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글 소련의 형성 http://www.ilbe.com/666862241
안녕 오늘도 잘잤니 게이들아?
난 짤게에 이 글이 파묻혀서 영원히 빛을 못볼줄 알았는데
오늘 아침부터 폰으로 침질질 흘리며 일베하면서 존나 익숙한 제목의 글이 일베와있길래 놀랬어.
댓글로는 욕 엄청 해놨더니.. 츤데레같은 자식들 ㅠㅠㅠ
학교 망신시키는 것 같아서 학교를 완전히 밝히긴 그렇고 SKY 중의 하나야. 필요하면 인증들어갈게.
외대노어과 게이도 있고 하여간 내 글이 성에 안차는 게이들도 많을거라 생각해.
나도 최대한 많은 게이들이 보고 대충 흐름을 파악할수 있게 쓰려했기에 많이 성에 안차는 부분이 있을거야.
언제든 지적을 해주면 내가 더 공부하고 알려줄게. 지적해준 게이들 고마워.
앞으로 여건이 되면 1990년대 초반 소련의 소멸까지 계속 다룰 예정이야.
어차피 난 일베밖에 할게 없으니 쭉쭉쭉쭉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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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1900년대 초반은 바야흐로 제국주의 열강들이 해외식민지를 확보하는데 눈을 시뻘겋게 뜨게돼.
이러한 제국주의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존.A.홉슨이란 사람이 있어.
그런데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이란게 말이지, 어느정도 좌파적인 성향을 지닐수밖에 없어.
제국주의에서 제국이란, 타국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고 타국의 주권을 무력 등으로 침탈할 능력이 있는 강대세력이야.
황제가 통치하는 제정(帝政)이 아니라 민주공화정이어도 타국으로 영향권을 확대하고자 하면 제국이고, 제국주의 정책인거지.
따라서 가치관이 들어간 "제국"과 가치관이 들어가있지 않은 황제가 통치하는 순수한 의미로서의 "제국"은 구분할 필요가 있어.
아무튼 홉슨상님의 제국주의 분석은 어렵지 않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가진 자본가는 노동자(가변자본)보다는 설비(고정자본)에 투자하고,
이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낮은 수준에 머문다는 거지.
설비에 투자를 졸라 많이 하니까 오나홀은 존나 많이 나오는데
노동자들이 아무리 돈을 벌어도 그걸 살수가 없으니까 과잉저축, 과소소비 현상이 발생하지.
그러면 그렇게 남은 물건을 어디다가 내팔것인가?
국내의 금융자본가, 군수사업가, 수출운송업자 등의 직종은 이익이 생겨나면 그게 사하라사막이라도 팽창하고자 해.
"기업가는 이윤이 추구되는 곳에서는 악마와도 교역한다"는 말이지.
이러한 자본가들은 국내에서 독점자본을 형성하고, 해외로 팽창하고자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와 결탁하게 돼.
군대의 힘을 빌어 타국을 식민지로 삼고 거기서 수출시장을 마련하는거지.
레닌의 제국주의 분석도 과정면에선 다르지 않아.
다만 홉슨상님은 소득재분배 등을 통한 국내의 소비 진작으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이 가능하다고 봐. 이는 나중에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로 이어지지.
그런데 레닌은 피해의식에 찌든 좌좀새끼들마냥 이러한 자본주의의 해외팽창은 불가피하고,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간의 팽창전쟁은 피할 수 없다는 거지.
레닌의 이런 현상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사회주의 혁명이란거야.
지난 시간에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해 질문이 들어왔는데,
소련에서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분석해보자면 정은 부르주아지 중심의 지본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이러한 부르주아지 자본주의 사회에선 프롤레타리아트가 착취를 받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지.
그러면 합의 결과로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해.
역사는 이러한 정-반-합, 즉 전제상황-모순상황 발생-사회변혁을 거친다는 거야. 이 시대의 합이 다음 시대의 정이 될 수도 있는거고 말이지.

