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재도 동안이노...
쿠로다 히로키는 1975년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나 곧 히로시마로 이사갔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쿠로다는 학창 시절 내내 야구를 했으나 고등학생 시절 때까지는 그렇게까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그저 투수 예비전력들 중 한명에 지나지 않았다. ㅆㅅㅌㅊ 재능을 보이는 선수들은 고교 졸업과 동시에 프로야구로 가지만 쿠로다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대학 때 체격이 완성되면서 (185cm/90kg) 투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쿠로다의 강속구에 관심을 보인 구단 히로시마 카프는 1996년 그와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카이엔 아오야마처럼 쿠로다도 프로무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쿠로다의 제구력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제구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투구는 아무리 빨라도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쿠로다는 하반신 강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제구력을 갖추게 되자 그는 곧 히로시마 카프 마운드의 기둥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쿠로다에게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컨디션 난조이다. 육체의 부상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었다. 잘던지는 날은 역운지, 못 던지는 날은 부엉이 바위로 올라가는 골때리는 컨디션 난조가 계속되고 있었다. 히로시마 카프는 쿠로다의 기복이 심한 컨디션을 배려하여 선발 로테이션에서 쿠로다에게 휴식시간을 충분히 주는 특별대우를 했다.
쿠로다는 구단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경력이 쌓이며 진정한 에이스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닝이터인데다가 방어율도 ㅆㅅㅌㅊ. 쿠로다 시합은 완봉이라는 공식이 세워질 정도였으며 쿠로다는 광주의 선동열처럼 히로시마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맨이 되었다. 쿠로다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준 히로시마 카프를 위해 다른 구단으로 옮기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내내 히로시마에서만 활동했다.
그러다가 2006년 FA권리를 얻은 쿠로다에게 히로시마가 내건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4년간 10억엔의 연봉, 은퇴 후에도 지도자 수업코스를 제공하며 히로시마 카프에서의 종신고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쿠로다는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었지만 그 조건을 받아들여 히로시마에 머물렀다. 이유는 당시 쿠로다의 부친이 암투병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두고 다른나라고 갈 수 없었던 쿠로다는 히로시마에 머무르며 효자로서의 할 일을 다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아버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히로시마 팬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일본 야구팬들이 쿠로다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 새키도 진작에 쿠로다를 본받아서 착하게 살았어야 하는데.
쿠로다는 역시 메이저리그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2007년 시즌이 끝나고 FA권리를 행사할 것을 발표했고 일본의 방어율 제왕 쿠로다에 관심을 보인 LA다저스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LA다저스와 계약을 맺을 당시, 다저스 측은 4년 계약을 제시했는데 쿠로다는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라는 이유로 오히려 계약기간을 단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3년 계약을 맺었다. 대단한 아재노...
클레이튼 커쇼와 쿠로다
2008년 대망의 메이저리그 등판의 꿈을 이루었으나 미국 무대는 쉽지 않았다. 쿠로다는 일본야구 시절에는 전성기 선동열과 마찬가지로 강속구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정통우완이었다. 그런데 미국에는 밥먹고 빠따 들고 공만 때리는 괴수들이 워낙 즐비하다보니 쿠로다는 구위가 단순하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을 가졌다. 그때부터 쿠로다는 다양한 구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쿠로다의 소심한 성격과 그 성격을 받아들여 전화위복으로 활용한 쿠로다의 위대함을 살펴보자.
노무룩...
쿠로다는 소심한 사람이다. 컨디션이 좋으면 ㅆㅅㅌㅊ 투수의 실력을 보여주지만 심리적으로 조금만 불안해져도 자폭하는 새가슴이었다. 그러나 쿠로다는 그 소심한 성격 때문에 늘 평소에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직구나 슬라이더만 믿지 않고 끊임없이 다양한 구종을 연습해왔다. 불안함을 이기는 길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갔을 때의 쿠로다는 LA다저스 관계자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무기를 숨기고 있는 만능 투수였다. 그리고 스플리터를 비롯한 새로운 구종을 사용하며 미국 무대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쿠로다는 사사구를 거의 내주지 않는 면도날 제구력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제구력은 쿠로다의 몸관리가 얼마나 철저한지를 입증한다. 물론 쿠로다는 일본에서도 몸관리가 충실한 선수였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체력의 부족을 느꼈다고 한다. 쿠로다는 피지컬 트레이너를 고용하여 어떻게든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쿠로다는 훗날 일본에 복귀한 후, 일본식 트레이닝으로는 미국 무대에서 오래 갈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식 트레이닝의 우수성을 강조하였다. 쿠로다는 일본에서의 훈련은 미국에 비하면 오히려 편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일뽕러들 ㅂㄷㅂㄷ?
