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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lbe.com/2590404789 - [재업/역사/정보] 북송의 멸망과 휘종과 흠종의 비참한 말로
http://www.ilbe.com/2597852207 - [역사/정보] 동 시대의 두명의 명군 금 세종과 송 효종
하이 게이들아 원래 청나라 무술변법과 의화단운동 광서제의 죽음,
선통제 즉위까지 딱 쓰고 청나라 글 마무리 지으려고하는데 무술변법에 대해 너무 손댈 부분이 많아서 섣불리 시작을 못하고있다.
그리고 개새기들아 ㅠㅠ 후주 세종글 재업 계속하는데 계속 묻힌다 시발... 슬프네...
청나라 글은 조금 더 책을 읽어보고 자료들 모아서 써보겠다. 이번에 쓸 글은 남송의 멸망이다.
비록 남송이 짱깨 씨발 좆버러지 민족이 세운 왕조지만 이들의 최후는 비장미가 넘친다.
외국인인 내가봐도 남송시대의 사대부들은 정말 국가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렸던
협객 수준의 사대부들이 많았던거 같다. 어쨋든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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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遼)나라가 여진(女眞)의 금(金)에게 망하고
금은 여세를 몰아 북송(北宋)의 수도인 개봉(開封)까지 함락하게 된다.
그리고 북송의 황제였던 휘종(徽宗)과 흠종(欽宗)까지 인질로 삼아
지금 함경북도 회령에 위치해있던 오국성에 억류시킨다.

금나라 군사에게 잡혀가는 휘종과 흠종
그리고 남송은 해마다 막대한 양의 세공과 금의 황제의 신하라는
굴욕적인 조건으로 150년을 보낸다.
금의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세종(世宗)이 죽고
그의 손자 장종(章宗)이 즉위하면서
금은 여진의 활기를 잃어버리고 점점 쇠퇴해가기 시작했다.

금나라 장종의 필체 금나라 장종은 한족 문화에 심취해 있었다.
장종은 특히 송 말의 황제 휘종의 수금체와 굉장히 유사한 필체를 썻다.
장종 이후 세종 시절 강조하던 여진족의 활기를 점점 잃어버리고
여진은 오랫동안의 평화와 향락에 유약(柔弱)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금나라 북쪽에서는 몽골의 칭기스칸이 전 몽골의 부족을 통일하고
엄청난 기세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한편 금 장종이 죽고 무능했던 위소왕(衛紹王)이 즉위하면서
금은 점점 몰락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몽골을 통일한 칭기스칸은 금나라의 중도(中都)
(연경 지금의 북경 당시 금의 수도)까지 위협하면서
점점 금나라는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다.
원태조(元太祖) 징기스칸(成吉思汗)
금나라의 최대영역
이 난국을 타개할수 없었던 위소왕은 결국 호사호(湖沙虎)에게 죽고
장종의 이복형이었던 오도보(吾賭補)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금 선종(宣宗)이다.
선종은 몽골에게 막대한 양의 재물을 주고 화평을 맺는다.
그리고 수도를 중경(中京)에서 개봉(開封)으로 옮긴다.
(위의 사진에서 중두에서 카이펑으로 옮긴거임)
수도를 옮긴걸 안 칭기스칸은 금의 북경(北京)을 함락하고 1달동안
찬란했던 그 지역을 방화하고 약탈을 하기 시작한다.
금 세종연간에 찬란했던 중국의 북부지방은 잿더미만 남게된다.
선종은 60살에 죽고, 완안수서(完顔守緖)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금의 마지막황제 애종(哀宗)이다. 애종은 능력이 있어 위기의 금나라를 위하여
황실의 사냥터를 크게 줄여 농부들에게 나눠주고 여러 개혁을 실시했지만
무너져가는 금나라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애종이 즉위하고 약 4년뒤 칭기즈칸이 죽고
그의 아들 오고타이가 즉위하니 그는 바로 원 태종(太宗)이다.
원 태종의 모습
한편 남송은 송 효종(孝宗)이 금나라 세종(世宗)과 평화조약을 맺고 난 뒤
약 50년간 평화기간이 찾아온다.
남송의 통치자들은 평화기간동안 사치와 향락을 누렸지만,
그들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금에대한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한 예로 영종(寧宗)시절 북벌군을 보낸 일도 있었다.
또 영종 12년에 서하(西夏)와 연합하여 금에 대항하기도 하였다.
비록 이 일은 실패로 돌아갔고 금에 대한 세폐와 금황제 송황제간
숙질(叔姪)(작은 아버지와 조카)에서 백질(伯姪)(큰 아버지와 조카)로 갔지만
언제나 송의 통치자들은 금에 대한 설욕과 북송의 옛수도인 개봉 탈환을 생각하고 있었다.

