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금저장소 : http://heartbrea.kr/2429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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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탄 육군
Part. 1 보병전투차, 전차 http://www.ilbe.com/98334914
Part. 2 자주포 http://www.ilbe.com/98904183
Part. 3 자주대공포 http://www.ilbe.com/99424554
Part. 死 다련장 http://www.ilbe.com/100373094
2탄 해군
Part. 1 고속정 http://www.ilbe.com/101078514
Part. 2 초계함 http://www.ilbe.com/101730783
Part. 3 호위함 http://www.ilbe.com/102085627
Part. 死 구축함 http://www.ilbe.com/102973780
Part. 5 잠수함 http://www.ilbe.com/103870230
Part. 6 잡다함정 http://www.ilbe.com/104920657
3탄 번외편
Part. 1 헬기특선 http://www.ilbe.com/105713587
Part. 2 남북미사일전력 http://www.ilbe.com/105831923
Part. 3 제식화기 http://www.ilbe.com/107540430
Part. 死 해군항공대 http://www.ilbe.com/108862785
死탄 공군편
Part. 1 창군,중국조까 http://www.ilbe.com/110747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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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빨리 올려주겠다 했는대 이런저런 개인적인 사정, 은 조까고 엊그저깨가 내 음력 생일인대 엄마도 까먹고 아빠도 까먹고 개병신같이 나도 까먹고
그냥 넘어갔어서 오늘 가족끼리 조촐하게 고기쳐믁하고 왔음요. 어쩌다 보니 어학병 지원 1차합격을 축하하는 자리도 되버려서 근자감 충만해진 난
생일선물로 차를 시전하는 패기를 보였지만 곧 입대할 새끼 입에서 나올말은
내가 다시 생각해 봐도 아니였기에 아빠한태 식당에서 극딜로 민주화 당함요.. 방이였기에 망정이지 아니였음 존나 쪽팔릴뻔 ㅇㅇ
근대 엄마가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아빠한태 극딜 시전으로 깨알같이 엄마새차약속받음, 이래저래 멘붕이 온 후에 마무리 한 글이라
도피유학종자라는 전제를 깔고 보더라도 심각하게 오타가 눈에띄게 많을수도, 오류가 넘칠수 있으니 양해바란다.
자 달리자.
전쟁의 전초전
전편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공군 전력은 하찮다 못해 객관적으로 '공군' 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했었어, 설계부터 전투기였던 기체는 단 한대도 없고
민간용으로 개발된 녀석들을 개조해서 사용하던 천조국의 연락기 모델들에 무장을 붙여서 겨우겨우 전력을 일구어 놓고 있었지
뭐 이럴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천조국의 만행이야 익히 전편에 서술했지만 좀더 디테일한 정보를 얻어서 그 썰좀 풀고 진행할게
간단하게 말했던 전투기 100대 요청은 사실 전투기 75대 폭격기 12대 연습,정찰기 30대 수송기 5대 원조 요청이였어 ㅎㄷㄷ 승만이횽 통큰거 보소ㅋㅋㅋㅋ
1949년 초 조병옥 특사를 통해 요청했지만 빠구먹고 2월에 케네스 로열 천조국 육군장관에게 다시 요청하지만, '줘봤자 니들이 운용비 감당할수 있음?'
시전으로 다신 말도 못꺼냈지라ㅇㅇ, 하지만 승만이횽은 포기하지 않았어, 저기 북한새키들 전투기 공격기 존나게 많은거 안보이냐 씹새들아!
했지만 천조국은 또다시 가뿐히 씹어 넘기고 마침 서울 김포 비행장에 주둔중이던 B-26 경폭격기 30대를 퇴역시키게 되는대, 근성의 승만찡은 포기않고
이녀석들이라도 좀 달라고 땡깡을 부려봤지만 이 좆같은 천조국 새키들이, 자국 정부의 방침은 한국에 항공전력을 제공하지 않는것이라며
도끼로 퇴역 폭격기들마저 민주화를 시켜부랐제. 뭐 2차대전이 끝나고 아직도 전후 수습중이였기에 또다른 전쟁을 피하려 했던 천조국의 고심과,
강력한 천조국 기체들을 들여올경우 북진통일이라는 단어와, 전쟁시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는 발언까지 입밖에 냈었던
이승만 정부를 신용하기 힘들었겠지, 하지만 최소한의 전력균형정도는 만들어 줄수 있는 위치였기에 아쉬운건 매한가지다, 씹새끼덜ㅗ.
