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연재 자기계발 시리즈>


여단대사불호도: 지혜가 큰 사람은 멍청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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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엔 아오야마재능이 있는 사람이 실패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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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카츠야유연한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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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타 아츠야철저한 자기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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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아이 히로미츠: 끝없는 자기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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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시마 시게오 그 끝없는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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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다 히로키: 유리멘탈의 길고 긴 싸움

이리키 유사쿠: 과거의 영광을 버렸을 때 비로소 보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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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야구계가 격동을 맞고 있다. 특히 센트럴리그의 경우, 전반적인 팀 전력 저하로 각 팀들이 앞다투어 개혁에 나서고 있다. 특히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즈, 그리고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는 감독을 경질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오늘은 요코하마에 포커스를 맞추도록 하겠다.


2015년 시즌 초반에는 연승행진을 펼치며 '꼴찌의 반란'을 예감케 하였으나 약체팀의 고질병인 뒷심부족으로 결국 이번에도 하위권에서 맴돌다 시즌을 마친 요코하마 DeNA(발음은 DNA와 동일) 베이스타스. 베이스타스의 감독 나카하타 키요시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돌풍을 예고하였으나 결국 초라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베이스타스는 새 감독으로 정말 뜻밖의 인물을 발탁한다. 일본인이 아니라 베네수엘라인 알렉스 라미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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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라미레스는 2000년대 일본야구에서 가장 성공한 용병으로 꼽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위대한 선수이다. 공식 신장 179cm 정도로 외국인 타자치고 그렇게 큰 체격은 아니었으나 그에게는 일본 문화에 적응하려는 노력 및 일본식 스몰볼을 학습하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장점이 있었다.  

쿠바, 도미니카공화국과 더불어 중남미의 야구강국인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난 라미레스는 ㅅㅌㅊ의 타격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에서 잠시 마이너리그 활동을 했는데 장타력보다는 공을 배트에 맞추는 컨택트 능력을 높이 평가한 스카우터에 의해 일본땅을 밟게 되었다.

그를 처음으로 고용한 구단은 야쿠르트 스왈로즈였다. 그리고 당시의 스왈로즈에는 괴물포수 후루타 아츠야가 있었다. 라미레스에게 투수들의 볼배합을 연구하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후루타였다. 물론 그것은 가르쳐준다고 저절로 아는 것은 아니고 본인의 끊임없는 학습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습득 가능한 것이다. 

라미레스는 마음을 비우고 일본야구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각팀들의 주요 에이스들의 투구내용을 DVD로 만들어 수시로 들여다보며 연구했다. 그리고 팀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향상되고 외국인 타자들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변화구 대처법이 개선되자 그때부터 일본 최강 용벙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그는 야쿠르트에서 이미 1000개 안타를 기록하는 등, 일본야구에 완전히 적응한 모습을 과시하였다. 게다가 라미레스는 몸관리가 충실하여 야쿠르트 시절에는 부상이 없는 금강불괴로도 명성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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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친 라미레스를 탐내는 구단은 많았다. 그리고 라미레스 전설의 최고봉은 바로 일본야구 적응에 실패하고 밀려난 이승엽을 대신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타자로 기용되면서부터이다. 라미레스는 4년동안 요미우리에서 활동하면서 430타점, 148홈런, 666안타 라는 괴물 같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3번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이승엽과 유난히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유명하며 또 불고기를 너무나 좋아한다던 그 사람), 4번 라미레스, 5번 아베 신노스케의 클린업 트리오는 당시 일본 최고의 화력을 자랑했다. 최근들어 용병농사와 타격 모두 빌빌대고 있는 요미우리를 지켜보는 팬들은 아직도 라미레스를 그리워하고 있다. 라미레스의 활약이 최전성기에 달했던 2008년에는 오치아이 히로미츠마저도 "일본 최고의 타자는 라미레스"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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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감독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라미레스. 선수를 믿으며 좀 부진해도 기다려주는 하라 감독의 리더쉽은 라미레스처럼 팀웍 정신을 가진 선수들과는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내었지만 그런 프로페셔널 의식이 없는 선수들에게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2015년 용병농사에 실패하면서 하라 감독은 퇴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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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사와라와 라미레스. 요미우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 두 강타자는 (오 사다하루와 나가시마 시게오의 머릿글자를 딴 "OH"에 견주어) '오가라미'라는 명칭으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편 오가사와라도 금년에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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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실질적인 기둥인 아베 신노스케와 라미레스. 라미레스와 일본인들 중에서도 특히 아베와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미레스는 아베를 늘 first name인 '신노스키'라 불렀다.



