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1. 남미 최연소 연쇄살인마 후안 에르모사
https://www.ilbe.com/10414333744
2. 살인마 DNA 나카다 형제
https://www.ilbe.com/10604625062
3. 브라질의 흡혈귀 마르셀로 안드라데
https://www.ilbe.com/?document_srl=10647346145&mid=fear
4. 큰 귀를 가진 연쇄살인마 카예타노 고디노
https://www.ilbe.com/10647409967
5. 데이팅 게임 킬러 로드니 알칼라
https://www.ilbe.com/10658799426
6. 브라질판 덱스터 페드루 필류
https://www.ilbe.com/10659052160
7. 마찰라의 괴물 힐베르토 참바
http://www.ilbe.com/10966458782
8. 천사라 불린 연쇄살인범 로블레도 푸치
http://www.ilbe.com/view/10983669685
9. 공원의 미치광이 프란시스쿠 페헤이라
http://www.ilbe.com/view/11186037494
10. 히치하이커 킬러 도널드 헨리 개스킨스
http://www.ilbe.com/view/11186209928
11. 흑인 사냥꾼 조셉 크리스토퍼
http://www.ilbe.com/view/11186432958
12. 처녀에 집착한 연쇄살인마 다니엘 카마르고
http://www.ilbe.com/view/11186651168

로렌스 비테커와 로이 노리스
둘은 1979년 캘리포니아에서 젊은 여자 5명을 강간하고 고문하고 살해했다.
둘은 1979년 캘리포니아에서 젊은 여자 5명을 강간하고 고문하고 살해했다.
<비태커와 노리스>

로렌스 비테커(Lawrence Sigmund Bittaker)는 1940년 9월 27일,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족이 원하지 않은 아이였기 때문에 고아원에 보졌고 조지 비테커한테 입양되었다.
비테커의 양아버지는 항공 산업에서 일했기 때문에 비테커는 미국 전역을 자주 돌아다녔다.
비테커는 12살에 처음 절도로 체포되었으며 이에도 지속적인 절도 행위로 인해 경찰의 주목을 받았다.
비테커의 IQ는 138으로 똑똑한 아이였다. 그럼에 불구하고 학업에 흥미가 없던 그는 1957년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학교를 자퇴한지 1년만에 그는 차량 절도 및 폭행 혐의로 소년원에 수감됐다. 그에게 질려버린 양부모는 그를 파양했고 그는 다시는 양부모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로이 노리스(Roy Lewis Norris)는 1948년 2월 5일, 콜로라도 주 그릴리에서 혼외자식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약물중독자였으며 그는 부모님한테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고 위탁가정에 맡겨졌다.
16살이 된 노리스는 친척에게 성희롱을 하다가 친척의 집에서 쫓겨났고 이 사실을 알게된 아버지는 그를 때리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겁먹은 노리스는 아버지 차를 훔쳐 달아나 로키 산맥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이 곳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는 나중에 폭주족으로 체포된 후 집에 돌아왔지만 가정은 이미 부모의 이혼 소송으로 파탄난 상태였다.
1년후 노리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해군에 입대했다. 그는 1965년부터 69년까지 샌디에이고에서 복무했으며 말년엔 베트남에서 복무했다.
<잘못된 만남>

비테커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절도와 강도를 저질러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1974년, 그는 강도, 살인 미수 혐의로 샌 루이스 어비스포의 교도소로 수감됐다.
1974년, 그는 강도, 살인 미수 혐의로 샌 루이스 어비스포의 교도소로 수감됐다.
노리스는 1969년 11월부터 1970년 2월 까지 강간 미수 혐의로 2번이나 체포됐지만 형을 상지 않았으며 군에서 쫓겨나는걸로 끝났다.
1970년 5월엔 여성의 머리를 바위로 내려쳐 5년형을 살았으며 석방된 직후 다른 여성을 강간하다가 체포돼 다시 교도소로 보내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렌스 비테커를 만나게 된다.
1977년 비테커가 구타 당하는 노리스를 두 번이나 구해주게 되면서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둘은 서로 같은 변태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걸 알게 되었고 출소하면 10대 소녀들을 납치해 강간하고, 고문하고,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정신과 의사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비테커를 사이코패스로 진단하며 석방을 만류했지만 1978년 10월 15일, 교도소에서 비테커를 석방했다.
한달 뒤, 비테커는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기계공으로 취직했고 노리스는 두 달 뒤인 1979년 1월 15일 석방되고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전기 기술자로 취직했다.
1979년 2월, 비테커는 노리스를 찾아갔고 두 사람은 뭉쳐서 계획을 준비했다. 그는 우선 1977년식 은색 GMS 카고밴을 구매했다. 이 밴은 운전석과 조수석 외에는 유리창이 달려 있지 않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깥에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문은 여닫이 방식이어서 길에 서 있는 사람을 눈에 띄지 않게 빠르게 잡아채서 차 안에 태우기 쉬웠다.