- 총 4000파운드 즉 1800kg 의 폭탄으로 적을 민주화시키는 B-26 이녀석만 있었어도 초반 한국전은 다르게 전개됬을지도 모른다
천조국의 이러한 행동은 전후 지금까지 의문으로 남아있어, 2차대전 직후,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USSR) 소련은 덕국과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과
맞서 싸우기 위해 어쩔수 없이 손을 잡았던 천조국과 기타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이념 대립을 시작해, 사회주의 물결은 몽골, 짱개국을 이미 물들였고
동북아시아에서의 사회주의국가들의 태평양 진출을 막을 마지막 보루는 대한민국과 일본 뿐이였어.
- 온통 붉게 물든 아시아 대륙에서 땅덩이가 붙어있는 경우에도 유일하게 공산화 되지 않았던 대한민국, 나중에 천조국 자신들의 입에서
자유의 방파제란 말이 나올정도로 전략적 요충지 였다는걸 몰랐던걸까? 아니면 의도적인 남침을 유도하고 재빠른 북진 통일을 계획했던 걸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의견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요인에 의해서 한반도에서의 긴장감을 높일수 없었던게 지원하기 힘들었던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해
일단 2차 세계대전 직후였고, 전쟁으로 인해 군수산업으로 전환됬던 모든 산업체들을 민간사업체로 되돌리는대 온갓 힘을 기울이고 있었지
탱크를 만들던 곳은 자동차를, 총알을 만들던 곳은 새로지을 건물재료를 위한 공구들 등등.
이미 전쟁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은 뒤에 다시 뒷정리에 돈이 들어가고 있던 상황이였던 대다가 같이 주축국을 상대로 싸웠던 소련과의
이념분쟁은 또다른 전쟁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있었기에,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 발언은, 물론 내부사기 고취용 이였지만,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고
의회를 설득시키기 곤란했던 천조국 정부로선 참으로 난감한 사건이였기도 하고, 그리고 만약에 정말 전쟁이 발생한다 해도, 공산주의의 침략에 대항해서 방어
한다는 명분이면 군사지원과 파병등을 정치적인 부담없이 빠른 처리가 가능할꺼라 생각한거겠지, 이처럼 복잡했던 당시 상황을 김일성은 잘 알고 있었기에
천조국이 정신을 차리기 전, 짱개국의 마오쩌둥과 소련의 스탈린을 설득시켰지만 빠르게 전쟁을 개시하고 끝마쳐야하는 부담이 있었어.
이처럼 한국전은 내전이라기 보다 2차대전 이후 이데올로기로 갈라진 신 세계권력구도 싸움의 대리전과 같은, 마치 2차대전의 연장선상의 양상으로 치뤄졌어.
전화(戰火)와 투혼, 그리고 전설의 시작
건국기들의 역사적인 명명식이 끝난 뒤 40일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군은 수년간 불곰국과 짱개국에게 원조받은 장비와 물량을 앞세워
38선 전선, 특히 주공이였던 포천-의정부 방면과, 조공이였던 춘천 개성-문산방면으로 대대적인 남침을 개시해
왜 하필 이날이였나? 하는 질문에 북한은 남침할 경우 한달 반 정도면 남한 전체를 점령할것을 예상했고
광복절인 8월 15일을 적화통일 기념일로 삼으려 했다는 의견이 있긴 한대 우리 군의 대비 수준이 가장 낮았던 날을 노렸다는 설이 난 가장 타당하다 생각해
그날 새벽 상당수의 장교들이 외박을 나가있었고 긴박한 전장 상황에 대처하기엔 너무 먼곳에들 있었지ㅜ 또한 이러한 정보가 이미 북한 수중에 있었단
뜻으로 풀이할수도 있기에 그당시에 간첩들이 얼마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었는지 알만한 대목이지.
