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1930년대 조선에서 군복무를 했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 경험을 아들이 듣고 기록한 내용임.

출처 :https://www2r.biglobe.ne.jp/kosanhp/kouya_wo_iku.pdf 

아버지는 조선에서의 첫 해(1934)를 대구의 연대본부에 있던 육군 병원에서 보내고

나머지 반년은 대전분원에서 보냈다. 대전 역시 대구와 같은 한국 유수의 대도시이다.

대구와 대전에서 보낸 일년 반은 아버지의 청춘 시대에서 일종의 독특한 광채를 발했던

기간이었다 생각한다. 꿈이 길러진 일년 반이었다고해도 좋을 것이다.

당시의 사진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다 표정이 무척 좋다.

배우는 것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라는 얼굴을 하고있다.


앉아있는 쪽 오른쪽 세번째가 아버지. 앉아있는 열의 오른쪽에 서있는 것이 군의관. 무려 군의관도 젊은 것인가?



독가스 환자의 처치 훈련. 어느 사람이 아버지인지는 불분명하다.






병역 기간이 끝나갈 무렵, 실습삼아 근처에 있는 마을을 진료하고 다녔다.

군의관 1 명, 의무병 4,5 명으로 팀을 구성 해 마을마다 하루씩 진료소를 설치하면서

차례 차례 돌아 다녔다. 아버지는 늘 군의관에게 실력 을 인정받아서

"다음은 네가 군의관 대신 해 봐라"라는 것이 되었다.

다음날 옆 마을에 진료소를 개설했을 때 군의관은 옆에 떨어져 있고 대신 아버지가 진찰했다.

지금이라면 의료법 위반이라고 해서 문제가 될 것 이지만, 당시는 별로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아버지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례는 그 밖에도 있었던 것이다.

진찰 받으러 오는 마을 사람들은 평소 에는 좀처럼 병원에 간 적도 없고,

약을 먹은 적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감기나 어떤 병이든

적당히 비타민제나 해열제를 처방 두면, 직방으로 효과가 있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마을에 '닥터 오쿠무라'라는 이름 이 널리 알려져

아버지는 명의가 되어 버렸다. 약 일주일에 걸쳐 주위를 돌았는데

가는 곳마다 '닥터 오쿠무라 "라는 평판을 얻었다.




왼쪽부터 2번쨰가 닥터 오쿠무라. 그 오른쪽이 친했던 군의관. 군의관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젊다. 




대전역 풍경 (만주파병 환송행사)


대전을 떠나 대구연대로 다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진 어느 날 갑자기

'닥터 오쿠무라'의 면회를 요구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최근 진료하고 다녔 던 마을들의 촌장대표라고 했다.

아버지가 면회소에 얼굴을 내미니까 그 대표는 "마을들이 합동으로 진료소를 만들고 싶으니까,

꼭 의사로 와 달라고"라고 운을 뗐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 버렸다.

"자신은 사실 의사 가 아닌 의무병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좀"이라고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1 시간여를 버틴 끝에 그 사람은 마지못해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날 또 그 사람이 나타났다.

"마을 중학교의 선생님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만" 라는 새로운 제안이었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에 감 동했다. 귀가 솔깃해졌다. 하지만 교원자격이 없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자격이라는 점에서 역시 어려웠다.

그 사람은 "교원 자격은 교원양성소라는 곳에 다니면 얻을 수있어요"라고 말했다.

대구 양성소에서 1 년이 면 자격을 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기다릴 테니까요"라고 까 지 말하는데 다시 거절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완전히 그렇게하고 싶은 기분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그 사람이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이유를 몰랐지만 고마운 이야기였다.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길이 열렸다. 게다가 꿈이 느껴지는 길이었다.

병역기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버 지는 즉시 교원양성소에 입학수속을 밟았다.

입학시험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향의 중학교 졸업 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를 가지고 와서

그것 을 신청서에 첨부하는 것만으로 입학이 허가되었다.


모든 절차가 끝나자 당장 필요한 경비를 형인 카네미츠에게 편지로 요청했다.

교원 양성소나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것은 편지에 쓰지 않았다.

다소 흐릿하게 "쓸데없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래의 목적을 위해 사 용할 거니까."라고만 쓰고

또한 "아버지에게 말해야 겠지만 형이 말하기 쉽고 빠르다고 생각해서

부탁한 것이니 용서하기 바란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