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없이 반복되는 것은 없다. 물론 세계의 본질은 혼돈이기에, 같은 원인에서 미세한 경로 차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한 혼돈이 반복의 원인을 찾기 어렵게 만드는 역할도 하기에, 나는 의식적인 추적과 논리적인 연결보다는 '감'으로 그것을 느끼는 편이다.
물론 그 '감'이란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적당한 blackbox랄까..
그래서 나에게만 통할 뿐, 다른 사람에게 종용할 수 있는 그럴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저마다 혼돈 속에서 숨겨진 질서를 발견하는 비언어적인 방식이 있을 것이다.
늙는 것의 단점은 익숙함과 적응에 대한 선호, 반대로 장점은 데이터의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예측이 굳어지면 새로운 정보를 편향없이 받아들이기 힘들어지지만, 적당히 융통성 있게 잡힌 질서적 모델은 많은 것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마음을 닫힌 계/열린 계 두 버전으로 적절히 스위칭하는 본능 뭐 그런 느낌으로 생각중이다.
특히, '아 또 이러면..' 싶을 때 닫힌ㅡ>열린으로 스위칭하는 경우가 많다. 살짝 마조히스틱하긴 한데, 시의적절하게만 쓴다면 결과적으로는 대체로 내게 이득이 되는 것 같다.
나는 플래그라는 말을 좋아한다. 클리셰, 징크스, 복선 등으로도 불리는 그것.
성인에게는 그 분기점을 스스로 의식할 수 있을 정도의 자료가 매일 쌓인다. 너무 당연해서 눈치채지 못 할 뿐이다. 무의식은 그러한 매 복선을 마치 자연스러운 흐름인듯 번지게 한다.
하루에도 나는 내가 반복되는 하루를 살게 하는 수십가지 패턴을 경유한다. 아침에 꿈에서 깨자마자 그것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변화는 언제나 사소하고 근거없는 시행착오에서 시작된다. 나는 의미없는 시도는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물론 근거는 없다.
모든 것이 배움이고 자료이며, 실패는 부끄러운 것 대신 감사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동생이 내게 자주하던 말 중에는 '성공만 해본 사람이 가장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다'라는 문장이 있으며, '실패하지 않는 삶이 가장 실패한 삶'이라는 아이러니한 격언도 나는 좋아한다.
확신은 나쁘게 말하자면 오만이고, 걱정은 좋게 말하자면 신중이다. 불안은 다른 말로 consideration이다. 모든 느낌은 뒤집기 나름이고, 뒤집었을 때 내게 더 심리적인 이익이 된다면 나는 그것을 종종 채택한다.
이것 역시 나쁘게 보자면 줏대없음이고, 좋게 볼 경우 융통성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느쪽이든 그다지 신경 안 쓴다. 나는 적어도 현실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사실성보다 전략적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대화는 상호 간의 암묵적 합의에 따라 일관적이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 현실에서 행동으로 옮길 때에는 변수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에 팃포탯처럼 그때그때 태도를 뒤집는 편이다. 물론 그것에 대한 타인의 감정적 반응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이런 식으로 관계 문제까지 생각하다보면 여러모로 시도 하나하나에 필요 이상으로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때로는 이를 과감히 무시하고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관계에도 더 좋을 때가 있다. 그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고, 역시 주로 상황 앞에서의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에 의존하는 편이다.
내가 실제 나보다 나 자신을 더 크게 생각하고, 실제 현실보다 내 세계를 더 아름답게 매기는 매 순간마다 세계는 자신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한 보정을 수행한다.
세계 그 자체에는 악의가 없다. 세계는 그저 내가 생각하는대로 보여주며, 내가 행동하는대로 수학적 보편 원리에 따라 진행시킨다.
그렇지 않다는 생각은 아직 나의 무지와 확신이 teachable하다는 암시이다.
세계는 개체의 인식을 한 꺼풀씩 벗겨,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지금의 고통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지금의 행복에서는 어떤 위험을 발견할 것이며, 다음 배움을 위해 무엇을 시도해볼 것인가를 매 순간 새롭게 결정하는 눈.
심지어 운석이 내 위에 추락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그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자유로써 세계와는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
죽음은 내 용기 및 내 세계관에의 믿음에 대한 최후의 시험이 아닐까 하는 망상
자유는 외부세계를 제어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통제불가능한 상황들에 대한 반응, 즉 나의 내부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능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