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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올린 일베갔던 글들 몇개 사진이 꼬여서 모링한테 수정좀 부탁했더니 전부다 삭제해버렸다 ㅡ ㅡ...


건의함에 올렸더니 복구는 못해준다고 죄송하다 하더라..



정보글 써본게이들은 알겠지만 , 

글쓴거 많은애들이 읽어줘서일베 간것들이 작성글보기에 차곡차곡 쌓일때 그 뿌듯함이 뭔지 알거다. 


고생해서 글쓸때는 여러사람이 읽어줄때 젤 보람있잖아 



근데 글하나당 적어도 3~5 시간을 투자한 글들을 삭제해 버리면.. 글쓸 의욕이 나겠니들

내가 일베레벨먹자고 이짓하는것도 아니고..




일베간글 다시 올리는건 저런상황때문이니 정보글 많은사람들 읽게하자는 좋은생각으로 양해좀 바란다. 


날라간 글들 전부 재업하고 내용보충해서 일베 보낸뒤에 다음편(묘청편) 쓸 생각이다.


쩝  









내용보강해서 다시 올린다, 읽었던 사람도 다시한번봐바 ~ 더다듬었고 내용도 추가되었으니.




좀길어도 꼼꼼히 읽어봐들 아리송 했던것들이 많이 풀릴거야 .





[역사정보글]


 1. 고려가 황제국?

http://www.ilbe.com/1308166143

2. 천자국 축제 팔관회

http://www.ilbe.com/1309007959

3. 조공, 책봉 관계에 대한 고찰 

http://www.ilbe.com/109025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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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여진정벌. 눈부신 태평성대 그리고 먹구름

http://www.ilbe.com/1311302652

4-2. 여진정벌. 고려 대반격 여진을 정벌하다 (완결)

http://www.ilbe.com/1316308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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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난신 이자겸.황실인척으로 권력을 움켜쥐다

http://www.ilbe.com/1316447005

5-2. 난신 이자겸. 이자겸 난 -불타는 황궁-

http://www.ilbe.com/1321872168






{십팔자위왕설 [十八子爲王說] }







"십팔자위왕설" 이란 


십팔자十八子


즉 이(李)씨가 왕이된다는 뜻으로 중국 남북조 시기에 유행해 당(唐) 건국을 예언한 도참설이다.




이런류의 예언들은 정치 지도자 정통성과 당위성을 확보하기위한 노림수로 사용되었는데,



그 일례로 무신정권 천민출신 집권자인 이의민이 '용손이 12대에 다하면 다시 십팔자가 있다' 는 예언을 믿고 


임금이 되어 신라 부흥을 꿈꾸었단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황족들을 스스로를 용 후손이라고 여겨 용손 이라했다.







고려에는 도교가 유입되고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예언들이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고려 말 이성계는 [목자득국 木子得國] 설을 퍼뜨린후 조선을 세웠고 


훗날 정씨가 왕이된다는 [정감록] 또한 그것의 한 종류였다.





이자겸은 이러한 성씨도참설을 믿고 스스로 당위성을 부여해 



황위를 찬탈하여 용상에 앉으려는 야욕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도가 시조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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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을 자신의 저택인 중흥택에 감금한 이자겸은 


세상의 눈을 의식해 인종을 자신의 별궁인 연경궁(延慶宮) 으로 옮긴후 



남쪽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고 그북쪽에 담을 뚫어서 궁 내부와 통하도록 하여 감시했다. 


또한 군기고(軍器庫)의 갑옷과 무기를 가져다가 자신의 집에 보관했으니 언제든 일을 벌일 의중 이었으리라 






얼마후


그는 기어코 인종의 독살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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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종은 그때마다 얼떨결에 목숨을 건지게 되는데, 그 은인은 다름아닌 이자겸 넷째딸인 황후(폐비이씨)였으니



할아버지가 손자를 죽이려 하고 딸이 그를 살려내는

(한번은 떡에 독을 넣었는데 까마귀 한테 던져주었고 또한번은 독약을 일부러 쏟아 인종을 살린다)


.......


복잡하고도 황당한 상황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더는 가만히있을수가없었던 인종은 마음이 급해졌다. 


