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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렉산더 대왕 사후의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영광을 누렸던 마케도니아 제국은 대왕의 죽음 이후 4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알렉산더의 신임을 받았던 4명의 장군들이 결국 '계급 같았던 놈 밑에 있는 건 참을 수 없다' 해서 분열을 일으킨 것이다.
먼저 클레오파트라의 조상이며 이집트에서 자신의 왕국를 세운 프톨레미 장군.
마케도니아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페르시아 지역에 남아 왕이 된 셀레우코스 장군.
트라키아 지역에서 왕국을 세운 리시마코스 장군.
그리고 마케도니아로 돌아가 그곳에서 알렉산더의 아들을 암살하고 왕이 된 카산드로스 장군.
그런데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믿고 분열한 이 장군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 리 없겠지?
이들은 서로 정복전쟁을 벌였고, 우선 카산드로스가 리시마코스에게 패배하여 제일 먼저 몰락했다.
리시마코스는 마케도니아의 왕을 선포했으나 결국 그의 왕국은 셀레우코스 페르시아에게 패배했다.
페르시아인들이 떠나고 혼란의 극치를 달리던 마케도니아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끝까지 충성하며 카산드로스와 리시마코스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던 안티고누스 가문이 왕국을 세웠다. 안티고노무현이 아니라 안티고누스다.
안티고누스 왕조는 알렉산더 대왕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야심이 매우 강했다. 하지만 당시의 국제 정세는 알렉산더 대왕 시절과는 많이 달랐다.
2. 2강 체제의 지중해
셀레우코스 페르시아가 내분에 시달리고 있어서 지중해로 진출할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의 지중해 세계는 2강 체제였다. 이탈리아반도의 육군강국 로마와 북아프리카 튀니지 지역의 해상강국 카르타고가 양분하고 있었다. 1차 포에니 전쟁에서는 로마가 승리했긴 했지만 로마는 국토가 이탈리아 반도에 한정되어 있었던 반면, 카르타고는 스페인 쪽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돈과 병력을 보충하고 있었다. 따라서 두 나라의 세력은 대등하다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세력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로마와 카르타고는 소위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리스 지역, 더 정확히 말하면 마케도니아 왕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이라는 점에서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 낀 한국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군사력은 로마와 카르타고의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마케도니아가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작았다. 하지만 마케도니아가 가진 상징성은 높았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지중해의 약소 왕국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마케도니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녹색으로 칠한 지역이 마케도니아)

로마와 카르타고 두 강국이 자기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케도니아인들의 국뽕에 불을 붙였다.
한편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5세는 지리적으로 아무래도 로마가 가깝다 보니 카르타고 보다 로마를 더 껄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우선 그리스 왕국에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는 한 뿌리다"라는 민족주의를 내세워 반로마 동맹군을 결성한다. 실은 이것도 알렉산더 대왕을 따라한 것이었다.
그리스와의 전쟁이 끝나자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규합하여 원정군을 조직한 적이 있었다. 그리스 문화를 의미하는 단어 '헬레니즘'이 태어난 계기이기도 하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 후부터 '마케도니아'를 내세운 게 아니라 '헬레니즘'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 동맹은 그리스의 도시 코린트에서 회담을 가졌기 때문에 코린토스 동맹이라고도 부른다. 필립5세도 코린토스 동맹을 재현한 것이다.
3. 로마와 마케도니아의 첫 충돌
로마와 카르타고는 문화적으로도 물과 기름 같았다. 로마는 농업 문화를 갖고 있었고 카르타고는 상업 문화를 갖고 있었다. 로마는 면도를 매우 중요시했지만 카르타고는 수염을 기르는 풍습이 있었다. 카르타고의 종교에는 인신공양 문화가 있었는데 로마는 이것을 끔찍히 혐오했다. 이 근본적인 이질감은 나중에 3차 포에니 전쟁의 원인이 된다.