게다가 대부분의 천조국 장교들은 일요일에 자리를 비우기 마련이였던걸 생각하면 천조국의 개입과 반응을 최소 하루정도 늦출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있을꺼야
뭐 구지 이런 약점이 없었더라도 북한군의 저런 자신감은 어쩌면 당연한 거였어,
당시 인민군 군사력은 육군을 살펴보면 과거 짱개내전에 참전했던 2만 5천명을 포함하는 보병 17만명이 넘어가는대에다가
T-34 중전차 100여대, TSU-76 자주포 50여문, 야포 1643문을 보유했고 대한민국 국군은 10만의 병력과 전차, 중장비는 단 한대도 없이 장갑차 27대와
오로지 총 8개 사단 중 6개 사단만이 105mm 곡사포 1가 대대씩 배치받고 있는 실정이였으니 그 화력의 차이란 이미 게임이 되지 않는 수준이였어
하지만 공군의 실정은 더욱 심각했어, 끽해야 연락기와 훈련기로 구성된 20대 남짓한 편대만을 갖추고 있던 우리 공군과는 양과 질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지
IL-10, IL-2 합 75대의 지상 공격기와, YAK-9 전투기 100대 PO-2, PU-2 폭격기 18대 등등..
- 불곰제 IL-10 공격기 1944년 개발된 비교적 신형이였고 800km의 항속거리 최고속도 550km, 43.2파운드, 211kg의 폭탄을 날개밑에 장착할수 있었고
또한 2정의 23mm 기관포, 또 2정의 7.62mm 기관총, 1정의 12.7mm 기관총 도 장착하고 있었어, 총 1320파운드.. 600kg 정도의 무장능력이였지 ㅎㄷㄷ
이미 YAK기 만으로 대한민국 건국기는 깝치는 순간 순삭인 상황인대 전투기에 비해 비교적 공중전 능력이 떨어지는 공격기의 성능마져
건국기보다 좋은 상황이였어 쩝, 천조국의 분쟁지역 군비증강 반대로 대변되는 전쟁억제 정책으로 인해 말도안되는 전력과 마주하게 된거지.
하지만 이런 상황임에도 희망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육군에 비해 준비가 덜된 북괴 조종사들의 숙련도 였어.
북괴의 공군 병력은 약 20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고 이중에 파일럿은 약 150명 정도 그중에도 전투에 참가할수 있는 기량의 파일럿들은
절반정도에도 못미쳤다는게 각종 기밀문서의 공개로 인하여 밝혀졌어, 이건 기체 도입과 서두른 전쟁 개시전 갭이 적었기에 훈련시간이 부족했던 관계로
제대로 된 파일럿 양성 프로그램이 종범이였던 대다가 지상공격 위주로 훈련을 받았기에 공중전에는 영 병신같은 기량을 지닐수 밖에 없었다고 해
보다못한 불곰 공군에서 파일럿들을 알게모르게 지원했다는 건 뭐 이런 상황에서도 천조국 파일럿들이 격추당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로 굳어지고 있어, 이를 상대하는 우리측 파일럿은 50여명..
