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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탄 육군


Part. 1 보병전투차, 전차 http://www.ilbe.com/98334914


Part. 2 자주포               http://www.ilbe.com/98904183 


Part. 3 자주대공포         http://www.ilbe.com/99424554


Part. 死 다련장              http://www.ilbe.com/100373094


2탄 해군 


Part. 1 고속정               http://www.ilbe.com/101078514


Part. 2 초계함               http://www.ilbe.com/101730783


Part. 3 호위함               http://www.ilbe.com/102085627


Part. 死 구축함              http://www.ilbe.com/102973780


Part. 5 잠수함               http://www.ilbe.com/103870230


Part. 6 잡다함정            http://www.ilbe.com/104920657 


3탄 번외편


Part. 1 헬기특선            http://www.ilbe.com/105713587


Part. 2 남북미사일전력   http://www.ilbe.com/105831923


Part. 3 제식화기            http://www.ilbe.com/107540430


Part. 死 해군항공대        http://www.ilbe.com/108862785



死탄 공군편


Part. 1 창군,중국조까     http://www.ilbe.com/110747752


Part. 2 Bout One 上     http://www.ilbe.com/111857213


Part. 3 Bout One 中1   http://www.ilbe.com/113386673


Part. 死 Bout One 中2  http://www.ilbe.com/114597239


Part. 5 Bout One 下     http://www.ilbe.com/12057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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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금메달!!! 헑헑!! 하루에 몇개가 터지盧!


아 내가 어제 이렇게 흥분하다가 실수로 등록하기가 눌러져서 잠시 짤게에 작성중이던 글이 올라갔었다


존나 빠르게 지우기 전까지 그 짦은시간에 웰케 짦냐고 욕 존나게 먹었내 씨발


GMT+0 1초였나바,   암튼 그리고 축구보다가 잠들어버림요...


 아무튼, 이제 몇몇은 지겨워 했을지도 모를 6.25 관련 역사중심 파트가 드디어 끝이났고 다시 본연의 무기발전사로 돌아가는 첫화라 떨린다


브금선정이 애매하내, 추천받는다.


자 드뎌 전투기 덕후들이 기다렸을법한 시간, 6.25 이후 산업화 이전까지 대한민국 공군 전술기의 발전사를 알아보자꾸나


(수송기와 T-50을 비롯한 훈련기들은 또다른 번외편에서 다룰 예정임) 



공군 최초의 독자설계 항공기 '부활호'

한국전이 한창 막바지를 향하여 더욱더 애국자들의 피를 강요하던 1953년 7월중, 공군 기술학교 교관이셨던 

이원복 소령과 민영락 김우석 소위 등 께선, 1952년중 들여온 폐기된 비행기를 토대로 100% 한국에서 설계된 (엔진같은 부품빼구말여) 

첫번째 항공기 제작에 들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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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단지 4개월만인 1953년 10월 11일, 자랑스러운 첫번째 국산 항공기가 시험비행에 단번에 성공하지

그리고 이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대한민국 종특은 해군항공대로 이어지게 된거지, (위에 해군항공대편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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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락 조종사와 설계자 이원복 소령이 직접 탑승해서 제작 시작 4개월만에 성공한 완성품의 시험비행은 전후 폐허속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켰고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으로 종범되버린 우리 민족의 희망을 다시 띄우자는 의미로 부활(復活) 이라고 명명하시고, 1954년 4월 3일, 명명식에서 직접

동체에 붓글씨로 네이밍을 시전하신다.

01 부활호.jpg
- 선명한 '부활' 표식

물론 강관 용접동체에 두랄루민 날개골조로 이루어진 85마력의 기초적인 항공기 였기만 대한민국 항공개발 역사에 크나큰 첫발이였고, 

1955년 까지 연락기와 연습기로 십분 활용되었다, 하지만 한국 항공대학 (경상공고) 에 기증됬다는 기록을 끝으로 소재파악이 주영되버려서 

한동안 역사속에서 사라졌었지.

