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이런 류가 학술논문에 도배되냐고? 무늬만 다당제. 사실상 일당제. 민주당 신구파가 나눠 선 공간에 박근혜 물러가라. 일당 역사 쓰자? 이건가? 


40대 이상 기억할꺼야


반공이 조선조 붕당에서 특정파가 특정 파 낙인찍는다. 그래서 울며 약자드립.


강자가 되니 다 내쫓고, 보수에는 운동권출신 파견하여 보수의 기억 없애고. 


 보수는 쪼가리 분탕. 지네들이 군사정권 파견 어용이라고 한거 똑같이 한다. 


일게이는 조갑제 말 이전에, 조갑제를 통해서 원조가카 보지 말고, 원조가카 시대를 살아간 체험있는 분들의 담론을 먼저 새겨라. 


먼저,..... 원조 가카를 지지한 파들의 관습에 먼저 서라. 








오승용, 「제2공화국 민주주의와 혁신세력- 전남지역의 조직결성과 활동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8(1), 2008.3,

 

원래 혁신세력이라는 명칭은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에도 속하지 않았고 한국민주당에도 속하지 않았던 세력, 말하자며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인민당 세력 또는 근로인민당 같은 세력”을 지칭하는 용어였다(송남헌․정태영․서중석 1995, 71). 이러한 이유로 혁신세력은 좌파인 조선공산당계열로부터는 협상파로, 우파인 한국민주당계열로부터는 중간파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다가 단정 수립과 한국전쟁 이후에는 합법적인 활동이 허용되지 않아 활동을 중단하거나 지하화를 강요받았다.

이후 혁신세력이라는 명칭은 역사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조금씩 그 의미와 지시대상이 변했다. 단정 수립이전에는 여운형과 김규식계열의 협상파 혹은 중간파를 지칭하는 명칭이었다면, 단정수립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혁신세력의 정치활동이 탄압을 받자 혁신세력의 외연은 여운형과 김규식계열은 물론 남로당을 포함한 구(舊)좌익 활동가들까지 모두 포괄하게 되었다. 다시 4‧19혁명을 거치면서 혁신세력은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반대하며 4‧19혁명 이전 혁신세력의 정치활동에 동조․동참했던 정치세력(특히 청년운동세력)으로까지 확대되는데, 거칠게 표현하면 “반(反)이승만(자유당)․비(非)민주당” 정치세력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명칭이 혁신세력이었다.

혁신정치세력들은 4‧19혁명과 함께 합법적 공간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른바 ‘혁신세력의 르네상스’를 구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4·19혁명과 함께 찾아온 혁신세력의 짧기만 했던 르네상스는 5·16쿠데타의 발발과 함께 종말을 고했고, 짧은 부흥의 기간 동안 단결되고 통일된 정치활동을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이후 혁신세력은 1964년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이나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및 인혁당 재건단체 사건, 그리고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이르기까지 형극(荊棘)의 길을 걸으면서 고난과 고초의 상징이 되었다(송남헌․정태영․서중석 1995, 99-100).(오승용, 113-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