파죽지세의 남진 초기엔 북괴 공군의 활동이 그렇게 활발하진 않았어, 육군의 진격 속도가 워낙 빠르기도 했지만, 조종사들의 훈련 미숙이 그 첫째 이유였지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적의 공군을 이용한 공격이 지상공격용이 아닌 전투기였던 YAK-9 기였다는 거야, 그만큼 조종사들의 실력이 좆같았단 반증이지
하지만 아예 활동이 없었던건 아니였어
25일 당일 1시에 YAK-9 전투기 4기가 김포공항시설에 기총을 발사했고
서울비행장에도 동시간대에 나타나서는 지상에 주기중이던 L-4/5 관측기 7기를 산화시키는 만행을 저질렀지
하지만 중요했던 사건은 천조국을 자극한 오후7시의 6기의 YAK-9 기들이 김포공항에 주기되 있던 자국민 철수용으로 준비되어있던
천조국 공군 소속 C-54 수송기를 민주화 시킨 일이였지 이 일로 인하여 당시 스시국 주군 천조국 사령관이였던 그 유명한 멕아더 장군은
그동안 한국의 전투기 요청을 거절해온대 대한 압박감과 천조국의 비난여론을 감당하기 힘들었고, 2차대전 직후에 바로 터진 전쟁에 천조국이
한국을 대신해서 모든걸 해주는게 아니라는 이미지를 의회에 심어주는대도 한몪 할수 있기에 즉시 작전 가능한 모든 천조국 기체를 사용
북괴의 남하를 저지함과 동시에, 이승만 정부가 지속적으로 요청해온 전투기를 드디어 공급하기로 결정하지
김정열 공군 참모총장의 개전 직후 이루어진 요청을 받아들인거야, 태극무니 마크를 달고 천조국과 공조해서 작전을 펼치는 한국 공군기의 모습만큼
뛰어난 선전효과를 가진 이미지도 드물었기에 말이지, 물론 위기에 처한 신생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을 돕는다는 생각도 있었을꺼야
하지만 역사를 볼때 무조껀 포장된 면만 보려하면 안됀다고 생각한다,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은 그 이해관계를 국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연관지어서
추리해 볼때 가장 사실과 근접한 결론과 해석을 내릴수 있거든. 뭐 그렇다 해도 멕아더의 즉각적인 지원 결정이 우리에게 엄청난 도움이 된겄과
무지하게 고마운 일이란건 분명한 사실이야, 깔껀까되 빨껀 빨아야지? 안그래?
이런식으로 Bout one, 딘헤스 소령이 이끄는 한판승부 라는 의미의 계획이 세워졌고, 개전 바로 다음날이였던 26일 실행에 들어가
스시국에 주둔중인 천조국 공군 전력들은 이당시 2차대전때의 무기들을 대거 퇴역시키고 신형 제트기인 F-80 슈팅스타 등 한국군이 바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많은 물건들을 보유중이였기에 급박한 전장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폐기 처리되거나 이동표적 견인용도로 사용되던 F-51D Mustang 머스탱 전폭기들을
정비, 10기 정도의 비행 가능한 녀석들을 만들어 냈어, 그리고 우리 정부에 단발 프로펠러 전투기에 능숙한 파일럿 10인을 스시국으로 보내라는 요청을 하지
북한군이 내려오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어쩔수 없이 머스탱 기들의 인수와 훈련을 위해 건국기 전담 파일럿들이였던 10인의 최고 실력을 가진 파일럿들은
27일 일본으로 떠나게 되고 공군은 2선 파일럿들 만이라도 출격을 계속했어
- L-4 정찰기 교육을 받는 파일럿들
그나마 스시강점기때 스시국 공군에서 항공전술등을 배웠던 전력들이 교육의 중심에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짦은 시간안에 양질의 파일럿들을 만들어 낼수 있었어, 암튼 이러한 상황속에서 우리 공군은 북괴의 남침 사실을 전해들었고
