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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게이들아?
우리는 세번에 걸쳐서 미국과 소련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봤어.
혹 어떤 게이는 수박겉핥기식으로 썼다고 꽃한송이를 놓고갔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굵직굵직한 사건에 대해 조사해보고 자세히 쓸게.
일단은 큰그림이라도 그려놓으면 우리 게이들이 집에서 좆긁으면서도 어디가서 무식하단 소리는 안들을거야.
잘못된거 지적해준 게이들은 고마워. 다음에 한번 모아서 수정하든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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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소련은 모두 자기들 성장하느라 바쁜 길을 걷고 있었지.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은 대공황 때문에 자기들 똥꼬닦는것도 힘들었기 때문이고,
우리 불쌍한 소련찡은ㅠㅠㅠ 차마 슬퍼서 말을 못하겠어.
무튼 국제사회에서 두 세력은 잠잠히 죽어지내는 듯 했어.
사실 미소가 처음부터 이를 갈며 서로를 증오했던 건 아냐.
미국 루즈벨트(지난시간의 루즈벨트 말고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1933년에 소련을 승인해.
소련의 공업화에 미국도 원조를 아끼지 않았지.
사실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이러한 친소정책은 독일을 견제한다는 명분 하에 이뤄진건데,
독일 패망 후에 소련이 미국의 경쟁자로 급부상하는 여지를 남겨두게 되었어.
무튼 잠시 독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1차대전에서 탈탈 영혼까지 털렸던 독일은 배상금 문제로 등골이 휘어질 지경이었어.
독일에게 호되게 쳐맞았던 프랑스는 "안돼, 안바꿔줘, 돌아가" 하며 독일에게 배상금을 원칙적으로 다 받아먹으려고 했지만,
천조국 성님들은 독일의 경제적 성장과 그에 따른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독일을 지원해줘.
미국의 원조를 받아 배상금을 지불하고 경제성장을 이룬다는 독일의 전략이 바로 구스타프 스트레제만 전략이야.
그러나 1930년대 히틀러 슨상님은 기존의 구스타프 스트레제만 좆까!를 외치고, 군사적으로는 재무장을 시도해.
독일이 식민지로 삼고자하는 지역은 다름아닌 바로 동유럽지역이었어.
동유럽의 쎾쓰한 누님들이 필요했던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식민지로 먹을 수 있는 지역은 대부분 영국과 프랑스에서 뿜빠이해뒀기 때문이야.
결과적으로 1차적인 팽창의 목적은 동유럽일 수밖에 없었지.

1939년 9월 17일, 독일은 드디어 러시아 성님 뒤통수를 오질라게 후려쳤던 폴란드를 침공해.
그래도 약속은 약속인지라 독소불가침조약에 의해 폴란드의 서부지방만을 장악하지. 동부는 소련이 뿜빠이해먹은거야.
이때 독일은 탱크를 앞세워 중심으로 진격한 후 기계화보병사단과 경무장보병을 출격하는 전격기습작전Blitz Krieg을 창시해.
또 공군을 통해 적의 후방을 초토화시키는 천조국스러운 전술도 바로 이때 독일이 처음 써먹게 되지.
놀라자빠진 영국과 프랑스가 폴란드의 독립을 천명했지만 립서비스였지 할수있는게 없었어.
프랑스는 나름 대비를 한답시고 1차대전 때 쳐맞았던 기억 때문에 마지노선을 구축해놓았지만
거꾸로 이런 마지노선의 구축은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지역에 대한 독일로부터의 구원을 영영 포기한다는 증거였어.
결국은 독일이 벨기에를 우회하여 프랑스를 침공했으니 헛수고였던 셈이지.

