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저장소 : http://heartbrea.kr/2424314

-----------------------------------------------------------------------------------------------------------------------------------------------

1탄 육군


Part. 1 보병전투차, 전차 http://www.ilbe.com/98334914


Part. 2 자주포               http://www.ilbe.com/98904183 


Part. 3 자주대공포         http://www.ilbe.com/99424554


Part. 死 다련장              http://www.ilbe.com/100373094


2탄 해군 


Part. 1 고속정               http://www.ilbe.com/101078514


Part. 2 초계함               http://www.ilbe.com/101730783


Part. 3 호위함               http://www.ilbe.com/102085627


Part. 死 구축함              http://www.ilbe.com/102973780


Part. 5 잠수함               http://www.ilbe.com/103870230


Part. 6 잡다함정            http://www.ilbe.com/104920657 


3탄 번외편


Part. 1 헬기특선            http://www.ilbe.com/105713587


Part. 2 남북미사일전력   http://www.ilbe.com/105831923


Part. 3 제식화기            http://www.ilbe.com/107540430


Part. 死 해군항공대        http://www.ilbe.com/108862785



死탄 공군편


Part. 1 창군,중국조까     http://www.ilbe.com/110747752


Part. 2 Bout One 上     http://www.ilbe.com/111857213


Part. 3 Bout One 中1   http://www.ilbe.com/113386673

---------------------------------------------------------------------------------------------------------------------------------------------------------------------------

워터마크 가카.png 


오오미 드디어 死탄 死화랑께 ㄷㄷㄷ...


 어떤 사람들한탠 지겨웠을지 모를, 공군 한국전 스토리의 마지막화 는 아니고ㅋ, 그 세번째!


공군편이 다른 편이랑은 다르게 한국전의 이야기를 같이 서술하고 있는 이유는


일단 내가 현대의 최신 무기들만 소개했지 6.25 당시에 우리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싸우셨는지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더라구, 


이 나라가 어떤 희생을 통해서 지켜지고 발전해서 지금과 같은 현대무기를 보유하고 주변국에 방어전이라면 절대 꿀리지 않을 전력을 보유하는게 가능했는지 


공군의 역사와 더불어서 알려주고 싶어서였어, 마침 학교들 방학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우리 유입 꿈나무들이 제대로 된 


역사관과 보훈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개뿔 씨발 좆초딩 새끼들은 이런거 클릭할 생각조차 안할태니 걍 무시하고


걍 어느정도 대가리 굶어진 애들, 역사와 6.25에 관심있는 게이들을  위한거다. ㅇㅇ


아무튼 바로 시작할께 이번편은 바우트 원에대한 이야기는 반 이하고  6.25의 주요 전황들을 설명하게 될꺼야, 그리고 사진자료 분량조절 실패로


전편은 Bout one 中1 편....그리고 이번은 지리는 中2 편이 되버렸으니 참고바람ㅜ


달리자


서울수복, 그리고 북진!

00 incheon.jpg
-왠지모르게 7시 종특의 기원을 알수 있는 짤 저기에서 고립된 북괴군이 빨치산의 새력증강에 한몪 하게됨요 씨브럴놈들...

인천 상륙작전 이후 전선의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어, 탱크가 더이상 없는 알보병 북한군과 막강한 공군력을 겸비했던 UN군과의 싸움의 결과는 너무나 뻔했지

전라도 지역으로 통하는 보급선은 인천상륙 전력과 낙동강 방어전력이 진출 합세하면서 지도처럼 완전히 차단되고 

결과적으로 사방에서 압박되면서 1950년 10월 5일로 모든 잔존 병력이 퇴치된걸로 나오지만 대부분의 의견은

어느정도 수의 병력인지는 모르지만 상당수의 북한군이 산속이나 민가로 민간인 코스프레를 하고 숨어들었다내

아무튼 이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다시 되찾을 시간이 왔지, 상징적인 의미는 둘째 치더라도 영등포, 여의도 비행장등을 보유한 전략적 요충지니까?ㅇㅇ

10 서울 수복작전_1.jpg
하지만 북괴군이 쉽사리 서울을 내주려 하진 않았어, 인천에서의 저항보다 차원이 다른 래밸의 저항에 부딛힌 UN군은, 전진속도가 느려졌고

거기에 곧 닥쳐올 시가전이라는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에 섯불리 병력을 진출시킬수도 없었어