그러나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부상에 시달리게 된 라미레스는 결국 요미우리에서 베이스타스로 트레이드 되었고 결국 베이스타스에서 현역생활을 마감하였다. 

베이스타스에서 외국인 최초로 통산 2000 안타의 위업을 달성하며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웠으나 라미레스는 현역으로 뛸 시간이 오래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그때부터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겠다는 제2의 인생 플랜을 세웠다. 
그리고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수시로 "일본에서 감독 생활을 하는 것이 꿈"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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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타스에서 통산 2000개 안타를 기록한 라미레스


라미레스는 베이스타스에서 현역 은퇴을 발표한 후에도 일본에 남아 독립리그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며 제2의 인생을 착실히 준비하였다. 라미레스의 정말 대단한 점은 그는 단순히 야구만 공부한 것이 아니라 일본 문화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라미레스가 말하는 '일본 문화'란 만화나 애니를 보는 것 따위가 아니라 일본인의 조직문화, 사고방식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일본인들로 하여금 외국인인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접근해야 팀웍이 강화되는가 등등의 인류학적 관점에 대해 나름대로 상당히 연구를 오래 해왔고 그 능력은 코치로서 발휘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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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라미레스는 일본에서 유행하는 개그맨들의 퍼포먼스를 수시로 따라하며 인기를 모았다. 이때의 애칭은 라미짱. 라미레스는 이러한 퍼포먼스에 대해 "젊은 선수들의 긴장을 덜어주기 위해"라고 대답했다. 
비록 자신이 외국인이라 해도 같은 팀의 어린 선수들은 모두 자신의 후배라 생각했고 후배들에 대한 마음씀씀이가 대단했다. 라미레스의 은퇴식에서는 야쿠르트, 요미우리, 베이스타스 선수단 대표가 모두 참석하여 그의 인망을 짐작케 하였다.



특히 금년 전반기에는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타격 코치로 일하며 외국인들이 일본야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 뿐만 아니라 일본인 타자들에게도 기술을 전수하는데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워낙 일본인 타자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기 때문에 라미레스의 지도 능력을 눈여겨본 오릭스 버팔로즈는 라미레스에게 타격코치 자리를 제안하였으나 라미레스는 그것을 사양하였다. 베이스타스에서 새 감독 후보들 중 하나로 라미레스에게 접촉해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헬좃선이니 뭐니 해도 낭중지추(송곳은 주머니에 넣으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라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리임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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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서비스도 발군
 
  
하지만 아무리 하위권 팀이라 해도 그렇지 보수적인 일본에서 이제 겨우 41세의 라티노를 감독으로 발탁한다는 것은 너무 대담한 결정이 아닐까? 하지만 라미레스는 상당히 준비를 많이 해온 인물로 무시하기 쉽지 않은 인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카하타 키요시라는 나름대로 카리스마가 있고 추진력이 있는 인물로도 성적향상에 실패한 베이스타스는 팀 재건을 위해 나카하타 이상으로 참신하고 의욕이 넘치며 동시에 요코하마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찾기를 원했다. 그러다가 지도 능력도 인정받고 있으며, 불과 몇년 전에 베이스타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데다가,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라미레스를 적임자로 지목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드디어 40대 외국인 감독이 탄생했다.



라미레스도 처음에는 일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었으나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를 철저히 실천하며 적응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남다른 적응력과 통찰력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애쓰는 일게이들로서도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아 소개한다.

라미레스는 외국인이 일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3가지를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1) 하이 와카리마시타, 2) 쇼가나이, 3) 마타 간바리마스 3개의 일본어 표현으로 대표되는 정신이다.
 


하이 와카리마시타 (예, 알겠습니다)
사실 서구권, 특히 라틴아메리카 문화권 출신의 사람들은 변명과 자기합리화가 강하여 상명하복의 일본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찌 이것이 비단 라티노들만의 문제이겠는가.

