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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 1탄] 신장의야망 창조pk로 보는 임진왜란 참전 유명 일본장수 http://www.ilbe.com/4916431071

[일본역사 2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 일본을 통일 시켰을까? http://www.ilbe.com/4916849321

[일본역사 3탄] 일본 전국시대 세키가하라 전투에 대해서 알아보자. http://www.ilbe.com/4923020697

[일본역사 4탄] 일본 최강의 기마부대 다케다 신겐에 대해서 알아보자. http://www.ilbe.com/4938073045

[일본역사 5탄] 일본 근대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1부-  http://www.ilbe.com/5163359946

[일본역사 6탄] 일본 근대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2부- http://www.ilbe.com/5171177177

 

1,2부 안본 사람들은 먼저 보고 오길 바래.

자료 출처 : 료마전(2010), 야에의벚꽃(2013), 영웅들의선택

 

< 도움 되는 단어 해설 >
텐노 : 일본의 왕. 실질적인 권한은 없으나, 형식적으로 국가 중대사는 텐노의 허가를 통해야만 진행이 가능하다.
쇼군 : 내각제의 총리와 같은 개념. 실질적인 일본의 통치자. 1603년 부터 에도막부가 일본을 다스렸다.
막부 : 쇼군이 통치하는 봉건주의 체제의 국가.
다이묘 : 각 지방의 영주들. 쇼군의 재가를 받은 자들만 각 지방의 영주를 다스릴 수 있었다. 에도막부에는 총 295개명의 다이묘가 있었다.
: 다이묘가 다스리는 지역을 말한다.
쵸슈번 : 현재의 야마구치현에 해당. 에도시대에는 모리가문이 통치 하였다.
사츠마번 : 현재의 가고시미현에 해당. 에도시대에는 시마즈 가문이 통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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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10월14일.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스스로 정권을 조정에 이양하는 대정봉환 을 시행한다.

이제 일본은 전쟁에서 벗어나 서양열강에 대항하는 국가로 거듭날 거라고 사카모토 료마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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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봉환의 소식을 들은 쵸슈,사츠마번의 지도자들은 분노한다.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세계는 막부와의 공존을 통한 일본의 개화 가 아닌 막부를 무너뜨리고 완전히 새로운 일본을 만들려 하였기 때문이다.

조정을 손안에 쥔 그들은 전국의 모든 번에게 막부 타도의 밀약을 선포할 계획을 세웠는데 료마, 그리고 쇼군 요시노부의 움직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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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까지 도쿠가와 가문에 충성을 맹세한 다수의 무사들은 대정봉환을 시행하게 한 료마를 향해 강한 분노를 표출하였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올랐던 교토에는 다시 피바람이 불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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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

그 무렵 사카모토 료마는 '신정부강령필책(新政府綱領八策)' 을 집필한다.

제1항천하의 유명한 인재를 모셔와 고문으로 삼는다.

제2항유능한 제후를 등용하여 조정의 관직을 하사하고 현재 유명무실한 관직을 폐지한다.

.

.

.

제8항황국의 현재 금은의 물가를 외국과의 평균에 맞춘다.

이는 새로운 정부 설립을 위한 정치 강령으로서, 메이지유신 정부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목표는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전국 번의 다이묘로 이루어진 대표회의를 구성하여 번주 회의를 이끄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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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사츠마,쵸슈번 세력... 그리고 막부 세력... 양 세력에게 미움을 산 사카모토 료마는 결국 교토오미야(近江屋)란 여관에서 정체모를 자들에 의해 살해 당한다.

이때 사카모토 료마의 나이는 불과 33세 였다. 그를 살해한 세력은 아직까지 미스테리로, 크게 3개로 추정하고 있다(미마와리구미가 가장 유력하다고 함).

 

미마와리구미(見廻組) : 교토수호직을 역임한 아이즈 다이묘 마츠다이라 카타모리 의 부하들이 주축이 된 교토 치안유지 집단.

신센구미(新選組) : 교토수호직을 역임한 아이즈 다이묘 마츠다이라 카타모리 가 고용한 교토 치안유지를 목표로 하는 집단.

사츠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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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쵸슈번이 생각지도 못한 대정봉환 이후,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사임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고기도 씹어 먹던 놈이 먹는 것처럼, 250년간 일본을 지배해왔던 막부세력은 차근차근 신정부 체제를 적응해 나아가며,

막강한 권력으로 다이묘들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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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12월 9일.