동부전선 폴란드를 씹발라버린 히틀러는 다시금 프랑스 침공을 준비해.
원래는 1939년 11월에 침공하기로 했었는데 1940년 5월로 침공계획을 연기하며 폴란드 주둔 부대를 서부전선으로 이동해.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우회하여 마지노선을 피해 프랑스를 침공해.
당해 6월에는 프랑스는 이미 괴멸상태에 이르고, 파리가 함락돼.
이 때 비쉬Vichy 괴뢰정권은 독일에 항복하는 대가로 프랑스의 괴뢰정부로 활동하게되지만,
빡친 샤를드골 장군이 영국으로 망명하여 자유프랑스군을 결성해.
무튼 이후로도 독일은 스웨덴, 스웨스, 이베리아 반도를 제외한 전유럽 지역을 석권하게 돼.
존나 재밌는건, 독일의 우방이었던 무솔리니 이탈리아군은 수도까지 함락당한 프랑스에게도 탈탈 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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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서부전선까지 마무리되었고 독일은 1940년 7월에 소련을 침공하기로 계획해.
어 그런데 이 병신같은 우방새끼 무솔리니가 북아프리카 프랑스 식민지에서 계속 털리는 거야ㅠㅠ
여기에 롬멜 장군을 파견하고 이리저리 전열을 가다듬다 보니 소련침공 계획은 42년 6월까지 미뤄졌지.
자 지지난 시간에 스탈린은 독일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를 더 경계했다고 했었지?
그 병신같은 의심증이 바로 소련을 여기서 좆되게 만들어.
소련군 정보기관이 스탈린에게 여러차례 독일의 소련 침공계획을 보고했는데도 스탈린은
"아 그거? 그거 시팔 영국이 흘린 역정보여"하고 씹어버리지.
다시말해 스탈린은 독일의 침공에 대해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었어.
이는 나중에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 때 스탈린이 고인능욕을 당하게 되는 결정적인 실책이 돼.
무튼 독일의 침공 초기 3개월간 소련은 무려 보유 병력의 절반을 읽게 돼(...)
1941년 가을에는 독일이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키예프 등을 점령하지만 소련은 내륙으로 후퇴만 해가지.

자 지금까지 독일-소련의 구도를 봐왔으니까 일본-미국의 구도를 살펴볼까?
당시 아시아에는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반도를, 영국이 말레이시아와 버마, 인도, 중국남부를 차지하고 있었어.
일본이 이러한 유럽 열강에 도전하여 아시아에서 세력을 확대해나가고 있었지.
따라서 미국은 일본을 견제해야할 필요성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일본에 경제적 제재조치를 단행하자
일본은 1941년 12월 7일에 진주만을 기습공격해.
천조국 성님들은 빡이 칠대로 쳤고, 2차대전에 참가하게 돼.
아시아태평양 미군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은 오세아니아로 철수하였고, 영국 또한 일본에 패하여 싱가포르를 상실해.
이에 따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과 소련이 동맹을 맺게 되었고, 1942년에 미국이 이 동맹에 편승하게 돼.
그러나 전쟁 초기와는 달리 장기적으로는 일본이 절대 미국을 이길수가 없는 전쟁이었어.
미국이 1943년~45년간 건조한 항공모함이 130척에 이르는 반면, 일본은 15척의 항모만을 보유하고 있었거든.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에게 역전하고 일본군은 본토까지 몰리게 되지.

한편 유럽 전선에서도 소련 성님들은 이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기 시작했어.
1942년 9월, 독일은 소련의 보급로인 스탈린그라드를 공략했지만 실패하고, 1943년 말까지 소련은 독일 점령지를 하나하나 탈환하기 시작했어.
스탈린은 이러한 전세 역전 도중에 연합국에게 프랑스 해안에서의 제2전선 형성을 주장하지.
왜냐하면 그당시에 유럽에서 본토가 탈탈 털리고 있던 나라는 소련 자신이었거든ㅠㅠ 참 기구한 운명이야.
1943년 11월, 미국 루스벨트-영국 처칠-소련 스탈린이 이란의 테헤란에서 회담을 가져.
이때 스탈린의 노르망디 전선 형성 요구가 허가되어 1944년 6월, 연합군은 드디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하지.
뒤이어 1944년 말에는 프랑스를 탈환하기도 하는데, 연합국은 영국까지 망명가서 프랑스 독립을 외치던 샤를 드골을 무시하고
새로운 정부를 형성하고자 해(이는 나중에 샤를 드골이 반미정책을 펼치는데 기여를 하지).