남송 영종
송 영종이 죽고 그의 양아들이었던 조윤(趙昀)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남송 이종(理宗)이다.
이종이 즉위한지 약 11년이 지나고, 몽골의 군대는 금의 수도
개봉을 포위하였다. 애종은 개봉에서 귀덕으로, 귀덕에서 채주로 달아났다.
이 소식을 들은 남송 조정에서는 드디어 금나라에 복수를 할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남송 이종
당시 남송 조정은 몽골과 연합하여 금에 대하여 설욕하자 했는데,
오직 지양주사(知揚州使) 조범(趙范)만이 이에 반대하였다.
'해상의 맹약은 그 처음엔 매우 견고했지만, 마침내 화를 불러들였다.
우리는 예전일을 거울삼아 이를 본받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당시 남송 조정의 여론은 기울었고, 몽골과 동맹하기로 하였다.
금나라에서도 완안아호(完顔阿虎)를 파견하여 식량을 구걸하고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어지면 이가시리다) 즉
금나라가 몽골에 의해 망하면 다음엔 남송이 멸망한다. 라고 하여
동맹을 제의했다. 하지만 남송의 조정 방침은 이미 결정되있고
장군 맹공(孟珙)을 파견하여 몽골군과 금의 채주를 포위하였다.
이때가 1233년 10월이었다.

1234년 정월, 몽골, 남송 연합군이 쳐들어가자 금나라 애종은 채주에서 자살하였다.
애종은 종실이었던, 완안승린(完顔承麟)에게 울면서
'짐은 너무 뚱뚱하여 도망치지 못한다. 제위를 그대에게 물려주니
부디 도망치면 금의 황실을 재건해주기 바란다'
라고 하며 제위를 물려준다. 그리고 그는 궁궐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죽는다
하지만 말을 타고 도망치던 완안승린은 전란중에 잡혀 전사함으로써
금의 120년 세월은 멸망하고 만다. 완안승린을 금의 말제(末帝) 훗날
종실회에서 소종(昭宗)이라는 시호를 추존한다.
애종의 시신은 불태워지고, 그의 유골은 남송으로 보내진다.
이종은 태묘에 애종의 유골을 바치며 복수가 완료되었다고 조상들에게 고한다.

비록 송과 몽골의 연합으로 금을 멸망시켰지만,
둘은 예전 금과의 해상의 맹약때처럼 확실한 조약을 맺지 못했다.
남송으로서는 금에 대한 복수가 시급했기 때문에,
성급히 군사 2만과 식량 30만석을 지원했다.
후에 청(淸)의 사가였던 조익도
'두 나라는 원래 서로간의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송이 삼경팔릉(三京八陵)
(예전 북송수도의 개봉, 낙양, 귀덕 외에 북송 황제의 묘)를
받기 원했다면 은혜를 베풀 때 동맹조건을 협의했어야 했다.'
라고 주장하였다.

몽골과 남송은 금의 정복을 성공했지만,
몽골은 하남을 바친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북송과 남송의 문제점은 꼭 상황이 좋아진다 싶으면
조정내에서 실력에 맞지않는 강경론이 대두된다는 점이다.
북송 시절에는 금에게 삼진(三鎭) 할양에 반대하여 개봉을 함락당하여 북송이 멸망되었다.
남송에서는 예전 이 역사의 교훈을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남송 조정 내에서는 이 승리를 배경으로 예전 북송 영토를
회복시켜야 된다고 주장였다. 이종은 조정의 여론에 힘입어
주양조(朱揚祖)와 임탁(林拓) 두 사람을 알릉사에 임명하여
맹공의 군영으로 보낸다.

남송의 군대 출병은 이미 몽골도 알고 있었고,
그들은 하남 지방에 군대를 배치하여 이를 방비할 준비를 하였다.
맹공은 두 알릉사에게 양국군은 열흘정도는 접전이 없을테니
팔릉(八陵)을 참배하려면 지금 갔다오라 하였다.
알릉사는 능을 참배하면서 능의 모습을 그린 팔릉도(八陵圖)를
훗날 이종에게 바쳤다. 이종은 눈물을 흘리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팔릉도
남송군은 개봉으로 진군하였는데 개봉에는
금나라가 있을 당시 개봉에서 금나라에 반란을 일으키고 몽골에게
항복한 최립이 있었다. 개봉을 함락하고 낙양까지 함락했지만,
개봉과 낙양은 그 예전 북송시절이냐, 금 세종 시절같은
찬란한 도시가 아닌지 오래였다.
낙양에 도착한 남송군은 식량이 다 떨어졌는데
이는 남송의 북벌군이 얼마나 무계획적인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하남을 함락하면 백성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황제의 군대가
왔으니 앞다투어 식량을 내놓을거라 생각했지만,
하남의 황폐는 그들 상상이상이었다.