대신 저런 치밀한 계획을 새운 후에 공격에 들어갔지

17 1950 9 17 MacArthur Examine bodies of NK.jpg

- 1950년 9월 17일 서울 진격중에 죽은 북괴군 병사를 확인하는 멕아더찡 과 제식화기 편에서 소개했던 파파샤를 들어보이고 있는 천조국 병사

17 Marine looks over Han river.jpg
- 한강 건너편을 관찰중인 천조국 병사

17 Seoul Assult.jpg
- 그리고 시작된 서울 수복전, 보급이 끊겨서 별 힘을 못썻던 인천의 북괴군과는 달리 서울이라는 천해의 시가전 방어물을 뺏기지 안으려 저항하는 

북괴군은 전력이 만만지 않았기에 희생자도 상당했지만 하지만 에미리스한 한국군 천조군 UN군 물량 앞에선 어쩔수 없었지ㅋ

결국 전쟁후 단 3일만에 빼앗겨버린 수도를 3달여만에 탈환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도래했어

15 서울 수복작전_3.jpg
10 1950 9 27 환영인파.jpg
- UN군을 환영하는 당시 서울 시민들의 모습

10 1950 Sep. Seoul retake.jpg
-하지만 간간히 잔존 북괴병력과의 시가전이 계속되었어

10 1950 Sep. Seoul retake 02.jpg
- 하지만 역시나 좆털리고 항 to the 복ㅋ

이렇게 서울이 다시 대한민국의 손에 들어올 기미가 보이자  바우트 원 대대는 24일 여의도 비행장으로 돌아오게되

근대 북괴 씝새끼들때문인지 아니면 천조국의 공습 때문인지는 몰라도, 비행장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수준의 시설을 자랑하고 있었어

불탄 건물 2동과 2개의 격납고가 시설의 전부였고, 활주로는 마치 인증 털게이들 처럼 잡초가 무성했지, 기지 정리작업은 바로 시작되었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였기에 민간에서 자원자를 받아서 일손을 보탰어, 불과 몇키로 떨어지지 않은곳에서 서울 수복전 그리고 북진이 이루어졌지만

무려 1000여명의 노인 여자 어린이를 포함한 곡괭이, 삽, 가위, 칼 을 손에 든 국민들은, 우리나라 공군을 위해서 활주로의 잡초를 제거하고 땅을 다지고

드럼통을 여렀이서 굴리며 활주로를 평평하게 만들었어, 중장비 하나 없었기에 무조껀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노력의 결실이였지

그런 한명 한명의 자원자의 혼신에 힘입어 겨우 1주일만에 비행장 다운 면모를 갖출수 있었고 

16 F-51D 출격.jpg
- 이렇게 북괴 민주화를 위한 출격을 다시 시작할수 있었어

10 IL-10 02.jpeg
- 비행장에서 발견된 미쳐 가져가지 못한 북괴의 IL-10 지상공격기

 
13 여의도 기지 출격.jpg
- 여의도 기지에서 출격하는 바우트 원 소속 F-51D 머스텡

바우트 원이 비행장을 정비하던 사이 28일 마침내 서울은 완전히 UN군의 손에 넘어오게 됬어

15 서울수복 중앙청 태극기 계양.jpg
- 유명한 중앙청 태극기 계양식

15 9.28 서울수복.jpg
- 1950년 9월 28일 중앙청에서 서울 수복 기념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과 멕아더 장군
15 9.28 서울수복 기념.jpg
- 기념식은 시민들과 정부관료 그리고 UN군이 함께한 가운대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성대히 치루어 졌다고 해

15 서울수복 주민귀환.jpg
- 서울이 수복됬다는 소식에 밀려드는 피난민들

15. Shopping at the local strip mall. Life goes on as the war still rages 20 miles or so North of here.  This could be a typical tourist scene from any travelog.jpg
- 사람이 모이면서 자연스래 시장도 다시 열리기 시작했어

15 폭격파괴 한강철교.jpg
- 근대 군의 진격에는 약간의 문제가 생기고 말았지, 바로 북괴군의 남진을 막으려 폭격해버린 한강철교...쩝

15 Members of the 65th RCT use a pontoon bridge built by men of the 10th Engineer Battalion, to cross the Han River. 18 Mar 1951.jpg
- 그래서 이렇게 부교를 설치하게 됨요 (사진은 1951년 5월 18일)

