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국지사에서 민족반역자로: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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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글재주를 인정받았으며 열강에게 수탈당하는 한민족의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 후, 적을 이기려면 적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에 유학하여 철학을 전공하였고 각종 사상들을 섭렵하였다.

이광수는 유학생 시절에 이미 일본어, 영어, 독일어 등을 구사할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이 가진 가장 뛰어난 지식인들 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감명을 받아 2.8 독립선언의 기조문을 짓기도 했다. 그리고 3.1운동이 발발하자 상하이에 망명하여 상하이 임시정부에 가담하기도 했다. 훗날 친일파 문인으로 알려지게 되는 모습과 달리 이 당시의 이광수는 열렬한 애국자였다.


하지만 이광수의 뜨거운 행동주의는 1919년을 기점으로 식어버리게 된다.

3.1운동의 실패를 목격한 이광수는 일본의 국력이 나날이 강해지는 모습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

게다가 상하이임시정부가 겪는 내분과 재정난을 지켜보면서 조선이 정말로 독립할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되었다.

결국 1921년, 이광수는 상하이에서의 활동을 접고 조선으로 귀국했다.


한편 오랜 유학 생활과 독립운동 생활을 끝내고 조선에 되돌아온 이광수는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사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자기가 생각하던 이상과 너무나 다른 현실에 충격을 받은 이광수는 독립에 대한 희망이 꺾이게 되었고 결국 그도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부터 이광수의 관점은 "조선인의 의식 개혁"으로부터 "일본제국의 백성으로 잘 사는 길"로 바뀌게 된다. 그는 조선의 독립에 대단히 회의적이었으며 일본을 능가할 나라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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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활동 시절의 이광수(맨 왼쪽)와 동료 문인들.



그러다가 1938년 안창호가 체포되자 안창호와 친하게 지냈던 이광수도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제의 공포정치를 체험한 이광수는 일제에 대항할 의지를 완전히 잃게 된다. 이미 정신적으로 몹시 지쳐있던 그의 정신에 공포가 주입되었고 그때부터 이광수는 일제에 알아서 복종하는 나약한 먹물이 된다. 오만한 지식인의 한계였다. 그 후, 이광수는 일제의 수탈이 가장 극심해지던 1940년에 오히려 "일제에 협력하여 참정권과 자치권을 얻어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비록 이광수가 한때 유학생활을 통해 조선인치고 대단히 글로벌한 시각을 갖추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이미 20년 전(1차세계때전이 끝날 무렵)의 일이었다. 2차세계대전이 시작된 이후에도 이광수는 여전히 일본제국이 가장 강한 나라라고 믿고 있었다. 그의 믿음은 1945년 무너지게 된다. 


친일파로 비판받으며 영향력을 완전히 잃은 이광수는 '조선민족의 사상가' 노릇을 포기하고 문학에 전념하였다. 1948년에는 자신의 친일행적을 참회하는 내용의 '나의 고백'을 출간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친일문인의 대명사 같은 존재였고 게다가 건강도 악화되고 있었다. 결국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이광수는 납북되었고 북한에서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한다. 1950년의 일이었다.






2. 한국 최초의 현실주의 외교가: 이승만

이승만의 성장기 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게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므로 생략하겠다. 다만 이승만의 박사논문에 대해서는 설명하고자 한다. 이승만의 뛰어난 외교 감각을 설명하는 단서이기 때문이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이승만은 당시 프린스턴 총장이었던 우드로 윌슨(훗날 28대 미국 대통령)의 큰 기대를 받았다. 그는 이승만을 조선의 미래를 이끌 지도자라고 격찬했으며 이승만에게 연설할 기회도 자주 주었다. 다소 영어 문장력이 불완전했던 이승만에게 박사 학위 수여를 결정한 인물도 윌슨 총장이었다. 그래서 윌슨의 사상과 이승만의 국제관에는 상당 부분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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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박사논문 제목은 Neutrality as Influenced by the United States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이다. 이승만은 박사논문을 통해 전쟁 중에도 무역이 가능해지는 국제 관례를 만든 나라는 미국이며 미국이 지금까지 유럽의 강대국들과 맞서면서 어떻게 중립노선을 추구해왔는가를 추적했다. 그리고 미국의 중립노선이 중남미국가들의 독립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 내용이다. 이 논문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던 윌슨은 실제로 1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했다. 


