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정치가 비드쿤 크비슬링(Vidkun Quisling)은 나치 독일에 노르웨이를 팔아넘긴 매국노이며 지금도 노르웨이인들의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크비슬링'이라는 단어는 배신자, 매국노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크비슬링은 한국에서 문재인으로 환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우 유사한 인물이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매국노 크비슬링과 한국의 매국노 문재인의 공통점을 알아보자.
1. 공부의 신?
문재인이 자신을 공부의 신으로 포장했던 것처럼 크비슬링 또한 자신을 뛰어난 수학자로 포장했다. 크비슬링 정권에 의하면 그는 천재적인 암기력의 소유자라고 한다. 그리고 문재인이 특전사에 갔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크비슬링 또한 노르웨이 육군사관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2. 편향된 국제감각과 민족주의
문재인은 리영희의 비현실적인 민족주의에 바탕한 정치이론을 읽고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패망에 대해서도) 그것을 자신의 국제관의 초석으로 삼았다. 지금도 그는 북한에 대해 적국이 아니라 동포로 인식하고 있다. 크비슬링의 안목도 비슷한 수준이어서 독일의 파시스트 철학자 알프레드 로젠베르크의 '북해제국' 구상에 김명을 받고 그것을 추구했다. 북해제국 구상이란 아리안 민족의 조상들이 북유럽에서 왔으니 북유럽과 독일은 같은 배를 탔다는 주장. 리영희에 심취한 문재인이 비현실적인 반미주의자가 된 것처럼 크비슬링도 결국 나치즘의 신봉자가 되었다.
3. 과대망상증
문재인은 물론이고 그 부인 김정숙까지도 과대망상증을 갖고 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선거만 하면 쳐발리던 무능한 정치인 문재인은 열성적인 지지자들의 성원에 취해 자신이 준비된 대통령이라 믿었다. 김정숙도 자신을 '어쩌면 퍼스트레이디'라 부르며 탐욕을 감추지 않았다. 실은 크비슬링도 히틀러와 2번 면담한 일을 계기로 자신이 나치독일이 건설한 거대한 북해제국에서 노르웨이의 대표가 될 것이라 믿었다.
4. 방송을 이용한 쿠데타
1940년, 독일이 노르웨이를 침공하자 크비슬링은 라디오 방송국을 점거하고 자신이 정권을 장악했음을 선언했다. 단, 이것은 사전에 독일군과 아무 합의도 되어 있지 않았던 상황에서의 크비슬링의 독단적인 방송이었다. 하지만 방송이 가진 힘은 대단해서 당시 노르웨이인들은 크비슬링의 뇌피셜을 믿어버렸다. 국왕은 망명하고 정부는 저절로 마비되었다. 크비슬링의 쿠데타는 방송매체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쿠데타이다.
5. 강대국에게 푸대접 받는 외교
크비슬링은 나치 독일이 자신을 곧 노르웨이의 국가수반으로 인정해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히틀러는 크비슬링을 제치고 독일에서 직접 파견한 요제프 테르보펜에게 정부를 구성하도록 했다. 테르보펜은 크비슬링을 몹시 무시했다. 그러나 노르웨이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이 벌어지자 히틀러는 독일인 테르보펜을 물러나게 하고 노르웨이인 크비슬링에게 "노르웨이 총통" 자리를 맡게 했다. 크비슬링은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자신이 노르웨이의 국가수반으로 인정받았으니 다 잘 풀렸다고 믿고 독일에 더욱 충성했다.
가운데 안경 낀 사람이 테르보펜. 나치 패망 후 자결함.
6. 지지율 조작
크비슬링은 자신이 굳건한 지지를 얻고 있다고 주장하며 조작된 여론조사 결과를 수차례 히틀러에게 보냈다. 히틀러에게 보내진 보고서에서는 항상 크비슬링이 80% 이상의 지지율을 자랑한다고 했지만 크비슬링을 신뢰하지 않았던 히틀러는 그의 심복 라인하르트 하인리히에게 비밀리에 노르웨이의 여론을 조사하도록 했다. 하인리히의 조사에 의하면 노르웨이 국민의 90%가 크비슬링에 반대한다고 했다. 이 일로 히틀러는 크비슬링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하지만 워낙 크비슬링이 노골적인 친독일 노선을 걸으므로 묵인했다.
7. 사법부 장악
문재인은 사법부, 특히 검찰 조직을 장악하여 반대파 탄압에 활용하고 있다. 크비슬링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독일인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경찰을 강화하는 수 밖에 없었다. 크비슬링은 자신의 행정명령을 통해 경찰이 사형을 구형할 수 있도록 했다. 법을 악용한 탄압으로 크비슬링의 인기는 완전히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래도 독일인들보다는 낫지'라던 동정여론도 완전히 사라졌다.
8. 망상으로 점철된 말년
문재인이 돈쓰는 일 이외에는 현실 감각이 워낙 없어서 치매설까지 나오는 판인데, 크비슬링의 말년도 자기만의 망상 속에서 빠져산 기간이었다. 동부전선에서 독일의 패망이 짙어지는 가운데에서도 크비슬링의 독일에 대한 충성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군이 철수하자 그제서야 자신의 환상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깨달았다. 크비슬링은 현실도피의 일환으로 신비주의 철학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연합군에 의해 그는 체포되었고 법정에 서게 되었다.
크비슬링의 최후
재판에 회부된 크비슬링은 평소 자신의 신념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볍원에서는 그가 일부러 정신병자인 척 하는 거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감정까지 받게 했는데 결국 정상으로 나왔다. (아마 몰락 후의 문재인도 정신병 아니면 치매를 주장하며 재판 자체를 거부할 것이다)
한편 지지율 조작도 허무하게스리 노르웨이인들의 크비슬링에 대한 증오는 어마어마했다. 크비슬링의 가혹한 통치에 진절머리를 내던 노르웨이인들은 크비슬링이 재판정을 살아서 걸어나온다면(=사형 이외의 선고를 받는다면) 자기들이 때려죽일 것이라고 시위했다. 결국 크비슬링은 총살형을 언도받았다. 당시 노르웨이 법에는 총살형이 폐지된 상태였는데 크비슬링 일당을 처형하기 위해 총살형이 부활했다. 크비슬링이 받았던 미움이 그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세줄요약
1. 한국의 크비슬링, 문재인. 네가 몰락하는 순간
2. 그 80%의 지지율은 어디에 있을까?
3. 문재인 넌 진짜로 자살하지 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