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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게이들아, 삼일밖에 안됐지만, 2014년은 잘 보내고 있노?


두 번 연속 너무 딱딱한 소재로 글을 썼더니 내 생활도 덩달아 무미건조해지는 것 같아 오늘은 조금 발랄하고 가벼운 주제로 글을 싸질러볼까 한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ㅆㅅㅌㅊ 짱개녀, 문성공주(Princess Wencheng) 다.



(참고 - [여인들의 중국사] 왕번강 저, 구서인 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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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 태종의 눈에 띄어 '공주'로 책봉되다.



문성공주 이설안(李雪雁) 은 당 태종의 사촌인 강하왕 이도종(李道宗, 리다오종) 의 딸로 어릴 적 이름은 '옌' 이었다고 해.


부친이 입궐할 일이 생겨 같이 따라들어갔다가 그 총명함과 어여쁜 외모가 당 태종의 눈에 띄어 곧바로 '문성공주(文成公主)'로 책봉되었고 궁궐에서 생활하게 돼.


당시엔 왕족이 공주가 되는 일이 흔했는데, 이는 황제의 친딸을 오랑캐에게 함부로 줄 수가 없는 처지여서 종친의 딸을 공주로 둔갑시켜 강성한 유목민족과의 화친을 도모하던 외교정책이 있었기 때문이야.


강하왕 이도종의 입장에서는 딸이 공주로 들어갔으니 감사한 일이겠지만, 이는 곧 딸과 영영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시작이었어.


아무튼 우연한 기회로 궁중에 들어간 문성공주는 교육을 잘 받고 곱게 커서,


16살이 되었을 때에는 '많은 책을 읽어 대의에 매우 밝았으며 심성이 착하고 총명하며 재주가 뛰어났다. 또 천문과 지리도 잘 알았으며, 수많은 불경을 깊이 연구하고 복서의 학문에도 정통했다. 더욱이 그녀의 외모는 단아하면서도 미려했고 풍만한 몸매에 희고 깨끗한 피부를 지녀 천상의 선녀와도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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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쪽의 나라 토번과 토번군주 '송첸캄포'



토번 제국은 티베트의 옛 이름인데, 여기엔 '야룽 왕조'가 있었어. 32대 찬보(국왕)이었던 '남리송첸'이 귀족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중앙집권, 왕권강화를 이루려다 연회에서 독주를 마셔 암살당한 후 33대 찬보로 즉위한 인물은 당시 13살이었던 '송첸캄포'(티베트어: Songtsän Gampo name.svg중국어: 松赞干布)


'송첸캄포'는 토번제국 뿐만 아니라 전 티베트 역사를 통틀어 으뜸가는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그는 불교를 융성하게 발달시켰고 토번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실질적인 토번제국의 창시자이자 티베트 역사의 시조이기도 하지. 티베트인들은 당시 송첸캄포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생각했어.

(관세음보살은 티베트 민족의 창시자이자 수호자로 여겨져서, 티베트 역사 속 많은 왕과 성인들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즉위 당시에는 13살 짜리 꼬마애가 뭐 어쩌겠어? 제일 중요한 과제는 지방분권화된 토번을 왕을 중심으로 한 강력크한 중앙집권국가로 바꾸는 일이었지.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중앙집권국가를 이루려면 제일 먼제 해야 하는 일이 뭘까? 바로 수도를 옮기는 일이야.


본래 야룽왕조의 수도는 야룽계곡(윰프라캉, 칭파) 일대였는데 이는 귀족세력의 근거지이기도 했어. 송첸캄포는 이를 야루장포 인근의 '라싸'로 옮겼어.(6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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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곳이 바로 티베트 자치구 안의 라싸 시. 지금도 티베트 자치구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이다.)


젊은 찬보를 도와서 토번제국의 개혁을 주도한 인물은 '가르동첸'(Gar Tontsen)이야. 조선왕조의 정도전 같은 인물이랄까? 명문귀족 출신인 가르동첸은 문무를 겸비했고 정치적인 능력까지 갖추었지. 그는 송첸캄포를 도와 토번제국의 체제, 법전을 완성하고 여러 귀족 부족을 통합하는 데에 역량을 발휘해.


