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인이라는 만화를 참 좋아해
맞선임께 빌려드리고 본가에 와서는 내 동생한테 선물했는데(원래 퇴사하면 동생 선물로 주려고 산 거기도 하고)
동생은 만화책을 잘 안 읽어서 일단 소장만 해두더라.. 물론 나도 읽어달라고 언급 안 해 스스로 읽고 싶어질 시기에 읽는 게 제일 좋거든
그냥 씨앗만 뿌려두고 내 인생 사는 거지.. 인생은 타이밍이 안 맞물리면 뭘 어떻게 먹여보려해도 소화시키지 못 하거든. 나도 똑같고.
아인에 사토라는 군인 아조시가 나와
생긴 것처럼 실제로도 아주 인자하고 좋으신 분이지..
아인들은 죽어도 잘린 부위가 큰 쪽에서부터 재생해서 되살아나.
주인공도 처음에는 전략적으로 죽는 걸 망설였지만, 한 번 필요상 자살하고 나니 심리적 허들이 낮아져서 점점 목숨을 무기로 쓰기 시작해. 물론 고통은 다 똑같이 느끼고 말야.
나가이는 평범한 의대지망생 고지능자 소년이지만, 상황이 내몰리면 인간이 어디까지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상황적응력의 지표이기도 해..
자신이 아인임이 교통사고 이후 밝혀진 뒤부터 일어난 모든 부조리한 상황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그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빠르게 파악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사토처럼 빠른 신체 회복을 위해 자기 대가리를 쏘거나, 도망치기 위해 건물 아래의 강으로 뛰어내려 급류에 익사하거나..(다시 되살아나니깐 강에서 육지로 떠밀려내려올 때까지 수십번은 죽어야 함)
때로는 자기 몸의 재생 메커니즘을 역이용해서 굉장히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장애물을 우회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면 고통만 감수하면 무적인가? 아냐. 이 부분이 묘미야.
만약 아인의 머리를 자르고, 그 잘린 머리로 자신의 원래 몸에서 새 머리가 자라나는 걸 보여주면
과연 잘린 머리의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새 몸에서 자란 자신의 머리가 원래의 몸을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며 의식이 사라져갈까..? 과연 그 살아난 새로운 나는 나와 같은 인간이 맞을까? 애초에 의식과 '나'라는 느낌의 근원은 대체 뭘까..
의식의 연속체 모델이나 stereographic projection 등 수학적인 도식들을 빌려와 정당화하면 생각보다 도박의 가치가 있는 질문이야.
그리고 나가이의 라이벌인 사토는 이런 '정답을 완전히 알 수 없는 질문'에서 "일단 해볼까?"를 외치는 긍정적인 마인드의 사나이지.
자신이 죽음의 고통만 무릅쓰면 전략적으로 무적인 줄 알던 불사 소년 나가이에게 있어서, 사토가 나가이와의 전투 도중 뜬금없이 소개한 이 사고실험은 자아의 상실이라는 공포를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아.
나가이가 의대지망생에 합리적인 인간이었던 만큼, 사토와의 심리전에서 그의 질문에 대해 현실적인 결론을 우선 내릴 수밖에 없었을 테고, 바로 그 점이 나가이의 약점이었던 거야. 너무 머리가 좋고 현실적이어서 사토의 질문에 뇌정지가 온 거야. 사토가 갑자기 총질 하다말고 이상한 사고실험 얘기한 다음, "너 네가 무적인 줄 알고 있었구나. 머리 자르러 갈게!" 이러는데 패닉이 안 올 수가 있을까?
근데 그러면 사토 아저씨도 그 자아와 의식 문제에 묶여서 전략적인 한계가 생기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사토 할배는 자기 머리가 잘린 채로 몸에서 새 머리가 나든, 자아나 의식이 이어지든 말든 그런 건 ㅈ도 신경 안 써
빌딩 보안 뚫기 위해 자기 손을 잘라넣은 치킨을 배송한 뒤, 도착 시간에 맞춰 자기 몸을 인쇄소 분쇄기에 갈아버리는 장면에서는 부랄을 탁 치게 되더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리가..'라는 나가이의 불안이 적중하는 그 순간마다 나가이의 얼빠진 표정이 너무 갭모에 왕짱이야.
사토는 게임 플레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굉장히 모범적인 플레이어야.
만약 넣을 수 있는 코인이 무한인데, 죽음과 의식 소멸에 대한 공포도 없고 자아의 상실마저 개의치 않는다면, 그것보다 강한 게 어디 있을까?
심지어 목적도 없어. 그냥 실시간 전술 실험과 새로운 전략전에서의 스릴을 느끼고 싶은 거야. 목적이 없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는 일본 만화를 이것저것 읽다보면 알 수 있어. 행동 예측이 급격히 어려워지거든.
갑자기 질렸다고 중간에 그만뒀다가, 심심하면 불현듯 다시 나타나는 미친 놈 때문에 나가이는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야. 나가이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도 있고, 가족이랑 일상도 지켜야 하거든.