허리에 로프를 묶고 전력질주를 반복하여 하반신을 강화하는 훈련
쿠로다가 일본에 복귀한 후, 많은 사람들은 쿠로다의 훈련법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히로시마 카프의 선수들은 쿠로다가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일본에서는 장타력을 중요시하는 타자 이외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지 않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투수들은 몸의 유연성을 위해 웨이트를 일부러 적게 하는데 쿠로다는 훈련장에 나타나자마자 웨이트 트레이닝룸으로 직행하여 하루 훈련을 웨이트로 시작한다. 그것도 가벼운 몸풀기 정도가 아니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쿠로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히로시마의 스포츠신문들은 '저것이 메이저리그식이다!'라는 내용으로 기사를 썼다. 웨이트를 끝내고 나자마자 쿠로다는 팀연습에 합류하여 팀메이트들과 함께 러닝, 투구 등을 소화했다. 젊은 선수들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노익장을 유지하는 비결일 것이다.
쿠로다의 근육 애호는 메이저리그에서 배운 것이다. 쿠로다는 미국 야구선수들의 훈련량에 놀랐다고 회상한다. 쿠로다는 일본인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일본인은 근면하고 미국인들은 방종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으나 막상 LA다저스에서 첫해를 보내고 보니 미국 선수들의 훈련량이 일본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본에서는 시합이 없는 날이나 합동훈련이 없는 날은 곧 휴일이었지만 미국에서는 주말 이외에는 휴일이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는 선수들은 시합이 없는 날에는 개인 트레이너나 구단이 지목한 트레이너를 데리고 개별적인 훈련을 소화했다. 쿠로다는 일본에서도 상당히 운동을 열심하는 편이었는데도 미국에서는 아직 부족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철저하게 미국식으로 몸을 단련했다. 30대에 접어든 쿠로다에게 처음부터 다시 몸만들기는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직한 쿠로다는 트레이너가 짜는 메뉴를 남김없이 소화했다.
하지만 쿠로다의 훈련 강도는 미국에서도 ㅆㅅㅌㅊ 수준이었다. 그 증거로 클레이튼 커쇼와의 일화가 있다.
일본의 인격자 쿠로다는 미국의 인격자 클레이튼 커쇼와 금세 친해졌다. 둘은 부부동반으로 만나 친분을 다지는 등, 매우 친한 사이였다. 커쇼는 30대의 쿠로다가 여전히 활약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같이 훈련하자고 요청했다. 그리고 쿠로다가 소화해내는 훈련 메뉴를 직접 경험한 커쇼는... 혀를 내두르며 "쿠로다는 몬스터야!"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는 쿠로다와 같이 체육관에 가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몸에 맞는 훈련법이 있으니 커쇼가 게으르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LA다저스 시즌초를 제외하면 쿠로다의 육체 컨디션은 늘 탁월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놈의 정신적 컨디션 난조가 문제였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소심한 쿠로다는 심한 기복으로 조 토리 감독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히로시마 카프와 달리 다저스는 쿠로다 한명만을 특별대우 할 수 없었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쿠로다는 늘 스스로를 갈고 닦으려는 자세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유리멘탈과 싸우며 어떻게든 미국 무대에서 적응하려고 애썼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쿠로다도 3년째에는 두자리 승수를 기록하게 되었고 그 활약을 인정받아 쿠로다는 3년 계약 종료 후 다저스와의 계약을 1년 더 갱신하였다. 그리고 쿠로다는 LA에서의 4년째 시즌에서 13승을 올리는 활약을 보였다.