28일의 행사로도 부족했는지 29일엔 하루사이에 좀더 서울로 모인 국민들에게 선전하는 효과를 노린듯한 서울수복 경축식이 진행되기도 했어

15 9.29 서울수복 경축식.jpg 

15 이승만 대통령 서울수복 연설.jpg 
- 연설중인 이승만 대통령과 왼쪽의 멕아더 장군

19 1950.9 서울수복당시 서울역 주변.jpg
- 서울역 부근의 항공사진 아직은 한 나라의 수도였던 도시 답게 기능을 수행할 정도의 시설은 남아있었다

서울 수복에 멘탈 버프를 받은 UN군은 어느정도의 정치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38선을 넘어 북괴군을 추격하기로 결정하고, 

19 1950.10 38도선돌파 북진 국군.jpg

초반에 북괴의 기습에 어이없이 밀려버렸던걸 복수라도 하듯 10월 19일, UN군은 서울 수복 한달도 안되서 평양을 점거하는 진격 속도를 과시했고 

김일성은 전쟁이 좆망태크를 타기시작했다는걸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10월 9일 대부분의 병력과 정부를 북쪽으로 철수시켰어

19 1950.10.30 평양탈환 환영대회 환호하는 시민.jpg 
- 평양  국군 환영인파

그리고 10월 12일 평양에서 완전히 철수 현재 자강도의 강계 (아래짤의 NORTH 바로 윘동내ㅋ) 를 임시 수도로 삼아

도망가기 바빳으니 전쟁 초반 남진하던 북괴군처럼, UN군의 북진 속도도 에미리스하게 빨라졌어

이렇게 북진하는 지상군의 지원에 좀더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바우트 원 대대도 10월 28일 평양에 입성하고 한달동안 각종 공습과 요격 임무에 투입되면서

실력과 실적을 동시에 쌓아가고 있었어, 헤스소령과 파일럿들은 전쟁이 곧 끝날꺼란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

19 1950 10월 24일 평양.jpg
- Bout One 대대 10월 24일 평양에서 한컷, 이곳에서 적병 500명과 차량 24대를 파괴하는 성과를 이루지 

19 북진 strategic-map-still-un.jpg
- 대강의 UN군 진격 스케쥴과 최대 진격선을 표시하고 있는 짤

평양 함락 이후 UN군은

10월 26일엔 청천강 북부, 압록강의 초산, 장진호, 압록강의 혜산진에 이르는 전선까지 진격했고 11월엔 두만강 일대까지 진격하는대 성공해

더이상의 급박한 항공지원 필요없이 전쟁이 마무리 될듯한 분위기에 한국공군 제 51 임시 전폭기대대 (백구부대) 라 불리기 시작한 바우트 원 대대는

12월 6일 대전 비행장으로 자리를 옮겨서 다 이겨논 전쟁 지원보단 미래의 한국 육군을 제대로 지원하기 위한 한국 공군의 육성에 전념하게 된다

그리고 때마침 F-80의 급속한 배치에 따라 잉여물량이 되버린 천조국 소속 F-51D 까지 쳐믁하게 되면서 공군은 가용기체수까지 늘리게 됬어

훈련과 공격을 동시에 수행하던 방식도 기체와 전력에 여유가 생기자 제주 비행장에 파일럿 양성을 위한 훈련부대를 별도로 창설했고

드디서 숫적, 질적 도약을 위한 발판이 제대로 마련되면서 대한민국 사람이 육성하는 대한민국 공군의 역사가 시작되었지, 

물론 존나 잘생긴 헤스소령과 함께ㅋ

하지만 장밋빛 충만했던 상황은 단 한사람의 결단에 의해서 송두리째 바뀌고 말아


예상되었던, 그러나 알면서도 막기 힘들었던 짱개개입


UN군의 북진통일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김일성은 똥줄이 탓는지 중국으로 날아가서 마오쩌둥을 만나, 그리고 UN군이 북한을 쳐믁하게 되면

그 다음 목표는 중국이 될것이라고 하면서, 타이완마져 그 움직임에 동참하면서 반격에 들어갈거라고, 그들의 신성한 공산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좆도 안되는 논리로 극딜시전 밎 설득에 들어가지, 뭐 번역하자면 씨발새꺄 다죽게 생겼으니 기왕에 도와주기 시작한거 끝까지 도와달라는 얘기였지

