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단: 지혜가 큰 사람은 멍청하게 보인다

카이엔 아오야마: 재능이 있는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

노무라 카츠야: 유연한 용인술


후루타 아츠야: 철저한 자기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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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아이 히로미츠: 끝없는 자기확신



그리고 오늘의 주제는 나가시마 시게오다.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야구계의 젠틀먼, 누구나 인정하는 뜨거운 남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송충이눈썹에 대해 arabo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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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인기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종신명예감독’ 나가시마 시게오도대체 그는 어떤 인물이길래 클래식 음악계에서 유명 지휘자에게나 수여하는 종신명예지휘관과 같은 칭호를 받은 것일까? (2001년 나가시마가 일본 최초의 종신명예감독 칭호를 받았고 2010년에는 노무라 카츠야가 라쿠텐의 종신명예감독 칭호를 받았다.종신명예감독은 나가시마와 노무상 두명뿐이다)


일본프로야구 역사에서 가장 폭넓은 대중적 사랑을 받은 남자인 나가시마 시게오는 1936년 치바현의 가난한 농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패전의 실의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포츠에 빠져들었고 그 중심에 야구가 있었다어린 나가시마도 야구를 보고 푹 빠졌다나가시마는 폼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보고 싶어하던 아주 활달한 소년이었다그는 특히 야구에서 어려운 타구를 멋지게 캐치해내는 유격수에 끌렸고 중학교 때 야구부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유격수에 지원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내내 야구에 빠져 살았던 나가시마에게 있어 프로야구선수의 꿈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그러나 나가시마의 부모는 아들이 대학에 가서 안정된 직장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야구선수를 하겠다는 것이 늘 못마땅했다한편 고교야구에서의 나가시마의 활약을 본 구단들이 영입 의사를 밝히고 먼저 부모에게 접촉을 해왔는데… 아들을 대학교에 보내고 싶었던 나가시마의 부모는 아들에게 야구 구단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로 하지 않고 구단 관계자에게 거절하는 편지를 멋대로 보내는 만행을 저지른다나중에 이 일을 알게 된 나가시마는 격노하였으나 여기서 나가시마의 가장 놀라운 특징이자 일게이들이 배워야 할 그의 장점이 발휘된다그것은 바로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마음가짐나가시마는 대학야구에서 좀더 실력을 기른 다음 프로로 가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대학에 진학하였다. 전공은 경제학이었다. 물론 기업체에 취직할 생각은 없었고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야구였다.


나가시마가 대학야구를 고려하게 된 것은 그의 포지션 변화와도 연관이 있었다. 그는 고때 유격수에서 3루수로 포지션을 바꾸었는데 3루 수비에 큰 재미를 느끼고 있었던 참이었다대학야구에서 3루수로서의 실력을 닦은 결과나가시마는 수비와 타격 모두 ㅅㅌㅊ의 더욱 탄탄한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그리고 나가시마를 눈여겨보던 구단들 중에서 요미우리와 계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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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enis is this big!



당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요즘처럼 돈을 아주 많이 주는 것도 아니었고 (나가시마를 잡기 위해 막판까지 요미우리와 난카이가 맞붙었는데 연봉은 난카이가 더 높이 제시했었다나가시마도 고향은 도쿄가 아니었다그런데도 나가시마가 요미우리에 가게 된 것은 그의 노모(老母)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옛날사람인데다가 끔찍한 전쟁까지 겪었던 노모는 아들이 멀리 떨어진 지역을 연고지로 삼는 구단에 가면 두번 다시 보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그래서 기왕 야구선수가 될 거라면 치바현에서 가까운 도쿄를 연고지로 삼는 구단이 좋겠다고 말한 것이다그리고 훗날 요미우리의 종신명예감독이 되는 미스터 요미우리는 그가 일생을 바치게 되는 구단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1958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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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시마는 어떤 선수인가일본야구사를 대표하는 강타자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홈런보다는 2루타를 더 많이 생각했다고 하는 중장거리형 타자이다나중에 합류한 후배 오 사다하루(왕정치)가 장타력은 나가시마보다 앞섰다그러나 나가시마의 타자로서의 최대 장점은 역시 뭐니뭐니해도 찬스 때 강한 클러치히터라는 점. 나가시마는 끝내기 홈런이나 끝내기 적시타를 유난히 많아 기록하여 명승부 제조기로서 카리스마적인 인기를 얻었다.