shy man
다저스에서 활약한 쿠로다를 눈여겨보던 뉴욕양키즈는 쿠로다를 적극적으로 영입하였다. 쿠로다도 처음에는 뉴욕양키즈에 간다니까 신나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막상 2012년 뉴욕으로 이사오니 이 새가슴은 전에 없이 심하게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소심남 쿠로다는 환경을 바꾸는 일이 고역이었을 뿐더러 일본에서부터 들었던 뉴욕양키즈의 명성에 주눅이 들어있었다. 만일 뉴욕양키즈에서 부진하면 자신은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고, 평생을 바쳐온 야구인생이 무너져내릴 것이라는 스트레스에 시달린 나머지 쿠로다는 신경쇠약에 걸렸다.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뭘 그렇게까지 고민하나 싶지만 이 당시의 쿠로다의 고민은 정말로 극심했다. 오죽하면 쿠로다는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뉴욕의 아파트에는 베란다가 없어서 다행입니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뉴욕으로 이사한지 몇달도 되지 않아 운지를 생각했을 정도이니 쿠로다야말로 경이로운 유리멘탈이었다.
노무노무룩...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양키즈는 쿠로다의 약점을 꿰뚫어보았다. 성실하고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는 바로 정신적으로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키즈는 쿠로다에게 '멘탈리티 트레이너'를 붙여주었다. 쿠로다는 상담을 통해 알게된 마이클 조던 어록들에서 특히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멘탈리티 트레이너가 던진 한 질문이 쿠로다 각성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만일 오늘 당신이 등판하는 시합이 당신의 마지막 시합이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만일 오늘 당신이 등판하는 시합이 양키즈의 마지막 시합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이클 조던은 늘 지금 뛰는 시합이 자신의 마지막 시합이라 생각하고 뛰었다고.)
쿠로다는 자신의 마음 속에 허세가 있었던 것을 인정했다. 그는 고등학교 야구부 시절에서부터 완벽하게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늘 시달려왔던 것이다. 히로시마는 그를 에이스로 대우해주었다. 에이스는 실수해서는 안된다. 히로시마 팬들은 쿠로다를 자랑스러워하며 그를 예찬했다. 그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 일본 언론은 쿠로다를 가리켜 '미스터 완봉승'이라 불렀다. 쿠로다는 자신의 기록에 지나치게 속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떠나 야구의 가장 기본정신인 '팀을 위해 공헌하겠다'로 되돌아간 쿠로다는 스스로에 대한 압박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개인기록은 전부 잊었다. 쿠로다에게 중요한 것은 선발투수로서 팀 승리를 위해 공헌하는 것, 즉 퀄리티스타트(6회까지 최대 3점까지만 내주는 것) 뿐이었다. 설령 위기를 맞아도 '괜찮아 괜찮아. 3점까지는 괜찮아' 혹은 '내가 점수를 내주어도 동료들이 나를 위해 만회해줄 것이다'고 스스로의 불안감과 싸웠다. 그리고 팀 전력이 크게 약해져 있던 양키즈를 꿋꿋히 지탱한 일본인 에이스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그는 양키즈에서 3년 내내 두자리 승수를 기록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보였다.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투수전 2013년 7월31일 쿠로다 vs 커쇼. 쿠로다 빠는 건 일뽕이 아니라 미국 현지에서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만 2014년 시즌이 끝나고 다나카 마사히로가 합류한 양키즈에서는 쿠로다의 나이를 감안하고 4년째 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식이 좀 높으면 어떠냐, ㅆㅅㅌㅊ로 잘 굴러가는 명차를 내버려둘 어리석은 팀은 없다. 미국의 팀들이 쿠로다 영입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이제 미국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 쿠로다는 자신의 고향팀 히로시마 카프로 돌아가고 싶었다. 카프측에서야 쿠로다의 복귀는 언감생심 최고의 행운이지만 메이저리그 구단들에 비하면 자금력이 후달렸다. 그러나 심지가 곧은 남자 쿠로다는 돈의 액수로만 움직이는 남자가 아니었다. 고향에 돌아가 남은 야구인생을 히로시마를 위해 바치고 싶었던 그는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쿠로다 영입에 적극적이었던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에서는 약 20억엔을 제시했는데 쿠로다는 놀랍게도 '고작' 4억엔만 제시한 히로시마 카프를 선택했다. (그리고 쿠로다는 문자 그대로 금의환향을 한다.)
