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고니시 유키나가의 퇴각일자를 보고 알아냈지.


노량해전의 발발일자는 11월 18일이다. 이 전투에 고니시가 참전을 했다면 그 전투의 승패 여하에 관계없이 고니시의 퇴각일자도 11월 18일이 되어야 한다. 물론 승리를 했다면 더 머물수도 있겠지. 이겼는데 급하게 퇴각할 이유는 없을테니까.


헌데 졌다면 퇴각일자는 무조건 11월 18일이 되어야만 하지.


헌데 고니시 유키나가의 퇴각일자는 11월 19일이다. 즉, 노량해전이 끝난 뒤에 비로서 퇴각을 한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이지. 이걸 어떻게 해석을 해야 바람직한 해석이 되겠느냐를 분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니시가 하루 더 머물렀다는 사실을 통해 고니시가 애초 노량해전에 참전조차 안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지. 만약 고니시가 참전을 했다면 싸워 이긴 직후이건 패배를 했건에 관계없이 무조건 11월 18일에 퇴각을 했어야만 한다.


고니시가 그 전투에 참전을 했다는 것은 곧 퇴각하는 과정에서 이순신 군대를 만났다는 의미가 되는 것임으로 교전의 결과에 관계없이 무조건 퇴각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며, 굳이 하루를 더 머물러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이미 퇴각할 모든 준비를 끝낸 상황에서 철수를 하는 중에 만나서 교전을 했던 것인데, 굳이 상륙하여 하루를 더 머무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될 수 있을만하나 어떤 논리도 제시할 수가 없다.


헌데 고니시가 애초 이순신의 군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가 노량해전이 끝난 직후에 퇴각한 이유도 설명이 가능해지는 거지.


이순신 군대가 패배했다는 것은 고니시가 `11월 19일에 퇴각했다는 것으로도 설명이 가능한데,


이순신이 애초 출병을 한 목적자체가 고니시의 퇴로를 쳐서 왜군의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목적에서였는데, 고니시를 치러 가는 중에 시마즈를 만나서 일전을 치루었다. 한국에서 이야기 하는대로 이 때 만약 조선군이 시마즈를 상대로 이긴 것이라면 명조 연합군은 그 기세로 곧바로 고니시를 치러 갔어야 했다. 이 때 고니시를 치러 갔다면 고니시는 무조건 퇴각을 해야 함으로 퇴각일자가 19일이 되어서는 안되는거지.


헌데 19일에 퇴각을 했음으로 이 퇴각날짜에 맞는 가장 합당한 상황논리는 이때 명조 연합군이 대참패를 당하여 애초 고니시를 만나보지도 못했거나, 아니면 고니시에게 처절하게 쳐발리고 도주한 뒤에 고니시가 유유히 퇴각을 했다는 가설 외에는 합당하게 나올 수 있는 가설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아직도 노량해전이 승전이라고 믿는 정신병자들이 있는데, 고니시의 퇴각 일자의 미스테리를 풀지 못하는 이상 노량해전이 명조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임을 본좌가 미리 이야기 해두도록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