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아르헨티나의 소득주도 경제성장 실험 로드리가소(Rodrigazo): https://www.ilbe.com/10559798818
보빨의 시작은 심히 창대하였으나...
마누엘 데 고도이 이 알바레스 데 파리아(Manuel de Godoy Y Alvarez de Faria), 통칭 마누엘 고도이는 1767년 스페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스페인제국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훌륭한 체격과 외모의 소유자였던 그는 궁중 근위부대에 입단했는데 이 과정에서 황태자 칼로스4세와 황태자비 마리아 루이사 드 보르봉(프랑스인이었다. 루이15세의 딸)의 총애를 얻었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고도이는 마리아 루이사의 애인이 되었고 그때부터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다. 칼로스4세는 그 사실을 몰랐다. 마리아 루이사는 대단한 추녀로 알려져 있었는데 고도이는 출세를 위해 마리아 루이사의 애인이 되었다. 심지어 고도이는 자신이 결혼한 후에도 마리아 루이사와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 그는 황후의 보지를 빨아 출세한 문자 그대로의 보빨러였던 것이다.
미남자 시절의 고도이
칼로스4세
황후 마리아 루이사. 추녀였다고 한다.
칼로스4세는 무능한 군주였고 남자 구실도 제대로 못했다. 설령 편피노라 해도 자지 하나는 잘 서는 일게이들보다도 못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칼로스4세의 눈에 고도이는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부인까지 고도이를 신뢰하니 황제는 갈수록 고도이에게 의지했다. 그 덕분에 1791년, 고작 20대의 나이에 고도이는 장군에 임명되고 스페인제국의 군권을 좌지우지하는 실력자가 되었다.
한편 유럽의 정세는 프랑스혁명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웠다. 스페인은 여전히 황실과 결탁한 카톨릭 사제계급이 지배하고 있었고 (프랑스 혁명정부는 카톨릭사제들도 단두대로 보냈다) 게다가 황후 마리아 루이사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루이16세와 인척 관계이다. 당연히 스페인제국은 프랑스 혁명정부와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지게 된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국내에서 각종 혼란을 겪는 와중에 전쟁 수행 능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문제는 스페인제국의 군사력이 더 씹창이었다는 점. 고도이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고민 끝에 프랑스와 협상을 시도한다. 그리고 카리브해의 에스파뇰라섬(지금의 도미니카공화국 + 아이티)의 일부를 프랑스에게 내주는 조건으로 1796년 혁명정부와 화친을 맺었다. 칼로스4세와 마리아 루이사는 눈앞에 찾아온 평화에 기뻐했다. 기쁨에 넘친 칼로스4세는 고도이에게 평화대공(Prince of Peace)이라는 호칭을 내려주었다. 평화대공이라는 호칭은 고도이를 평생 따라다니게 된다.
나폴레옹의 등장
프랑스 국내의 혼란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코르시카 사투리 잔뜩 섞인 괴랄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군인이 프랑스의 실권자로 등장하면서 약했던 군사력이 갑자기 강해지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이태리,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 유럽의 경쟁국가들을 하나둘씩 쳐발랐다. 나폴레옹은 겉으로는 프랑스혁명 이념을 전파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출세에만 몰두하는 군벌이었다. 다만 이 군벌의 전쟁 능력이 당대에 어깨를 나란히 할 자가 없을 정도로 ㅆㅅㅌㅊ였다.
나폴레옹은 가난한 몰락귀족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주변에 신뢰할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자기 친족들을 유난히 챙겼다. 특히 자기 형제들에게 왕 자리를 하나씩 안겨주고 싶어했다. 나폴레옹이 무능한 군주들이 다스리는 비옥한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칼을 내버려둘 리 없었다. 고도이는 머리를 잘 굴려야 했다.
나폴레옹은 먼저 포르투칼을 침공할 구상을 세웠다. 그리고 스페인에게는 '포르투칼을 치러 가게 길을 빌려달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수법으로 접근했다. 고도이는 한술 더 떠서 프랑스와의 연합군을 제안한다. 포르투칼을 정복하면 그 땅을 나눠 갖자는 소리. 놀랍게도 포르투칼 정복의 야심에 불타고 있던 나폴레옹은 이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나폴레옹은 영국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었고 스페인 해군의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게 늘 나폴레옹 생각대로만 풀리지는 않았다. 영국해군과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의 대결 트라팔가르 해전(1805년)에서 나폴레옹의 야망은 호레이쇼 넬슨 제독에게 무너지고 말았다. 나폴레옹에게도 타격이 컸지만 스페인에게도 충격이었다. 이제 스페인의 해군강국으로서의 위엄은 종이호랑이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폴레옹이 군사동맹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진 스페인을 언제까지 내버려둘 것인가? 이것도 고도이의 근심거리였다.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고도이의 초상화. 살이 엄청 찌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궁중에서의 에티켓과 거리가 먼 남자였다. 나폴레옹에게는 그다지 고상하지 못한 취미가 있었는데 음담패설을 아주 좋아했으며 남의 사생활 이야기를 하기 좋아했다. 프랑스군 정보부가 황후 마리아 루이사와 고도이의 은밀한 관계에 대해 보고하자 나폴레옹이 가만 있을 리 없었다. 파리에서 자기들끼리만 낄낄거리기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나폴레옹은 아예 칼로스4세에게 친필로 "니 마누라, 고도이 그 새끼하고 떡치고 다니는데 너만 몰랐노? ㅋㅋㅋ"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다행히 황제에게 전달되는 편지는 고도이가 전부 검열했기 때문에 칼로스4세가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찍는 참사만은 면했다.