야구에 대한 탐구심이 남달랐던 나가시마는 특히 메이저리그의 조 디마지오를 좋아하여 그의 시합 영상을 구해 보면서 스텝을 크게 벌려 하체를 안정시키고 상체를 전력으로 휘두르는 상당히 독특한 타격폼을 고안해냈다. 뛰어난 타자로 명성을 쌓은 후에도 그의 야구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여 선수와 감독 시절 내내 수시로 메이저리그의 정보를 수집했다. 게다가 나중에는 쿠바야구와 한국야구까지 연구했다야구의 바다에 빠져 끝없이 헤엄치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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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라 이호성! 내가 간다!



그는 좋은 의미로 천진난만하다고 할 수 있다야구를 좋아하고 야구를 플레이한다는 사실에서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그의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는 야구를 통해 멋있게 보이는 일이었다그래서 연습도 시합도 늘 즐겁게 몰두했다특히 득점 찬스 때마다 위축되지 않고 적시타를 때려내는 강인한 집중력을 갖추고 있었다자기과시욕이 긍정적인 형태로 발휘된 사례이다무쇠팔 투수 김경홍(카네다 마사이치)은 나가시마를 두고 예측 불가능이라고 평가했다나가시마는 컨디션이 좋으면 평소 맞추지 못하던 공도 갑자기 맞추니 나가시마와의 승부는 매순간마다 심리전이나 수 읽기의 단계를 뛰어넘은 순수한 의미의 전력승부였다고 회고했다.

 

프로스포츠에서 자기과시욕은 관객을 먼저 생각하는 팬서비스 정신과 연관이 있다나가시마는 프로야구에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도 일관되게 팬을 위한 야구를 강조해왔다그의 투철한 팬서비스 정신이 잘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작은 헬멧을 착용한 일이다어느날 나가시마가 삼진을 당했는데 워낙 호쾌한 스윙에 다리가 꼬이며 헬멧이 떨어져 나가는 해프닝이 있었다그 광경에 팬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기뻐하자 나가시마는 안타나 홈런을 치는 게 제일 좋긴 하지만 헛스윙을 한다 해도 팬들을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헬멧을 작은 것을 써서 헛스윙 때마다 헬멧이 떨어져 나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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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스윙을 해도 그림이 되는 남자



나가시마 하면 강타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늘 자신이 뛰어난 수비수라고 믿었고 자신의 3루 수비에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다. 실제로 수비범위가 아주 넓은 3루수였으며 허슬플레이를 무척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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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요미우리의 감독인 하라 타츠노리도 현역 시절에는 3루수/4번타자였다. 나가시마의 영향 때문에 요미우리에서 3루수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현재 요미우리의 3루수는 무라타 슈이치인데 나가시마나 하라와 비교당하며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다. 안습...


이현세 화백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100시합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천재 3루수 마동탁의 모델도 나가시마 시게오로 알고 있다. (정확한 정보를 아는 게이는 제보 바란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저 어디까지나 굿플레이어의 자질들이고 나가시마를 진정한 카리스마로 만든 것은 인간으로서의 그릇의 크기였다나가시마 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바로 팀에 대한 헌신도이다나가시마는 개인 기록보다 요미우리가 이겨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왕정치가 장타력과 홈런에서 나가시마를 압도하고 4번타자의 자리를 차지하자 3번타자로 밀려난 나가시마는 대만 출신의 후배를 질투하는 대신 오히려 우리 요미우리는 더욱 강해졌다고 기뻐하며 왕정치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왕정치와 나가시마는 시대를 풍미한 클린업 콤비 ‘ON로 알려지게 되었다그는 한순간도 다른 선수에 대해 질투하거나 텃세를 부리지 않았고 늘 팀의 단합을 다지기 위해 애썼다왕정치는 나가시마의 그러한 모습에 인간으로서 큰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하며 지금도 왕정치와 나가시마는 변함없는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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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시마의 동시대 라이벌들에게도 그는 탄복의 대상이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노무상의 회고. 노무상은 (데이터를 연구하여 상대의 패턴을 찾아내는 ID야구를 고안하기 전에는)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들에게 말을 걸어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약간 치졸하지만 그래도 나름 머리를 쓴 작전을 구사했었다그리고 노무상은 나가시마가 타석에 들어서자 이봐 자네 요즘 타격폼이 바뀌었던데 괜찮겠어?”하고 심리전을 구사했다그랬더니 나가시마는 정말입니까잠깐만요하고 타임을 요청한 후 몇번 스윙을 해본 다음 기어이 홈런을 쳤다홈플레이트를 밟으면서 나가시마는 노무상에게 다가와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이 일을 통해 노무상은 잔머리는 일류선수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도발 대신 ID야구를 개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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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상(왼쪽)과 나가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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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적인 기품의 소유자