하지만 설계자셨던 이원복 소령의 애정어린 미아찾기 운동으로 개제된 신문광고를 본 한 전 경상공고 교원의 제보덕분에

2004년 1월, 경상공고 지하창고에서 동체와 뼈대만 남아 썩고있던 부활호를 발견할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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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까지 항공대학의 연습기로 활용되다가 경상공고로 변하면서 창고로 옮겨진후 그대로 주영되버린듯한 시나리오가 신빈성을 얻었고

공군은 상징성으로 따져봐도 동상으로까지 만들어진 핵대중이 지팡이보다 월등한 최초 자체설계 항공기를 그냥 저런 상태로 방치할수 없었기에 

그당시 개발인력 숫자였던 27명의 정비요원으로 이루어진 복원팀을 만들어서 역시나 4개월동안 복원작업을 실시하지.

이원복 소령과 고 문용호씨의 자문과 남아있는 파트를 통한 수치 역설계를 통해 완벽한 복원이 가능했어.

이미 단종된지 50년이 넘어가는 부품을 구하기 위해 그당시 부품 원산지였던 미국을 샅샅히 뒤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셨지.

그리고 마침내 2004년 10월 22일 그 복원 기념비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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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석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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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영락 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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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복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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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중요한 사료가 영원히 유실되지 않고 발견됬다는게 참 다행인듯


최초의 제트기 F-8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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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死월 死일, 우리나라 상공엔 최초로 대한민국 국적의 5대의 제트기가 뿜어내는 소음이 창공을 뒤흔들고 있었어

그래 한국전 당시 미공군 전력의 주력이였던 F-86 전투기가 최초로 한국에 인도되어 도착하는 소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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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다


1947년 10월 최초비행에 성공한 이넘은 1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단좌 전투기고, 최대 8톤을 넘어가는 이륙중량과, 300NM( 전투반경을 자랑하고

전투중량일시에도 900km를 상회하는 최대 속도, 이를 가능케 하는 5910 lbf(파운드포스 =  23.6 KN) 를 자랑하는 엔진덕분에 

1948년 11월 최초로 하강중에 음속인 1080km를 돌파하는 세계기록을 세우기도 해, 하지만 level 비행이 아니였기에 그렇게 인정받진 못했지

전 세계적으로 총 9860대가 생산된 베스트 셀러 전투기중에 하나고 대한민국은 총 122대의 F-86F 와 정찰기 버전인 RF-86F를 공여받음요

하지만 정찰버전이였어도 카메라 성능이 좆병신인대다가, 사진의 특성상 접근해야 했기에 북한처럼 대공망이 치밀한곳에 그리 잘 쓰이진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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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기의 12.7mm M2 기관총과, 2개의 로켓포드 장착 가능으로 다양한 로켓을 발사할수 있었고, 나중에 레이더 장착 버젼에선 

사이드 와인더 단거리 대공미사일까지 장착해서 운용했고, 

4개의 하드포인트도 있었기에 2400kg에 달하는 폭탄을 장비, 폭격임무도 가능했던 시대에 비해 성능이 엠창 뛰어났던 녀석

기관총 사격을 보좌하는 조준기의 성능도 상당히 뛰어났다고 해

1961년 12월엔 기관총 대신 마이티 마우스 공대공 로켓을 장착한 버전의 F-86D도 도입 됬었는대 정확도는 애미출타했었고 사정거리와 위력마져 좆만했기에

레이더가 장착되서 악천우에서 작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빼면 그닥 쓸모가 없었기에 1971년 조기퇴역하는 불운의 기종이였지

결국 이게 나중에 F형 대공무기가 사이드 와인더로 교체되는 원인이였지 

1958년 휴전선 상공에서 초계비행중 북괴 대공포에 격추되는 안타까운 손실도 있었지만 

그외에 기술적인 문제로 야기된 사건 사고는 전무했기에 조종사들 사이에서 신뢰가 두터웠고 세이버 라는 공식 명칭보단, 색색이라고 불리워졌고 

70년대 중,후반엔 블랙이글스의 기체로 사용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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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990년 12월 19일, 마르고 닭도록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방부의 전통에 걸맞게 무려 35년동안 가상 적기로 까지 굴려먹은 마지막 F-86F 가 퇴역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랬동안 이넘을 굴려먹은 비공식 기네스 기록까지 따먹으시지..