이 시기에 나온 또 한명의 걸출한 인물이 '톤미 삼보타'(Thonmi Sambhota). 그때까지도 토번에는 문자라는 게 없었는데 가르동첸은 톤미 삼보타를 7년 동안 인도유학을 보내서 문자체계를 익히도록 했어. 이에 그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와 샹숭 지역 승려들이 만든 문자를 참조해 티베트 문자를 창제하게 돼. 이때부터 티베트인들은 그들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고 불경도 번역할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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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동첸과 티베트 문자. 가르동첸은 티베트 문자가 만들어지는 데에 일조하긴 했으나 죽을 때까지 이 문자들을 깨우치진 못했다고 하네.)



당시 티베트 역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나라의 역사서인 <구당서>와 <신당서>를 살펴보는 길밖에 없는데, <신당서>에 따르면 "가르동첸은 문자를 알지 못하나, 천성이 총명하고 굳세며 병사를 쓰는 법에 절도가 있어 토번은 그에게 의지했고 마침내 강국이 되었다." 라고 해.


가장 골칫덩이였던 두 귀족 부족, '샹숭'과 '숨파'의 반란을 제압한 후, 송첸캄포는 왕조의 내부를 결속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도 토번제국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어. 당시 중국에는 당나라가 있었고 황제는 바로 중국 역사에서 명군으로 손꼽히는 당 태종,'이세민'이었지. 송첸캄포는 가르동첸과 당나라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고 가르동첸은 당나라 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을 것을 권유해.


오랑캐 군주들에게 중화왕조와 혼인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군주의 권위를 높이면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기회였지. 공주가 시집올 때 지참금 명목으로 수많은 선진 물품을 들여왔거든. 이는 당이 주변국가와의 평화를 위해 치르는 비용으로 인식되었지.('가짜평화'가 최근에 나온 개념이 아니다.)


송첸캄포는 이에 634년, 즉위 1년 만에 당나라로 사절단을 보내어 국혼을 하고자 한다는 의향을 전했지만 거절당해. 안 그래도 당나라는 얼마 전에 '돌궐'에는 형양공주를, '토욕혼'에는 홍화공주(<-- 마지막에 잠깐 다시 나온다.) 를 시집보냈는데.. 또 다시 오랑캐에게 공주를 잃기는 싫었던 거지. 토번이 그때까지 듣보잡 국가이기도 했고..(이 때 보낸 사절단이 토번제국 역사상 중국으로 처음 보낸 사절단이야.)


사절단은 거절당하자 본국의 군주로부터 질책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당나라 천자는 우리에게 공주를 시집보내려고 하는데, 마침 토욕혼의 왕도 혼인을 청하였기 때문에 우리와의 혼사를 늦추고 있습니다." 


라고 구라를 쳐.


대노한 송첸캄포는 638년 작은 충돌을 빌미로 토욕혼을 공격했고 당나라에 글을 보내 위협해. "만약 공주를 시집보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직접 병사를 거느리고 당나라를 정벌, 천자를 죽인 다음 공주를 빼앗아 오겠노라."  실제로 그는 25만 병사를 이끌고 토욕혼을 쳐부순 후 쓰촨성까지 진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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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 내놓으라고 군대 끌고가서 떼쓰는 송첸캄포. 뒤에 조그맣게 찬수 성님이 보인다.)


당 태종은 어이없어하며 병부상서 후군집 을 보내 토번의 군사를 물리치지만 이를 계기로 토번의 국력을 무시할 수 없음을 깨달아. 송첸캄포도 자신이 무리한 시도를 했단 걸 알고 640년 황금 5천냥, 100여 가지의 보물을 가르동첸 편에 보내 당과의 화친을 요청해. 하지만 거기서 또 한번 자신을 대신해 구혼하게 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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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화가 염립본 이 그린 '태종보련도'. 오른쪽 앉아있는 이가 당 태종, 왼쪽 3명 중 가운데에서 앙망하는 이가 바로 가르동첸이다.)