1974년 나가시마는 나이에 따른 노쇠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야구에서 은퇴하게 되었다나가시마는 현역에 미련을 갖고 있었지만 팀을 위해서는 노쇠한 자신이 젊은 선수들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이해하고 은퇴를 받아들였다워낙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나가시마는 은퇴 후 곧바로 요미우리의 감독에 취임하였다나가시마는 코치 연수를 받고 지도자로서 경험을 쌓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여 그 제안을 사양하였으나 구단주의 뜻과 당시의 강한 여론에 밀려 감독직을 수락하였다그러나 감독이라는 자리는 선수와는 너무나 달랐다자기 할 일만 하면 되는 선수와 달리 감독은 선수들 하나하나에 동기부여를 하고 그들의 기량을 끌어올려야 했다하지만 당시의 나가시마는 용인술에 서툴렀고 설상가상으로 배타적인 코치들의 항명에도 시달렸다나가시마의 경험 미숙과 어수선한 팀 분위기 탓에 요미우리는 성적은 서서히 운지하기 시작했다나가시마는 이번에도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위기를 타개하려 애썼다바로 솔선수범이다.


1979년 나가시마는 주전들이 노쇠함을 보이고 있음을 간파하고 팀의 세대교체를 위해 젊은 선수들을 추려 합숙훈련을 떠났다지금도 전설로 회자되는 이토캠프 지옥훈련이 그것이다그곳에서 젊은 선수들은 샤워하다가 잠들었다고 할 정도로 하루종일 야구 훈련만 하는 생활을 약 한달간 경험했다그러나 정말 경이로웠던 것은 그 선수들의 훈련을 끝까지 독려하며 같이 땀을 흘리던 감독한 나가시마의 에너지였다한계가 없는 나가시마의 열정을 목격한 그들은 야구에 대한 자세가 바뀌기 시작했고 이토캠프에 참여한 선수들은 훗날 모두 시대를 풍미한 일류선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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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토캠프에 참가했던 선수들과 함께 (뒷줄 맨왼쪽에서 따봉 하고 있는 아재가 현재 DeNA 감독인 나카하타 키요시. 저 아재도 호걸이다...)




그러나 젊은 선수들의 포텐이 터지기에는 아직 몇 년 더 시간이 필요했다코치들의 비협조에 부딪혀 팀 리빌딩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나가시마는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1980년 감독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전임 감독과 그의 파벌에 속해있던 코치들이 나가시마가 아직 감독이었는데도 후임 감독에 대한 의견을 내놓은 것이 계기였다천진난만한 열정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접하고 나가시마는 쓸쓸히 감독직을 내놓았다.

 

그 후에도 나가시마에게 손짓을 하는 구단들이 있기는 있었으나 요미우리에 대한 애정까지 식은 것은 아니라서 사양하고 있었다야구를 통해 돈은 벌었으니 사업을 해볼까 하여 부동산 사업에 손을 댔지만 그것이 너무나 따분하다고 여긴 나가시마는 이 참에 야구 공부나 계속하자는 생각으로 미국한국쿠바를 직접 방문하며 각나라의 야구문화, 훈련 방법 등을 직접 관찰하였다.

