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들의 생존노력 시리즈
일베에서는 미래가 암담한 사람들을 편의점 직원이라는 의미의 편돌이, 편피노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이 중요한 게 아니다. 비록 지금 편돌이라 해도 지금 쌓아올리는 노력에 따라 미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제 소개할 왕년의 명포수, 그리고 명해설가이자 명코치로 알려지게 되는 타츠카와 미츠오는 그야말로 넘치는 에너지만으로 지금의 지위를 이룩해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재능이 어중간하여 기댈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미래를 열 수 있을까? 그 비결을 타츠카와 미츠오의 야구인생을 통해 살펴보자.
편돌이 같은 야구인생
타츠카와는 1955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잘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야구는 좋아했다. 그리고 성격이 워낙 밝아서 어딜 가나 친구들을 만드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밝은 성격, 넓은 교우 관계 등은 그 자체로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자리를 잡은 다음에야 빛을 발하는 재능들이다.
중학교 때까지 아무 두각도 드러내지 못한 채, 타츠카와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거기서도 후보였다. 그런데 인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당시 주전 포수를 맡고 있던 학생이 문어회를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 감독은 다급한 김에 후보 선수들에게 공을 던져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 중에서 타츠카와의 어깨가 제일 좋았다. 감독은 그날로 타츠카와를 발탁하여 포수를 맡겼다. 만년 후보였던 타츠카와는 처음으로 주전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타츠카와는 머리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특히 암기력이 부족했다. 감독이 보내는 싸인을 제대로 읽지 못한 적도 있었다. 어깨는 좋은데 기억력이 나쁘다는 상황에서 타츠카와는 세가지 새로운 능력을 발전시키는 수 밖에 없었다. 투수와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호흡을 맞추기, 감독의 지시만을 긷 자신이 시합의 흐름을 읽는 안목을 기르기, 그리고 감독의 지시를 못 읽을 때에는 자신이 판단을 내리는 과감함. 물론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어 감독의 꾸중을 들을 때에도 투수가 아니라 자기가 덮어쓰는 책임감도. 그리고 타츠카와는 포수로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타츠카와는 아직 일류가 되기에는 많은 문제들을 갖고 있었다. 우선 프로의식이 없었다. 타츠카와는 '포수가 공을 받으면 그만인 자리'인 줄만 알았다. 연습보다 파칭코를 더 좋아했다. 고교야구는 알루미늄 배트를 쓰기 때문에 자신은 타격력도 그럭저럭 있다고 생각했다. 강한 어깨, 투수들과의 친화력, 시합을 읽는 눈등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만으로도 충분히 프로에서 통할 줄 알았다.
그리고 타츠카와는 히로시마 카프의 드래프트 4위 지명을 받아 프로선수가 되었다. 프로선수가 된 타츠카와는 무서울 게 없었다. 그는 이제 회사원이 되지 않아도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안정된 수입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자기와 같은 고교 출신의 선배가 히로시마 구단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선배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 선배는 타츠카와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연습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스윙을 해보라고 했다. 타츠카와의 스윙을 본 선배는 차갑게 말했다.
"그 정도 스윙 갖고는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없겠다."
그리고 연습장에서 묵묵히 연습하는 1군 선수들을 보라고 했다. 그 일은 타츠카와에게 충격이었다. 타츠카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프로선수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타츠카와가 포수로 입단했다는 말을 들은 선배는 단호하게 말했다.
"수비로 팀에 공헌할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타츠카와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 때는 정말 절망적이었다. 그래도 야구선수로서 나아갈 길을 일찍 깨달았으니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끝없는 에너지로
당시 히로시마에는 1군에 포수가 두명이나 있었다. 그들이 번갈아 가며 출전하는 상황에서 편돌이 수준의 실력과 프로의식을 가진 타츠카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하지만 타츠카와는 이렇게 프로 구단에 몸을 두게 된 것도 자신의 행운이니 배울 수 있는 건 모조리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노무라 카츠야 같은 비상한 두뇌가 없었던 타츠카와는 발로 뛰었다. 그는 선배들에게 접근해 수시로 질문했다. 자신의 무능함을 인간관계로 어떻게 무마해보려는 인간은 아무리 친절한 척해도 그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인다. 그러나 타츠카와처럼 큰 뜻을 품고 지식을 얻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은 비굴함이 없다. 거기에 뛰어난 친화력까지 더해진다면 주변 사람들은 먼저 더 도와주려고 발벗고 나서게 된다. 타츠카와는 그렇게 선배들로부터 야구의 노하우를 흡수했다.