우리나라 정비사들 실력이 괜히 세계 최강이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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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다양한 도색버전이 존재했음요





F-5A,B 똥-파이브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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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4월 30일, 유서깊은 공군 제 10전투비행단에선 역사적인 행사가 거행됬어

바로 자유의 투사 (Freedom Fighter) 의 애칭으로 유명한 F-5A 6기의 인도식이였지, 노스럽 그루먼 사에서 개발되고 1959년 7월 30일 처녀비행에 성공했던

이 기체는 사실 천조국에선 아예 도입되지 않았던 좀 애매한 녀석이였어, 저가, 저비용, 고효율을 모토로, 그당시 종범이였던 저가 전투기 시장을

개척하려고 만들었던 Low 급 모댈인 이놈에게 천조국 육군에선 지상공격용으로 사용하려도 러브콜을 보내보기도 했지만 

그당시 고정익 기체 도입과 관리, 그리고 운용은 모두 천조국 공군소관이였기에 경제 붐을 토대로 넘쳐나는 예산과 천상천하 유아독존, 

최고성능 아니면 조까를 외치던 녀석들에겐 그다지 어필할수 없는 물건일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대가리 회전 빠른 천조국은 역시나 

국익을 위해서 좆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제 1선 동맹국(영국, 일본)외에 2선 우방국에게 제공할만한 적당한 녀석이란걸 눈치채자마자

최초로 배트남전에 깜작 등장해서 그 성능을 시연하기도 했어, 물론 천조국 공군에 정식 채용된건 아니였고 어디까지나 쑈였지ㅋ

이당시 우리나라 공군력은 북한에 비해서 한창 열새를 보이고 있었어, 소련의 원조로 인해 F-4 팬텀기와의 대등한 성능이라고 알려진 MIG-21을

보유하는 등 기관총이 주 무기인대다가 아음속 전투기였던 F-86으론 격추비가 재대로 나올 가망이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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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 2라는 속도와 공대공 미사일 운용이라는 절대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던 MI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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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전력 열세에 허덕이던 한국 공군은 초반엔 간도 크게 F-4 팬텀기의 도입을 원했어 하지만 천조국 공군에서조차 완편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인대다

지금도 그닥 수평적 관계의 동맹상태가 아닌대 그당시의 일방적인 공여를 받던 수혜국의 입장에서 대가로 보여줄 뭐가 없었기에, 최신예 전투기 운용능력의

부족을 핑계로 든 천조국의 판매, 인도 보류에 뭐라 할수가 없는 입장이였어.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끈질긴 설득, 열세전력의 위험성을 어필했고 결국 F-5A,B 6기를 MPA 즉 천조국 원조공여로 들여오게 됬지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F-22가 도입이 안되니까 F-35로 빠진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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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F-5 전투기 인수식(1965.04.30).jpg

이렇게 한국공군 소속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로 유명새를 탄 F-5A,B는 복좌형인 B형의 경우 후방 관제사 훈련보단 귀빈석의 역활을 더 많이 했다고 하내

아무래도 나름 최신예 기체였고 MIG-21과 겨루어 볼수 있는 가능성이 그나마 존재하던 녀석이였기에 우리에겐 희망의 불씨일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역시나, 공짜로 주는대는 다 이유가 있었어, 원래부터 최고의 성능을 바라보지 않고 저비용을 목표로 만들어졌기에

항법 시스탬등이 단순했고 무장 탑제 능력도 만족스럽지 못했지, 게다가 고고도에서 기체 조향성이 불안정하고, 

마하 2의 MIG-21을 상대하기엔 좀 부족한 마하 1.6의 속도, 그리고 겨울철 온도변화로 인한 엔진 블레이드의 균열같은 문제점과 더불어서, 

천조국 공군이 채용하지 않은 기체라는 점 때문에 보급과 운영의 상당부분을 천조국 공군에게 의지하고 있던 그당시 우리 공군으로선

운영 노하후까지 전무했기에 애로사항이 꽃필수 밖에 없었어.