한편 로마와 카르타고는 둘다 강대국이었지만 정치 구조를 들여다보면 차이가 컸다. 로마는 원로원으로부터 군이 직접 명령을 받는 명령 체계가 확실히 잡혀있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효율적인 국정운영 구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카르타고는 달랐다. 귀족 가문들이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고 명령 체계가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한니발 장군도 스페인 지역에서 사실상 자신의 개인 군대를 거느린 군벌이었다. 카르타고의 극심한 내분은 장기전을 수행하기에 매우 불리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인들에게는 그것을 간파할 안목이 없었다.
한니발 장군의 이탈리아 원정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사단장이 멋대로 북폭을 시작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카르타고 본국은 로마와의 충돌을 원하지 않았으나 로마를 증오하던 한니발은 그대로 군사행동을 강행했다. 2차 포에니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전투의 천재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과 217년, 약 2년간 10번의 전투를 벌여 로마군을 전부 패배시키는 괴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216년, 한니발은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을 문자 그대로 씹바른다. 기록마다 차이는 있어도 로마군은 최소 7만명이 전사했다. 단일 전투에서 약 7만명 이상이 전사한 전투는 유례가 없었다.
이 전투의 소식을 접한 필립5세는 흥분했다. 그는 그리스 지역에서 로마를 물리치고 알렉산더 대왕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흥분에 휩싸였다. 그는 212년, 코린토스 동맹군을 이끌고 에게해의 로마 도시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이 아재가 필립5세
당시 로마는 한니발이라는 괴물을 막기에 급급했다. 도저히 마케도니아와 싸울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로마 원로원은 마케도니아에게 "너희들 이러면 좌시하지 않겠다", "마케도니아 이 새끼들 애비가 누구야 형님이 누구야 앙 노무띠" 같은 위협으로만 대응했다. 그래도 역사에는 이게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으로 기록되기는 한다. 그런데 그 정도의 응수에 필립5세는 겁이 났다. 그래서 궁리 끝에 한니발과 동맹을 맺었다. 이 일로 인해 마케도니아는 로마에게 찍히고 말았다. "그냥 후방에서 깝치는 세력 정도가 아니라 로마의 진짜 적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로마의 위기에 잔머리를 굴리다가 너무 나가버린 필립5세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4.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
한니발의 원정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니 넘어가겠다. 암튼 결론부터 말하면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Battle of Zama)에서 한니발은 큰 패배를 당했고 10년 이상 계속되었던 2차 포에니 전쟁은 결국 로마의 승리로 추가 기울었다. 내분이 심하던 카르타고 본국은 한니발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장기전에 부적합한 카르타고와 달리 로마는 국력을 모두 전쟁에 투자할 수 있었고 결국 한니발을 무찔렀다.
근심덩어리 한니발이 사라졌으니 로마가 발뻗고 잤을까? 그렇지 않았다. 로마는 누가 자기들의 통수를 치려고 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데 강대국일수록 잊지 않는 법이다. 로마는 10년전 자기들의 통수를 치려고 했던 마케도니아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기원전 200년, 로마는 마케도니아에 원정을 떠났다.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갈리아원정도 그렇고 로마군이 나오는 영화를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로마군은 서두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로마군은 곧 공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먼저 장기전에 적합한 환경부터 만들어놓고 전투를 한다. 그래서 마케도니아 원정은 오래 끌었다. 로마군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마케도니아 영토를 정복해나갔다.
준비가 부족한 인간일수록 한방에 위기를 타개할 생각을 하는 법. 결국 야금야금 영토를 빼앗기던 필립5세는 197년 로마 상대로 휘하 병력을 모두 긁어모아 맞섰다. 이것이 키노스케팔라이 전투(Battle of Cynoscephalae)이다. 알렉산더 대왕을 흠모하는 필립5세는 알렉산더 대왕 시절 쓰였던 그리스의 육군 전술 팔랑스 진법을 들고 맞섰다. 하지만 로마 군단은 이를 가볍게 격파했다. 팔랑스가 역사의 무대 저편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필립5세에게 남은 것은 이제 눈물의 똥꼬쇼 밖에 없었다. 그는 로마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고 로마의 동맹국이 되었다. 로마인들은 혈연에 집착하지 않았으나 맹세에는 몹시 집착했다. 카이사르가 양자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하자 로마인들은 "카이사르를 자기 아버지로 모시겠다고 맹세해놓고 그 맹세를 어겼다!"고 하여 브루투스를 추방했다. 로마인들은 그런 민족이었다.