자 그럼 다시 소련의 상황으로 넘어가볼게.
소비에트 정권 초기에 레닌은 국내외의 도전에 직면해 있었어.
임시정부가 여러 경쟁세력의 도전에 직면해있었던것과 마찬가지로, 사회분위기 자체가 혁명적이다 보니 소비에트만이 유일한 혁명세력이라 할수는 없었지.
또한 제정러시아로 회귀하고자 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가 없었어.
러시아가 이렇게 혁명상황에 있고, 지도부가 계속해서 제정-임시정부-소비에트로 밥먹듯이 바뀌다보니까
이틈을 타서 마치 7시지방 폭도새끼들마냥 러시아 지배하에 있던 민족들이 독립을 시도해.
또 지난 시간에 러시아가 소련이 되기 전에도 강대국이었다고 말해줬었지?
이러한 강대국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외세들도 이러한 반소비에트세력에 개입하게 되지ㅠㅠ 불쌍한 러시아찡
소비에트 정권은 이러한 정권을 안정시키기까지 무려 10년 이상이 소요되었지.

소비에트정권은 1917년 혁명 이후 1921년까지 4년간 표면으로 내세운게 바로 "전시공산주의 체제"야.
레닌은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의장자리에 자기가 앉고, 외상에는 트로츠키, 소수민족담당에는 스탈린을 앉혀.
어? 스딸린 슨상님 직함이 허접해보인다고?
당시에 우크라이나, 폴란드, 핀란드,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가 모두 러시아의 영향권으로부터 독립하게 돼.
이러한 독립으로 인해 당시 러시아 전체인구의 26%가 감소, 영토의 27% 상실, 철도망의 27% 상실, 산업시설의 1/3(철강 73%, 탄광 75%)가
사라져버린거지.
따라서 소수민족담당 직함은 절대 허접해보이는 게 아니었지.
무튼간에 전시공산주의 체제 소비에트 정권은 대내적으로는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제정러시아가 1차대전으로 싸질러놓은 똥을 처리하고 연합국으로부터 소비에트정권을 인정받고자 했어.
대내적으로는
1) 모든 기업과 공장을 인민위원회가 관리
2) 모든 은행은 국유화
3) 모든 해외교역은 국가가 독점
4) 새로운 사법체계(인민재판) 창설
5) 교회 재산 몰수 - 이건 잘했盧? 이시대나 저시대나 이나라나 저나라나 교회새끼들 크는 건 다름없구만
6) 그레고리력 채택
7) 반혁명세력(반동세력) 숙청
8) 비밀경찰Cheka - 나중에 소련시절 KGB가 돼
9) 모든 토지의 국유화
10) 배급제 실시
등의 정책을 펴.
대외적으로는 과도한 조건을 제시하는 독일과 단독으로 정전협정(Brest-Litovsk 협정)을 맺게 되지.
러일전쟁으로 인해 동부에서는 일본에게 털리고, 서부에서는 독일에게 털리던 상황이었으니 어떻게 전쟁부터 끝내야 국내안정이 가능했던거지.

캬 근데 소련역사가 존나게 재밌으면서도 존나게 불쌍한게, 이 상황에서 또 적백내전(1917년 10월)이 발생하게돼.
자 적백내전이 무엇이냐하면, 아까말했지?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은 이후 대내적으로 혁명노선이 다른 멘셰비키, 제정러시아 보수주의세력, 외국세력이
개입하여 소비에트 정권에 대항했다고. 이런 대항이 내전으로까지 확전이 되어버린거야.
여기서 적군은 붉은 군대란 뜻으로, 볼셰비키 소비에트 정권이야.
백군에은 멘셰비키와 보수세력, 그리고 러시아 혁명을 저지하고자 하는 유럽의 연합국 군대가 합류하게 돼.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를 제외하면 백군이 우세했어. 한때 시베리아 대부분 지역을 점령하기도 했고,
볼셰비키는 사실상 포위상태까지 이르게 되지ㅠㅠ
그런데 백군은 적군처럼 조직화된 군대가 아니라, 마치 의병과 비슷한 형태였어.
이 시기 전쟁상이었던 트로츠키찡이 또한번 좆을 휘날리며 뛰쳐나가.
트로츠키를 중심으로 조직화되었던 적군은 규율과 전열을 정비하면서 점차 백군에 대등한 수준으로 대항하게 되지.
1918년 여름, 레닌은 잔존해있던 니콜라이 2세 왕가 일족을 모두 처형해버려.