당은 그 때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 수도인 장안은 각국에서 찾아온 사자들, 자기네 왕의 구혼을 대신하러 온 신하들로 붐볐어. 태종은 이들을 솎아내기 위해 구혼하는 자들에게 6가지 어려운 난제를 냈어. 이를 육시혼사(六試婚使) 또는 육난혼사(六難婚使) 라고 하지. 정답을 다 맞추는 사신의 국왕에게 공주를 내주겠다고... 말하자면 6단계의 혼인관문인 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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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르동첸의 지혜와 팔자에도 없는 서쪽 원정길



그렇다면 그 내용은? 


1. 태종은 진주구슬과 가느다란 명주실 꾸러미를 내놓으며 "이 명주실로 진주를 꿰는 자의 국왕에게 공주를 시집보내겠소." 근데 그 진주는 안에 꼬불꼬불한 구멍이 나있는 '구곡진주(九曲珍珠)' 였지. 여러 사신들이 앞다투어 실을 꿰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어. 가르동첸은 개미를 잡아다 허리에 명주실을 동여맨 한쪽 구멍 앞에 개미를 놓고 반대쪽 구멍에 꿀을 바른 다음, 진주 구멍 속으로 들여보냈어. 잠시 후 개미가 다른 입구로 나오자 개미허리에 매어있던 명주실도 따라나왔어.


2. 그러자 태종은 두번째 문제를 내. 어미말 1백필과 망아지 1백필을 몰고 오게 하더니 어느 망아지가 어느 말의 새끼인지를 알아맞춰보라는 거야. 역시나 다른 사신들이 고개를 저으며 난감해할 때 가르동첸은 망아지들을 하루 동안 가둬두고 물없이 풀만 먹게 했어. 하루가 지나서 망아지들을 풀어주자 목이 마른 망아지들은 각자 어미 말을 찾아가 허겁지겁 젖을 빨았지.


3. 이번엔 사신의 일행들로 하여금 하루 동안 100단의 술을 마시고 100마리 양을 먹어 그 양들의 가죽을 가져오라고 했어. 다른 나라 사신들이 시도해 보았지만 술과 고기를 먹는 것만으로 수행원들이 취해버려 도저히 양의 가죽을 제대로 벗길 수가 없었어. 가르동첸은 수행원들에게 아주 조금씩 술을 마시고 또 고기를 조그맣게 토막내어 먹으면서 가죽을 벗기게 했어. 이렇게 해서 하루 동안 요구한 것을 모두 마칠 수 있었어.


4. 태종은 소나무 재목 100개를 주고 어느 쪽이 가지 쪽, 어느 쪽이 뿌리 쪽인지 알아맞혀보라고 했어. 가르동첸은 소나무 재목들을 모두 강가로 가지고 가 나무들을 강물 위로 던졌어. 나무의 뿌리 쪽은 무겁고 가지 쪽은 가벼운 걸 생각한 거였지. 결국 뿌리 쪽은 가라앉고 가지 쪽은 떠서 이번에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어.


5. 다음 문제는 한밤중에 장안의 대궐 한가운데서 길을 잃지 않고 자기 숙소로 돌아가는 시험이었어. 가르동첸은 처음 장안에 왔을 때 대궐의 길이 복잡했기 때문에 길을 잃지 않으려고 길목마다 표시를 해두었어서 이것도 성공.


6. 마지막으로 당 태종은 300명의 화려하게 치장한 젊은 여인들의 무리 중에 문성공주를 찾아내보라고 했어. 가르동첸은 예전에 문성공주를 섬겼던 중국인 노파에게서 문성공주의 용모 특징을 미리 알아두었어. 결국 목에 멍이 있는 여자를 문성공주로 알아보고 지명하여 마침내 모든 시험에 통과할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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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전 인물이 일게이들보다 낫노..)


