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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다 히로키: 유리멘탈의 길고 긴 싸움



이리키 사토시(1967년생)와 이리키 유사쿠(1972년생)는 둘다 어릴 때부터 야구소년들이었다. 그리고 형제는 둘다 투수였다. 나이 차이가 좀 있었기 때문에 학창시절에는 형제가 같은 리그에서 대결한 적은 없었지만 둘다 ㅅㅌㅊ 투수들이었다. 아니, 동생 유사쿠 쪽이 더 뛰어난 투수였다. 중학생 시절에는 퍼펙트게임을 2번, 노히트노런을 6번 달성했으며 애틀란타 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되기까지 했으니까.


형제는 비록 체격은 크지 않았으나 (사토시가 178cm, 유사쿠가 174cm) 막강한 어깨와 정면승부를 좋아하는 공격적인 투구로 주변에서는 일찍부터 그들이 프로야구선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리고 정말로 둘다 프로야구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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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시절의 이리키 유사쿠



사토시는 1989년 긴테츠 버팔로즈에 스카웃되어 프로생활을 시작했고 유사쿠는 1997년 요미우리에 스카웃되어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사토시는 긴테츠 버팔로스와 히로시마 카프 등에서 활동하다가 1999년 그 활약상을 인정받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스카웃되었다. 그리고 1999년과 2000년 두 시즌을 형제는 같은 요미우리 선수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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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사토시, 오른족이 유사쿠


2000년말, 부상으로 부진했던 사토시는 요미우리로부터 방출당했다. 너무나 자존심이 상한 사토시는 "요미우리를 쓰러뜨리고 싶은 구단은 나를 사가라! 나는 요미우리를 잘 알고 있다"는 호쾌한 마케팅을 펼쳐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스카웃되었다. 그리고 2001년 시즌 사토시는 선발투수로서 10승을 올려 커리어하이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일본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했다. 그때가 사토시의 전성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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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 시절의 사토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유사쿠는 공교롭게도 형의 포텐이 폭발했던 2001년에 그 또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13승을 기록하며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으나 2002년에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겨우 5승밖에 올리지 못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2002년은 사토시에게도 불운한 해였다는 점. 사토시 또한 동생과 마찬가지로 허벅지 부상에 시달리다가 겨우 1승만을 올리는 초라한 활약을 했다.


2003년 사토시는 야쿠르트로부터 결국 방출당했다. 그는 두산과 계약을 맺음으로서 크보의 외국인 용병들 중에서는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었다. 두산에서 7승을 올리며 부활하는가 싶었으나 두산과 재계약하지 않고 2004년에는 대만으로 떠나 라뉴 베어즈(한국에서도 대만에서도 곰 구단에서 활동)의 용병으로 활동했는데 부진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으며 대만에서는 겨우 11시합에만 출전하는 부진을 보였다. 원인은 어깨나 팔꿈치가 아니라 허벅지였다. 결국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사토시는 은퇴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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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의 크보 시절



유사쿠는 형보다는 오래 활동했다. 그러나 유사쿠의 투수로서의 전성기도 사실상 2001년에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2003년에 결국 요미우리에서 방출당했고 2004년과 2005년에는 니혼햄 파이터즈에서 활약했으나 두 시즌동안 합계 8승을 올리는데 그쳤다. 그 후, 메이저리그 도전을 꿈꾸며 뉴욕메츠 AAA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으나 (이 당시의 팀메이트가 KIA용병이었던 호세 리마) 한번도 1군에 올라가지 못했고 심지어 스테로이드에 손을 데다가 적발당해 결국 방출당했다. 어떻게든 투수의 꿈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유사쿠는 베네수엘라 윈터리그에도 참여했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뛰었다. 그러나 토론토에서는 AAA는 고사하고 AA로까지 떨어져 유사쿠는 미국에의 꿈을 접고 2008년 쓸쓸히 일본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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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절의 유사쿠



한때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중학야구계의 신동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엘리트 투수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가장 멋진 순간들을 너무 일직 맞아버린 유사쿠는 2008년에는 일본에서 다른 신인들 및 노장(퇴물)들과 마찬가지로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그래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서 유사쿠를 스카웃했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선수시절 내내 유사쿠를 괴롭혔던 고질적인 허벅지 부상이 재발하는 바람에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결국 2008년 시즌이 끝나자 방출당했다.


