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서거하신 날인데

예전에 올라온 좋은 산업화 자료 올려본다.

짧으니깐 잠깐 보고가라~


↓원글

http://www.ilbe.com/970366651



안녕게이들아? 저번에 우리나라 원자력의 역사를 가지고 일베에 올라갔던 게이야..

저번글을 보지 못하였다면 http://www.ilbe.com/954895940 를 통해서 보도록해


저번글에도 원조각하의 활동들을 충분히 나타내어줬지만 이번에는 '원조각하'의 관점에서 보았으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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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박정희대통령깨서 원자력에 관심을 보인것은 5.16쿠데타 직후였어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의장으로 계시면서

한국 원자력 연구소를 처음 방문한 이래로 엄청 자주 들리셨다지? 당시 토요일만 되면 헬기를 타고 연구원까지 오실정도였어...

우리나라 원자력이 터를 잡고 날개가 돋아난것도 그리 멀지 않으셨으니 당시 원자력 1, 2세대들은 당시를 회상하는 사람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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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도 3월에 경상남도 양산군 고리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기공식이 열렸는데 약 70만평의 부지에

사업비가 무려 1560억원이였어! 당시의  1560억이라면  경부고속도로를 3.6개를 지을 돈이였지..

다들 경부선 경부선 그러지만 사업규모면에 따라서는 원자력사업은 엄청난 투자비용을 가진 도전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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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각하깨서 위대한것이 무었으냐면 무었보다 풍족한 전력환경을 조성한거야....

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평균 2.5배가량 물가가 인상된대 반해서 전기요금은 30%도되지않으니

요즘 전력이 부족하니 뭐니 하는데.. 물가상승률에 비해서 전력요금상승률은 매우 낮은편이야






박정희와 핵무기... 그 이야기들 


이제 박정희대통령의 또다른 프로젝트였던 ' 핵 숨바꼭질 '을 말해보고자해

1960년초부터 시작해서 1971년 사이에 실질적인 핵개발을 추진했다고 여러 매체에는 나와있어

각하깨서 계획을 처음 만드신 계기는 닉슨 米대통령이 1969년 괌 독트린을 선언하고

곧바로 1년뒤 주한미군의 철수를 통보한 미국은 예정대로 1971년에 2만명의 미군이 철수를 하게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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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1월 박통은 청와대에 경제 2수석실을 설치하게 되는데 이부서의 목적은 방위 산업을 전담하고

핵무기개발을 총괄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지 이는 1972년 국방대학원 졸업식에서 핵무기 개발을 암시했어


"우리나라는 우리 국민이 지킬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고자하는 일을 의연한 자세로 강력히 추진할때, 그리고

미국이 도와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해낼 능력을 보여줄 때 비로소 미국은 협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주국방'입니다"


박통은 연구 인력확보를 위해서 미국의 감시를 피하며 재米한국인 과학자들을 초빙하였는데, 1973년 3월

주재양박사님이 원자력연구소 제1 부소장으로 취임 핵무기 개발 전담부서를 맡게되었지...

(이 당시 북한은 1974년에 핵공학자 경원하씨를 데려왔었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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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는 캐나다원자력공사사장이 방한을 해서 한국에 3만kw의 연구용 원자로를 제공하겠다고 했어..

캐나다에서 제공하려한 연구용원자로는 중수로로써 별도의 재변환 절차없이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어서 한국 본래의 목적과 핵연료 조달에 관련해서 한국측에 유리했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74년에 카슈미르지방의 영유권을 놓고 파키스탄과 분쟁을 이어오던 인도에서 핵실험을 성공

성공의 배경에는 중수로가 있었어... 각 원자력 수출국들은 '런던클럽'이라는 감시기구를 만들게 되었고 미국과 IAEA는

중수로를 도입하려는 나라를 엄격하게 감시하게 되었어.. 


하지만 국가와 국민을 버리는 박통이 아니지 않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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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상황에 중수로를 도입이 불가능 할수도 있었지만 순수한 목적 으로 도입하겠다고 하고 의심스러운 기술은

도입하지 않겠다는 계약하에 중수로를 사용하는 월성 1호기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게 되지..

하지만 여기에 굴복할 각하가 아니잖음? 공식상 1975년 미 국방장관에게 핵무기개발 포기각서를 썻으나

사실은 비밀리에 프랑스와 스웨덴으로 부터 플루토늄 구매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1977년 1월 28일 박정희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한국의 핵무기개발을 포기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좌절되는 순간이엿지..

이 것은 핵무기 개발을 통한 자주국방의 실현과 박정희 대통령의 거대한 꿈과 그 실현을 위한 집념을..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현실적으로의 포기를 의미하는 거였어..


1972년을 기점으로 등에 땀이 주룩주룩 흐르던 김일성도 핵 미사일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오게된거야...

간첩활동이 심했던 당시 상황에 국내 체류중인 학자들의 실종과 김희규, 이휘소등 학자들의 원인모를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핵개발 관련 의혹을 증폭시켰지..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1977년의 핵무기 포기선언도... 뻥카였어..ㅋㅋㅋ

1979년 2월 각하는 약 90%의 완성률 보고를 받고 1983년에는 미사일 완성까지 내다보앗으나..

그해 10월 김재규의 총격에 의해서 서거하시게 되었지..


하나더 붙이자 한다면 일본이 왜 원숭이냐면 박정희각하깨서는 일본보다 15년 늦게 원자력을 도입했지만 일본의

원자력은 초석부터 병신같이 원숭이들은 비등경수로를 채택해 후쿠시마사태와 같은 재앙을 만난 반면!!

어렵던 시절 건설비용이 비싼 가압경수로를 선택한 각하의 통찰성은 과연 엄청나다는거지!!


박정희각하 만ㅅ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