하지만 이 일로 고도이는 나폴레옹이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지 알게 되었다.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군인들은 보빨러들을 경멸하기 때문이다. 고도이는 빨리 한몫 챙겨서 떠나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궁중암투, 그리고 배신
한편 칼로스4세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차기 제위를 이을 적자이다. 페르난도7세로 알려지게 되는 이 인물에 대해서도 설명해야겠다.
페르난도7세는 어머니를 닮아 추남이었다. 키도 존나게 작았다. 다만 아버지와 달리 페르난도7세에게는 야심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진 곳에서 고도이의 심복들의 감시를 받으며 자랐다. 그런 사정 때문에 페르난도7세는 어머니의 애인이었던 고도이를 싫어했고 고도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페르난도7세가 점점 장성해간다는 사실이다. 당장은 고도이의 권세가 강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페르난도7세가 황제가 될 것이다.
페르난도7세와의 암투에서 극도의 불안을 느낀 고도이는 1807년 나폴레옹과 밀약을 맺기로 한다. 이것이 바로 퐁텐블로(Fontainebleau) 조약이다. 나폴레옹의 스페인을 침공할 야심을 알고 있던 고도이는 이 조약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으려 했다. 스페인의 제위는 나폴레옹의 친형 조제프 보나파르트에게 넘겨주는 대신 포르투칼 남부의 알가르베 지방을 고도이에게 떼어주는 내용을 담고 잇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칼로스4세는 이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이렇게 하여 고도이는 배신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1807년 12월, 나폴레옹은 스페인 참공을 시작했다. 마드리드에서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던 고도이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그러나 칼로스4세가 그 와중에도 고도이를 싸고 돌자 결국 페르난도7세는 폭발했다. 그는 병신같은 애비를 내버려두고 자신의 힘으로 고도이를 처단하겠다고 별렀다. 페르난도7세의 지지세력들은 고도이의 집에 쳐들어갔는데 고도이는 이미 마드리드를 탈출한 이후였다.
그제서야 자신이 고도이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칼로스4세는 고도이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고 결국 고도이는 스페인 경찰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보내졌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진격하면서 고도이를 구출해냈고 나폴레옹은 고도이를 프랑스에 불러들였다. 칼로스4세와 황실이 마드리드에서 도망치자 나폴레옹은 고도이를 "스페인 대표"로 보내어 자기 형 조제프가 스페인 황제 자리에 오르는 대관식에 참석하게 했다.
조제프 보나파르트. 스페인 황제가 되어 호세1세가 된다. 보나파르트 집안 남자들이 숱이 좀 없는듯.
고도이는 스페인에 남아있지 못했다. 고도이에 대한 스페인인들의 감정이 너무 나빴기 때문에 오히려 프랑스의 스페인 통치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도이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망각했다. 사람들은 외부에서 온 침략자보다 내부의 배신자를 더 싫어한다는 사실. 아무리 칼로스4세가 븅신이고 그가 다스리는 스페인이 좃같은 나라였다 하더라도 칼로스4세에게는 최소한 정통성이 있었고 스페인은 어쨌거나 '조국'이었다. 프랑스인 황제를 위해 조국을 배신했다는 생각만으로도 고도이는 프랑스인들보다 더 가증스러운 존재였고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이었다.
평화대공의 말년
고도이는 프랑스의 스페인 정복에 큰 공을 세운 자신을 프랑스 정부가 우대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를 보호해주기는 했으나 우대해주지 않았다. 고도이는 프랑스 사교계에서 왕따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 도망쳐온 스페인 귀족들에게도 따돌림을 받았다. 스페인인에 의한 암살을 두려워했던 그는 프랑스 국내를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숨어살았다. 그의 별명인 '평화대공'은 스페인인들에게는 분노의 대상이었고 프랑스인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프랑스에서의 냉대를 견디다 못한 고도이는 결국 1812년 이태리 로마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칼로스4세와 마리아 루이사와 다시 만난다. 놀랍게도 칼로스4세는 고도이를 여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어리석다 못해 순수한 우정이었다. 고도이도 로마에서 칼로스4세를 계속 수행하고 다녔다. 이제 그가 기댈 곳은 칼로스4세 밖에 없었다.