비테커는 이 차에 '살인자 맥(Murder Mac)'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비테커는 범행 하기에 앞서 자기들의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사전 시범 주행을 했다. 1979년 2월부터 6월까지 두 사람은 이 태평양연안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인근에 있는 해변에 차를 세웠다. 이들은 약 20명의 여자들에게 접근했고 그들이랑 대화를 하며 농담도 하고 사진까지 찍었다. 하지만 이 여자들에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들은 범행을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로스엔젤레스에서 동쪽으로 37km 떨어진 샌가브리엘 산맥에 있는 외딴 샛길을 발견했다. 이 길은 본류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여러개의 산과 구릉으로 둘러싸여져 있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으며 이곳을 지나는 차도 별로 없었다.
비테커와 노리스는 범행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연쇄살인>

첫번째 희생자 신디 셰퍼
1979년 6월 24일 오전 11시, 둘은 로스엔젤레스 카운티에 있는 레돈도비치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교회에서 나오는 신디 셰퍼(16)를 포착했다.
비테커는 카고밴을 몰면서 그녀에게 접근했고 노리스는 그녀에게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고 둘은 계속 걸어가던 그녀를 뒤따라가 또 한 번 태워주겠다고 말했지만 또 한번 거절했다.
그 순간 노리스는 그녀를 잡고는 자동차 문을 열고 차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지만 비테커는 라디오의 음량을 최대로 높여서 비명소리를 묻히게 했다.
그 순간 노리스는 그녀를 잡고는 자동차 문을 열고 차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지만 비테커는 라디오의 음량을 최대로 높여서 비명소리를 묻히게 했다.
그 사이 노리스는 그녀의 입을 강력 접착테이프로 막고 그녀의 손발을 묶었다.
둘은 차를 몰고 미리 봐두었던 샌가브리엘 산맥의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웠다. 비테커는 노리스가 먼저 즐길 수 있도록 양보했다. 한 시간쯤 뒤에 노리스는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고 그녀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있었다. 그 모습을 본 비테커는 철사로 만든 옷걸이를 가지고 와서 그녀의 목에 걸어버린 뒤 나사를 조이듯 옷걸이를 계속 돌려 조였다. 약 15초 뒤 그녀는 죽었다.
둘은 시체를 샤워 커튼으로 둘둘 말아서 어떤 골짜기의 낭떠러지 아래로 던졌다.
비테커와 노리스는 2주 뒤에 두번째 살인에 나섰다.

두번째 희생자 안드레아 홀

두번째 희생자 안드레아 홀
1979년 7월 8일, 태평양연안고속도로에서 안드레아 홀(18)이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고 있었고 비테커는 차를 그녀의 옆에 세웠다. 이때 노리스는 차 뒤쪽에 설치해둔 침대 밑에 숨어있었다.
남자가 두 명 있는것보단 한 명 있을때 여자가 경계심을 덜 가질것이라 계산했던 것이다.
비테커가 그녀에게 차 뒤쪽에 있는 냉장고에 시원한 음료수가 있으니 꺼내 마시라고 권하자 그녀는 마침 날이 더웠던 터라 사양하지 않았다.