뭐 그래도 인도식 만큼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참석하신 가운대 성대히 진행됬고 우리 공군이 아음속에서 초음속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였지

하지만 지속적인 계량과 업그래이드 그리고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씨발 성한대가 없을때까지 부려먹는 국방부의 특성상 무려 2005년까지 훈련기 등으로까지

운영되다가 F-5A,B 형은 모두 퇴역하게 됨요, 괜히 똥 파이브라고 불리운게 아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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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녀석의 도입을 계기로 초음속은 물론 중국의 베이징까지 대한민국 공군의 작전반경 안쪽에 넣었다는게 의미있는 일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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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상에서 불곰국의 An-8 을 요격 (intercept, 격추가 아니라 전투기가 따라붙어서 영공 접근을 차단하는 것) 중인 F-5A


동아시아 최강의 공군력을 보유하다!(잠시지만..) F-4D Phantom

1968년 한반도에는 또다시 긴장이 연속되, 

1.12 북한 무장공비의 대통령 암살을 목적으로 한 청와대 습격사건 그리고 천조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강제로 북괴에게 나포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한국과 천조국 사이에 동맹이 강화됬고 긴밀하게 안보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대 결국 여기서 끈질기게 북한과의 2배 가까운 공군 전력차를 어필하면서

팬텀기 도입을 주장하던 우리측의 요구를 국방장관 회담에서 수락하면서 F-4D기가 원조 대여 도입되는걸로 확정되었지.

물론 대여긴 하지만 공짜로 받아온건 아니였어, 지속적인 배트남 파병으로 얻은 천조국의 신뢰와 동맹 강화, 3차 파병의 대가였던 1억불의 군사원조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의 결과물이였지.

당시 박대통령께선 협상 당사자인 최규하 외무부 장관을 불러서, F-4D를 원조받지 못하면 깽판치고 회담장을 나와버리라고까지 주문했다고 전해져

이로서 세계에서 3번째의 팬텀기 운영국이 된 우리나라는 1973년 스시국 공자대가 F-4EJ를 도입할때까지 4년간 동북아 최강의 공군력을 보유하게 된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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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8월 29일 대구비행장에서 거행된 F-4D 인수식

초기 물량은 일명 Peace Spectator 라고 명명된 천조국의 대여 프로그램으로 도입되었고 총 18대를 1진으로 인도받았고

이들을 토대로 11전투비행단 151 전투비행대대가 창설되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한국의 F-4D 보유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였어, 그당시 천조국 이외에 이녀석을 굴리던 국가는 영국 하나가 유일했고 제 1선 동맹국이였던

일본보다도 빨리 이녀석을 보유하게 된거였으니 스시국 쪽바리들의 맨붕은 이루 말할수 없었어

지금으로 따지자면 일본보다 빨리 우리가 F-22를 보유하는 시나리오였지

하지만 일이 순탄하게 진행된것만은 아니였어, 초기로 인도받은 기체의 숫자가 너무 적다보니 우리로선 안정적인 전력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물량을 더 요구할수 밖에 없었지만 그당시 종전된 베트남전 이후, 월맹과의 평화협상 덕분에 자유월남에서 완전히 천조국이 발을 때게 되자

남배트남은 입에 거품을 물고 어떻해서든 전력 공백을 매꿔달라고 요구하지, 그러면서 월남에서 천조국이 운영중이였던 거의 대부분의 장비를

넘겨주고 몸만 빠져나오는 방식을 택했고 F-4D 도 공급해주기로 약속하고 말지, 씨발 어짜피 쓰지도 못할꺼였는대..