1945년 5월에 이르러서는 미영소를 대표하는 세 사람이 얄타에서 회담을 갖는데,
미국과 영국은 소련에게 폴란드의 이권을 넘기는 대신에, 독일이 항복하고 3개월 내에 일본에 선전포고할 것을 요구해.
이 때만 해도 정말 병력 한명한명이 아쉬웠기 때문이지.

자 그런데 이 시기에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뇌일혈로 사망하게 돼. 당시 유일하게 미국에서 4선이나 해먹었던 대통령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
독일 견제하는 데 있어서 소련을 파트너로 여겼던 루즈벨트와는 달리 트루먼은 소련을 굉장히 경계해.
트루먼은 이전의 루즈벨트의 대소정책을 폐지하고 적백내전에서 백군을 지원하던 1920년대의 대소노선으로 회귀했어.
또 반공산주의 노선을 공고히 하였지.
이러한 트루먼의 갑작스러운 대외정책 변화는 여러가지로 설명을 할수가 있어.
일단 첫째로는 소련이 대독전쟁을 수행하면서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미국에 위협이 될만큼 거대해지고 있었고,
또한 대통령 루즈벨트가 죽으면서 부통령인 트루먼 자신이 루즈벨트와 차별화될 수 있는 어떠한 보여주기식 전략이 필요하기도 했어.
무튼 이러한 정치적인 변혁을 거치면서도 독일은 1945년 5월에 패망하게 돼.

이윽고 전쟁이 거의 끝날무렵이 되자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미영소의 지도자는 포츠담에서 회담을 가져.
소련은 원래 동유럽에서의 영향권만 확보하고 끝을 내려했는데,
트루먼은 독일을 다시 무장시켜서 소련을 견제하고자 하지.
이러한 과정에서 유럽은 승전국들에 의해 갈기갈기 영향권이 마음대로 형성되어 버려.
루즈벨트 얄타회담 참석할 시절만 해도 소련에게 일본전에 참전해줄 걸 빌고 또 빌었었는데,
회담 중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 즉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트루먼은 스탈린에게 고자세로 나가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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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던 중에 일본에 원폭이 2개 떨궈지게 되면서 일본도 무조건 항복을 하게 돼.
소련은 명분이라도 찾고자 대일 선전포고를 하게 되지. 원폭 때문에 초토화된 일본에 선전포고라니 나름 잇속을 챙길만큼 챙긴 셈이야.
왜 일본에만 원폭을 떨구고 독일에는 떨구지 않았느냐? 유럽 응딩이 빨아주는 미국 OUT! 할수도 있겠지만
이건 단순히 시간적인 선후관계야. 독일이 패망한 후에 원폭실험이 성공했고 그리고나서 일본에 원폭이 투하된 거지.
스탈린은 정신없는 틈을 타서 사할린과 쿠릴 열도, 그리고 한반도에까지 팽창하려했지만 미국의 발빠른 대처로 모두 제한돼.
무튼 이러한 정신없는 2차대전이 끝나고나서 가장 큰 피해를 본건 아무래도 소련이었어.
유럽대륙에서는 소련이 거의 단독으로 독일과 전쟁을 수행했기 때문이야.
당시 소련은 2천만명 이상의 인명피해, 1700여개의 도시가 소멸하게 돼. 산업기반의 피해 또한 매우 심각했지.
그렇지만 전승으로 인해 소련의 국제적 지위는 하늘높은 줄 모르고 올라있었어.
또한 그리스를 제외한 중동부 유럽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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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사는 자세히 쓰자면 너무너무나도 길어.
대략적인 부분만 훑고 미소가 어떻게 협력했고 경쟁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다음번엔 전후질서에 대해서 알아볼게
읽어줘서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