일본야구의 전설적인 투수이자 당시 히로시마에서 활동했던 에나츠 유타카는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몸울 풀고 있으면 타츠카와가 다가와 불펜 포수를 자청했다. 내 공을 받은 다음에는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했다. 마사지를 하는 와중에 계속 투구에 대해 질문한다. 내가 락커룸으로 돌아오면 타츠카와가 이미 청소를 다 해놓았다. 그리고 나에게 또 투구에 대해 질문한다. 그렇게 야구에 대한 지식을 흡수하려고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휴일에도 타츠카와는 쉬지 않았다. 그는 민간인으로 변장하고 다른 구단의 연습장에 가서 구경하는 척하면서 그 구단 투수들이 어떤 공을 던지는지, 포수가 어떤 사인을 보내는지, 상대팀의 주요 타자들은 어떤 공에서 가장 장타를 치는지 등등을 정찰했다. 당시 타츠카와는 1군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복을 입으면 그가 야구선수임을 알아볼 수 없었다.
타츠카와는 교우 관계가 넓었고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휴일이면 그를 불러내어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그런데 타츠카와가 다른 구단의 정찰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에이스급 투수들도 타츠카와에 대해 일종의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타츠카와는 모든 면에서 대단할 게 없는 자신이 투수들의 신뢰를 얻고, 또 투수들이 자기의 싸인대로 공을 던져준 것은 자신이 휴일에도 다른 팀 정찰을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은 하루이틀로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다. 끝없는 에너지로 귀찮음과 싸우며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은 것이야말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리고 최고의 재능이다. 편돌이 수준의 프로의식을 가지고 입단했던 타츠카와가 1군의 주전 포수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6년이었다.
목표는 구체적으로
엘리트가 아닌 사람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다가 도중에서 좌절하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노력을 지속할 의욕을 잃기 때문이다. 그러나 1군 포수가 된 타츠카와는 방심하지 않았다. 6년간의 후보 생활이 타츠카와의 편돌이 같던 의식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을 지속할 의욕도 있었다. 왜냐하면 타츠카와는 당당하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나는 히로시마 구단 최초의 연봉 2천만엔 포수가 되겠어!"
돈을 내세우는 사람은 돈만 밝히고 인간적 매력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10년 이상 계속된 한국의 고질병 '서민코스프레'를 겪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숫자로 명확하게 표시하는 사람은 나중에 딴소리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리뭉실한 단어를 남발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뒤통수를 친다.
타츠카와가 목표 '연봉 2천만엔'을 선언한 이유도 그만큼 타격 이외의 능력으로 팀의 승리를 위해 공헌하겠다는 각오의 표현이기도 했다. 또한 히로시마 구단에게 자신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수단이었다. 또한 그렇게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나니 타츠카와에게는 야구를 공부해야 할 이유도 더 늘어났다. '지금의 지식으로 2천만엔 포수가 되려면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자연히 의욕도 불타오른다. 그것이 타츠카와의 프로 의식이었다.
타츠카와는 더더욱 연구에 매달렸다. 이제 1군 포수이니 그의 얼굴은 다른 구단에 다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도 정찰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구단에서는 타츠카와가 정찰 왔다는 사실을 알면 돌아가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는데 그럴 때마다 타츠카와는 그냥 할 일이 없어서 보러 온 거라고 딴청을 피웠다. 타츠카와가 워낙 사람이 좋고 유머스러운 면이 있어서 다른 구단 관계자들도 성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러면 타츠카와는 이렇게 만났으니 술이라도 한잔 하자고 꾀었다. 어떤 사람들은 응하고 어떤 사람들은 점잖게 거절했지만 아무튼 타츠카와의 친화력은 당시 센트럴 리그에서는 명물이었다.
