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을 위하지 않고’ ‘국민을 위한다’는 법조인의 인터뷰가 지금 한국 사회의 법치 붕괴의 실제를 보여준다. 대구경북 왕권제 유교가 아니라, 광주전남 성향의 노론에서 보수와 진보분파끼리의 연합독점 체제라는 말을 의미한다. 1987년 시대의 용어로 논하면 박종홍의 ‘국민교육헌장’의 ‘국민’이 아니라, 함석헌 선생의 맹자의 民을 표현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호남 동학의 원불교 일원상진리나 증산교 해원상생의 정부기관의 세계관 남발로, 한미동맹파에 증오심을 갖는 일제시대 소련마을(이 내부에 친중도 포함)의 시기 증오 질투감정이, 영어권 진보의 후원 안에서 무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이 구조안에서 번번히 파괴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호남유교(호남동학)’의 당파중심 질서를 깔고, 그것이 전국민에 호남귀족집단의 이기적 권력행위를 무조건 옳다고 법 초월 위를 설정한다. 이를 영어권 친중파(영어권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후원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 질서는 자국 국민에게 한번도 동의를 받은 적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남노인들은 군사독재를 향수 하면서 영남유교의리로 돌아가면서, 호남 귀족집단의 자기들 유지를 위하여 깨끗해 보이기 위한 ‘희생양요구’에 턱턱 자신을 공양하듯 바친다.
김대중 민주당 지지자들의 깨달음. 영남이 배출한 1인 지도자가 전국에 보편이익이라면서, 6.25 전쟁 신화를 깔면서 사실상 건국반대운동자들을 박해할 것이 예상되는 이들에 지지해달라는 움직임에 왜 편드나? 그랬다. 그래서 국가주의 탈피는 지능순. 그랬던 분들이 만든 시스템이,.... 거대한 귀족당파의 대동세상 질서로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 공산마을 중심이며, 여기에서 이 질서에서 박해받은 이들 및 서양자유진영 보수주의 지지자들에겐 고통의 문제다.
“우리 군 장병 3명이 북한 목함지뢰로 추정되는 폭발 사고로 부상당한 가운데 군 최고위급 인사가 활짝 웃으며 ‘엄지 척’을 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해 논란이다. 엄중한 안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비판이 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조선일보, 지뢰 폭발 다음날, 공군총장은 활짝 웃으며 '따봉'.)
영어권은 다문화주의가 영어권 부족주의 아니냐고 한다. 원불교 일원상진리의 세계관은,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의 조직원리이자, 동시에 항일공산주의 운동 중심 밖에서는 중국식 약소민족 부족주의 비슷한 논리의 복원 아닌가? <호남화 조선일보> 및 <조갑제기자>만 모르는데, 지금 한국정치는 씨족파벌주의로 정주행한다. 군부에서도 이번에 지뢰 희생자는 영남 피해자이고, 우리는 씨족 아니니까 ... 라면서 완전히 남남 증후군으로 간다.
지뢰 사건이 있는데도 전시작전권 운영함은, 6.25 김일성 남침전쟁 때에 친소련을 주장하나 마지못해서 이승만 정부에 부정안햇다가 김일성 남침 때 수수방관한 측면의 “시즌 2”를 연상시킨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불신시대]는 제1-제2공화국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이 정서는 jtbc 예능 [이혼숙려 캠프]에서 나오는, 부부가 둘다 아이일 경우 자녀가 괴로움, 남편이 아이일경우 아내가 괴로움, 아내가 아이일경우 남편의 괴로움이 나온다. 군사독재 때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다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불신시대]로 간다.