그러자 태종은 가르동첸의 지혜로움에 탄복, 그를 우위대장군으로 삼고 자신의 누이인 장공주의 외손녀, 단(段)씨를 아내로 주어 장안에 남게 하려했어. 하지만 그는 "신은 고국에 부모님이 맺어주신 아내가 있으며 우리 임금이 공주와 결혼하지 않았는데 어찌 먼저 결혼할 수 있겠습니까." 라며 완곡히 거절해.(캬~)



한편, 문성공주는 당 태종이 자신을 듣보잡 토번국의 왕에게 시집보내기로 했다는 걸 알고는 마음이 착잡해져. 두 민족이 대대로 우호관계를 맺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친지도 없고 풍속도 다른 먼 이역 땅으로 떠나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떠나기에 앞서 공주는 가르동첸에게 토번의 풍토와 백성에 대해 자세히 물었고 그녀는 가르동첸의 대답 속에 그가 얼마나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는 지를 느낄 수 있었어.


당 태종은 공주를 위해 많은 혼수품, 각종 패물 및 가구, 고대 역사서, 문학, 기술서적, 의약품, 누에알 등과 25명의 시녀, 악대, 많은 장인들을 딸려 보냈어. 서남쪽의 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토번국을 경제, 문화적으로 융화시키려고 한 거야.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문성공주는 인도 국왕이 중국에 선물로 주었던 석가모니 불상도 함께 챙겨갔어.


태종은 예부상서였던 강하왕 이도종에게 공주를 호위하게 했는데, 앞에서 나왔다시피 그는 공주의 친아버지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친아버지로 하여금 배웅하게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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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타고 산 넘어 서쪽으로 가는 공주찡..ㅠㅜ 포탈라궁 백궁 벽화 중 일부)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토번국의 라싸까지 가는 것은 약 3,000 km에 이르는 멀고도 먼 여정이었어. 가는 데에만 꼬박 1개월이 걸렸지. 또한 큰 강을 건너야 했는데 강의 물살이 약해지는 시기가 겨울이었으므로 공주 일행은 한 겨울에 길을 떠나야 했지. 당 태종은 문성공주에게 고향이 생각나면 보라며 황금으로 일월보경(日月寶鏡)이란 거울을 만들어줬어. 아니나다를까, 문성공주는 청장고원의 한 산자락을 지나며 고향생각을 하게 돼. 하지만 곧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일월보경을 꺼내 바닥에 떨어뜨려 산산조각을 내. 그 때부터 그 산의 이름은 '일월산(日月山)'.


일월산을 지나면 강이 하나 있는데, 문성공주는 이 강을 건너자마자 가마를 버리고 말을 타서 초원으로 들어갔다.

공주는 몸이 점점 집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


"천하의 강물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가건만, 나만 홀로 서쪽으로 가는구나."


전설에 의하면 이 강물은 원래 동쪽으로 흘렀는데 문성공주의 탄식을 듣자마자 강물이 서쪽으로 흐르기 시작..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도류하(倒流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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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닝겐의 탄식을 듣고 물줄기의 방향을 바꿔버렸던 도류하..지금은 서쪽의 청해호(靑海湖)로 흘러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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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송첸캄포와 문성공주의 첫 만남, 그리고..



당시 송첸캄포는 25살, 문성공주는 17살이었어.(사실 송첸캄포의 나이는 매우 부정확하다. 역사책마다 각기 다르게 나와 있으니깐..)


근데 송첸캄포는 당시에 이미 왕비가 있었어. 네팔왕국에서 온 '브리쿠티 네비'가 첫번째 왕비였지.

그러니까 문성공주는 오랑캐 왕의 '제2 황후'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도 멀리까지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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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송첸캄포, 왼쪽은 '브리쿠티 네비', 오른쪽 '문성공주'.)



