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모토 이사오. 한국이름 장훈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이 불세출의 타자는 수많은 역경을 극복해내고 일본 최초의 통산 3천 안타를 달성한 인간승리의 표본이었다.
영아 때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폭발을 겪었으나 살아남았으며 화상으로 인한 손가락의 불구, 한국인에 대한 차별, 커리어 말기의 각막염 등에도 굴하지 않고 일본야구를 대표하는 타격머신으로 거듭난 그의 인생은 결코 짓밟힌 채로 살지 않겠다는 반골정신 그 자체였다.
인상 무섭다... 목소리도 아주 걸걸해서 무협지에 나오는 호걸 같음.

장훈은 약간 독선적이고 성격이 워낙 꼬장꼬장한 면도 있어서 친구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 정도의 레전드면 지도자 생활을 해도 되었을텐데 결국 장훈은 야구계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최다안타 기록을 갈아치우게 되는 타격머신 이치로와 성격적으로도 비슷한 면이 많다.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친한 친구는 별로 없다. 하긴 성격이 그렇게 외곬수니까 매시즌 그렇게 안타를 쳐대는 것이겠지만.
그런 장훈에게도 관포지교라 할 만한 친구가 한명 있었다. 바로 홈런왕 오 사다하루(왕정치)였다.
장훈은 일본에서 자신이 재일임을 대놓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반골정신이 강한 남자였다. 조용한 성격이지만 역시나 자신이 중화민국에서 태어났음을 숨기지 않는 오 사다하루에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둘다 연습벌레들로 노력으로 슬럼프를 물리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둘은 1940년생으로 동갑이었다. 장훈이 요미우리에 입단하기 전부터 서로를 존경하던 그들은 요미우리에서 한솥밥을 먹게 되자 형제처럼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걸걸한 성격의 장훈은 오 사다하루를 왕짱(王의 중국어 발음이 왕이라서. 왕짱은 일본어로 멍멍이라는 뜻도 있다)이라 불렀는데 점잖은 오 사다하루는 장훈을 하리상(하리모토)이라 불렀다.
장훈과 오 사다하루는 70년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지탱하던 핵심이었다. 특히 이 당시의 감독은 '미스터 요미우리' 나가시마 시게오였다. 나가시마는 80년대에 요미우리 감독을 그만두었다가 90년대에 다시 컴백하여 마츠이 히데키를 육성하게 된다. 1기 나가시마 정권의 핵심은 장훈과 오 사다하루였다. 그리고 그들의 활약에 힘입어 1기 나가시마 정권은 리그 우승도 달성한다. 언조비카이!
장훈, 오 사다하루, 나가시마 감독
그리고 1959년 커리어를 시작한 장훈은 1979년에 드디어 통산 3000안타의 기록 달성을 바라보게 되었다. 일본 전체에서도 화제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당시 장훈은 각막염 때문에 시력이 떨어져 경기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다만 그 시즌에도 안타 91개를 쳤다)
요미우리에서는 장훈이 노쇠해졌다고 판단하고 그를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선수단, 코치진, 프론트는 물론이고 구단주와 오너까지 모신 연말 파티가 열렸다. 그런데 한창 흥이 오를 때, 오 사다하루가 엄숙한 얼굴로 오너 와타나베 츠네오 앞에 나가 무릎을 꿇고 외쳤다.
"부탁드립니다! 하리모토가 요미우리에서 3천 안타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 양반이 요미우리 오너 와타나베 츠네요.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올해 90세.
와타나베는 뜻밖의 일에 깜짝 놀랐다. "오군, 이게 무슨 짓인가? 자네 괜찮은가?"
오 사다하루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리모토는 요미우리의 기둥입니다! 계속 요미우리에서 뛸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자리에 있던 장훈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달려나가 오 사다하루를 끌어안고 자기는 방출되어도 괜찮으니 더 이상 무릎꿇지 말라고 애원했다. 나중에 장훈은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이 남자(오 사다하루)를 평생 존경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장훈은 치바 롯데로 이적했고 3000안타를 기어이 달성했다. 그리고 치바 롯데에서 은퇴했다.
오 사다하루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는 커리어 통산 홈런 868개를 쳐내며 레전드가 되었다. 크지 않은 체구로 홈런을 날려보내는 그의 깨끗하고 우아한 스윙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괴짜가족 캐랙터 넘버원의 모티브는 물론 오 사다하루
오 사다하루는 그 후 요미우리-다이에 호크스 등으로 지도자 생활을 계속했고 장훈은 영화배우, 야구해설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들의 우정은 변하지 않았다.
장훈의 오 사다하루에 대한 존경과 흠모는 남다르다. WBC 일본대표팀 감독을 누구로 뽑을 것인가 하는 장훈은 "일본에서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오 사다하루 외에 누가 있습니까?"고 잘라 말했고 오 사다하루 감독에 대한 비판에는 성까지 내면서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런데 정작 장훈이 다른 사람들 비판 잘하는 건 아이러니.)
나중에 오 사다하루가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장훈은 만사 제쳐놓고 오 사다하루에게 달려갔다. 수술 직전의 오 사다하루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장훈은 이렇게 말했다. "왕짱.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내가 평생 왕짱의 수발을 다 들거야. 그냥 살아만 있어줘."
오 사다하루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그들은 지금까지도 왕짱, 하리상이라 부르며 우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