맹공
한편 몽골의 군대는 남송의 배신을 힐책하면서 군대를 출병하였다.
남송의 장군이었던 맹공은 영웅이었다. 처음 몽골군은 이 맹공이
이끄는 군대에 여러번 패하였다. 맹공은 진영을 거둘 때 그 자리를
비로 쓸고 향을 피웠다. 재물과 여색을 멀리하고 식사는 간소하게 하며
그의 품격은 여러 사람들에게 존경받을만 했다.
맹공은 몽골군을 황주(黃州)에서 격파하고, 양양을 탈환하였다.
하지만 맹공은 1246년에 죽고만다. 그는 능력으로서는 재상이 될 만
했고 몽골과의 원활한 조약까지 맺을 수 있었지만
진사(進士)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재상이 될 수 없었다.
맹공이 죽자 그의 후임이었던 송 말의 간신(姦臣)이었던 가사도(賈似道)였다.

가사도의 초상
당시 몽골의 남송정벌군은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맹공이 죽고 단숨에
남송을 정벌하려 했지만, 몽골의 황제 헌종(憲宗) 몽케칸이 급사하였다.
사천에 침공했던 몽골군이 몽케의 죽음으로 철수하고
(당시 몽골의 후계자 싸움음 엄청나서 유력했던
몽골 황족들은 황제가 죽은 뒤 서로 엄청나게 싸웠다.)
조정에서는 가사도가 이 전쟁을 막았다고 생각하여
(남송조정의 정보력이 얼마나 호구였는지 짐작된다.)
전쟁영웅으로 추앙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가사도가 훗날 원 세조(世祖)가 되는 쿠빌라이와 밀약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니 난 언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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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헌종(憲宗) 몽케칸
가사도는 몽골군의 철수를 조정에 '대승리'했다고 보고하고
남송의 재상이 되었다. 당시 남송은 엄청나게 부유했지만, 이 많은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 많은 돈을 효과적으로 대 몽골
전비로 사용하지 못하고 계속 되는 막대한 전비로 백성들에게
어음을 지불하면서 군량을 징발하였다. 이 어음의 남발은
어음의 가치 하락으로 물가가 상승되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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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세조
한 편 헌종의 죽음 이 후, 몽골은 쿠빌라이가 세력 싸움에
승리하여서 황제로 즉위하니 원의 세조(世祖)가 된다.
그리고 남송에서은 이종(理宗)이 죽고, 황태자 였던 조기(趙祺)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송의 도종(度宗)이다. 송의 도종은 이 난국을
타개할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남송의 조정은 가사도가
꽉 쥐고 있었다. 쿠빌라이는 국호를 원(元)으로 바꾸고, 국력을
기른 뒤에 남송 정벌 계획을 세운다.

송 도종의 모습
몽골은 헌종이 죽기전에 양양을 공격하지 않고 악주로 갔지만,
후방이 안정되지 않아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전쟁을 하였다.
양양성은 5년 동안 방어를 하였지만, 조정의 지원이 없어서
수장 여문환(呂文煥)은 결국 항복하고 만다. 그리고 양양성에서
원군은 병선을 제작하여 취약했던 수전에 어느 정도 강해졌다.
양양을 함락한 원군은 다시 남하하여 2년전에 포위했다가 점령에
실패한 악주를 힘들게 점령하였다. 가사도는 13만의 군대를 이끌고
무호(蕪湖)에서 요격하였으나 대패하고
가사도의 사위 범문호(范文虎)는 원에 투항하였다.

가사도는 전쟁에서 패하고 장주에 유배 된 다음, 정호신(鄭虎臣)이라는
자에게 살해되었다. 범문호나 여문환처럼 원에 투항한 고관들도 있지만
강회초토사 왕입신(汪立信)처럼 투항보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도 많았다.
원(元)이 국토를 유린하자 각지에서 근황(勤皇) 의군(義軍)이 일어났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문천상(文天祥)이다.

문천상
이런 위기에 빠진 남송에서 아무런 해결책을 내지못하고 향락에만 빠져있던
남송의 도종(度宗)이 재위 10년만에 죽고 4살된 왕자 조현(趙顯)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공종(恭宗)이다. 그리고 어린 황제 대신
황태후 사씨(謝氏)가 섭정하게 된다.
이런 난국에 4살된 황제가 즉위 했으니
송 왕조는 점점 막장으로 치닫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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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 공종
가사도가 유배당하자 당시 명성이 높았던 진의중(陳宜中)이
재상이 되었다. 진의중은 애국심이 높고 난국을 타개할 의지 역시
높았으나 그의 힘으로만으론 난국을 타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남송 조정은 자리를 버리고 도망친 조정대신이 수십 명에
이르렀다. 가을이 되자 원 군은 군사를 진격시켰다. 조정에서는
문천상과 장세걸(張世傑)이 공종과, 도종황후, 이종황후를 해상으로 옮기고
원과의 일전을 주장했지만 진의중이 반대하였다.