아무튼 천조국에서도 막 배치되기 시작했던 최신예 기종이였기에 그 숫자가 많지 않았던 F-4D 였기에, 쌩뚱맞게 한국 공군의 F-4D 36대를

남배트남에 공여하기로 결정내려버린 천조국에게 그당시 공참총장이셨던 옥만호 장군께선 천조국 입장에선 적반하장의 태도로 오히려

남배트남 공여로 생길 전력 공백을 천조국 공군의 F-4D로 매꿔달라는 요구를 하시기에 이르렀지ㅋ 남베트남의 상황이 급박했기에 천조국은

이 요구를 받아들였고 F-5A 36대와 F-4D 18대를 맞다이로 교환해버려서, 대여해온 기체를 확실하게 우리걸로 교체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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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 500만 달러, 1인당 소득 200달러를 갖 넘기고 수출 5억불 달성조차 하지 못했던 그때

지금 물가로 환산한다면 무려 5억달러에 달하는 가격 (현재 F-35 가격 1억 5천만 달러) 으로 볼수 있는 기체를 무려 60대나 도입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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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들어 천조국수준의 최신예 전력을 보유한 상태에서도 윌맹에게 패망해버린 월남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천조국의 닉슨 독트린 때문에

주한미군 감축이 논의되는 시점에서 163억원이라는 경이로운 금액이 방위성금으로 국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모여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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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5기의 방위성금 헌납기가 도입될만큼 그당시 국민들의 자주국방 염원은 대단했어, 좌좀들이 특히 박정희를 깔때 펴는 논리로

이분들이 학력이 딸리고 무식해서 전부 선동되서 박정희 정권의 정권 연장을 위한 희생량이 되었다, 자신밖에 모르는 독재자를 위해서

바보같이 표를 던졌다는 소리를 자주 하는대, 게이들아 니들이 봤을때 저 성금을 낸 분들이 병신 무뇌 호구로 보이냐? 생각있으신 애국자로 보이냐?

저런 분들의 표를 얻으신 박정희 대통령께선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였는지 새삼 느껴지는 사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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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70대가 도입됬고 2010년 6월 16일 처음이자 마지막인 151대대의 해편식과 고별비행을 끝으로 41년의 영공방위 임무를 끝마치고 F-15K에게

그 임무를 넘겨주었어

물론 그전에 기골보강을 통해 본디 설계수명인 4천시간의 비행시간을 2배 가뿐히 9천 600시간으로 넘겨주시는 국방부 종특은 역시나 발휘되는걸 잊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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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40주년 기념 테칼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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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비행을 끝낸 대한 공군의 산 역사..

79.4 KN 이라는 경이로운 추력을 자랑하는 GE사의 J79-GE-17A 축형 압축기 터보 제트 엔진을 2기 장착하고

마하 2.23의 최대속도와 680km에 이르는 작전 반경, 항속거리 2600km와 각종 단,중거리 미사일과 유도 폭탄 장착이 가능한 전전후 전폭기다

MIG-21의 엔진 추력이 37.27KN 에프너 버너 사용시 56.27에 불과한대 비하면 이미 게임이 안되는 체급차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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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안타까운 사고들도 몇 있었지.. 1978년 국군의 날 시험비행에서 추락하는 F-4찡

하지만 1971년 소흑산도 대간첩선 작전, 1983년 불곰국 Tu-16기 요격, 1984년 Tu-95 및 핵잠수함 요격, 1985년 부산 앞바다 간첩선 출현 식별,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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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동해 러시아 정찰기 IL-20 요격 등의 전과와 더불어

무려 24년 7개월간의 누적 비행 8만 8000시간 무사고라는 경의로운 대기록을 세운 F-4D는 151전대와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어

정비사님들 존경하옵니다..ㄷㄷㄷ

팬텀기의 도입이후 한국 공군은 그제서야 북한의 공군력에 비해 우위를 점할수 있었고, 이런 전력 우위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어

모두 그당시 이런 결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나라에 충성했던 공군 장병들 그리고 정부 관계자들의 노고를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됬으면 한다.

지금처럼 민주화, 분배, 복지 운운하면서 배부르고 등따시게 누리는 평화와 번영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걸 말이다.


세줄요약

1. 새거 가져왔는대 역시나 싼게 비지떡

2. 비싼거 가져왔는대 삥뜻길뻔 함

3. 빡쳐서 통수 물물교환 성공

다음화 예고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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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곰아저씨 여기 니내영공 아님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