고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자신을 드러내라.

그리고 좌파는 일베섯을 먹고 반드시 죽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