이제는 죽지 않기위해 투쟁 해야하는 상황이 되버린것이다.



하지만 하늘아래 빠져나갈 구멍이라고는 없었으니 

철저한 감시를 받으며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뿐 어쩔도리가없었다.






인종이 이러한 죽음 위협속에  전전긍긍 하고 있을때  내의內醫 최사전이 대책을 강구해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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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호는 오직 척준경을 믿어서 입니다. 폐하께서 척준경을 얻어 군권을 장악하신다면 이자겸은 평범한 사내일 뿐입니다'


이이제이[ 以夷制夷 ].  적을 이용해 적을 치라는 것이였다. 






별다른 수가 없었던 인종은 이내 간절한 마음으로 점을 친후 길조를 얻자 최사전을 척준경에게 보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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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하늘이 불운했던 임금 손을 들어주었다



마침 척준경과 이자겸 사이가 벌어진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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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이자겸 노비가 척준경 노비에게 


'너의 주인이 임금께 활을 쏘고 궁을 태워버렸으니 그 죄가 죽어 마땅하고 너도 역시 관노가 될 것이다

라고 말하자 


이를 들은 척준경이 대노하여 이자겸을 찾아가서 '관부로 나아가 스스로 해명하겠소' 하고 뛰쳐나갔다.


이자겸이 곧 이지미와 이공를 보내 화해를 요청하지만 



척준경은 '전일 난은 모두 너희들이 저지른 것인데 나의 죄만 따지고드는가!' 


하고 꾸짖은뒤 고향으로 내려가 여생을 보내겠다 하였다.

 

이후 두사람은 화해하지 못하니 노비 하나 말실수가 고려 전체를 흔들어버린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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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에서 노비가 실수 하였다고는하나 전날 일에 척준경이 죄책감을 느껴 반성하고 있음을 알수있다


그러던중에 최사전이 그를 찾아가 충의로 설득하니 마침내 척준경이 마음을 굳힌것이다.



곧 척준경이 인종에게 충성을 맹세하자 그에게 사람을 보내 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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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國公 : 이자겸)이 비록 분수를 모르고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지만 아직 반역 정황이 구체화되지는 않았다.

만약 짐이 먼저 거사하면 친족을 가까이 하는 뜻에 어긋나게 되니 변란을 기다렸다가 대응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하였다



 아무리 천 대장부 척준경을 얻었다지만 


전날 학습효과를 톡톡히 치룬 인종은 조심하여 섣불리 움직일수 없었음이라 



인종은 기회를 엿보며 이자겸을 주시했다.








그러던 어느날


척준경이 병부에서 무관을 선발하고 있었는데, 환관 조의가 조서를 들고와 척준경에게 보였다.

+조서는 임금 명령을 알리는 문서를 말한다. 고려는 황제국 체제에 맞게 조·제·칙 을 사용했지만, 조선에와서 교서로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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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숭덕부(崇德府) 군사들이 병기를 지니고 궁전 북쪽을 통해 침문(寢門)으로 들어올 듯한데, 

짐이 만약 해를 당하게 된다면 이는 실로 짐이 부덕한 소치이지만, 

태조(太祖)가 창업하시고 열조(列祖)께서 이어오셨는데 성씨가 바뀌게 되면 

이는 짐 혼자만 죄일 뿐 아니라 실로 보좌한 대신들에게도 깊은 수치가 되니,  경은 도모하라

+부(府)는 대게 태후와 황자들을 위해 설치되었지만 공훈이 빼어난 신료를 위해 설치되기도 했는데, 이자겸은 숭덕부를 두고 관원을 배치했다.




인종 밀서를 받은 척준경이 이를 추밀재상이자 병부상서였던 김향에게 보이니 


그 역시 꿇어 앉고 울부짖으며 황명을 따르기로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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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그날이 온것이다.











{이자겸 천하 몰락}





척준경과 김향은 함께 휘하 27인 정도를 이끌고 병부를 출발하여 궁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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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척준경은 지체하는바가 없었으니 너무 갑작 스러운 일이라 


휘하부하들은 칼이나 창도 없이 몽둥이를 들고뛰쳐나왔을 정도였다.





이들은 빠르게 움직여 금오위 남교를 건너 궁에 이르렀고 환관 조의가 맞이했다.