하지만 송첸캄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두번째 왕비를 위해 홍산(紅山) 위에 화려한 궁궐을 지어.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티베트의 '포탈라 궁'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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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17세기에 두 번의 증축공사를 거쳐 현재까지 남아있는 포탈라 궁(布達拉宮/포달랍 궁). 처음 지어질 당시엔 바깥쪽 흰 부분인 '백궁' 없이 가운데의 '홍궁' 만 있었다. 오른쪽은 당시 주변에 큰 사원들이 있던 궁궐 그림. 사원들은 티베트가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몇몇을 빼고는 다 헐렸어. '포탈라'라는 이름은 '관음보살이 산다'는 뜻의 산스크리트 어, '포탈라카(普陀珞珈)'에서 유래했다고.)


송첸캄포는 강하왕 이도중에게 사위로써의 예를 표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 문성공주를 맞이하러 나올 때 당의 사위임을 표하기 위해 당나라 옷을 입었는데 이로써 한족의 옷을 입은 최초의 토번 사람이 되었어. 포탈라 궁은 그때까지 미완성이었지만 문성공주 일행과 같이 온 당나라의 기술자들에 힘입어 무사히 완성하게 돼.

(문성공주는 토번 백성들이 궁전을 만드느라 고생하는 것을 보고 몹시 괴로워하였고 이를 본 송첸캄포는 한동안 공사를 중지하고 나중에 다시 진행하여 수년에 뒤에야 완성했다고 해.)



송첸캄포는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한 티베트 여자들과는 달리 뽀얀 얼굴의 공주를 보고 매우 흡족해했나봐. 문성공주도 검고 거칠기는 하지만, 큰 키에 두 눈 사이의 기운이 뛰어난 송첸캄포를 보고 기뻐하며 남편을 잘 만났다고 안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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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런지..)


'..장력(藏曆: 티벳 월력) 4월 15일 송첸캄포는 문성공주를 데리고 북문을 통해서 라싸성으로 들어갔다. 공주의 풍속을 존중한 송첸캄포는 특별히 당왕조에서 하사한 화려한 예복을 입고 티베트인들에게 홍갈색 흙을 얼굴에 칠하는 풍습을 금지시켰다. 그리고는 새로히 건축한 화려한 왕궁에서 송첸캄포와 문성공주는 혼례를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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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처음 보는 외국인 왕비, 모든 것을 바꿔놓다.



처음 티베트에 들어왔을 때 문성공주가 가장 괴이하게 생각했던 건 티베트인들이 얼굴에 붉은 흙을 칠하고 다니는 거였어.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관습에 의하면 얼굴에 붉은 흙을 바름으로써 사악한 마귀를 쫓아낸다고 했대. 하지만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고 보기에도 이상하여 문성공주는 이를 바꿀 것을 송첸캄포에게 완곡하게 건의해. 이에 송첸캄포는 백성들에게 그 습관을 없앨 것을 지시하지.


문성공주를 따라 티베트로 들어간 당나라 장인들의 도움으로, 티베트인들은 농기구 제조,금속,방직,건축,도자기제조,방아,술제조,제지 등 각양각색의 기술을 신속히 습득할 수 있었어. 


문성공주는 티베트에 급류하천이 많은 것을 보고 강가에 물레방아를 설치하도록 해서 수력으로 방아를 찧는 걸 가르쳐줬어. 또한 시녀와 함께 티베트 여인들에게 방직과 자수 기술을 전수했다. 오늘날 티베트 여인들이 짜는 푸루(야크털로 짜는 검은색 모포)와 융단 등의 기술은 모두 문성공주로부터 전해진 거야. 또한 자신이 잘 아는, 천문을 보는 법과 역법도 가르쳐 주지.(캬~ 누구처럼 못하는 게 없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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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에게 족자를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하는 문성공주, 귀엽노? 발밑에는 개찡도 보인다. 족자의 그림이 뭔지는 밑에서 다시 설명해줄게.)


하지만 문성공주가 전해준 것 중에서 제일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불교' 였어.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문성공주를 따라 송첸캄포는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라싸에 '대소사' 라는 큰 절을 짓게 해. 대소사 입구에는 문성공주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버드나무를 심었고 절 안에는 문성공주가 챙겨온 석가모니 불상을 두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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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의 대소사와 절 안의 석가모니 상. 절 입구에 버드나무 보이노?)