막상 저 괴물들을 향해 폭격을 시도하려 했지만 마땅한 항공기 투하무기도 무장 파일런도 없었기에
그당시 육군 병기창에서 시험 제작한 15kg 짜리 국산박격포탄과 서울경찰에서 가져온 수류탄을 폭탄삼아 후방석 정비사들이 들고 부랴부랴 L-4 들은 출격했고
그야말로 맨손으로 공습에서 살아남은 수기가 사라진 기체들의 한풀이라도 하듯 손수 폭탄을 떨궈서 북괴 탱크 민주화 시도를 지속 하셨지
이 영웅적인 행동은 이날 이후 한국 공군의 정신적인 모티브가 되어서 전해져 내려오게 돼
-북괴 민주화 시전하다가 총탄에 벌집이 되어버린 L-4기와 구사일생한 파일럿, 이처럼 이들은 목숨을 걸고 어떻하던지 조국을 지키려 했어
L-5 기들 또한 공습에 참여했고 똑같은 방식으로 공습을 실시했어, 이처럼 연락기에 불과한 이들이 이처럼 지속적으로 출격할수 있었던 대엔
북괴 공군이 우리 공군쯤은 그냥 좆만이 만만이로 보고 지상군의 엄호를 거의 실시하지 않았던 탓에 기인해
얕잡아 보는 북괴에 빡치신 우리 김정렬 참모총장 께선 후에 캔버스에 발사 화염이 옮겨 붙을 위험도 무릎쓰고
L-5기의 좌우 날개에 바주카포를 철사로 고정시킨 후 전선으로 격발하는 장치를 만들어서 공중에서 이들을 발사하도록 개조하라는 명령을 내리셧다는 일화가
한형대, 손재권 준장님들을 비롯한 그당시 참모진들의 증언으로 전해지고 있어
이렇게 6.25일 당일 오전 10시엔 공군 작전 지휘소가 설치됬고, 물밀듯이 내려오는 적 지상군과 탱크의 민주화 방안을 논의, 최대한 저지를 시도할 것을 결정해
-38도선을 통과하는 북괴 T-34 전차부대
- 시가지를 진격중인 막강했던 T-34 부대...
막상 저 괴물들을 향해 체계적인 폭격을 시도하려 했지만 마땅한 항공기 투하무기도 무장 파일런도 없었기에
L-4/5 기들과 마찬가지의 무장방식으로 이근석 대령의 지휘 아래 건국기 3개 편대 또한 날아올랐어
- 출격하는 건국기 편대
이 첫날 출격을 마친 후에, 정비사들은 조국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무장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기 위하여 밤을 새워 건국기들의 양 날개 밑에
폭탄을 장비할수 있는 파일런을 만들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하시기도 했어
-정비중인 건국기의 모습
서울 함락과 후퇴
6월 27일, 육군은 발업 져글링처럼 내려오는 북괴군의 추가 병력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임진강 철교를 끊기로 결정하고 공군에 지원을 요청하게돼
일선 파일럿들이 모두 전날 머스텡 기종전환 훈련을 위해 떠난 뒤였기에, 지상 비행교육만 마친채로 김두만 중위, 정비사 유근섭 중위가
난생 처음으로 건국기에 탑승, 폭탄 10개를 들고 출격했지
- 압록강 철교, 위쪽이 남한 아래쪽이 북한이다
그당시 날씨는 구름이 450미터 부근에 형성되 있었고, 대채적으로 흐렸기에 목표 상공에서 급강하를 위해 구름속으로 들어간 순간 조종의 미숙함과
기체의 양력 부족으로 spin 상태에 빠져버렸지만, 김중위는 침착히 회복하고 폭탄을 투하하셨어, 하지만 역시나 첫빠다부터 실력이 좋을순 없었으니
폭탄 하나가 교량에 맞고 튕기면서 터지는 바람에 기체가 그 폭발 유효범위에 들어가 버린거야, 으잌 씨발 좆됬다! 하고 혼신의 조종으로 겨우겨우 귀환 했지만
착륙후 정비반은 온갓 구멍으로 난자된 건국기의 밑바닥을 보면서 한동안 벙쪄있었다 하내ㅋ
- 두번이나 죽다 살아난 김두관 중위, 한국공군 최초의 100회 출격 조종사가 되고, 후에 제 11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하심
급박한 상황에서 한국 공군은 육군무기창에서 생산했던 폭탄 274발을 모두 소비할때까지 일선 파일럿 이 스시국으로 떠난 후에도