일게이들도 (나이에 상관없이) 사회에서 아니꼬운 꼴을 당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라미레스는 자기합리화적인 태도는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믿어도 우선 '예 알겠습니다'하고 말하고 상대의 주장을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특히 현지인 입장에서 낯선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 자신이 한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를 취하면 다시는 먼저 말을 걸지 않기에 결국 고립된다고 하는 것이다. 참으로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일단은 경청하고 판단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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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와카리마시타...



쇼가나이(어쩔 수 없어)
낯선 환경에서 새 커리어를 열기 위해 찾아온 사람은 누구나 성적의 압박을 받는다. 그러나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니 '쇼가나이!'하고 잊어버리고 내일의 일을 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어차피 야구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모든 타석에서 안타를 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위대한 타자라 해도 10타석 들어서서 3번 안타를 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안타를 더 칠 수 있도록 상대 투수를 연구하거나 컨디션을 정비하는 일 등이 더 중요하다. 한번 삼진당한 일은 과거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그러한 진취적인 자세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쇼가나이'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한번의 실수를 무슨 인생의 오점인양 너무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나머지 앞으로 다가올 일을 준비하는 일에 느려지게 된다. 라미레스도 부진할 때가 적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쇼가나이!"하고 자신에게 말하고 묵묵히 내일의 시합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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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가나이!

 

마지막은 라미레스의 입버릇이기도 한 "마타 간바리마스(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이다.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수시로 연습하는 것. 특히 아무리 과거의 영광이 뛰어나도 현재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도태되어 버리는 용병 입장에서는 언제나 '마타 간바리마스'의 자세가 중요하다. 

'내가 왕년에' 처럼 무의미한 소리도 없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왕년에'에 집착하고 있는가? 아무리 명문대를 나오고 혹은 대기업에서 일한다 해도, 현재가 아무리 영광스럽다 해도 결국 성공하는 사람이란 늘 '마타 간바리마스'를 명심하고 있다. 

누구나 느꼈겠지만 인생은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뒤로 밀려날 뿐이다. 사실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마타 간바리마스'를 간과하고, 자신이 이룩한 자그만한 권위에 안주하여 헛소리를 하다가 말년에 자신의 업적을 깎아먹는가? 

반대로 라미레스는 현역 시절 수많은 금자탑을 쌓았지만 그럼에도 늘 미래의 목표를 세우고, '마타 간바리마스'의 자세로 지도자 커리어를 준비해왔으며, 이제 드디어 일본프로구단의 감독이 되었다. 라미레스가 베이스타스와 맺은 계약은 2년. 끝없이 진취적인 라미레스가 베이스타스에서 약체팀의 패배주의를 몰아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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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 간바리마스!!!


 
비록 라미레스에게 감독 경험은 없지만 사실 감독을 경험하지 않고도 곧바로 감독에 취임하여 좋은 성적을 낸 사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당장 금년에 리그 우승을 달성한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마나카 미츠루 감독 및 소프트뱅크의 쿠도 키미야스 감독,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면 주니치 드래곤즈의 전성기를 열었던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 등은 곧바로 감독에 취임하자마자 괄목할 만한 성적을 이룩하였다. 

그것은 경험 그 자체보다는 감독 개인의 철학과 의지, 열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철학과 열정은 라미레스의 가장 강력한 장점들이다. 거기에 라미레스가 갈고 닦은 인류학적 지혜가 더해진다면 2016년은 베이스타스가 이변을 연출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라미레스가 한 말 중에서 가장 감명깊었던 것. 라미레스는 타율, 홈런, 안타 등 타격면에서 무수한 기록을 세웠지만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기록은 바로 타점왕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점수를 내야 팀의 승리에 가장 크게 공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일본 13년간의 커리어를 통해 라미레스는 무려 1272타점을 기록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몇년 전부터 '일본야구의 감독이 되겠다'고 말하고 다니던 라미레스가 정말로 감독이 된 것을 보고 감회가 남달랐다. 역시 꿈은 크게 가지고, 또 줄기차게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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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1. 하이 와카리마시타
2. 쇼가나이
3. 마타 간바리마스





다음에는 일본야구에서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재일교포 희철이에 대해 쓰겟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