의역하자면 "무난한 삶이 좋았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다"
이제 40대에 접어든 쿠로다가 여전히 준수한 활약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 그는 자기 몸관리에 철저하다. 둘째, 정신적으로 성장했다. 유리멘탈이었던 쿠로다는 유리멘탈인 채로 무너지지 않고 끊임없이 약한 마음과 싸웠다. 마음 속의 불안감과 싸워 이기는 길은 오직 끝까지 싸우는 길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도중에 포기했지만 쿠로다는 그것을 해냈다. 그리고 유리멘탈과의 싸움은 지금도 하고 있다.
그리고 쿠로다의 성공 요인에서 한가지를 더하자면, 역시 그의 성실한 인품이다. 쿠로다의 소속 구단들은 모두 쿠로다에게 호의를 보였다는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히로시마, 다저스, 양키즈 모두 쿠로다를 몹시 아끼고 그를 도와주려 애썼다. 냉정하게 쳐내는 프로구단에서 특정 선수에게 그렇게 호의를 보였다는 점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는 쿠로다가 얼마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인지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할 수 있다.
Everybody loves Kuroda
성실하고, 마음이 곧고, 또한 세심한 배려도 할 줄 아는 쿠로다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놈이 싸이코인 것이다. 이러한 일화가 있다. LA 다저스 시절, 쿠로다가 일본 기자들로부터 취재를 받고 있었는데 클레이튼 커쇼가 쿠로다에게 다가와 "Hey, Hiro!"하고 부르며 장난을 쳤다. 쿠로다는 커쇼보다 13살 연상이었기 때문이 일본에서는 무례함으로 비추어질 수 있었다. 기레기들이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지 잘 아는 쿠로다는 엉뚱한 기사를 써서 태평양 건너편에서 커쇼가 욕을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커쇼에 대한 고마움을 특별히 자주 언급했었다. 물론 그것은 립서비스 이전에 쿠로다의 본심이었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남자 쿠로다에 대한 호의는 커쇼도 마찬가지였기에 쿠로다의 이적설이 나올 때 커쇼는 "쿠로다가 다저스에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쿠로다는 떠났지만 대신 루헨진이 왔다)
쿠로다 사진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쿠로다는 아무에게나 친한 척 하는 능글맞거나 느끼한 남자가 아니다. 연줄을 만들어서 편하게 살아야지 하는 잔머리는 쓰지 않는다. 쿠로다는 말도 많지 않고 오히려 조용하다. 그러나 히로시마에서부터 양키즈까지 누구나 쿠로다를 좋아한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속이 깊은 남자'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쿠로다일 것이다. 결국 미국도 일본도 성실한 사람 좋아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혹은 사회에 나가 자신감을 잃고 마음이 약해진 유리멘탈 게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하긴 그러니까 다들 일베에 오는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쿠로다가 등판하기 전에 얼마나 치열하게 마음 속으로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을지 상상해보자. 엄습하는 불안감과 싸우며 허욕을 버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려고 얼마나 필사적으로 자신을 다잡았을까. 그리고 세월에 저항하기 위해 날마나 얼마나 꾸준히 육체를 단련했겠는가. 이렇게 힘든 훈련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어찌 들지 않았으랴. 그러나 그럴때마다 나약한 사람들과 달리 쿠로다는 그것을 묵묵히 해냈다. 그것만이 약한 자신의 마음과 싸우는 길이라 여기고. 쿠로다의 그러한 노력을 아는 그의 주변사람들은 모두 쿠로다를 돕고 싶어했다. 그 냉정하고 인정사정 없는 프로야구 밥을 먹는 사람들이 쿠로다를 아꼈는데 너희들이 열심히 노력한다면 어찌 귀인을 만나지 않겠는가.
유리멘탈이 티타늄멘탈이 되는 길은 간단하다.
1. 약한 마음에 정면으로 맞서 끝까지 싸워라. 도망가면 갈수록 마음은 더욱 약해진다. 두려워도 참고 부딪혀서 이겨내자. 계속 부딪히다 보면 반드시 면역력을 기를 수 있다.
2. 가장 기초적이고 화려하지 않은 연습을 묵묵히 하자. 지금 어떻게 자신을 포장하려고 하지 말고 조용히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트위터중독자가 되느니 차라리 영단어라도 하나 더 외우는 게 낫다.
3. 성실한 사람은 세상을 모르는 아둔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멋진 사람이다. 그리고 인맥이니 연줄이니 그런 것을 기대하지 말고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귀인이 나타날 것이라 믿어야 한다. 하늘은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복을 내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