참고로 이 석가모니 상은 석가모니의 12살 때의 몸을 본뜬 불상에 금을 칠한 것이며 석가모니가 친히 개광(: 불상을 만든 후 처음으로 공양하는 일)한 것이라고 해. 석가모니는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각기 다른 나이의 불상 3존을 만들었는데, 그 중 8살 때의 불상은 중국에서 파손되었고 25세 때의 불상은 인도에서 없어졌으니깐 이 불상이야말로 현존하는 유일한 석가모니 불상이지. 때문에 신도들은 라싸의 대소사에서 단순히 불상에 참배하는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의 전신(前身)을 향해 참배하는 것이라고 여겨져.



대소사를 지을 때 전해지는 일화가 하나 있어. 공사 도중 절의 담장이 계속 무너져 버려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었다고 해. 이를 문성공주가 오행을 운용하여 천문과 지리를 관찰해 보니 '티베트 라싸의 지형은 나찰마녀(羅刹魔女)가 누워있는 형상이며 마녀의 심장 부위에 절을 지어 그것을 눌러야만 절이 온전하게 지어질 수 있다'고 했어. 그 해당하는 위치를 문성공주가 계산해보니 홍산의 동쪽 1 km 지점에 있던 호수였지. 그러니까 이를 메워야만 그 위에 절을 지을 수 있잖아? (근데 웃긴 건 티베트 신화에 등장하는 티베트인의 어머니는 나찰녀이다. 아버지는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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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위에 나온 족자의 그림은 <마녀앙와도>(魔女仰臥圖). 현재 티베트 라싸 '나포림카'에 전시되어있다. 명치 부위에 '대소사'가 보인다. 이후로도 나찰마녀의 몸 중요부위 곳곳에 사원을 지었다고..)


공주는 다시 오행의 상생상극 이론에 근거, 반드시 '흰 산양'이 흙을 지고 호수를 메우게 해야 한다고 건의했어. 이에 따라 수많은 흰 산양들이 잔등에 흙을 지고 호수를 메워 육지로 만들었고 이 위에 대소사가 드디어 무사히 지어졌어. 대소사 개광일에는 송첸캄포가 양들의 공을 생각해서 금박을 칠한 양 모형을 대소사에 공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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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사의 황금지붕과 정문에 있는 양 모형. 백성들이 궁전 만드는 건 불쌍하고, 흰 양들이 호수 메우는 건 안 불쌍핸노..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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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부러울 것 없는 공주에서 한낱 변방의 과부로



문명도 발달시키고 살림도 잘하고 궁전도 잘 만들고 절도 잘짓고..못하는 게 없던 문성공주에게도 큰 시련이 찾아와.


바로 그의 지아비, '송첸캄포'가 결혼한 지 9년만에 34세의 나이로 병사하고 만거야.(나이는 앞에도 말했듯 정확하지 않으나 결혼 후 9년만에 죽은 건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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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칼 드로고' 하고 최후도 똑같당께..물론 드로고의 직접 사인은 '질식사'염. 왼쪽은 포탈라 궁 내부에 모셔진 송첸캄포 조각상.)


송첸캄포는 재위기간 동안 크나큰 업적을 남겼어. 혼란스러운 토번제국을 수습하고 중앙집권에 성공했으며 청해호, 사천지역, 운남지역까지 토번의 영향력을 확장하였고 당을 위협하기도 했지. 문성공주와의 혼인외교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 높였고 당 제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기존 티베트 문화를 쇄신, 발전시켰어. 그가 재임하던 시기에 티베트 문자와 티베트 불교가 생겼지.


지금까지도 그는 티베트 건국의 아버지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꼽혀.


그렇다면 과부가 된 문성공주는? 놀랍게도 당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티베트에 눌러앉아.