 

한편 요미우리는 나가시마가 열심히 육성한 선수들의 기량이 개화하여 좋은 시절을 맞이하고 있었다그러나 작당을 하여 나가시마를 쫓아내놓고 나가시마가 육성한 선수들을 활용하여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오세훈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박원순 같은 행태에 팬들이 내심 분개하고 있었다. 나가시마는 모르고 있었지만 나가시마가 야구에서 멀어져 있던 시간을 통해 오히려 팬들 사이에서 '요미우리의 심장은 역시 나가시마'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다가 1980년대가 저물어가면서 나가시마가 키워놓은 선수들이 노쇠해지거나 요미우리를 떠나자 요미우리의 성적은 다시 운지하기 시작했다그제서야 나가시마의 뛰어난 능력을 깨달은 구단은 1992년 나가시마를 다시 감독으로 모셔왔다. 나가시마도 많이 변해 있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야구 밖에 모르던 스타 출신의 어리숙한 인물이 아니었다지난 10여년간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고 노련함을 더한 결과 감독다운 감독으로 변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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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시마 2기 정권 출범



다시 요미우리 감독에 취임한 나가시마의 급선무는 물론 팀의 재건이었다그리고 자기와 함께 같은 야구관을 공유할 수 있을 만한 선수를 찾았다그리고 1992년 나가시마는 그가 이상에 가장 딲들어맞는 신인을 찾는다바로 마츠이 히데키이다. 당시 요미우리에는 키요하라라는 4번타자가 있었지만 그는 야구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놀기도 좋아했기에 열정야구를 내세우는 나가시마와는 잘 맞지 않았다. 그리하여 키요하라 못지 않게 체격이 크고, 겸손하며, 야구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마츠이를 장차 4번타자로 육셩하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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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프트 때 마츠이를 지명하며 어린이처럼 기뻐하는 나가시마. 나가시마와 마츠이의 인연을 설명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는 사진이다.



나가시마는 마츠이가 요미우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내내 맨투맨 트레이닝을 거른 적이 없었다. 선수들이 집합하는 시간 30분 전은 물론이고 휴일에도 늘 마츠이를 불러내어 약 30분간 스윙을 시켰다. 연습 시간은 정해진 것은 아니고 공기를 가르는 스윙소리가 나가시마의 마음에 들때까지 스윙을 시켰다. 마츠이는 자신의 야구 커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그 매일 거르지 않고 계속된 스윙 훈련이었다고 회고한다. 요미우리에서 활동했던 오치아이 히로미츠도 나가시마의 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세계(프로야구)는 말이야, 스윙 한번이라도 더 많이 한 녀석이 살아남는 세계야."


키요하라는 마츠이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에 요미우리에 들어왔을 때 마츠이는 그냥 덩치가 커서 힘으로만 날려보내는 타자였다. 저래가지고서 오래 버틸까 싶었는데 나가시마 감독에게 매일 지도를 받더니 매시즌마다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인가 타격으로는 나는 더 이상 마츠이를 이기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처럼, 정말로 거북이에게 추월당한 토끼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분하지 않았다. 마츠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나가시마와 마츠이는 가장 성공적인 사제관계로 기억되고 있다. 뉴욕양키즈에서 마츠이가 부진하다 싶으면 나가시마는 국제전화를 걸어 마츠이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국제전화를 통해 스윙소리를 들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제자의 스윙소리가 요미우리 시절에 듣던 것처럼 날카롭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나가시마가 뉴욕을 방문하자 마츠이가 마중나왔다. 나가시마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자, 배트 가지고 왔겠지? 어서 호텔방으로 올라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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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시마가 이 사진에서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것은 뇌경색 때문에 오른팔을 자유롭게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나가시마는 2001년 고령을 이유로 감독직에서 사퇴하였다. 그의 후임으로는 하라 타츠노리가 임명되었다. 한편 나가시마는 감독직에서 물러나기 한해 전인 2000년 신인들 중에서 멋진 스윙을 하는 인재를 발견하였다. 그는 그 신인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그를 갑자기 주전 포수로 발탁하는 대담한 용인술을 강행했다. 그리고 나가시마의 신뢰 속에서 그 포수는 실력이 나날히 발전하게 되었다. 그가 바로 하라 타츠노리 체제의 요미우리를 지탱해온 주장 아베 신노스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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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이 히데키(188cm)와 아베 신노스케(180). 신장 차이는 있지만 어깨 벌어진 것으로는 아베도 마츠이에 뒤지지 않는다. 둘다 나가시마가 발굴한 중심선수들이다.