그녀가 차에 타 음료수를 마시려고 냉장고에 손을 뻗었을때 침대 밑에 숨어있던 노리스가 기어 나와 그녀의 팔을 잡고 넘어뜨렸다.
노리스는 테이프로 그녀의 손목을 묶고 입을 막았다. 비테커는 차를 샌가브리엘 산맥 샛길에다 세웠고 둘은 돌아가면서 그녀를 강간했다.
그것도 따분해진 둘은 그녀를 차밖으로 내동댕이 쳐놓고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었다.
비테커는 얼음송곳으로 그녀의 양쪽 고막을 찔렀다. 그럼에도 그녀가 살아있자 짜증이난 비테커는 그녀를 목을 졸라 살해했다.
둘은 그녀의 시체를 절벽 아래 계곡으로 던져버렸다.
노리스는 테이프로 그녀의 손목을 묶고 입을 막았다. 비테커는 차를 샌가브리엘 산맥 샛길에다 세웠고 둘은 돌아가면서 그녀를 강간했다.
그것도 따분해진 둘은 그녀를 차밖으로 내동댕이 쳐놓고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었다.
비테커는 얼음송곳으로 그녀의 양쪽 고막을 찔렀다. 그럼에도 그녀가 살아있자 짜증이난 비테커는 그녀를 목을 졸라 살해했다.
둘은 그녀의 시체를 절벽 아래 계곡으로 던져버렸다.
이후 둘은 두 달 동안 잠잠하게 있다가 다시 살인을 하러 나섰다.

세번째 희생자 재키 길리엄과 네번째 희생자 레아 램프
1979년 9월 3일, 비테커와 노리스 앞에 허모사비치 근처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소녀들 재키 길리엄(15)과 레아 램프(13)가 눈에 들어왔다.
비테커가 이들에게 태워주겠다고 하고 함께 놀자고 하자 소녀들은 거리낌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비테커는 소녀들에게 해변으로 갈 것이라 말했지만 해변이랑 정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걸 눈치챈 소녀들은 탈출한 틈을 노렸다.
차가 테니스장 옆에서 잠깐 정차했을때 레아는 조수석 문을 열고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뒤에서 야구방망이가 날라와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소녀들을 접착테이프로 묶었다. 비테커는 또 다시 샌가브리엘 산맥으로 차를 몰았다.
샛길에 도착한 뒤에 노리스는 재키를 강간했고 비테커는 여자가 지르는 비명과 살려달라는 애원을 녹음했다.

둘은 두 소녀들을 이틀 동안 살려두면서 여러 차례 고문을 반복했다. 결국 비테커는 소녀들을 죽이기로 하고는 얼음 송곳으로 재키의 양쪽 고막을 찌르고 머리에 박아버렸다. 그래도 그녀가 죽지 않자 비테커와 노리스는 번갈아가면서 재키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다음 차례는 레아였다. 비테커가 양손으로 레아의 목을 조르는 동안 노리스가 쇠망치로 그녀의 머리를 일곱번이나 내려쳐 살해했다.
둘은 소녀들의 시신을 가까운 절벽에서 계곡으로 던졌다.
1979년 9월 30일, 셜리 샌더스가 맨해튼비치 인근에서 얼굴에 최루신경가스를 맞고 납치당했다. 그녀는 비테커와 노리스에게 번갈아가며 강간당했지만 가까스로 달아나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그녀는 범인들의 인상착의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으며 범행에 사용된 차량번호 마저 기억하지 못했다.
비테커와 노리스는 당장이라도 경찰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했다. 비테커는 한 달 동안 버뱅크에 새로 마련한 아파트에 머물렀고 노리스는 자기 어머니 트레일러에서 계속 머물렀다. 하지만 경찰이 찾아오지 않자 둘은 자신감을 회복했고 다시 범행 대상을 몰색했다.