끊임없이 산발적인 공습에 나섯고 미비하지만 적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진격을 늦추는대 기대이상의 역활을 수행해
더이상 공습에 쓸 폭탄도 없을 찰나 전쟁발발 단 3일만인 6월 28일 서울에 북괴 전차들이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여의도 비행장과 김포공항등을 사용하던
공군은 모두 수원 비행장으로 후퇴할수밖에 없었어
- 1950년 6월 28일 중앙청사에서 남대문으로 가는 길에서 진격준인 북괴 전차, 전선은 빠르게 무너졌고 서울 함락에 고작 3일이 걸렸다
-위풍당당하게 서울에 입성한 북괴 전차
6월 30일, 서울에서 이틀간 전열정비와, 대한민국 애국인사들의 숙청과 탄핵을 마치고 시 군정부를 구성한 북괴군은 다시 남쪽으로 한강을 건너기 시작해
최초로 이 상황을 정찰하는대 성공한것으로 보이는 한강 상공에 체공중이였던 L-5 연락기는 북괴군의 대공사격에 운지하고 말아
이경복 소위, 백성흠 일등상사가 타고 있었고 공군 최초의 파일럿 사상자였어.. 사실상 퇴각 전에 이런식으로 한두기씩 기체를 상실했고
모든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었던 서울의 비행장들에 비해 열악했던 지방으로 내려가게 됬기에, 정비와 보급에 커다란 문제가 생겼고, 전멸에 가까운 타격에
수뇌부는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지
하지만 천조국 공군의 발빠른 개입으로 북괴 육군은 어쩔수 없었지만, 공군만은 철저히 유린하고 있었지
- 그도 그럴것이 슈팅스타 같은 제트기로 2차대전때 쓰인 야크기나 공격기를 잡고 있었이니 쩝
- 그 결과물
바우트 원 (Bout One)
서울이 함락될랑 말랑했던 이당시 스시국에선 F-51D 의 정비 작업이 마무리 되고 있었어
막상 해 놓으니까, 좆구린 남한의 비행장 사정에 알맞게 존나 튼튼했고, 1인승이라 조종사가 부족한 한국에 딱이였고, 5490kg 이라는 엄청난 최대이륙중량으로
각종 대공화기는 물론 대지 공격력도 갖추고 있었으며, 무려 7000cc 12기통의 1490마력의 엔진 덕분에 최고속도 703km, 연료탱크 장비시 2755km 라는
에미리스한 항속거리마져 보유하고 있었어, 더더욱 M,E 없게 6기의 .50 cal(12.7mm) 기관총을 기본으로 장비했고, 907kg의 폭탄을 장비 가능한
2개의 하드포인트 파일런엔 폭탄 말고 6개나 10기의 127mm 즉 5인치 H.V.A.R 로켓포를 장비할수 있었기에, YAK-9 따윈 그냥 쌈싸먹을수 있는
녀석이였다는것. 또한 대부분의 천조국 파일럿들이 머스텡을 몰아본 경험이 많았기에 구기 기종전환 훈련이 필요 없었기에
멕아더는 한국에 공여하기로 한 10대는 물론 천조국 공군에서 한국전에 사용할수 있도록 본토 주방위군에 넘어간 머스탱들을
긁어모으고 재사용 요청까지 해, 6월 29일 멕아더의 전황시찰때 수원비행장에 내렸던 전용기를 호위했던 녀석을이 최신 제트기였던 F-80이나 F-82가 아닌
F-51D 였다는게 그 증거지, 거기다 마침 수원에 나타난 YAK-9 4기를 순삭하는 저력을 보여주기까지 했으니 제트기들은 별로 쓸모가 없었지그려..쩝
- 머스탱에 관한 교육을 받고있는 10인의 파일럿들
- 오른편에 머스텡 정비교육을 위해 건너갔던 한국인 정비사의 모습
제 35 전폭전대 휘하에 제 6146 군사고문단이, 한국공군 파일럿들의 훈련과 양성을위해 창설되었고, 이들이 이끌 한국 공군 부대는
작전명을 따라 Bout one squadron 이라 명명되었어, 목사 출신 파일럿이자, 1944년부터 2차세계대전에 참전 P-47 그리고 머스텡 조종 경험이 있던
짬밥 쩌는대다가 성격도 존나게 좋아서 상관으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갖추었던 딘 헤스 소령이 지휘관 자리에 올랐지.