감독으로서 나가시마는 동시대의 유명 감독들보다 한수 아래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막대한 투자에 비해 리그 우승은 겨우 세번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나가시마는 인재 육성이라는 면에서, 특히 현역 시절의 자기와 같은 팀의 중심이 될 선수를 길러내는 면에서는 대단히 뛰어난 안목과 솜씨를 발휘했다. 무엇보다도 나가시마는 '요미우리다운 플레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팀의 정신적 지주였다. 요미우리의 플레이는 한번 기세를 타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는 '신바람야구'로 정의내릴 수 있는데 그 팀컬러는 바로 나가시마 감독이 만들어온 것이다. 나가시마는 두번째 감독 시절에는 유난히 마음 심(心)을 즐겨썼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야구,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야구. 이것이 나가시마가 꿈꾸는 이상적인 야구였다.


다만 요미우리에서 선수로서 나가시마를 모셨고 주니치에서는 경쟁팀의 감독으로 나가시마와 대결했던 오치아이는 나가시마는 감독에는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전력 계산, 배분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매시합 하나하나를 일본시리즈 마지막 시합처럼 전력으로 승부할 것을 주문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가시마는 매일메일을 그렇게 전력으로 싸울 사람이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지나치게 뜨거운 피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철인 나가시마의 건강은 2003년을 기점으로 크게 악화되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이다. 비록 생명은 건졌으나 나가시마는 반신불수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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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재활훈련에 정력적으로 매달린 결과 놀랍게도 다리의 마비는 거의 완치되었다. 나가시마는 야구를 하던 때와 똑같은 열정으로 재활훈련에 임했다. 심지어 물리치료사들에게 자기는 아직 지치지 않았으니 좀더 재활훈련을 하자고 졸랐을 정도. 그 진취적인 태도 덕분인지 나가시마는 보행에 지장이 없다. 나가시마의 회복력에 의사들도 경이로워하고 있다. 다만 오른팔은 아직 뜻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으며 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발음은 어눌해진 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소년야구나 요미우리 캠프 등을 방문하여 변함없이 열정적인 지도를 한다. 정말 끝없는 에너지의 소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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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경색으로 쓰러진 사람에게 추운날씨는 매우 해롭다. 그러나 요미우리 캠프까지 나와 아베 신노스케를 열성적으로 지도하는 나가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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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 나가시마가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사진이라 할 수 있다. 나가시마의 뜨거운 열정은 상대가 마츠이이든 초등학생이든 가리지 않는다. 타격 지도를 하다가 끓어오르는 열정을 누르지 못하는 나가시마.




나가시마는 어느 시대에서도 성공할 타입일 것이다. 그의 끝없이 긍정적인 자세와 한없는 열정은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가지 무기는 어느 시대에서나 돋보일 수 밖에 없다. 야구를 즐기고 야구에 대한 모든 것을 탐구하는 나가시마의 열정은 순수하여 타인을 시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열정이 다른 사람들을 중력처럼 끌어들였다. 간단히 말하면, 열심히 사는 사람은 멋있는 법이다.



선수 각자에게 맞는 맞춤형 동기부여를 통해 '난 안돼'라는 패배주의를 몰아내는 노무상이나 실력지상주의의 무한경쟁을 통해 선수들의 전체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오치아이와는 달리 나가시마는 자신의 뜨거운 열정을 통헤 엘리트가 될 자격이 있는 선수들에게 불을 붙인다. 즉, 궁극의 엘리트주의라 할 수 있다. 나가시마 자신이 팀을 이끌었던 엘리트였으니 엘리트를 양성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압도적인 연습량과 흔들림없는 향상심으로 무장한 엘리트들이 이끌어가는 팀이 나가시마가 생각하는 '강팀'이었다. 사실 요미우리는 엘리트들에게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나가시마로서는 의존하려고 엘리트들을 키운 것이다. 마치 관중에게 의존했던 제나라 환공, 제갈공명에게 의존했던 유비처럼 나가시마와 엘리트 선수들의 관계는 강한 신뢰로 뒷받침되어 있다. 나가시마식 야구를 바로 곁에서 보고 배운 하라 타츠노리 또한 방임형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엘리트주의를 따르고 있다.