송첸캄포의 뒤를 이어서는 제1 왕비가 낳은 아들인 '궁리궁첸'을 뛰어넘고 그의 아들, '망송망첸'이 찬보(왕)에 즉위해.(신하들 간 권력암투가 있었다고..)


이후 문성공주는 30년간 토번제국의 내정을 담당하며 지냈는데, 토번의 재상이었던 가르동첸이 죽고 그 아들이 재상에 오르면서 토번제국은 당과의 사이가 급격히 안 좋아져. 먼저 '토번'과 '토욕혼'의 사이가 나빠지자 토번은 당에게 시비를 가려달라고 했는데 당이 이를 질질 끌자 토번은 기다리지 못하고 군대를 일으켜 토욕혼을 궤멸시키고 말아. 당은 이를 당 조정을 무시한 행위라고 여겨 설인귀 를 대독으로 임명하고 토번제국 토벌을 명하게 되지.(더군다나 토욕혼 왕의 아내는 당 태종 이세민의 친딸인 홍화공주 야. <-- 위에서 잠깐 언급했다.)


근데 토번에게 좆털림요.(자세한 것은 http://songij21.egloos.com/viewer/1374086)



...문성공주는 비록 정략결혼으로 인한 화친의 효과는 없어졌으나 티베트인들의 존경과 흠모를 받으며 국모 대우를 받다가 680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토번제국은 문성공주를 위해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그녀를 송첸캄포의 묘에 합장시켰다고 해. 당나라에서도 사신을 보내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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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인들은 오늘날 두 개의 기념일로 그녀를 기리고 있는데, 하나는 1) 문성공주가 라싸에 도착한 날이고 다른 하나는 2) 문성공주의 탄생일이야.



아직도 티베트에는 문성공주에 관한 희극, 아름다운 민간전설 등이 많고 이는 그녀가 한족과 티베트족 두 민족에 있어 우호의 상징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티베트에 중국의 문화를 무분별하게 들여왔다기보다는, 송첸캄포와 상의해서 중국의 문물을 티베트의 필요에 맞도록 선택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오늘날 문성공주는 티베트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공헌을 했다고 여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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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포탈라궁 내부에 모셔진 문성공주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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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여기까지다. 잘 읽었냐 게이들아



오늘날 문성공주의 일화나 전설은 중국, 티베트 뿐 아니라 동남아 지역에서도 인기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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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뮤지컬 '프린세스 웬쳉'. 이거 우리나라에서 작년 11월에 공연했다는데, 부산에 사는 게이 중에 본 사람 있노?)

http://news1.kr/articles/1367849






중국은 특히 문성공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열을 올리는데, 이걸 보면 자국의 티베트 지배를 합리화하려는 속내를 엿볼 수 있지.


중국 방송국에서도 이를 소재로 문성공주 드라마를 만들고, 문성공주의 이동경로를 따라서는 곳곳에 동상이나 기념 유적을 만들어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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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방영되었던 드라마 <문성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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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지어진 문성공주 동상. 떼놈들답게 하나같이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어찌됐건 문성공주 같은 높은 신분의 젊은 여인이 기구한 운명으로 낯선 땅에 가는 모험을 겪는다는 건 참 매력적인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어. 또한 한 국가, 한 민족의 문화적인 토대를 마련했다는 건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말야.


그녀가 티베트에 심은 불교는 결국 티베트의 종교,정치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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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1년에 태어난 첫번째 달라이 라마, 'Gedun Drupa' 와 현재의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



지네들 말에 따르면 환생에 환생을 거듭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지.




현재 티베트 승려들과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티베트의 분리독립운동이 격렬히 일어나는 걸 보고 조금 비약해서 말하자면..


문성공주의, 자신을 버린 조국에 대한 복수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런지.. 1300년 후의 복수, ㅍㅌ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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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자살이 2009년 이후 무려 124명이다. 2013년 한 해에만 25명)

http://www.ilovetibet.kr/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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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송첸캄포가 자신의 왕비를 위해 지은, 포탈라 궁 다시 한번 보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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