문천상은 원군 진영으로 들어가 원군을 가흥(嘉興)까지 후퇴하고
강화를 요청하였지만 이를 거절하였다. 원군의 수장 바얀은
문천상의 변론에 감동하여 원나라에게 투항하도록 권하였다.
문천상은 이를 거절하고 원 진영은 문천상을 억류한다.
문천상은 연경으로 호송되던 중 진강에서 탈주하게 된다.

문천상
한편 원군은 남송의 수도 임안을 함락하고
임안 함락 당시 송 조정에서는 어린황제가 즉위하였고 나라 상황이 어려우니
화이를 요청했지만 바얀은 '너희도 예전 어린황제의 자리를 탈취하고
나라를 세우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한다. ( 예전 진교의 변을 말한다.)
원이 임안을 함락하고 공종 이외에 도종황후, 이종황후는 원군에게 잡히게 된다.
그리고 진의중과 장세걸에 의해 공종의 형 익왕(益王) 조시(趙是)가 옹립되는데
그가 바로 송의 단종(端宗)이다.
![]()
송 단종
남송의 저항군은 원에 계속 대항하였지만 계속 패배할 뿐이었다.
그리고 원은 복주를 함락하고 색목인이자 천주(泉州)의 실력자였던
포수경을 섭외하여 수군을 강화시키고 강남 지배를 확고히한다.
강남에서 광동성으로 밀려난 남송군은 선단을 묶어 해상에
표류하면서 현재 홍콩지역이었던 애산에 행궁(行宮)등을 지어
결사항전의 뜻을 밝혔다. 1278년에 원 군대에 쫓겨 광주만으로
가던 와중에 단종의 배가 전복당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단종은 구출이 됬지만 그 충격으로 병을얻어 10살인 재위 1년만에 죽고 만다.
그리고 그의 동생이었던 위왕(衛王) 조병(趙昺)이 황제에 즉위하니
그가바로 남송 최후의 황제인 소제(少帝)이다.

남송 소제
원나라 측 기록에 따르면 남송 함대는 1,000척의 대형 선박을 모두 한데 묶어서
화재방지용으로 선체외장에 진흙을 칠하고 적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긴 목재을 묶어서 붙여놓아 방어망을 만들어 기름을 이용해
화공을 가하려는 의도를 가진 원나라군을 물리쳤다. 소제는 배 안에서
신하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육수부의 강의를 들으며 항전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1279년 2월 계속된 전쟁으로 피로에 쌓인 남송은 점점 패배하기 시작했다.
남송군의 장세걸, 육수부는 칼이 부러지고 화살이 다할 때까지 싸웠지만
남송의 패배를 막을 수 없었다. 육수부는 자신들의 처자를 바다에 던지고
대학 강의를 듣던 소제에게
'폐하한테도 공종 황제의 굴욕을 재현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고
소제는 '앞으로 왕후 장상의 씨로 태어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육수부는 소제를 안고 같이 바다에 빠졌다. 이 때 순사한 관리들의 수는 엄청났고,
그 중 궁녀도 많았다.
황제의 어머니인 양씨는
'내가 죽기를 참고 가난 속에서 여기까지 왔음은 오로지
조씨의 한 점 혈육을 위해서였거늘, 이제는 바랄것이 없구나.'
라고 통곡하며 역시 물에 빠져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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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부와 소제
장세걸은 피신하여 훗날 재기를 노렸지만, 배가 뒤집혀 죽고만다.
문천상은 조국이 패망하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면서 감유(感有)라는
오언율 시를 짓는다.
물 건너 남해상에 이르니,
흩어진 시신이 얽힌 삼과 같구나.
비린내 풍기는 물결은 이 마음을 치며 부서지고,
회오리바람은 흐니 수염을 불어 날린다.
산 하나 도니 물 하나,
나라도 없고 또 집도 없다.
남아 천 년의 뜻,
내 생은 아직 다하지 않았다.
문천상은 연경으로가서 쿠빌라이의 끈질긴 투항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감옥에서 살해되었다. 원 장군 바얀은
남송의 공종, 탁종황후, 이종황후를 데리고 연경에 개선하였다.
쿠빌라이는 공종을 데리고 연회를 베풀었는데 쿠빌라이 아내였던
차븐은 자신의 자손들도 똑같은 상황이 될 것을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한다.
이로서 남송은 멸망하고 중원은 몽골의 차지가 된다.
요약
1. 남송과 몽골이 연합하여 금을 멸망
2. 남송은 예전 북송땅을 찾으러 군대를 이끌고 가지만 몽골군의 반격을받음
3. 남송은 약 40년간 항쟁하지만 결국 망하고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