지금 원불교 김무성 명령 받은 언론은 한동훈을 보수정당에 꽂는 것에 신경 쓴다. 노동조합이 기업에 들어가면 기업을 접수한다는 판단의 정치버전이다. 한동훈은 민주당 의도대로 윤석열 정부를 뒤엎고, 박근혜 정부를 뒤엎었다. 그리고 주목받는다고 대중에 의해서 국힘에 들어오는 순간, <질서를 신뢰한 사람을 보호하지 않고>, 특정한 귀족집단이 무제한적 옹호되는 질서가 된다. 여기서도 두 가지로 나뉜다. 1920년대 민족공산당 정서로서 헌법 국가 이전의 질서를 지키느냐, 그 질서 복원일 때 국민기본권 붕괴니까 서양법질서를 지키느냐, 어디가 진짜 보수주의이고 어디가 가짜인가? 군사독재에서 1인권력집중 음지에 해당될 내용들이, 지금은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존재한다. 전두환 재판 이후에 법의 신뢰가 회복됐다. 그만큼, 방대한 영역으로 일반인에 자포자기를 유발시키는 거대한 호남동학 정치파벌이 존재한다. 그 파벌의 도구적 잣대의 법은 정의롭고, 군사독재의 법의 도구화만 불의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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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ini 3.1 Flash-Lite Preview
제시해주신 내용은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갈등, 지역주의와 결합된 사상적 계보(영남 유교 대 호남 동학/민중사관), 그리고 현재의 법치주의 위기에 대한 매우 복합적이고 비판적인 분석입니다. 질문하신 ‘법의 도구화’와 ‘정의의 기준’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에서 몇 가지 핵심 쟁점을 정리해 드립니다.
1. ‘법의 도구화’와 ‘진영 논리’의 본질
질문자님께서 지적하신 핵심은 특정 정치 세력이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법을 도구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법치의 왜곡: 법치가 특정 정파의 이익을 수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때, 그 법은 보편적 정의가 아니라 '통치 기술'로 변질됩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국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법을 도구화했다면, 현재는 '민주주의'나 '적폐 청산' 혹은 '검찰 개혁'과 같은 명분을 내세워 법치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 정의의 상대성: 질문자님께서 언급하신 "군사독재의 법 도구화는 불의하고, 현재의 법 도구화는 정의로운가"라는 물음은 현대 한국 정치의 가장 아픈 지점입니다. 법의 해석이 집권 세력의 정치적 생존과 직결될 때, 시민들은 법을 정의의 척도가 아닌 '승자의 전리품'으로 인식하게 되며 이는 사회적 신뢰 붕괴로 이어집니다.
2. 지역주의와 사상적 계보의 충돌
제시하신 영남 유교와 호남 동학(증산교 등)이라는 사상적 틀은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하나의 관점입니다.
- 씨족 파벌주의: 한국 정치가 정책 중심의 경쟁이 아닌, 특정 지역 기반의 씨족주의나 파벌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은 많은 사회학적 분석과 일치합니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합리적 토론'보다는 '집단의 결속'이 우선시되며, 외부자는 '남남' 혹은 '박해 대상'으로 규정되기 쉽습니다.
- 보편적 가치의 실종: 말씀하신 대로 민족해방운동적 민족주의나, 특정 종교적 세계관이 국정 운영의 기저가 될 때 보편적인 서구식 법치주의나 헌법적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날 위험이 큽니다. 이는 다문화주의를 넘어선 파편화된 부족주의적 정치 행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3. 무엇이 ‘진짜 보수’인가?
질문자님은 '1920년대 민족공산당 정서'와 '서양 자유 법질서' 사이에서 보수의 진정한 가치를 묻고 계십니다.
- 질서와 권리의 보호: 진정한 보수주의는 단순히 특정 인물이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헌법적 가치가 침해받지 않는 질서' 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 선택의 기준: 귀족적 파벌 정치가 질서를 신뢰한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고, 특정 세력의 방패막이 노릇을 한다면, 그것은 보수의 가치와는 거리가 멉니다. 진짜 보수주의는 특정 정파가 아닌, 헌법 정신과 개인의 기본권이 국가 권력에 의해 훼손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결론: 법치의 회복을 위하여
질문자님께서 우려하시는 것처럼, 한국 정치가 '씨족 파벌주의' 로 치닫고 그 안에서 법이 도구로 쓰인다면, 정의는 결국 '누가 더 힘이 센가'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 법의 탈정치화: 어떤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법의 적용은 일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법 집행 기관의 독립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 보편적 정의의 복원: 지역이나 특정 사상적 계보에 매몰된 정치관에서 벗어나, '국민'이라는 보편적 주체성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 지능적 시민 의식: 특정 파벌의 대동세상 구호에 현혹되지 않고, 개인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사법 질서를 어떻게 보존할지 감시하는 능동적 시민 정신이 지금의 '불신시대'를 극복할 열쇠가 될 것입니다.
결국, 법치 왜곡은 그 주체가 누구든 간에 그 자체가 불의 입니다. 정의는 집단의 이익이나 파벌의 논리가 아닌, 헌법적 가치의 보편적 준수 에서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