한편 1814년,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쫓겨가자 스페인에서는 페르난도7세가 제위에 올랐다. 그는 자기 부모와 고도이의 스페인 귀국을 금지시켰다. 결국 고도이와 칼로스4세 부부는 계속 이태리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이태리에서 1818년 마리아 루이사가 세상을 떠났고 1819년 칼로스4세가 세상을 떠났다. 고도이는 그 둘의 임종을 모두 지켰다. 참으로 질긴 인연이었다.
페르난도7세는 끝까지 고도이의 스페인 귀국을 금지시켰다. 고도이는 이태리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갔고 그곳에서 회고록을 집필하며 조용히 살았다. 페르난도7세가 1832년 세상을 떠나자 그제서야 고도이도 고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곧 파리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고도이는 1851년 세상을 떠났다.
고도이의 무덤. 누군가가 덮어준 것으로 보이는 스페인 국기가 쓸쓸하다.
탄핵 찬성 세력의 몰락
자한당은 명심했어야 했다. 인간은 외부의 적보다도 내부의 배신자를 더 증오한다는 사실을. 박근혜는 노무현 때부터 야당을 이끌어왔고 민주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박근혜에게는 정통성이 있었다. 더구나 탄핵 자체도 언론과 사법부를 매수한 현대정치사 최악의 협잡이었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최순실이 정말로 국정을 좌지우지했고 헌재의 판단이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신탁보다 더 권위있는 판단이라 치자. 그래도 자한당만은 탄핵에 찬성해서는 안되었다. 왜냐하면 자한당에게 표를 던지는 집단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절대로 자한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진정한 보수, 보수의 재탄생 등등 아가리만은 청산유수인 표창원 같은 새끼들도 정체는 그냥 문빠들이다. 그 새끼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자한당을 지지할 일이 없다.
보수의 대안이니 뭐니 하면서 유승민이나 안철수를 내세우는 세력도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보수의 내분을 조장하려고 발광하던 문빠들 아니면 뭔가 자신의 삐딱함을 참신함으로 포장하고 싶은 '패선우파'들이다. '문재인과 주사파가 대국민 사기를 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탄핵시켜놓고 권력을 잡았다'는 눈앞의 과제를 외면하고 모든 걸 훌훌 털고 새로운 정치를 시작할 수 있다 식으로 말한다. 처음부터 문빠 아니면 '수능 보기도 전에 박사논문 준비하겠다'는 망상가들이다.
그렇다면 자한당의 지지층은 누구인가? 간단하다. 태극기 들고 탄핵 반대 외치는 그 틀딱들과 아주매미들이다.
인터넷 여론을 어디까지 사실이라고 믿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한당은 그 '틀딱들'을 멀리하고 자기들이 새로운 보수라고 깝치다가 몰락한 것이다. 정통성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어쨌거나 노무현에 맞서 10년 이상을 박근혜가 싸워가며 쌓아올린 게 지금 보수의 정통성이다.
박근혜를 버려야 한다? 그럴지도 모르지. 박근혜는 큰 정부 정치를 했으니까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버리는 과정도 중요하다. 정통성을 확보한 다음에 바꿔나갔어야 했는데 자한당은 그냥 '박근혜 탄핵은 이미 벌어진 일이니 그건 잊고 그냥 우리만 찍어'하는 속셈을 드러냈다. 어쨌거나 임신을 했으니 애부터 낳고 봅시다 식의 정치에 따라갈 인간이 몇명이나 될까? 인간은 외부의 적보다도 내부의 배신자를 더 증오한다.
스페인인들의 프랑스군에 대한 저항은 엄청났다. 게릴라(작은 전쟁)라는 단어도 바로 이때 나왔다. 프랑스군은 게릴라로 의심받는 스페인인들은 아무나 학살했고 스페인인들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프랑스 군인들을 죽였다. 스페인은 Avispero(말벌둥지)였다.
하지만 그렇게 프랑스인을 증오하던 스페인인들이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던 인물이 바로 평화대공 고도이였다.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홍준표는 이제 집에서 일베라도 하면서 천천히 되새겨볼 일이다. 일베에서 "박근혜 버려야 보수가 산다", "틀딱들아 일베를 돌려줘" 같은 글을 쓰면 댓글로 맞장구 쳐주는 인간들이 과연 선거에서 정말로 자기를 찍었을지.
세쥴요약
1. 인간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배신자를 더 용서 못함
2. 아무리 마음에 안 들고 자기 딴엔 합리화 시킬 수 있다 싶어도 명분과 정통성 무시하면 안됨
3. 그리고 행동에 옮길 때에는 누가 진짜 자기 편인지 생각하고 행동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