누구나 영원히 잘할 수는 없다. 아무리 뛰어난 야구선수라 해도 전성기는 지나고 은퇴의 순간은 다가온다... 사토시는 동생보다 좀더 빨리 야구 밖의 세상으로 복귀한 셈이지만 방황은 심했다. 그는 자신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유흥업소에 드나들며 야구로 번 돈을 탕진하기 시작했다. 결국 술집여자와의 썸씽이 부인에게 발각되어 이혼을 하고 말았다. 야구로 번 돈은 대부분 위자료로 내주었다. 그리고 영욕의 야구 생활을 뒤로 한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사토시는 옛 중학교 동창의 여성을 만났고 (직업은 미용사) 교제 끝에 재혼하였다. 이로서 사토시의 방황이 끝나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야구선수였다는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했다. 사실 야구 선수란 정말 불쌍한 직업이다. 학창 시절에는 다른 공부도 안하고 오로지 야구에 매달리고 2, 30대도 야구를 위해 불태웠지만 은퇴하고 나면 그토록 인생을 바쳐 갈고 닦은 야구 기술은 제2의 인생에서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사토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그가 잡을 수 있는 직장은 편의점 직원, 배달, 혹은 식당 주방의 가장 단순한 업무들 정도였다. 타인에게 핀잔 들어가며 일하는 환경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토시는 툭하면 직장을 때려치웠다. 그가 재혼한 부인은 미용실을 소유하고 있어서 정기적인 수입이 있었다. 나중에는 결국 그 수입에 기대어 사토시는 구직활동도 포기하고 히키코모리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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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의 사토시(왼쪽)



유사쿠는 야구선수로서는 한계를 맞았음을 인정했지만 야구를 떠나서는 살 수 없었다. 야구 이외의 무슨 직업을 찾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는 결국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타자들을 위한 배팅볼 투수로 새 직장을 잡았다. 처음에는 배팅볼 투수를 만만히 보고 '1군도 못되는 루저들이 하는 일'이려니 싶었지만 배팅볼 투수도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다. 타자의 타격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치기 좋은 공을 던져주어야 하기 때문에 공의 위력 자체는 부족해도 제구력이 좋아야 하고 또한 다양한 구종을 구사할 수 있어야 했다. 즉, 개나 소나 하는 직업이 절대로 아닌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유사쿠는 배팅볼 투수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 타자들로부터 불평이 쏟아지자 유사쿠는 배팅볼 투수 자리에서도 슬그머니 물러났다. 이제 그의 자존심은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어떻게든 야구와 인연을 맺고 싶었던 유사쿠는 마지막 선택지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선수들이 사용하고 난 야구 장비를 정리하는 담당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다 짬밥과 기술이 있어서 유사쿠는 1군 장비 담당이 되지 못하고 2군 장비 담당에서 시작해야 했다. 2군 선수들이 쓰고 난 야구공들을 모아 정리하고 연습이 다 끝난 후의 그라운드를 정리하며, 선수들의 던져놓은 유니폼을 걷어 빨래하는 등, 엘리트 투수시절에는 생각도 못하던 잡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존심을 죽인 대가로 그는 야구 유니폼을 계속 입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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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담당으로 취직한 유사쿠



사토시의 부인은 이대로라면 남편은 폐인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미용실을 처분했다. 미용실이 있는 한, 사토시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수입원이 끊기자 사토시도 마음을 다잡고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복을 입지 않은 장군은 그냥 할배일 뿐이고 야구 유니폼을 입을 수 없게 된 야구선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사토시는 그 점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부동산 회사에 취직하여 일했지만 자신을 알아보는 야구팬을 만난 이후 또다시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부인에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회사에 사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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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배가 나오는 사토시



유사쿠는 장비 담당으로서 짬밥이 쌓이자 2년만에 1군 장비 담당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1군에서 유사쿠의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 1군에 새로 합류한 선수들, 즉 왕년의 자기와 같은 엘리트 신인들은 장비를 정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를 뿐더러 알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에게 심부름을 시키기까지 했다. 유사쿠는 설움이 북받혔지만 야구를 숨쉬는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몇번이고 타일렀다. 비록 그가 플레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엄연한 야구구단의 일원이었다. 그 기쁨 하나로 버텼다. 그리고 선수가 아닌 팀의 일원인 생활을 무려 6년이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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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다 떠난 후의 운동장에서 일하고 있는 유사쿠



사토시의 부인은 처음에는 남편의 거짓말을 믿고 사토시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줄 알았다. 그러나 몇개월이 지나서야 술에 취한 사토시가 울분에 차 떠드는 소리를 듣다가 그가 직장을 때려치웠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괴로워했다. (그 와중에 섹스는 엄청나게 많이 해서) 3명의 자녀들을 데리고 무능한 남편을 데리고 살 자신이 없었던 부인은 사토시에게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사토시가 이혼하지 말아달라고 눈물을 흘리는데다가 자녀들도 이혼에 반대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대신 부인은 사토시에게 백수 생활은 더 이상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남편을 자신의 친정오빠가 운영하는 도시락 가게에 취직시켰다. 현재 사토시는 도시락 가게에서 매일 아침 음식을 만들고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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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사토시. 그가 또 헷까닥해서 도시락 가게마저 그만두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유사쿠의 인생은 2014년 드라마틱한 반전을 맞았다. 왕년의 에이스 투수가 장비 담당으로 허드렛일을 한다는 제보를 받은 방송국에서 유사쿠를 취재한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유사쿠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났다. 반응이 워낙 좋아서 일본의 커피회사 BOSS에서는 영화배우 Tommy Lee Jones가 주연하는 CF에 유사쿠를 함께 출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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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 리 존스와 함께 광고를 찍은 유사쿠



한국에서 이 정도로 언론을 탔다면 직장을 때려치고 방송인이랍시고 여기저기 기웃거렸겠지만 유사쿠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변함없이 야구였다. 그는 묵묵히 장비 담당으로 계속 일했다.