졸렬한새끼ㅋㅋ

하지만 마오쩌둥은 타이완과의 내전이 상쳐가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갓 끝난 내부의 갈등을 외부로 돌려서 정부의 안정화를 꽤하려 했어, 

결국 전쟁기간동안 총 무려 75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해서 인해전술이라는 인명따위 개나줘 란 전술을 사용 파죽지세로 압록강, 두만강을 향해

진군하던 UN군의 기세를 후에 1951년 1.4후퇴라는 치욕으로 바꾸어 버리지

11 중국 개새끼.jpg
- 마오쩌둥 씨발 개새끼... 우리가 지금 분단된 조국에 살고 있는 가장 커다란 마지막 원인을 제공한 천하의 개 씨발놈임

물론 소련도 가만히 있던건 아니였어, 동부에 동맹이나 다름없는 공산주의 국가가 소멸하고 커다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설립되는건

그들 입장에서도 썩 좋은 결과는 아니였기에, 중공에 엄청난 양의 무기를 공급했고, 자국 전투기에 짱개국 공군마크를 다는 꼼수를 쳐부리면서 까지

전쟁에 개입해.

러시아 버프를 받은 75만 짱개군이 공습과 포격을 피해 주로 야간에 이동하고 징, 꽹과리같은 엄청난 양의 소음을 동원함과 동시에 지형을 적절히

사용하는 인해전술을 퍼부어 대니, 잘난 UN군도 자신의 최대 장기인 화력을 사용하기 힘들었고, 결국 대대적인 후퇴를 결정할수밖에 없게 됬어

전쟁당시 연합군의 총 투입 병력은 120만 정도에 북괴군의 투입 병력은 26만에 불과했다가 이 병력 불균형을 일소에 해소시켜 버리는 플러스

75만 병력이였으니 어련했겠어 씨발 하여튼 사람은 존나게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UN 수뇌부는 38선 이북의 모든 부대에게 후퇴명령을 내려

하지만 중부 동부전선에 있던 장진호 근쳐의 병력들은 후퇴시기를 놓치게 되면서 포위되게 되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결국 함흥항을 이용해서 절반정도의 병력을 수습하는대엔 성공하게 되는 짱개의 물량공새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전투였어

20 장진호 일지.jpg
19 1950.11.27 장진호전투 인해전술 중공군.jpg
-존나게 새까만 인해전술...ㄷㄷㄷ 물론 현대에서 이런 전술을 썻다간 포탄과 미사일, 공군 공습에 순삭당한다 
20 1950 12 장진호 전투.jpg 20 1950 12 함흥항 후퇴.jpg
- 함흥항으로 후퇴중인 UN군

계속된 전투에 지쳐있던 UN군과는 달리, 짱개군은 내전중 경험이 풍부한대다가 휴식까지 잠시 취한 배태랑 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38선 이북에 대한 전면적인 UN군 철수 계획은 어쩌면 당연한거였어

우린 12월 4일 평양에서 철수하고, 12월 6일 북괴는 평양을 수복하고 말아

20 19510104_14후퇴당시_서울인근_전투상황도.jpg

- 서울은 되찾은지 채 3달이 안되서 두번째로 피난 행렬이 이어졌고 평택과 안성을 잊는 최후 방어선이 만들어졌지

20 1.4 민간인 피난.jpg

결국 1월 4일 서울을 다시 북괴/ 중공군에게 내주게 됬지만

이젠 반격태비를 제대로 갖추고 대기중이던 UN군은 전선을 고착시키는 대 성공해, 애초부터 짱개군은 장비와 화력 기본 장구류등이 안습이였고

식량은 콩가루 아니면 미숫가루로 끝에다가, 몸에 걸친 누비옷이 유일한 방한복이였으며 밤에 얼어붙은 땅바닥에서 그냥 자고 했기에

동상때문에 하나의 대대 가 전투불능에 빠진 이야기는 흔한 이야기였고, 보급을 위한 트럭을 전방까지 받지 못해서 가지고 있던 실탄, 식량이 떨어지면

그냥 ㅈㅈ 치고 철수욤 했다는거...