캬 이런 상황에 근데 시팔 폴란드가 덜컥하고 소비에트 정권에 전쟁을 선포한거야. 이게 폴란드-소련 전쟁(1919년 2월)이지.
좆같은 새끼들이 러시아가 흥할땐 러시아 성님성님하며 응딩이만 빨다가
러시아 상황이 좆같이 되고나니까 7시급 뒤통수를 후려갈겨버린거야. 물론 폴란드 단독이 아니었어 이 전쟁은.
명분상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지방의 영유권 다툼이었지.
연합국도 같이 개입해서 러시아의 곳곳을 점령하거나 백군 세력을 지원하지.
일본은 무려 6만명을 투입하여 시베리아 동부 대부분을 점령하기도 해.
그러나 소련은 불굴의 붉은 투지로 미하일 투프쳅스키 장군을 필두로 하여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가까지 진격하여 평화협정을 얻어내지.

자 지금까지 정신없이 씨부려온거같으니 정리를 해보자.
혁명 이후 러시아땅은 적백내전, 연합국의 개입, 폴란드의 선전포고, 변방(발트3국)국의 독립로 개판오분전이 되어버리고
1917년부터 1921년간 소비에트 정권은 전시공산주의 체제를 선언해.
이러한 좆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소비에트 정권이 버틸 수 있었느냐?
그 이유는 바로 전국적인 농민의 지지와 러시아 핵심지인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 등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러시아의 인적/물적 자본의 핵심지역을 통제하고 장악하고 있었던거지.
사실말해 그 두 도시 지역을 제외한 러시아는 척박한 아이스링크에 불과했거든.
또 백군 세력에 개입한 보수주의자들이 차르 중심의 구질서로 복귀하고자했기 때문에 백군은 국민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어.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드디어 1922년,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USSR,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가 선포돼.
핀란드, 폴란드, 발트3국, 루마니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의 영토를 상실해서 이전 러시아보다 작은 영토에다가
시베리아 일대와 사할린은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거대한 제국임에는 틀림이 없었지.

(이런 NEP가 아냐ㅠㅠ)
레닌은 내전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러시아를 재건할 필요가 있었어.
애초에 자신들이 혁명을 일으킨 것 자체도 인민들 밥먹여살리고자 하는게 명분이었는데
소비에트 수립하고 나니 어라 시발? 러시아 본토가 완전히 초토화가 된거야.
제1의 목적이 경제의 재건이었지. 전세계 사회주의 혁명 완수 따위는 신경쓸때가 아니었어.
따라서 레닌은 NEP(신경제정책, New Economic Policy)를 추진하게 돼.
레닌도 자본주의의 무시무시한 생산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지.
레닌은 소규모 사기업 활동을 허용하고, 농업에서도 고용노동을 허용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변증법적 유물론이 존나게 소련에겐 적용이 안되는거야 따지고보면.
테제Thesis 정, 즉 전제 상황이 부르주아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여야하는데 혁명 전 러시아는 결코 그런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었거든.
전제상황을 자기 좆대로 설정해버린거지 다시말해서.
그렇게 자본주의를 거친 경험이 있으니 소련의 산업능력은 혁명 이전과 거의 다름이 없었어.
전쟁과 내전으로 더 피폐해진 상황이었지.
(스탈린, 레닌, 트로츠키 동무. 스탈린 리즈시절 ㅍㅌㅊ?)
자 이러한 NEP 정책을 두고 소련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발생하게 돼. 큰 구도는 바로 트로츠키 대 스탈린 권력투쟁이었지.
트로츠키파는 NEP? 이 반동분자 새끼들. 내가 탱크를 몰고가서 네놈들 대갈통을 부숴버리갔어!!!! 하는 세력이야.
세계혁명론을 끝까지 주장하며 해외의 공산주의 혁명활동을 지지해야하고, 국내적으로는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해야한다고 믿었지.
이러한 골수 사회주의분자에게 자본주의 성격이 짙은 NEP는 타도대상이었어.
스탈린파는 아따 성님 지금 러시아땅을 보소. 지금 우덜만해도 굶어뒤질것 같은디 세계혁명은 무신 세계혁명이오? 하는 세력이야.
소련의 정권안정이 우선이고, 소련 이외의 다른 국가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잠시 중단하고 부르주아와 일시적으로 타협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스탈린의 이런 주장을 1국사회주의라고 해. 그러한 방편으로 NEP에 찬성하였고, 소련의 재건설을 먼저 추진하자는거지.
이러한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게 스탈린이고, 이후 트로츠키는 영향력을 잃어만가지.

