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후 복음통일은 왜 복음사기극이었나?-

For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of Christ: for it is the power of God unto salvation to every one that believeth;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reek.
Romans 1:16 [KJV]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한국교회에서 불편한 진실이 있다. ‘-옵소서’라는 표현을 쓰는 분중에 몇 명이가 과연 명백한 성서적 인식이 있나? 지금 어느 순간 한국교회 어느 순간에서는 동학신앙 사유구조에 교횟말 씌우고, 정결한 신앙인것처럼 복음통일을 주장하고 신자는 ‘아멘’하고 있을 것이다.
복잡하게 세밀하여 신앙적으로 디테일한 문제는 필자는 관심이 없다. 본인만의 독단적 판단도 관심이 없다.
복음으로 남북이 하나가 된다고 한다는 “로직”을 세우면 어떤 순서가 맞나?
북한의 국민이 복음을 만나서 바뀌어서 하나님을 고백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남북이 하나되는 성령 공동체를 기대해야 한다.
즉, 하나님 나라 확장의 차원에서 북한을 생각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 나라 확장이 한국 내부도 포함될 뿐만 아니라, 해외 선교와 동일한 연장선에서 북한을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히 군사정권 한국교회는 이런 인식이 있다. 그 시절의 표현을 빌자면 이러하다.
<한국민족은 신명기적 계약으로 돌아와야 한다>
군사정권 때 한국교회는 의도적으로 ‘한국’을 꼭 끼워 박는데, 이대호는 의도적으로 ‘조선인’타령하고 있다.
어느 신앙공동체에서 그 순간 거기 있었나 없었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을 기준으로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은 한국 내부의 기독교신자에 공통임과 동시에, 세계에서도 공통적일 것이다. 하나님과 한반도가 하나님과 계약관계를 맺는 것이 전제가 돼야, 그리스도의 계절이란 찬양을 꿈꾸는 게 가능해진다.
사실은, 복음통일을 논하는 그 분들에게서 계약위반이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성령계시가 아니라, 조상신계시로 예배드리는 대상도 엉뚱한 방향으로 사실상 바꾸었다. 그러니까 가능하다.
삼위일체 성령공동체로서 교회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성자 하나님을 통해서 성자 하나님을, 성자 하나님에서 성령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에서 성부하나님이 인식돼야 한다.
다시 말해서, 신자 상호간에서 이웃에게서 하나님 형상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삼위일체 성령 공동체로서 교회!!가 이제 동학 신앙이라는 예수 믿기 전에 믿던 신앙과 헷갈리는 노인들은 불편한 것이다. 어느 세월에~~!~
기다리기가 달인인 사람이 아니고,
아! 빨리, 아! 빨리.... 하는 사람들은 다른 신앙이 맞다.
곧장, 동학 마을의 씨족연고자로, ‘환난상휼’ 때의 대동인식으로 간다. 이는 잊어서는 안되는 게 있다. 조상신계시는 신분노예제의 전부 복원이며 <종의 멍에>복원을 말한다. 문제는 그렇다. 동학신앙이란 다른 복음에 치우치는 그 노인들은 학력이 짧아서 이를 보지 못한다.
삼위일체 성령 공동체로서 교회 인식과, 그 세상적으로서 시민공동체를 인식해야, 또 시민공동체에 걸맞게 교회의 권징기능처럼 일탈자를 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학의 민회인식을 교회로 보며, 또 억울한 일이 있으면 참으삼. 동학에 다른 복음 빠진 노인들에도 참으삼!
필자는 말하면 이렇다.
기독교신앙 공동체 1(백인우파 지대)----> 세상적 국민국가관
기독교신앙 공동체 2(기독교좌파)-----> 차별을 극복하는 연대중심의 국민국가관
이를 훌쩍 뛰어넘어서,......
동학마을에 동학꼭두각시 하는 그런 국가관. 다른 복음.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허우대만 잇고, 사실상 아닌 것을 지향하고 있다.
한국교회 복음주의 신자들은 기독교신앙 공동체 1번만을 강조한다.
민중신학교단은 동학신앙으로 기독교신앙 공동체 2번만을 내세운다.
성경의 예수를 믿는 한국인. 특히 미국사회의 보수/진보 구조와 떨어진 쪽은 그 차이가 의미가 없다. 차이를 인식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한국인에게는 백인우파의 그 귀족주의가 무의미하고, 또 인본주의 기독교의 르네상스 인본주의는 문명이 달라서 수입적인 지식일 뿐이라 국민에 공통은 아니라는 말이다.
유럽사를 보면 대부분 국가는 권력을 제한한다.
원불교 김무성이가 서방진영을 착각했다. 1인 지도자의 권력제한 실패만 말하는 데, 노론독재의 1당독재 유형은 서방자유진영이 혐오하는 ‘소련식 지배방식’이다.
용산대통령실 및 매스미디어에 성경의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민주당의 정치선동을 제대로 비판할 수 있다. 과도하게 소련공산당을 동학신앙으로 영접한 씨족마을 기준으로 과도한 자의적 평가로, 미디어를 채우고 있다.
다른 복음에 치우치는 노인들은 아마도 조선시대 권력자 후손일 것이다.
그 분들 무의식에서는 전국이 복음앞에 통일 아니라,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씨족마을 중심의 사회를 그릴 것이다.
그렇게 편하게 나아가는 그 바탕으로는, 그 직계연고자끼리는 다정한데, 그 외부는 황당무게의 절정이다.
더불어 민주당의 입법의 대부분은 그 정치인 씨족연고자끼리는 대단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한걸음만 벗어나면 황당무게 하다. 이 역시도 마찬가지다.
한국교회의 복음이 안 망가졌다면 쉽게 반론했을 것이다.
고의로 망가뜨리길 원하는 동학교단에 교회지도자가 충성맹세한 것은 아닌지 그런 의문까지 든다.
해방신학을 포함하고, 여성주의까지 연결된 그런 동방기독교 다 포함해서도,..... 지금 한국교회는 모든 형태의 성서적 조직신학 밖으로 넘어가서, 원불교 호구짓을 하고 있다.
유신체제 때 좌파 기독교가 했던 표현을 그대로 쓰자. 그 뿌리는 이젠 알거 같다.
기독교인은 예와 아니오! 가 분명해야 한다. 70년대는 박정희를 반대한 신자에게 나온 말이다. 지금 필자는 다시 쓴다. 원불교 일당독재를 반대하는 맥락에서 다시 간절히 성경의 하나님을 구한다.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원불교 일당독재에 쌓인 죄악의 한국국민을 구해주시길. 그 일당독재에 호구가 되고 성경의 하나님을 버린 한국교회의 죄악을 용서해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