만화 업계에서 그동안 보여줘왔듯 단순히 '불사신'이라는 것만으로는 특별하지 않아. 파이어펀치 1화도 극한의 상황을 가정해서 그 능력이 만능이 아님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고실험이고 말이야. 그리고 사토 아저씨가 자신의 신체 재생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보여주는 여러 기발한 전술들은.. 진짜 보면서 감탄하면서 읽게 돼.
작중 사토가 주인공 나가이의 전략을 보며 답답해 하면서.. 그를 성장시키기 위해 정말 좋은 충고를 해줘.
"한 번 경험해 보면 각오가 서지 않을까?"
우리 일상에서도 통용되는 격언이기도 해.
가령 예를 들어,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은 우리가
죽음에 대해 적확한 의식 소멸의 여부 및 그 사건에 대한 공포심을 마치 진실이자 객관적인 예측처럼 설파하는 것이 과연 언제나 정당할까?
나는 사토라는 캐릭터가, 평범한 인간 나가이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 자신이 그어둔 선들을 뛰어넘게 하는
일종의 시간 또는 역사 전개와 같은 불가피한 운명이라고 생각해.
자연이 언제나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정해둔 인식의 안전 지대를 뛰어넘도록 물질 세계의 모든 것을 파괴하듯이 말이야. 우주도 엔트로피로 물질 세계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결국 세상에 무언가라고 부를 만한 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거야. 하지만 그 부분이 바로 포인트이자, 발상의 전환이 유의미해지는 시점인 거야.
인간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함을 새삼스레 일깨워주고, 용기를 내서 허들을 넘을 수 있도록 여러 극한의 상황을 만들어주는 그는
정말로 훌륭한 교육자라고 할 수 있겠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자아 또는 의식의 소멸을 두려워 하지만
위기가 닥쳐오면 결국은 도박적인 선택을 해야 해.
시간은 완벽을 기다려주지 않아.
시간은 인간이 형이상학적인 고민을 무한 시간만큼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어차피 그런 것들은 고민과 논리, 과학의 발전만으로 답을 완전히 확신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논리와 과학적 사실들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결론을 내리는 인간 나가이와
선택과 인과만을 삶의 전부로 인식하는 비약적 사고의 실천가인 사토가
어쩌다보니 서로 비슷한 스타일의 플레이어가 되어가는 매우 예쁜 관계성의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해..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개의 눈이 서로를 마주보며 닮아가는 과정이랄까.. 약간 브로맨스 느낌도 나고 난 나가이x사토 BL 짤도 옛날에 조금 모은 적이 있었어(물론 Non-H로). 나가이도 사토를 딱히 증오하는 건 아냐. 사토는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고, 그렇게 살아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뇌인 거잖아. 오히려 사토라는 존재가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다보면 나가이는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운 점이 정말 많아.
일종의 알레고리인 셈이지. 나가이가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고 사토라는 존재를 부정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부조리를 평생 호소하기만 하는 캐릭터였다면 정말 재미없게 흘러갔겠지? 사토 덕분에 나가이는 정말 매력적인 인생관을 지닌 인간이 된 거야.. 아니면 사토 말대로 나가이는 처음부터 그런 자질을 갖고 있었던 거고, 사토가 그걸 끄집어내는 계기였을 뿐이지.
쿨뷰티 재질에 머리도 좋고 겉보기엔 냉철한 소시오패스 느낌인데
그러면서도 합리성을 맹신하지 않고 바보 같은 도박도 하는, 스스로의 인식을 의심도 해보는 그 숨길 수 없는 인간미가 난 정말 좋더라.. 의사가 된다는 꿈도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되게 현실적이고 적당히 인간스러운 이유였고.
나 이런 애들 진짜 좋아하거든.. 나랑 완전 다른 느낌인데도 뭔가 자꾸 끌려
아 정말 좋다 씨발 똑똑하면서도 내가 아는 그 특유의 꽉 막힌 느낌이 아니구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사고와 행동을 할지 계속 곁에서 보고싶다
자신이 아는 것 너머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매 순간 스스로의 지식을 의심하는 인간은 정말 아름다워
뭔가 이런 느낌의 논리적이고 머리 좋은 류의 캐릭들이
초자연적인 재앙 앞에 압도될 때,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량의 마지노선을 어디까지 내려놓는지
난 그 인식의 한계를 실험하고 나아가는 과정과, 자신이 상상조차 못 했던 인간으로 성장해가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self-surprise가 정말 뜻깊다고 생각해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은 우주 끝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바로 그런 인간을 우주는 사랑하는 거야. 세계 자신을 알기 위해 계속해서 다가와주니깐.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잠재성이 있는 거야..
하지만 육체와 인식은 그 잠재성의 발현 앞에 온갖 허들을 실시간으로 깔아두고 안전 지대를 만들지.
바로 그 점에서 삶에 의외성이 발생하는 게 아닐까.
아직 내가 모르는 인간의 가능성, 삶의 가능성, 내가 모르는 세계의 구조..
좆될 거라 생각했던 상황에 의외로 잘 적응하고 있는 새로운 나의 모습.. '나'라는 건 대체 뭘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