스탈린이 정권을 잡은 이후 1928년부터 1941년까지 중공업 우선의 5개년 산업화(!) 정책을 실시해.
국가가 경제를 통제하며 발전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호기이었어.
그런데 중공업 우선정책이다 보니 화학/기계/자동차/항공/전기 등의 군수사업에만 치중하게 되고,
인민의 생활수준과 밀접한 산업은 등한시되다시피 했지.
인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스탈린에 저항했던 500만명 가량이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수용돼ㅠㅠ
또한 소련 영토의 70%가 국영농장(사프코즈)화되고, 농민들은 집단농장(콜호즈)로 편입돼.
타국들은 이 시기에 대공황의 시대에 돌입하게되는데, 이시기 소련은 공업화를 거치고 있어서 대공화을 피해가.
생산 자체를 하기가 힘든데 과잉생산이 어딨노ㅠㅠㅠ
이 시기 서방의 학자들이 소련을 장밋빛으로 그리기도 하지.

그런데 같은 1920~30년대에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가 득세하여 소련 공산주의에 위협을 가해.
전체주의는 서방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 모두를 거부하는데, 때문에 피폐한 민주주의 혹은 잔인한 볼셰비즘으로 불리기도 해.
무튼 스탈린은 다시금 국내 권력기반을 튼튼히 해야겠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이윽고 1930년대 대숙청시대가 열리게 되지.
1934년 12월, 공산당 레닌그라드 시당의 세르게이 키로프라는 게이가 극장에서 암살된 채로 발견돼.
스탈린은 이 암살사건을 빌미로 자신의 공업화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일으키지.
잔존하고 있었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모두 검거되어 처형되었고, 기존의 볼셰비키 지도자들 또한 모두 숙청되었어.
또한 소련 군부 내에서도 핵심지도부 7명 사령관이 처형되었지.
다시말해, 스탈린을 제외한 1세대 혁명세력은 거의 사라졌어.
1939년 18차 공산당대회가 소집되었을때 잔존한 1세대 볼셰비키는 스탈린 측근은 몰로토프를 비롯한 20%에 불과했지.
5년마다 한번식 당대회 할때마다 인사나눴는데, 1939년 당대회땐 "오 넌 살아있었구나"하면서 인사하게 된거지.
"레닌의 그림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고도 해.
이후 1952년 스탈린 사망때까지, 스탈린은 공산당대회도 다시는 소집하지 않았고, 당내 토론도 사라지게 되어버려.

자 이제 국내에서는 권력기반을 확보했으니 대외적으로 위협세력을 막아야겠지?
1930년대에는 나치 독일이 미친듯이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로 팽창해나갈 때였어.
영국과 프랑스조차도 히틀러의 지속된 팽창야욕을 지켜볼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스탈린은 약간 피해의식 같은게 있었어.
러시아가 워낙 유럽에서 강대한 세력이다보니 영국과 프랑스의 견제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던거지.
실제로 유럽 다른 국가들이 소련 적백내전 시기에도 소비에트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백군을 지원했고말야.
스탈린은 처음에 영국과 프랑스가 독소 전쟁을 부추긴다고 의심하기 시작했어.
따라서 이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나름 계산한 것이 독일과 연계하는 것이었지.
사실 영프 입장에서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건 독일이었는데 말야.
스탈린은 1939년 8월 23일에 독일과 협상하여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해버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려 계획한 것이 바로 그 다음달인 9월 1일이었고,
소련이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묵인해주는 대신에 폴란드 땅 절반과 발트3국을 할양받기로 약속했지.
1941년, 히틀러가 스탈린의 뒷통수를 땅크 주포로 후려버리지.
바르바로사 작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해버린거야.
소련은 숙청으로 인해 군 지도부가 마땅하지 않았고, 여러모로 전쟁의 준비가 안되어 있었어.
또한 스탈린의 1국사회주의로 인해 타지역 공산당의 지원을 무시했으므로, 전세계 공산주의 세력의 지지도 받을수가 없었지.
무엇보다도 스탈린 자신은 독일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은 영국과 프랑스가 독-소 간의 관계를 이간질하려고 수를 쓴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대비를 할 수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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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너무 길어졌네.
기다려주는 게이들 있는데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