결국 어이없지만 서울은 다시 3월 14일에 수복되지 그리고 서로 공방전만 지속되면서 병력의 피해만 늘어가고 있었어

3월 24일 이승만 대통령은 완전한 북진통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진 정전을 있을수 없다는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천조국과의 의견차이를 확실히 하고 있었어

사실 멕아더도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었지, 이들의 뜻만 관철 됬더라면 우리가 살고있는 한반도의 근대사가 다르게 쓰여졌을탠대 아쉽단말여

암튼 마침 동해안 강릉쪽으로 북괴군과 짱개군이 밀고 내려오면서 UN군은 적극적인 방어에 나섰고 이걸 기폭재로 전 전선에서 총 공격을 개시해

38선을 다시 넘은 전선은 UN군이 현 휴전선 부근에서 방어진을 형성하면서 한국전은 종전까지의 기나긴 고지 공방전, 국지전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멕아더는 방어진을 형성하고 전선을 고착시킨 수뇌부와 본국의 결정에 대립하면서 지금이라도 북진해서, 그리고 중국에 핵을 사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반도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통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어, 여기엔 물론 이미 본국의 대중에게 전쟁영웅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었던

자신의 이미지를 이용 더욱더 커다란 전공으로 종전 뒤에 정게에 입문하려는 포석이 깔려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야. 그리고 UN군의 역량은 충분했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피가 흘려질 가능성이 있었기에 결국 북진을 고집하던 멕아더는 1951년 4월 11일,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동아시아 UN군 총 사령관의 보직에서 해임되게 됨요, 그리고 그 자리에

21 time_ridgway_1951.jpg
- 천조국의 성향과 걸맞는 현상유지를 옹호하는 릿지웨이 장군을 선임하지..


전선의 고착은 공중전력의 공습과 폭격으로 진지화 된 적 전력을 미리미리 감소 시키는게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졌다는걸 의미했고 한국 공군은 하루라도 빨리

한명의 조종사라도 더 전선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였어, 1951년 4월 10명의 조종사가 또다시 파견되어 Bout One 대대의 전통을 기리듯 머스텡기종

비행훈련을 받고 인수받은후 겁나 빠르게 귀환 대한민국 공군 전력은 또다시 증강되게 되었어, 

23 ROK Mustang at JAFB.jpg .
- 한국으로의 비행을 위해 연료탱크를 장착한 F-51D 머스텡

하지만 아직 작전권은 기체, 부대운용 능력이 천조국 공군보단 부족하다는 평가에 천조국 공군에게 있었어, 그리고 그들의 명령에 따라 출격해야 했지.

이런 현상을 그져 두고만 보실 헤스좌와 한국 공군이 아니였다는걸 뭐 감으로 눈치 챘겠지?ㅋ 

제주도에 창설됬던 훈련부대 주축을 사천으로 이동 훈련에 더욱 매진하였고, 운용과 관제 정비능력을 헤스좌의 보좌속에 스스로 익혀나가기 시작했어

그리고 스스로 판단하기에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다 판단된 1951년 8월 1일 천조국 군사고문단에게 단독작전권을 위한 점검을 의뢰하고 당당히

피나는 노력끝에 '대한민국 공군'이라고 쓰여진 작전 명령서를 받고 출격할수 있게 됬지. 얼마나 깐깐하게 평가하는 천조국 공군이라는건 뭐 다들 알태구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고 존경받아 마땅하시다.

22 rok-mechanics 1951 9.jpg
-독자적인 정비능력을 보유하게 된 1951년 9월즈음의 사진

첫 작전권을 얻자마자 하신 일은 8~9월달 사이 일단 급한 지리산 무장공비 민주화였어, 소수의 인원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녀석들이였기에 

최우선 목표로 정해진듯해, 정확히 8월 19일부터 작전을 시작, 뉴비 조종사 분들에겐 바로 실전 경험을 쌓게되는 계기였고 

그당시 지상에서 공비를 상대로 진압작전을 펼치던 한국 경찰부대를 지원하기에 한국 공군의 의사소통 능력이 甲이라는 천조국 수뇌부의 판단이 

제대로 들어맞았던 작전이여지, 공군과 지상군의 합동 전략에 대하여 효과적인 실전훈련이 됬기 때문이지

그 후 바로 독자 작전권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부대의 재정비에 들어간 10전대는 아군이 위험에 처했을때 천조국을 통해서가 아닌 독자적 출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빠른 지원이 가능하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기에 사천기지에서 교육을 받던 제 1 전투비행단중에 기량이 뛰어난 파일럿들을 뽑고 

