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강님의 우남 이승만에 대한 평전입니다. 


제1편 이승만에 대한 이해

먼저 지도 하나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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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이 드시는가?

그렇다. 기적이다!

저 그림은 공산주의가 가장 극성을 부리던 때의 공산화 지도이다. 공산화된 나라는 25개국.

만약 소련연방 15개국, 유고연방 3개국(이후 6개로 갈라짐)을 분리하면 총 44개국이 공산화되었다. 그 중 쿠바, 소말리아, 앙골라 등 멀리 떨어진 7개국과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 중국을 빼면, 나머지 35개국이 모두 소련과 중국에 붙어있는 나라들이다. 저기에 꼬딱지만한 남한이라는 나라 하나가 달랑 붙어 파란색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봐도 기적이다.

이 기적은 모두 이승만의 작품이다.

수긍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나라 근현대사 인물 중 이승만처럼 오해를 받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에 대한 청소년들, 아니 제법 인생을 살았다는 사람들의 인식도 이런 식이다.

“남들은 추위와 기아 속에서 목숨을 걸고 무장독립투쟁을 했는데, 이승만은 ‘외교독립론’같은 한가한 주장을 하면서, 독립자금이나 횡령하고 미국에서 편하게 지냈다. 해방되자 미국의 필요에 의해 선택되어 귀국했고, 권력욕에 사로잡혀 좌우합작을 거부함으로써 한민족을 분단시켰으며, 미국의 지원으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을 했지만, 독재를 하다가 4·19로 쫒겨나 하와이에서 죽었다.”

나도 젊을 때는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승만에 대해 이런저런 책과 글을 읽으면서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정반대였던 것이다. 저 말도 안되는 일반인들의 터무니 없는 인식은 악랄한 좌빨들의 음해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미국과 충돌했으며, 한 가닥의 희망조차 없던 암울한 상황에서도 변절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해방 후에는 나라집(國家)의 토대를 “자유민주 자본주의”로 하는 위대한 선택을 했고 또 전력을 기울여 지켰다. 해방공간과 6·25 전쟁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미국의 코를 꿰어 한반도 현대사에 집어넣음으로써, 소련과 중공의 한반도 공산화 시도를 무산시켰다. 한 줌 밖에 안되는 국력을 가지고도 20세기의 대악당인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과 1 대 3으로 상대하여 승리했다. 외교독립론이 해방 이후에 다른 형태의 꽃으로 피어났다는 말이다.

그 뿐이 아니다.

이승만은 지주제를 타파하고, 민주교육을 장려했으며, 남녀평등을 실현했고 산업을 육성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민주선거, 의회제도, 언론자유를 지켰고, 일본에 뺏길 뻔 했던 독도를 차지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자신을 쫒아낸 학생들을 격려하기까지 했다.

외교독립론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일제 하에서 독립운동은 무력투쟁론, 실력양성론(민족개조론), 외교독립론 이렇게 3갈래로 나뉘어 격렬하게 대립했다. 각각 박용만, 안창호, 이승만이 대표선수였다. 물론 미국에서의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한 분류지만, 당시 조선과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에 적용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김구나 공산주의 계열은 무력투쟁론, 조만식이나 김성수 등은 실력양성론에 해당될 것이다.

“어느 것이 옳은가” 라는 질문은 옳지 않다.

3가지 모두 옳다. 그러나 당시 급변하고 있던 국제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나머지를 탄력있게 적용하는 것이 이상적이므로, “외교독립론이 가장 상위에 있어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 중에 이승만을 제외한 누구도 이런 국제질서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외교독립론은 세계정세를 높은 수준에서 내려다 본 이해력과 통찰력의 소산이다.

사실 외교독립론은 적어도 조선의 독립에 대해서만은 그럴듯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승만으로 하여금 국제질서의 냉혹함과 힘없는 나라의 설움을 절실히 느끼게 하였으며, 실패가 반복되면서 그는 어떠한 명분론에도 쉽게 현혹되지 않는 현실적, 실리적 정치가로 성숙했다. 그 경험은 해방 이후에 그의 강고한 자기확신과 빛나는 선택과 무서운 돌파력으로 발현되었고, 그 결과가 위의 지도였던 것이다.

조선의 독립에 있어서 “외교독립론은 실패였다” 라고 한다면 나머지 노선도 마찬가지로 실패였다. 그리고 이 모든 실패의 배경에는 냉혹한 국제질서라는게 있었다. 사실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병합도, 1·2차세계대전도, 일제의 패망도, 제국주의의 해체도, 그 후 전개된 동서냉전과 6·25 전쟁도, 세계의 새 질서로 자리잡은 자유무역체제도, 모두 국제정세 또는 국제질서 속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도 없고 해결될 수도 없는 것들이다.

팔레스타인은 왜 그렇게 많은 무장투쟁(테러)을 했으면서도 오랫동안 국가로서 승인받지 못했는가? 달라이 라마는 왜 수십 년째 외국을 전전하면서도 지지국가 하나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가? 중국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에 왜 단 하나의 나라도 지원하지 않고 있는가? 터키 쿠르드족 등 세계 곳곳의 소수민족은 왜 세계인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가? 우크라이나는 왜 러시아군이 진입했는데 찍 소리도 못하고 있는가?

정답은 국가 이기주의에 기초한 현재의 국제질서가 승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소민족 독립운동가들이 저 아래 눈발 날리는 일송정 푸른 솔의 만주벌판과 헐벗고 험준한 아프카니스탄의 심심산골에서, 아무리 말 달리며 빨치산 활동을 하고 제 아무리 도시에 나와 자살폭탄을 돌린다고 해도, 아니면 투쟁방식의 차이로 자기들끼리 암살과 총질을 한다고 해도, 저 높은 곳에 있는 국제질서가 승인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게 국제질서의 힘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도 그런데 하물며 20세기 전반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타고난 천재였던 이승만은 당시 최신학문으로 고고지성을 울리며 탄생된 국제정치학을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전공했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그가 처했던 시대의 국제질서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감상적 민족주의와 닫힌 세계관을 가졌던 김구나 김일성은 절대로 이런 국제질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애써 무시하지만 분명히 학력과 지식의 차이였음에 틀림 없다. (사실 이건 생각보단 훨씬 중요하다.) 나중의 일이지만, 이 세 명의 국제질서에 대한 이해도와 세계관의 차이를 고려하면, 해방공간에서 김구가 정권을 잡지 못한 것이 남한사람들에게는 매우 다행이었고, 김일성이 정권을 잡은 것은 북한사람들에게는 최악의 불행이었던 것이다.

자꾸 얘기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고 있다. 나는 항상 이게 문제다.

내 글의 목적은 이승만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가벼운 의도였으므로 그만 하고 본문으로 돌아가자. 이승만의 업적은 수 없이 많고, 나 자신 그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으니, 그냥 일화 중심으로 내 생각을 펼쳐 보련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승만의 모든 언행을 관통하는 가장 큰 배경은 국제질서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었다. “국제질서에 대한 고차원적 이해”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과 “공산주의에 대한 고집불통의 비타협”이 곁들여져서 그의 위대한 성취가 가능했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전개될 글은 짜깁기의 결정판이며, 그것은 오직 필자의 천학비재함 탓임을 미리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