마지막 희생자 셜리 레드퍼드
1979년 10월 31일, 비테커와 노리스는 샌퍼난도 밸리에 있는 여러 거리들을 배회하다가 다음 범행 대상인 셜리 레드포드(16)을 발견하고 납치했다. 비테커는 이번엔 샌가브리엘 산맥으로 가지 않고 노리스에게 운전대를 맡겨 로스엔젤레스 외곽을 1시간 동안 빙빙 돌게 시킨 뒤 그녀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리스도 차를 세운 뒤 쇠망치를 들고 그녀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녹음 테이프를 켜놓고 자기가 멈추라고 할때까지 비명을 지르라고 시켰다.
셜리 레드포드의 비명소리(재판 도중 녹음)
둘은 그녀를 강간하고, 펜치로 유두와 온몸을 고문했다. 마지막으로 비테커가 철사 옷걸이를 그녀의 목에 걸고 펜치로 조여 살해했다.
이번에 둘은 언론의 반응을 보기 위해 여자의 시체를 허모사비치에 있는 어떤 집 앞마당에 버렸다.
다음날 시신이 발견되었고 이 사건은 로스엔젤레스를 충격의 도가니로 만들었지만 경찰은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체포와 통수>
아무런 단서도 없었던 둘의 범죄 행각은 노리스의 가벼운 입때문에 만천하에 알려졌다.
노리스는 엽기적인 연쇄살인 행각에 너무 도취했었던 나머지 근질거리던 입을 참지 못하고 교도소에서 친구로 사귀었던 지미 달튼에게 살인 행각들을 자랑했다.
달튼은 처음엔 그게 전부 허풍이라고 생각했지만 셜리 레드포드의 시체가 발견되자 허풍이 아님을 알았고 곧바로 경찰서로 찾아갔다.
폴 바이넘 형사는 달튼으로 부터 들은 노리스의 말들이 최근 5개월간 실종된 여성들에 대한 보고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달튼의 진술만으로는 비테커와 노리스를 체포 할 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그래서 관련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셜리 샌더스가 살고 있던 오리건으로 찾아가 비테커와 노리스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사람이 자기를 납치하고 강간했던 범인이라고 대답했다.
1979년 11월 20일, 경찰은 비테커와 노리스를 긴급 체포했다.
비테커는 검거된 직후 묵비권을 행사하며 범행을 전면 부인했지만 그의 밴에서 실종된 피해자들이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들과 피해자들의 비명소리가 담긴 테이프가 발견되었다.
심문을 받던 노리스는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게 될 것임을 알고는 경찰과 협상을 벌여 사형을 면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모든 범행을 자백하기로 했다. 그는 희생자들의 시체를 버린 샌가브리엘 산맥으로 경찰을 안내했고 비테커에게 불리한 증거를 제시했다.
노리스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노리스는 재판에서 가석방 가능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비테커는 1981년 3월 24일, 5건의 살인 혐의를 유죄 판결을 받아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녹음 테이프를 켜놓고 자기가 멈추라고 할때까지 비명을 지르라고 시켰다.
셜리 레드포드의 비명소리(재판 도중 녹음)
둘은 그녀를 강간하고, 펜치로 유두와 온몸을 고문했다. 마지막으로 비테커가 철사 옷걸이를 그녀의 목에 걸고 펜치로 조여 살해했다.
이번에 둘은 언론의 반응을 보기 위해 여자의 시체를 허모사비치에 있는 어떤 집 앞마당에 버렸다.
다음날 시신이 발견되었고 이 사건은 로스엔젤레스를 충격의 도가니로 만들었지만 경찰은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체포와 통수>
아무런 단서도 없었던 둘의 범죄 행각은 노리스의 가벼운 입때문에 만천하에 알려졌다.
노리스는 엽기적인 연쇄살인 행각에 너무 도취했었던 나머지 근질거리던 입을 참지 못하고 교도소에서 친구로 사귀었던 지미 달튼에게 살인 행각들을 자랑했다.
달튼은 처음엔 그게 전부 허풍이라고 생각했지만 셜리 레드포드의 시체가 발견되자 허풍이 아님을 알았고 곧바로 경찰서로 찾아갔다.
폴 바이넘 형사는 달튼으로 부터 들은 노리스의 말들이 최근 5개월간 실종된 여성들에 대한 보고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달튼의 진술만으로는 비테커와 노리스를 체포 할 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그래서 관련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셜리 샌더스가 살고 있던 오리건으로 찾아가 비테커와 노리스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사람이 자기를 납치하고 강간했던 범인이라고 대답했다.
1979년 11월 20일, 경찰은 비테커와 노리스를 긴급 체포했다.
비테커는 검거된 직후 묵비권을 행사하며 범행을 전면 부인했지만 그의 밴에서 실종된 피해자들이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들과 피해자들의 비명소리가 담긴 테이프가 발견되었다.
심문을 받던 노리스는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게 될 것임을 알고는 경찰과 협상을 벌여 사형을 면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모든 범행을 자백하기로 했다. 그는 희생자들의 시체를 버린 샌가브리엘 산맥으로 경찰을 안내했고 비테커에게 불리한 증거를 제시했다.
노리스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노리스는 재판에서 가석방 가능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비테커는 1981년 3월 24일, 5건의 살인 혐의를 유죄 판결을 받아 사형을 선고 받았다.

비테커는 다른 연쇄살인범들과 카드 게임을 즐기거나 점심 메뉴가 맘에 안든다고 소송을 걸었으며 현재까지도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고 로이스는 2009년, 2019년에 가석방 심사가 있었지만 모두 기각당했으며 2029년이 되기 전까지 가석방 신청을 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