위에도 멕아더가 의도했다는걸 언급 했듯이, 헤스 소령은 이 작전이 홍보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것, 그리고 본국에서도 딱 그정도만 바라고 있다는걸
알게 됨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열정을 불태우셨지, 건국기보다 두배이상의 출력을 가진 고성능의 머스텡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할수있는 시간은 단 1주일
그마저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서 실제 비행교육은 몇일정도밖에 안돼는 상황이였어
서울이 개전 3일만에 함락되고 너무가 긴박하게 돌아간 전장 상황 때문이였지.
국군의 방어선은 전차면 보였다 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후퇴하기 바뻣고, 7월 1일에는 오산지역을 방어하던 천조국 지상군 선발대마저 T-34 한태
민주화 당하자, 천조국 공군 사령부는 바우트 원 부대가 더이상 스시국에서 훈련에만 전념할때가 아니란걸 깨닿고 전선에 투입시키라는 명령을 내려
이때 우리 파일럿들은 겨우 2~3일간의 기종 전환 비행훈련을 마친 뒤였어.
하지만 기본적인 홍보를 위한 구색? 정도는 모두 갖추어져 있었어, 바로 UN군의 오인사격 방지를 위해 새롭게 디자인된 한국공군 국적마크를 단
F-51D 머스탱 10기 였지, 새로운 디자인이라고 해봤자, 천조국의 마크에서 별을 지우고 태극마크를 그려넣은게 전부였지만, 이것만으로도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조차 잘 몰랐던 대부분의 천조국 병사들에겐 자국과 비슷한 마크를 아군이라 인식할수 있었기에 생각보다 효과적이였다 해
뭐 그래도 어느때 어디서나 병신들은 있기에 UN군 육군이 한국 공군기에 발포한 사례가 많다고 하내
-옷갈아입은 F-51D
그리고 이 기체들중 유일하게 후에 노즈아트가 그려진 기체
바로 18번기였던 딘 헤스 소령의 전용기에 그려졌던 신념(信念)의 조인(鳥人) (by faith I fly)
후에 알려지는 일화에 따르면 대구 비행장을 급히 방문하셧던 이승만 대통령이 헤스소령의 믿음을 가지고 하늘을 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사의 의미로 직접 번역해서 구상한뒤 정비사들에게 도색하라 명령했다는 그당시 정비가들의 증언으로 전해진다 해
-한국공군기중 유일하게 노즈아트가 허용되었던 18번기
아무튼 그당시 전선 상황상 가정 전장에 빠르게 투입될수 있도록 가까우면서도 머스텡을 유지 보수할수 있던 가능성이 있는 비행장은
대구 비행장 (K-2) 뿐이였어, 근대 그마져도 포장도 없었고 비오면 진흙탕에 가건물 2체가 유일한 기지 시설이였지ㅋㅋ
천막과 급조 목조 가건물을 이용해야할 판국이여지만 더이상 그런거 따질 여유가 없었기에 6월 30일부터 C-47 수송기를 이용 병력 이동이 시작되었고
부품과 장비 탄약 등들도 차차 수송되었어, 그리고 마침내 7월 2일
하루라도 조국을 위하서 싸우고 싶어했던 한국 조종사들은 헤스 소령을 따라 스시국을 출발, 머스탱 10기를 가지고 대구 비행장으로 향해...
- 머스텡 탑승중인 딘 헤스 소령, 존나 잘생김 ㅇㅇ
- 다음화 예고짤 조국을 위하여
세줄요약
1. 손으로 폭탄떨구다 죽다살아나거나, 대공포격에 민주화 당하기 일수
2. 천조국 개입, 북괴공군 민주화, 하지만 육군은 방도 없음
3. 바우트 원 프로젝트 개시! 헤스 존나 잘생김
PS. 어떤 게이가 소개해준 한국전당시 공군의 활약상을 그린 바우트 원 이라는 웹툰이야 꼭봐라 두번봐라
http://bbs.cartoon.media.daum.net/gaia/do/long/list?bbsId=c_debut&sortKey=depth&searchKey=subjectNcontent&searchValue=%EB%B0%94%EC%9A%B0%ED%8A%B8%EC%9B%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