최대한 뽑아올수 있는 머스탱은 다 긁어 모아서 

1951년 8월 5일 김영환 대령의 지휘하에 제 10 전투비행전대를 편성하게 됨요 하지만 전부 긁어 모았지만 날수 있는, 그리고 전투에 적합한 컨디션이였던

한국 공군출신 머스탱은 겨우 10기 내외였어. 하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퇴역하는 F-51D 기체들을 추가인수 하는대 성공하였기에

10전대의 머스텡 숫자는 18기로 늘어나게 됨요ㅇㅇ

29 1951 9 5 Bloody Ridge.jpg
- 피의 능선이라고 불렸던곳, 1951년 9월 5일 2700의 천조국과 국군의 생명을 재물로 바치고 15000명의 북괴군을 사살한 후에야 점령할수 있었던 고지

근처의 HeartBreak Ridge를 건 전투가 바로 이어졌고 3700의 천조국과 프랑스군을 희생하고 25000의 북괴군 민주화 후에야 고지에 UN군 깃발을 꼽을수 있었어

그당시 고지대 능선 하나 하나를 점령하는대 얼마나 많은 인명과 전력이 희생됬고, 

북괴군이 조그마한 산 하나를 얼마나 치열하게 방어해 내려고 했는지 알수 있지, 이러한 고지전이 계속되는 가운대 

마침내 1951년 9월 17일 단독 작전권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한달 반 뒤, 강원도 일대에서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벌이던 국군을 보좌하기 위해

10전대의 지상병력 그리고 정비요원들이 먼저 이동했고 10월 1일, 활주로의 정비가 마무리 된 후에 파일럿들이 머스텡들을 몰고 도착하면서

대한민국의 첫 대한민국 공군 전용 작전기지가 운영되기 시작했어, 착륙하는 전투기들과 부대원들을 환영하기 위해 전쟁통에서도

많은 국민들이 눈물까지 흘려가며 맞이해 줬기에 전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지

24 1951 9 28 10th 강릉기지.jpg
- 강릉기지 이동 기념사진


24 강릉기지.jpg
- 부대마크가 인상적인 안내판

24 강릉 rokaf-kangnung-riverdogs.jpg
24 korean-10th.jpg
- 강릉 비행장에 주기중인 10전대 소속 기체들

강원도 근처의 고지전에서 육군을 지원하는 임무를 가지고 첫 출격을 했고, 지속적으로 육군의 진격을 보조하면서 공을 쌓아가고 있었어

승호리 철교 작전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국군은 북괴군과 짱개군 말고도 추위와의 싸움도 시작해야 했어, 하지만 날씨는 적군 아군을 가리지 않았기에

아마도 북괴군과 짱개군이 느끼는 고통이 훨씬 컷으리라 짐작할수 있지, 천조국 공군의 끊임없는 보급선, 특히 교량과 철교 공습때문에 

재대로된 물자공급을 오랬동안 받지 못했으니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보급선을 유지하기 위한 적군의 투지는 남달랐어, 자신들은 물론 근쳐 주민들까지 동원해서 밤샘 작업까지 시키면서 중간중간 파괴된 

짱개국->평양->중서부 전선으로 이어지는 교량, 철교, 도로등의 보급선 복구하는대 매진했으니 쩝.. 

그게 끊기는 순간 전방에 있는 자신들은 일베인에게 사로잡힌 곱등이의 운명과 같았으니 뭐 어찌보면 당연한 행동이였어

천조국 공군은 복구가 됬다는 정찰보고가 올라오자 마자 바로 민주화를 시키면서 적의 전투 의지를 꺾어 나갔지만 유일하게 파괴하지 못하고 있던

철교가 하나 있었는대 그것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승호리 철교였어

24 한국 공군 단독출격작전.jpg
- 승호리 철교의 대략적인 위치

24 승호리 철교 01.jpg
-밑에 오래전에 천조국 공군에 의해 민주화된 본래 철교위에 새롭게 만든 다리가 놓여진것을 확인

천조국 공군이 보급선 차단을 위해 여러번 민주화 시도를 했지만, 너무나 중요한 보급로 였기에 북괴군은 주변에 엄청난 숫자의 대공포를 설치해놓고

철교 자체에는 모래푸대로 폭격에 좀더 잘 견디도록 보완을 해놓은 대다가 주변의 높은 산악지형 때문에 저공 고속 통과가 상당히 어려운 구조였고

역시나 그 고지마다 대공포들이 빼곡히 배치되 있어서 천조국 공군마져도 500회에 달하는 출격에도 파괴하지 못하고 있었고 애꿋은 기체들과

파일럿들만 운지하거나 포로로 사로잡히고 있었지 한마디로 일베 어그로처럼 어떻게 할지 처지 곤란이였던 녀석이야.