이 논문은 이승만이 외교사에 해박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외교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전철을 되밟는 과정이 많다. 따라서 뛰어난 외교관이란 역사에 해박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승만은 미국 유학을 통해 자신의 역사 지식을 강화시켰고 그 역사 공부가 이승만의 뛰어난 현실 감각과 외교 안목을 길러주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철학자들의 그럴싸한 말빨'만을 공부한 이광수는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 이 점이 이광수와 이승만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미국에서 외교사를 공부한 이승만은 외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외교는 힘있는 나라가 주도하기는 하지만 주도해가는 과정에서 절차와 명분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약소국도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이승만의 관점이었다. 하지만 이광수는 조선인의 힘만으로 독립할 수 있다는 이상주의에 사로잡혔다가 그 이상주의가 무너지자 친일로 돌아섰다. 자신이 생각하던 민족주의 이론으로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보자 일본을 이길 방법이 없다고 자포자기한 것이다.


이승만의 외교는 참으로 능수능란했다. 트루먼이 허술한 인물이 아닌데도 이승만에게 끌려다닌 것은 그만큼 이승만이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승만은 '미국은 중립을 존중한다'는 형태에 집착하는 미국 정부가 국제무대에서의 파트너를 원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중남미에서 미국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나라라 하더라도 친미정권이 들어서면 좋아하는 미국을 관찰하면서 한국도 강대국의 대등한 파트너가 될 가능성을 내다보았던 것이다. 민족주의가 정의로 포장되는 한국에서 이승만 정도의 안목을 지닌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은 한민족의 엄청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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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승만을 경멸했던 이광수

이광수의 소설 '흙'에서는 다분히 이승만을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이 등장한다. 미국 유학생 출신의 '이건영 박사'라는 인물이다. 

이건영은 미국 유학생이지만 여자 꽁무니나 쫓아다니고 화려한 생활을 갈망하는 한량으로 묘사된다. 반면 '흙'의 주인공 '허숭'은 일본 유학생 출신이며 민족주의 이상을 위해 농촌에 내려가 교육활동을 하는 인물이다. 이광수가 이승만에 대해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을 본받아 조선인의 의식이 개혁되다 보면 독립은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는 낭만주의적 사상을 가진 이광수에게 미국 상대로 외교를 전개하는 이승만은 외세에 의존하려는 불쾌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는 자신의 방법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던 이광수는 일제보다도 이승만을 더욱 아니꼽게 여긴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만의 힘으로도, 일제의 협력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미국이 거저 내려준 선물도 아니고. 윈스턴 처칠처럼 공산주의의 위험을 간파했고 엄청난 외교전을 통해 미국 정부로 하여금 조선을 독립시키는 게 미국의 이익에 더 낫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만든 이승만의 노력 덕분이다. 


실제로 이승만은 처음 남한에 주둔했던 군정 사령관 존 하지(John Hodge) 중장과 무서울 정도로 충돌했다. 정치에 안목이 없는 하지 중장이 공산주의자들과의 연립 정부를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 중장이 고아원 출신에 학력이 짧은 군인이었기에 프린스턴 박사 출신 이승만은 "너하고는 이야기가 안된다. 네 윗사람 데려오라"고 신경을 긁었을 정도로 하지에게 양보를 하지 않았다. 하지도 1차세계대전부터 참전하여 중장(lieutenant general)까지 오른 인물인데 그런 인물에게 정면으로 덤비는 행위는 도박이라면 도박이었다. 하지만 이승만에게는 외교사 공부를 통해 다져진 확신이 있었다. 그의 신념이 한국을 구한 셈이다.27405_2.jpg

턱라인이 인상적인 General John Reed Hodge (오른쪽)