로마에게 동맹국이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신의를 의미했다. 동맹을 파기하면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더라도 반드시 멸망시켜야 한다는 원칙이 로마 외교의 특징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든, 혹은 더 이상 반항할 여력이 없었던, 아무튼 필립5세는 로마에게 두번 다시 대항하지 않았다.
5. 마케도니아의 문재인
필립5세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페르세우스(Perseus)가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 뒷이야기가 있다.
페르세우스는 필립5세의 맏아들이었으나 첩에서 태어난 서자였다. 그가 태어난 후, 필립5세의 본처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그 아들의 이름은 데메트리우스였다.
로마에게 패배한 필립5세는 자신의 친아들 데메트리우스를 로마에 볼모로 보냈다. 데메트리우스는 로마에서 좋은 인맥을 쌓았다. 그러다가 179년, 필립5세가 죽자 맏아들 페르세우스가 왕위를 이었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그것도 모르고 데메트리우스를 마케도니아로 보낸 것이다. 로마인 생각에는 본처의 아들인 데메트리우스가 당연히 왕이 될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페르세우스
이 일이 페르세우스를 반로마 성향으로 만들었다. 이복동생이 로마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왕위를 찬탈할 거라고 생각한 페르세우스는 문재인과 비슷한 짓을 꾸몄다. 데메트리우스를 반역 혐의로 체포하고 서둘러 처형해버린 것이다. 친로마파의 상징과도 같은, 그것도 자기 동생인 데메트리우스를 처형한 일로 로마 원로원은 페르세우스를 불안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한편 로마의 외교에는 동맹국의 왕이 새로 즉위하면 동맹 조약을 갱신하는 관례가 있었다. 그런데 페르세우스는 로마 사절단이 방문하자 신전에 예배를 드리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로마 사절단을 만나주지 않았다. 이 일이 로마의 의심에 더욱 부채질을 했다.
마케도니아 국내에서의 여론이 나빠지는 것을 감지한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약소국을 집적거리기 시작했다. 트라키아 지역을 침공하여 다스리던 왕 아브루폴리스(Abrupolis)를 내쫓은 것이다.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군사적 업적을 자랑했지만 실은 이게 운지의 첫걸음이었다. 아브루폴리스는 로마의 동맹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빡친 로마 원로원에서는 페르세우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 당시의 로마는 제국이 아니라 공화정이라서 원로원에서 의논하는 것은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페르세우스는 불안 끝에 먼저 전쟁을 일으킨다.
그 결과는? 당연히 로마군에게 쳐발렸지. 기원전 168년, 페르세우스는 로마군의 포로로 잡혔고 결국 평민으로 삶을 마감한다. 마케도니아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의 영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가문들이 끝까지 저항을 해보지만 결국 기원전 148년, 로마의 속주로 합병되었다. 이렇게 하여 마케도니아 왕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결론
지금의 한국의 신세는 마케도니아와 같다. 한국은 사실상 미국의 동맹국으로서의 (실제 전략적 가치까지는 몰라도) 신의를 잃었다. 이런 경우,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크게 탄력을 받는 건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 결과는 더욱 비참해질 것이다.
로마(미국)는 강대국이다. 마케도니아(한국)가 그동안 존중을 받았던 것은 실제 국력 때문이 아니라 당시의 국제 역학 관계, 로마의 국내 사정, 혹은 동맹국으로서의 상징성 등 많은 요인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가 정말로 로마의 존중을 받기에 걸맞은 국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한 필립5세나 페르세우스는 모두 냉엄한 현실을 맛보고 패망을 당했다. 문재인이 했던 것처럼 동맹국이라면서 잔대가리를 굴려놓고 그걸 미국이 잊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망상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의 신의를 되찾는 일이다. 트럼프에게 배신감으로 치를 떨 필요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다. 배신은 한국이 먼저 한 것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걸출한 인물들의 업적에 묻어가려는 잔대가리를 버리고 이제는 한국의 놓인 진짜 처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미동맹 재건을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눈물의 똥꼬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똥꼬쇼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중국이나 북한에게 진짜로 후장을 강간 당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