게다가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근접 폭격을 포기하고 대공포의 사거리 밖에서 폭탄 비를내리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지만

정확도가 종범이라 철교 주변엔 쓸대없이 땅에 구멍만 늘어가고 있었지.

이런 상황에서 천조국 작전참모부 대위 한마리가, 투지 만땅 두려움 종범의 한국공군에게 이 작전을 맏겨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처음엔 야유와 조롱이 가득했지, 하지만 그색키들도 딱히 방법이 없었기에, 10전대의 깡따구에 모든걸 걸수밖에 없었어.

지들은 거기 폭격하기 좆같으니 잠시 빠질태니 니내가 한번 해봐라~ 라는 마인드였지.. 개새끼덜ㅋㅋ

이 임무가 전해지자 10전대는 무조껀 이 임무를 성공시킬수 밖에 없었어, 그도 그럴겄이, 천조국 공군에서 요청한 작전이였고

지들도 못한걸 우리가 해내면 한국 공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겄은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이지

1952년 1월 마침내 천조국 공군의 공식 협조요청이 접수되고, 강릉 비행장 근처 근접지원만을 수행하던 한국 공군으로선 첫 장거리 폭격임무가 떨어진 샘이였어

그리고 12일 오전 7시 바로 전날 11일 한국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기록을 수립한 김두만 소령이 이끄는 첫번째 승호리 공격편대 머스탱 5기가

주작처럼 날아올랐다

25 김두관 100회출격 기념.jpg 
- 100회 출격 기념사진 누군가 100회 출격을 하면 저렇게 무등을 태워 축하해줬다

 24 머스탱 대지상표준무장.jpg
- 대지 표준무장을 탑제한 머스탱, 500파운드 폭탄 2발과 로켓 4발을 장착했다.

하지만 역시나 상공에 다다르기도 전에 대공포가 먼저 그들을 맞이했고 철교 근처까지 접근했을땐 이미 대공포화 때문에 접근하면 바로 갈리는 수준으로

화망이 두텁게 철교를 방어하고 있었어, 하지만 한국인한태 근성 빼면 뭐가 있겠냐.

망설임 없이 그냥 바로 철교를 향해 급강하를 시도했고 5기 모두 폭탄 투하에 성공했으나 목표를 맞추는 대엔 모두 실패하고 말아

김두관 소령의 빡친 로캣포 공격이 명중하긴 했는대 500파운드 폭탄에 비해 파괴력이 약했기에 첫 편대의 전과는 

그냥 철교 구조물을 조금 찌그러 뜨리는대 머물고 말지

2시에 윤응렬 소령이 지휘하는 3기의 2차 편대도 같은 결과였어, 낙심한 이들은 그날 밤 작전 회의에서, 

천조국의 폭격 방식임과 동시에 자신들이 교육받았던 8000피트에서 강하-> 3000피트 폭탄투하 -> 이탈, 래파토리를 갈아 엎어버리고

4000피트 강하-> 1500피트 투하라는 초 고위험 저공 투하를 시도하기로 결정해, 고도가 더 낮아진 만큼 대공포에 피격될 확율뿐만 아니라

선도기가 떨군 폭탄의 후폭풍에 뒤에 따라오는 기체가 휘말릴 가능성까지 있는 그야말로 자살작전이였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것 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선배님들이셧어..

15일, 정비사들이 혼신의 힘으로 정비를 하고 있었으나 이날 작전 가능한 기체는 총 6기 였기에 윤응렬 대위가 1편대 3기 옥만호 대위가 2파, 역시 3기를

이끌고 출격했어

25 정비모습.jpg
- 신들린듯 공돌이들이 스스로 갈려서 폭격 스케쥴을 맞추려 했지만 시간이 걸리는 작업은 어쩔수 없었제...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시간이 왔고, 이들은 작전대로 초 저공에서 2개 편대가 거의 줄줄이 난입하면서 대공포 따윈 가뿐히 씹어잡수시면서 폭탄을 투하했어