4. 북폭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감각

1919년 3.1운동을 주도했던 많은 민족주의 인사들이 1940년에 접어들면 친일파가 된다는 무서운 사실. 이것은 사상적 구심점 없는 행동주의는 반드시 변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2.8독립선언문을 지은 이광수도 당시에는 누구보다도 조선의 독립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이 생각만큼 쉽게 되지 않고, 당장 무너져야 할 일제가 건재한 것을 보자 그의 희망은 꺾였다. 그리고 일제에 대한 공포심을 품자 그는 자진해서 친일파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에 대한 불안감으로 많은 일게이들이 문재인이 빨리 망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에 비하면 확실히 문재인에 대한 반감은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을 몰아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현실감각이다. 이광수처럼 자기만의 환상에 빠졌다가 실망을 하면결국 막판에 자기합리화에 몰두하여, '문재인의 통치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니잖아? 문재인도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인데. 문재인과 함께 경제를 발전시킬 방법을 찾아보자' 같은 개소리를 하게 될 것이다. 


특히 문재인이 쉽게 몰락하지 않고,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자포자기하여 문재인을 받아들이려는 보수세력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마치 자기들이 한민족의 미래를 다 아는 것처럼  "북폭은 없다"고 잘라 말하게 되겠지. 1940년의 이광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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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들 특징이 경제학 강의는 듣지 않고 "그럼 주식 뭐 사야합니까?"하고만 묻는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돌아가는 원리가 있는 법인데 그걸 무시하고 그냥 결과만 내놓으라는 소리다. 우선 단 한 사람의 결단에 의해 문재인이 몰락하는 일은 없음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두번째로 문재인이 몰락한다고 한국의 위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문재인은 그저 주사파에 의해 간택받은 어릿광대에 불과하다. 민족주의, 포퓰리즘, 언론통제, 사법부통제 등등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매우 많다. 문재인만 끌어내려서 끝날 문제가 아니니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감각, 즉 현실감각이다. 



문재인에 대한 반감이 커지다 보니 북폭에 대한 열망도 큰 것이라 생각한다. 미북정상회담을 한다고 벌써부터 평화가 이루어진 것처럼, 혹은 트럼프가 김정은을 인정한 것처럼 깝치는 새끼들은 당연히 한심하지만 북폭을 안한다고 트럼프에게 욕을 늘어놓는 북폭충들도 한심하다. 미국도 "일게이들이 북폭을 원하니 이번 달 안에 폭격하자"고 결정할 정도로 단순한 나라가 아니다. 미국이 아니라 어느 나라라 해도 군사행동에 나서는 과정에는 치밀한 명분쌓기와 준비가 필요하다. 도박을 소재로 한 만화에서는 무조건 판돈을 올리는 놈이 승리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 외교는 더욱 치밀하다. 대담해져야 할 때가 있고 상대를 관찰해야 할 때가 있다. 상대를 관찰하는 과정을 '움츠러든 것'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미국의 속내를 알기 위해서는 외교사를 공부했던 이승만처럼 미국 역사를 공부하여 미국의 행동패턴을 연구해야 한다. 감정으로 군사행동에 나설 나라도 아니지만 군사행동을 두려워하지도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군사행동을 옵션의 하나로 늘 갖고 있다. 그 사실을 확대해석해서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그러다가 북폭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이광수처럼 실망하고 반미로 돌아설 생각인가?



트럼프가 입럼프? 아마 그럴 것이다. 그의 역할은 상대에게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군에게도) 혼란을 일으키는 역할이니까. 하지만 트럼프 밑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강경화 같은 입만 산 사람들이 아니다. 트럼프의 온갖 쇼맨쉽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그의 실무자들은 일관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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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믿으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트럼프는 연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미국의 외교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결국 트럼프도 '미국의 외교'를 하는 인물이다.  

















세줄요약

1. 이광수는 열렬한 민족주의자였으나 독립이 쉽게 안되자 결국 친일파로 변절함

2. 외교의 중요성을 잘 알던 이승만은 미국 외교의 미래를 예측해냈고 독립을 이끌어냄

3. 지금은 미북회담에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