그리고 엘리트들 사이의 신뢰 관계에서 권위주의는 사실 그다지 필요없다. 나가시마는 엘리트주의를 내세우면서도 권위주의적이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연하에게도 늘 존대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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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을 친 오치아이에게 인사 퍼포먼스를 하는 나가시마. 말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나가시마의 리더쉽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라 할 수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팀컬러는 신바람야구와 더불어 바로 엘리트주의이다. 요미우리 선수는 곧 일본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엘리트주의 때문에 안티도 많은 팀이긴 하지만 요미우리 선수들의 저력은 확실히 대단하다. 요미우리에 엘리트주의를 뿌리내린 사람도 나가시마였다. 나가시마가 보는 세상은 금수저 흙수저로 미래가 미리 정해져 있는 세상이 아니다. 스윙 한번이라도 더 하는 놈이 이기는 세상이다.


오치아이식 무한경쟁과 나가시마식 엘리트주의의 공통점은 선수들의 실력은 평등하지 않다는 기본 전제. 차이점이라면 역시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관점이다. 오치아이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인 반면 나가시마는 엘리트들이 열심히 하면 엘리트가 될 능력이나 의욕이 없는 선수들도 그 분위기 덕분에 평균 이상은 분발한다는 식이다. 따라서 오치아이는 현재의 엘리트라 해도 따로 특혜를 주지 않지만 나가시마는 엘리트로 인정받은 사람들에게는 특혜를 인정했다. 오치아이식 리더쉽과 나가시마식 리더쉽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을 두루 반영하고 있다. 일게이들도 언젠가 책임있는 자리를 맡게 될 때, 그냥 갑질식 권위주의에만 의존하지 말고 오치아이든, 노무상이든, 나가시마든 자기에게 맞는 리더쉽을 찾아 "어? 이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나중에 일게이라는 게 드러나면 부하직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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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아아아아아 나는 오늘만 산다! (물론 좋은 의미로)



그리고 이제 일게이들이여, 나가시마에게서 배우자


1. 좌절의 순간에서 진취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특별한 재능이다. 눈앞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그 일에 집착하지 않고 한발 물러나 다른 일을 하면서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다. 나가시마는 그토록 야구에 빠져 살았으면서도 그의 대학시절의 전공인 경제학에 대한 흥미를 계속 갖고 있었다. 야구에서 멀어져 있을 때에는 경영학 서적을 읽으며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리더쉽을 다듬으려 노력했던 다독가이기도 하다. 특히 감독직을 처음 물러나 12년간 야구계에서 멀어졌을 때에는 특이하게도 예술영화와 인상파 미술 등에 관심을 가졌다. 다른나라의 야구에 대해서도 공부하는 등, 늘 한가지에만 집착하지 않고 늘 새롭게 할 일을 찾아내곤 했다. 멀리 내다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진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잘 풀리지 않는' 시절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2.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첵임감 있는 태도를 갖자.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기쁨은 놀라운 성취감과 활력을 준다. 비록 모든 야구선수들이 나가시마의 '오늘도 팬들을 위해'라는 철학에 따라오지는 못했지만 그 정신 때문인지 요미우리는 시즌 후반부에서 끈질긴 저력을 보인다. 나가시마가 그렇게 인망이 높은 이유는 그가 늘 주변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또한 '팬들을 위해'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자신에게 기대를 걸어주는 사람이 정 없다면 '순국선열들께서나를 지켜보신다'고 생각하자.


3. 요즘 세상에서는 진지한 사람이 놀림감이 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쿨한 척하고 사느니 나가시마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라도 진지함을 갖고 살자. 사실 일본예능을 잘 아는 게이들은 알겠지만 나가시마는 독특한 화법 때문에 '재미있는 영감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처음에 풉! 하고 웃고 난 다음에는 나가시마의 말을 자꾸 귀담아 듣게 된다. 나가시마의 말에 담긴 내용은 진지하기 때문이다. 그 진지함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가시마에게 끌려들어가는 시간문제이다. 말을 정말로 잘한다는 것은 혓바닥의 순발력이 아니라 진지함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닐까. 면접을 앞둔 게이들아. 한번 불을 뿜어보아라. 나가시마처럼.







다음에는 '쿠로다 히로키: 유리멘탈의 외로운 싸움'에 대해 쓰겠다.


그리고 쿠로다 다음에 이리키 유사쿠에 대해 쓰면 당초 예상했던 일본야구선수들에 대해서는 대충 다 쓰게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