그러던 유사쿠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새 감독으로 부임한 쿠도 키미야스 감독이었다. 그는 부임하면서 유사쿠에게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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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도 키미야스. 이 양반도 젊을 때에는 폭음하다가 간이 망가져서 노짱 따라갈 뻔했지만 정신차리고 술끊어서 겨우 건강을 회복함.



유사쿠는 장비 담당인줄 알고 지금 일하는 곳에서 만족한다고 말하며 사양하려고 했다. 그러나 쿠도 감독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

"아니야. 자네에게 투수코치를 맡기고 싶어서 그러네."

"예?"

"부진에 빠진 선수들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자네처럼 기술과 정신을 겸비한 코치가 필요해."


쿠도 감독은 유사쿠를 3군의 투수코치로 발탁하고 싶다고 제안한 것이다. 1군은 주전, 2군은 1군에 가지 못한 선수들이 머물러 실력을 닦거나 컨디션을 점검하는 곳, 그리고 3군은 2군에도 못 올라간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다. 미국으로 치면 AA 정도 된다. 3군의 선수들은 프로구단의 유니폼은 받았지만 이런저런 원인들로 인해 프로선수를 향한 꿈의 싹도 틔우지 못하고 스러질 운명들이다. 그 선수들을 일으키는 일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사쿠는 2015년부터 소프트뱅크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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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록 보소



소프트뱅크 입단식에서 유사쿠는 입단 소감과 포부를 말하던 도중, "야구라는 스포츠를 성립시키기 위해 묵묵히 힘써주시는 분들의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선수들을 키우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것은 지난 설움의 세월들이 떠올라 흘린 눈물인가. 아니면 그런 오랜 인고의 시절 속에서도 변함없었던 야구에의 애정을 확인했기 때문인가. 한때 그저 공 잘 던지는 투수에서 이제 야구의 모든 면을 알고, 또한 야구를 통해 인생을 보람있게 사는 법을 깨닫게 된 이리키 유사쿠는 강한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강한 남자의 눈물은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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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쿠는 1군이나 2군이 아닌 미래 때문에 고뇌하는 3군 선수들을 돕는 3군 코치 역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보람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비록 주목받는 자리는 아니지만 그는 자신의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다.


일베에는 틀림없이 다양한 연령대의 게이들이 있을 줄로 안다. 그러나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이 몸담고 있던 세계를 떠나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야 할 때가 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단지 오래 몸담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그 세계에 자부심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세상을 찾아나서기를 두려워하며 (더 이상 오지 않는) 과거에 매달리려고 한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숨겨진 가능성들을 묻은 채로 시간을 허비하는가?




1. 자신의 진로가 막막할 때에는 최대한 자존심과 허세를 버리는 연습을 해보자. 작은 자존심을 버렸을 때 보이는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존심을 세울 필요가 없는데도 무언가 마음에 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곧 천직이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일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2. 눈앞의 일은 열심히 하되 그것이 과거가 되면 더 이상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말자. 과거의 영광을 버렸을 때 비로소 보이는 세상이 있다. 과거에의 집착을 버리는 순간, 과거에 열심히 했던 일들의 안 좋은 기억은 부질없는 과거로 사라지지만 유익한 점들은 자신에게 계속 남아있게 된다. 열심히 한 일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내공이 되는데 새로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 내공이 발휘될 기회가 오지 않는다. 이것은 돈을 얼마 받느냐의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얼마나 보람있게 보내느냐 하는 문제이다.


3. 시간 있을 때마다 자신의 미래를 좀더 멀리 내다보는 연습을 하자. 나는 최근의 높은 구직난에 오히려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쉽게 취직했다가 아무 생각없이 월급받는 삶을 계속하고, 그러다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나면,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지 자기도 모르게 까먹게 된다. 그러다가 그 직장을 떠나게 되면 다시 처음의 그 고민으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이 뭐였지?' 하는 생각.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다시 그 고민을 하게 되면 답을 찾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마음 약한 사람들이 그 답을 내지 못한 채로 허겁지겁 편의점이나 치킨집을 열다가 추적60분 같은 방송에 출연하는 거 아니겠느냐.




이것으로 일본야구선수에 대해 쓰려고 계획했던 것들은 다 쓴 거 같다. 지금까지 응원해줘서 고맙고 다음에는 다른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일게이들이 벤치마킹할 만한 점이 있는 사람을 대해 찾아 다시 돌아오겠다.

일베가 나라의 중심을 잡는 것이 아니라 강한 정신력을 가진 일게이들이 나라의 중심을 잡는다.

언조비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