이어 척준경 명을 받은 순검도령(巡檢都領) 정유황이 1백여 명을 거느리고 군기감(軍器監)에 들어가 무장시킨후 

연경궁 으로 향하는 도중 이자겸 세력 소경(少卿) 유원식(柳元湜)을 만났는데 그의 말이 불순하여 즉시 죽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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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척준경은 연경궁으로 들어가 정전 천복전 (天福殿) 에 서있는 인종을 구한뒤 데리고 나와 궁을 탈출했다.



이를본 이자겸 일당들이 활을 쏘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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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곧 척준경이 검을 빼들어 큰소리로 고함쳐 호령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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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누구도 덤비지 못했다.


그의 전설적인 용맹과 위엄에 겁들을 집어먹은 것이리라





척준경은 이내 전광석화와 같이 움직여 황성 광화문으로 들어간후 문을 닫았고,


이어 재상 이공수가 따라오니 문을 열어주었다.

+이공수는 척준경이 황궁에 불을 지르려 하자 만류했으며 이자겸 난 당시 인종이 의견을 구했던 대신이다.




곧 인종이 군기감에 들어가자 병사들의 더욱 삼엄하게 인종을 감싸며 호위하였다.




모든것이 척준경 지휘아래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척준경이 승선 강후현을 시켜 이자겸을 불렀고 , 


이자겸은 소복 차림으로 나왔으니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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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준경이 이공수와 논하여 이자겸과 그처자를 팔관보(八關寶)에 가두고 


이자겸을 따르던 장군 강호,고진수 등을 참수하였다






곧 인종이 광화문에 나와 군중들에게 고하기를


'대역 부도(大逆不道)한 화(禍)가 집안에서 일어났는데, 충신(忠臣)·의사(義士) 의거에 힘입어 해를 제거하였다하니 


모두들 만세를 부르며 기뻐날뛰었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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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날 진정으로 만세를 부른 사람은 인종 이었을것이다)








이자겸 아들 이지미가 변고를 듣고 병력 백여 명을 이끌고 광화문에 이르렀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배회하다가 병부로 들어가곧 순검군에 의해 체포되었고

이자겸 다른 아들인 승려 의장은 연견궁의 침실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었다.

+의장은 이자겸 난 당시 승려무리를 이끌고 척준경과 합세하였다.(2편참조)






이어 이자겸과 처 최씨, 그 자식들을 유배하고 


이자겸 일파를 모조리 숙청해 버리니 





드디어 이자겸 천하가 몰락한 것이었다.   



         "이 때가 인종4년5월 이었으니  이 모든게 인종 즉위 후 4년여 동안 일어난 일이다."






이자겸 몰락 가장큰 원인은 자신 딸과 사돈이였던 척준경, 이공수등 


자신 사람들부터 완벽히 포용하지 못한데에 있었다.






영광으로 유배된 이자겸은 건조 참조기에 굴비(掘非)라고 이름을 지어 인종에게 헌상했는데, 


굴비는 비록 패했지만 절대로 비굴하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미였으니,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먹고있는 굴비 유래이다.


-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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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아니 한국사를 통틀어 비할자가 없을만큼, 

황제를 뛰어넘는 절대권력 상징이었던 권신 이자겸.


그는 영광으로 유배간지 얼마 후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우직한 영웅 척준경 떠오르는 신진세력}



사실 이모든 일 중심에는 척준경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만큼 그의 거취가 모든일을 풀어나가는 열쇠였기 때문이다 




인종은 이자겸 제거 일등공신인 척준경을 사직을 지킨 위사공신에 책봉하고,


"검교태사 수태보 문하평장사 판호부사 겸 서경 유수사" 에 임명했다

+태사·태부·태보를 삼사(三師) 라 하고 태위·사도·사공을 삼공(三公)이라 하는데 이들은 모두 정1품으로 고위관 서열을 나타내는 명예직이였다.





이어 이공수를 "위사공신 문하평장사 판이부사" 김향 "위사공신 호부상서 지문하성사", 최사전 "병부상서"에 임명했으니 



척준경을 필두로한 이들이 당시 권력 실세였다. 

