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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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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lbe.com/4899995963 진짜 민주주의를 지킨 64년 전 겨울을 기억하십니까?
1950년 6월 29일
파주 어느 민가...
4명의 중학생들이 모여 태극기에 혈서로 "대한민국 지하 공작대" 라 적고 반공투쟁에 목숨을 다할 것을 맹세했다.
반가워 일게이들아
난 우리가 모르는 한국전쟁 속의 잊혀진 영웅들과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찾는 일게이야
오늘은
위태로운 조국을 위해 총을 든 민간인들이 조직한 "태극단"에 대해서 알아볼꺼야
보통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태극단이란 이름을 들으면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단체를 떠올릴꺼야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에 조국을 위해 싸운 반공유격대 "태극단"이랑은 다른 조직이야
그럼 그들의 이야기를 써볼께
때는 1950년 6월 25일
북괴군의 기습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났어
6월 27일 파주 금촌에 살고있던 경성상공중학교 4학년 이순창씨는 동생 이순호씨와 함께
금촌역 부근에서 국군의 M1개런드 소총들을 습득하게 돼
6월 29일 국군이 한강 이남에서 방어전을 펼칠때쯤
이순창, 이순호는 뜻을 모은 2명 황상균, 김정규와 함께
버려진 1사단 사령부에 들어가
수류탄과 탄약들을 습득하고 이를 집에 숨겨
그리고 그들은
태극기에 "대한민국 지하 공작대" 라는 혈서를 쓰고 유격대를 결성해
7월 1일 고양군(지금은 고양시) 에서는 중학생,교사,낙오군인들이 유격대를 결성해
7월 5일 이장복을 중심으로 고양군 일산리에서 학생,공무원 등이 "태극단"을 결성해
하나하나 따로 활동하고 총도 안쏴본 이들은 세력도 미약했지
(구월산유격대 예하 동키부대)
8월 이들은 이장복을 단장으로 "태극단" 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유격대로 재편되어 활동을 시작해
구성은 1개 본단, 1개 별동대,12개 지단(수색, 능곡, 행주, 백마, 송포, 산남, 교하, 청석, 금촌, 광탄, 문산, 철도)
서부전선 군필자들은 반가운 지역이름이 많이 보일꺼야
부대원들은 학생, 교사, 경찰, 낙오군인 그밖의 공무원과 농민, 상인 등 다양한 직업군이 있었어
하지만 태극단에는 대다수를 차지하던건 학생들이었고
(태극단을 반공학생유격대로 본다고 하더라)
부대원 수는 240여명까지 늘어났어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사진은 구월산유격대 여성대원들)
신규정씨 등 9명의 여자유격대원들이 존재했었어
(어디까지나 기록된 대원 숫자이고 더 있을꺼라고 하더라)
마찬가지로 신규정(숙명여대)등을 비롯해 서울여상, 동명여중,성신여중 등등
여학생들이었고
이 아가다(김병찬소령 부인), 김병숙(김병찬소령 여동생) 같은 군인가족도 있었어
(이 아가다씨는 이름을 보니 아마도 천주교인이었던거 같다)
그들은 가사를 전담하는 일도 했지만 몇몇은 실제 남자들과 함께 유격임무를 수행했어
나이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그들은 오직 자유대한을 위해 싸웠던거지
이들은 태극문양이 찍힌 머리띠를 썼고
태극단이라는 완장을 차고 다녔어
그들은
7월말 북괴 의용군으로 징병당한 30여명의 민간인을 구출을 시작으로
활동을 시작해
북괴군 통신선을 끊어 북괴군 통신망을 방해하고
공산주의자들을 처단하고
관공서에서 총격전을 하고
유엔군이 북진하자 북괴 패잔병 소탕작전에도 참가해
그들의 대표적인 작전은 경의선을 철로 끊어 수송을 방해하는거였고
행주나루에서 북괴의식량수송선을 침몰시키기도 했어
이들은 물리적인 작전뿐만 아니라
삐라들을 제작해서 북괴점령 지역에 뿌리는 심리전도 수행했는데
유엔군이 참전했다.
곧 북진할것이다.
이런 내용들로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지
그리고 "적들이 점령하고 있더라도 적에게 동조하거나 적을 위해 일하고 있다면 바로 나와 도망쳐라 이 포고를 준수하지 않으면 가족과 함께 멸살을 면하지 못할것이다" 라는 경고성 삐라들도 많이 뿌렸어
이게 경고가 아닌 현실로 들어난 사건이 있어
국군이 북진을 하면서
다시 수복되자 경찰과 태극단이 고양시에 있는 금정굴에서 부역혐의자와 가족들 153명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이 사건은 개인적으로 안타까워
학살당한 사람들 중에는 공산주의자들도 있었겠지만 무고한 민간인들도 있었거든...
다시 본론으로 가서
9월19일
철도 교환원 유춘화씨가 태극단에 첩보를 보내
(유춘화씨도 여성 태극단원)
내용은
"피랍인사들을 태운 열차가 수색역을 지나 북쪽으로 향한다" 라는 내용이야
태극단은 경의선을 끊고 습격준비를 했어
그런데 목표열차가 아닌
북괴군 탄약을 만재한 12량의 열차가 오고 있었고
열차는 곧 끊긴 경의선에 탈선하고 말아
태극단은 유엔군에 첩보를 보내
유엔공군이 열차를 폭격하는 전과도 올렸어
1950년 10월 말에
태극단은 국군에 무기를 자진반납하고 해체하며 3개월의 짧은 활동을 마쳤어
짧으면서도 굵직했던 그들...
항상 좋았던것만은 아니야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유격대원 45명이 부역자들의 밀고로 북괴군에 잡혀 학살당하는 사건이 있었지
어찌보면 부역자들의 밀고로 전우를 잃어버린 태극단 입장에서는 분노할만하고
그게 금정굴 학살로 나온거겠지..
최근기사인데
http://www.gyinews.co.kr/ArticleView.asp?intNum=20030&ASection=001001
고양시의회에서 태극단유공자 지원조례랑 금정굴희생자 지원조례 모두 계류됐다고 해
빨갱이를 왜 도와주냐? vs 살인마들을 왜 도와주냐?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앙금은 지속되고 있어
난 태극단이 어찌보면 지금 대한민국의 오래된 갈등을 보여주는 축소판인거 같아
사진 출처: http://korean.visitkorea.or.kr/kor/inut/inutdiyTravelLeaderList.kto?articleId=62517&func_name=view
고양시 일산구 덕이동에는 정부에서 지정한
제1호 반공유적지 "현충공원"이라고 있는데
여기에 학살당한 45명과 전사한 6명의 태극단원들이 잠들어 있어
(못찾은 시신들이 많다고 함)
시간있으면 한번쯤 가보는것도 좋을꺼 같아
일제강점기 시절 태극단과 한국전쟁 시절 태극단은
시기도 성격도 다르지만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바로
내 나라를 위해 일어났던 어린 학생들...
교복이 전투복이 되고
연필대신 총을 잡았던
모든 학도병들
감사합니다.
3줄요약
1. 학생들이 대다수인 태극단
2. 남녀구분 없이 내 나라를 위해 싸우다
3.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