역시나, 폭탄들은 정확히 교각과 상판에 명중했고 아군기들은 이탈후에 모든 기체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했어

작전은 성공적이였고 수없이 많은 천조국의 폭격에도 꿋꿋히 버텨오던 승호리 철교는 그렇게 한국 조종사들의 투지로 무너지게 됬지

25 승호리 기록화.jpg
- 그당시의 기록화

하지만 귀환 뒤에도 이 성님들은 성이 차질 않았는지 그 빌어먹을 놈의 다리를 아주 가루로 만들 작정이였는진 모르겠지만

오후에 한번더 3파 편대가 출격했어, 이번엔 이미 다리가 끊겨 있었기에 그런진 몰라도 대공포들이 전의를 상실한듯 쏘는둥 마는둥 했다고 해

덕분에 이 3편대의 공격으로 승호리 철교는 완전히 가루가 되버림요ㅋㅋ

25 승호리 철교 폭격 결과.jpg
- 검은게 몽땅 폭격의 흔적이여... ㄷㄷㄷ 성님덜 무자비함 보소...

교각 5군대의 커다란 구멍과, 철도는 걍 휠대로 휘어서 싹 걷어내고 다시 까는게 상책일 정도였고, 특히 대공포들은 얼마나 파일럿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는지

아주 그냥 묵사발이 나 있었지

1952년 1월 25일, 천조국 공군 단장회의에 초청된 김신 대령은 자신있게 환등기에 폭격 결과 정찰 사진을 띄웠고, 천조국 장성들은 한동안 벙쪄 있었다고 하내

그도 그럴것이 지들이 500회 넘는 출격에도 부수지 못한걸 단 3파의 편대로 끝내버렸으니 그럴만도 하지ㅋ

요란한 장성들의 격려를 받은 후 돌아가려는 김신 대령 앞에 한 천조국 대령이 나타났어, 바로 한국 공군에게 작전을 위임하자고 처음 주장한 그놈이였지ㅋ

덕분에 20불을 땄다면서 술한잔 사겠다고 살갑게 나서는 녀석이였기에 기분도 좋은 날이겠다 흠뻑 마시고 복귀하셧다내.

이 일로 천조국에선 더이상 한국 공군의 실력을 들먹이는 일이 한번도 없었으며, 본국의 신문에도 대대적으로 보도 되면서

소모적인 전쟁을 중단하라는 여론의 압박에 시달리던 천조국 정부에게 전쟁을 지속하려는 정책을 쉴드쳐줄수 있는 엄청난 선전 도구를 안겨주게 되지

이렇게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공산주의를 상대로 한국 공군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대 민주주의 대빵인 우리가 이제와서 발빼서 되것냐는 톤으로 말이야.

말도 안되는 초 저공 폭탄투하 결정과 그걸 실행해 옮기고 성공시킨걸 보면 정말 우리 선대분들이 어떤 정신으로 그 당시 싸우셧고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우리가 지금 영위하는 풍요가 가능한거라는 새삼스런 깨닳음이 느껴진다.

너내 노인분들 무시하지 마라.. 그분들 아니였으면 니내가 지금 히히덕 거리면서 즐기는 이 일베도 김일성 베스트 저장소 였을지 아니 집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있었을런지 아무도 모르는것이여, 전쟁 직전, 천조국은 한반도를 포기하고 일본을 태평양 방어선으로 삼으려 했다는걸 잊어선 안된다

진짜 노인분들 까는 색끼들은 죽빵을 턱이 빠질때까지 쳐맞아도 부족한 새끼들이다

은혜도 모르는 새끼들 北끄러운줄 알아야지

25 귀환편대.jpg
- 폭격후 귀환중인 10전대 편대

30 macarthur_douglas_sunglasses.jpg
- 멕간지 성님

이분이 계속 UN군 사령관으로 남으셨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다음화는 드디어 공군 한국전쟁편의 마지막, 평양 대폭격 시간이여

세줄요약

1. 짱깨 씨벌럼들, 북진 통일 직전 마오쩌둥 개새끼가 개입함

2. 존나게 밀리다 다시 밀다가 휴전선 근쳐에서 전선 고착 공군 단독 작전권 획 to the 득

3. 승호리 철교 민주화 & 실력 인정받음

다음화 예고짤

28 1952년 8월 29일 평양 대폭격 F-51 36, UN 1080.jpg
- 평양 대폭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