+최사전은 후에 참지정사 판형부사를 거쳐 평장사에 오르자 한미한 처지에서 지위가 최고위에 이르렀다하며 은퇴하였다.




-관경서분변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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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맞은 인종은 남경을 순행하여 민심을 살피는 한편 


원로대신 김인존을 "검교태사 문하시중 판예부사"로 임명했다.

+고려는 황도 개경을 포함하여 서경(평양) , 동경(경주) , 남경(한양)  대도시를 두었다.




인종이 척준경 힘을 빌어 이자겸을 제거했지만 


그 에게 척준경은 또다른 적이었다.


김인존은 전날 은퇴 했던 원로대신으로 인종은 


이를 등용해 자신 입지를 세워 척준경 세력을 견제하려 한것이다. 







하지만 


바닥까지 떨어진 황실 권위를 세우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아니였다. 


황궁은 불에탔고 , 임금은 충신들을 잃었으며 


모두들 두려워하는 척준경이 실세중 실세로 떡하니 버티고 황권을 위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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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해 2월. 


인종은 서경에 행차하는데 


이러한 처지를 알고있던 서경 출신 문장가 정지상이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서경인들은 여진정 영웅인 척준경에게 긍정적이였지만 그가 금나라에 사대하는 정책을 펴자 크게 실망하고있었다)





정지상이 척준경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린것이다.

+정지상은 김부식과 함께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다.



인종은 이때다 하고 과감하게 정지 상소를 받아들여 척준경을 전라도 서쪽 섬 암타도로 유배했다. 


또한 그의 측근인 최식,이후진,소억,정유황,윤한 등도 역시 유배했다.



"이이제이"라 했다인종에게 있어 척준경은 그저 이자겸 제거를 위해 사용했던 하나 신하일 뿐이었다.







하루아침에 토사구팽 당한 척준경은 이를 예상조차 못했을것이니 


참으로 어이없고 허무하게 실각하고 말았다.



외조부인 이자겸을 축출하고자 정변을 일으킬때나 척준경 뒤통수를 후갈길때나, 보면 인종은 꽤나 영특했던 군주였던거같다. 

(인종은 개성왕씨 였으니 본관은 개성이다. 전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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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은 척준경을 축축해낸것을 기념해 기린각에서 

정지상과 서경 유신 25인을 불러 기념 연회를 개최했으니 


서경 신진세력들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중심에는 [묘청],[백수한],[정지상]  그리고 윤관 아들로


부국강병 고려 신법을 이어갈 [윤언이] 가있었다.






하지만 


천자국 고려 권위회복을 위해 서경천도와 금나라 정벌을 주장한 이들은 


곧 개경세력 거두인 김부식과 충돌하게 되고,



 고려에는 개경파와 서경파라는 거대한 두 세력에 의해 또 다시 피바람이 휘몰아치려 하고있었다.






척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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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에 그의 이름은 반역열전에 올라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같은 무용담은 자세히 기록되어 오늘 날까지 전해져 오고있으니, 


역사에서 역적 공을 기록하지 않는다지만 그의 호방함과 전설적인 용력만큼은 기록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일까



숙종대 부터 등장해 예종때에는 여진정벌 대영웅으로, 인종때에는 권신 이자겸과 함께 천하를 호령하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임금을 구해 사직을 보존한후 토사구팽 당한 그는 비록 고려사에 역적으로 남았을지언정


분명 우리역사 속에 매력적으로 기억되기 부족함없는 우직한 영웅이었다.









{끝}  











3줄요약.


1.이자겸 노비 삽질


2.이자겸 몰락


3.척준경 실각 






나 글쓴인데 방금 일베간 일베조작 음모 저격글 건게에 말헀다.

저놈이 경고를 먹을지 뭐어떤 제제가 들어갈지는 모르겠는데 


다음부터 글쓰는 사람 생각도 좀해서 일베주는건 바라지도 않으니까최소한 이런 미친선동글에 넘어가서 노력까지 폄훼하지는 말아줬음한다




연재글은 당분간 좀 쉬련다 


써봐야 요즘 반응도 별로고 많이 읽지도 않는거같고 빨갱이같은 애들이 왜이리 많은지 

자료에대한 반박은없고 이런 음모글까지 나도는데 글쓸타이밍이 아닌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