1군 포수로 한번 자리를 잡자 타츠카와의 친화력은 그제서야 빛을 발한 것이다. 사람이 가진 능력에는 이렇게 한번 자리를 잡기 전에는 발휘되지 않는 능력들이 아주 많다. 그러니 스스로 재주가 없다고 좌절해서는 안된다. 타츠카와처럼 한번 목표를 잡고 그것을 달성하다보면 자기가 원래 가진 재능도 발휘될 기회가 생긴다.
타츠카와는 강견만이 확실하던 포수였다. 나머지는 전부 끊임없는 노력으로 익힌 것이다.
노무라 카츠야는 타츠카와가 정말 진드기 같았다고 회상한다. 타츠카와는 노무상이 온다는 말만 들으면 제일 먼저 기다리고 있다가 환한 웃음과 함께 공손히 인사를 하고 곧바로 자기가 껄그럽게 생각하는 타자들의 공략법을 캐묻기에 여념이 없었다. 노무상은 타츠카와가 너무 귀찮게 군다고 말을 하면서도 그를 내친 적은 없었다. 몇마디 힌트를 던져주면 타츠카와는 그걸 금과옥조처럼 간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 타자 공략법을 짰다.
당시의 히로시마는 투수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엘리트 투수들이 넘쳤다. 그 투수들은 타츠카와의 이러한 노력을 알기 때문에 타츠카와의 리드에 매우 협조적이었다. 그는 타격으로 팀에 공헌하지 못하는 물방망이였지만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활로를 찾았다. 이 모든 것은 타츠카와가 좌절하지 않고 계속 끝없는 에너지로 자신의 미래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연봉 2천만엔을 달성했다.
타츠카와는 현역시절 내내 '공이 맞지 않았는데도 데드볼인 것처럼 꾸미기' 혹은 '타자에게 쓸데없는 말을 속삭이기' 등등 코믹한 면이 많이 부각되어 별명은 '그라운드의 사기꾼'이었다. 그러나 그의 포수로서의 노력과 책임감은 당대 일류였다. 타츠카와는 호인이었지만 한번 마스크를 쓰면 필드의 감독으로 바뀌었다. 팀이 실점을 하면 전부 자기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타츠카와는 사실 미트 다루는 기술이 많이 부족한 편이었고 순발력도 일반적인 포수들에 비하면 처지는 편이었으나, 어디로 날아오는 공이든 자기가 놓치는 공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공이 빠진다 싶으면 몸으로 막았다. 엘리트 투수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게 되는 과정은 이렇게 변함없는 노력와 책임감이 쌓여온 결과였다.
15년에 걸친 커리어를 통해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명포수로 자리매김한 타츠카와는 해설자는 물론이고 지도자로도 활동했다. 히로시마 카프의 감독을 2년간 역임했다. 당시에는 투수왕국 히로시마의 위용은 간곳없이 투수진이 붕괴직전이었는데 결국 팀 성적은 초라하게 끝났으나 타츠카와는 투수진을 재건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포수 출신 감독이 부임하면 투수진을 재건해달라는 의미이다. 편돌이가 야구 구단 감독까지 올라갔다. 이것은 오로지 몸으로 뛰어서 체득한 지식들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모는 위엄이 없어 보이지만 핵심을 찌르는 독설가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신에게 기도만 할 게 아니라,
1. 자기가 남들보다 뒤쳐졌음을 인정한다면, 지식을 습득하는 노력을 더 부지런히 해야 한다.
2. 자기가 남들보다 뒤쳐진 거 같다면, 자신의 재능은 뭔가 자리를 잡으면 그제서야 발휘되는 것이다. 즉, 지금은 자리를 잡기 위해 인내할 때이다.
3. 인간관계로 어떻게 자신의 무능을 감출 생각은 하지 말라. 이르든 늦든 자기계발만이 길이다.
그렇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