이에 분노한 쵸슈,사츠마번은 오오쿠보 도시미치를 중심으로 조정을 움직여 '왕정복고 쿠데타' 를 일으킨다.

사츠마번의 병력으로 텐노의 어소(御所)와 교토를 장악하고 텐노를 설득시켜 칙령을 내린다.

이로서 막부는 폐지되고 신정부가 수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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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는 모든 관직에서 사임할 것을 명함과 동시에, 도쿠가와 가문의 직속영지 800만석을 반납한것을 요구한다.

그는 막부의 영지를 반납하는 것은 거부했으나, 신정부의 요구에 순순히 복종할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그는 아무런 저항없이 오사카 성으로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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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세력(사츠마,쵸슈번) : "이제는 우리뜻대로 개혁을 이룰 수 있겠지?"

그러나 295명의 다이묘들 대부분이 막부를 없애는 건 결국 자신들도 배척하기 위한 수순이 아닌가 의문을 갖게 되어, 강력하게 항의하게 된다.

1867년 12월 24일.

결국 신정부세력은 다이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신정부에 참여하는 것을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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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쿠보 도시미치 : "이제 설령 사츠마 뿐만이라도 일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사츠마번은 도쿠가와 막부 세력과의 전쟁의 발단을 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폭동공작을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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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7년 12월 25일.

도발에 넘어간 쇼나이번(庄内藩-에도막부에 우호적인 번) 에도에 있는 에도(동경)에 있는 사츠마번 저택을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츠마번 저택을 침략당하게 된 신정부군은 무력으로 막부를 토벌할 대의명분을 얻게 되어 차근차근 전쟁 준비를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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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응한 막부세력은 교토 봉쇄를 목적(텐노를 자기들 손에 얻기 위해)으로 출병을 개시한다.

막부세력에 동조하여 아이즈번(+신센구미) 그리고 구와나번 이 교토로 진격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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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나온 개틀링 포)

 

1868년 1월 3일.

막부세력과 신정부세력간의 보신전쟁(戊辰戦争) 의 시작을 알리는 도바 후시미의 전투(鳥羽・伏見の戦い) 가 발발 한다.

막부세력은 15,000명, 신정부세력은 5,000명으로 군대의 병력은 3:1로 열세 였지만, 미녜총과 엔필드총으로 무장하고,

암스트롱 곡사포와 개틀링 포를 보유한 신정부세력은 전투를 압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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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4일.

정세를 관망하던 조정은 신정부세력이 전투에서 우세해지자 신정부세력에게 니시키노미하타(錦の御旗) 를 선사하였다.

니시키노미하타는 당시 일본의 국기 였으며, 가마쿠라막부 때부터 조정에 대항하는 세력을 토벌할 때 관군이 사용하게 하였다.

즉 신정부세력은 조정의 권한을 받은 관군이며, 막부세력은 조정에 대항하는 적이 되었음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이다.

(막부세력이 먼저 교토로 진격한 것도 대의명분으로 삼기에 충분하였다) 

 

이에 반란군이 된 막부세력은 사기가 떨어졌으며, 여기저기서 탈주자가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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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6일.

그때까지만 해도 막부세력은 병력에서 우세하였으며방비가 튼튼한 오사카성에서 농성을 하면,

막부세력에 우호적인 세력들이 원군을 청해 올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쟁을 관망하던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조정의 적이 되었다는 시점에서 전투는 이제 끝났다고 보고 오사카성을 탈출하여, 에도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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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막부세력과 프랑스는 돌아온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재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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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에도로 돌아간 요시노부는 스스로 2개월간 근신을 한다.

 16살 무렵, 14대 쇼군에 취임이 되느냐 마느냐(요시노부는 15대 쇼군)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요시노부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천하를 취하는 것 만큼 귀찮은 일은 없다" ... 과연 요시노부는 겁쟁이였을까? 아니면 내란을 최소화 하기 위해 스스로 자멸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이는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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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군은 아리스가와노미야 타루히토 친왕(有栖川宮熾仁親王)을 총독으로한 동정군(東征軍)을 편성하고,

도카이군(東海道軍)·토산도군(東山道軍)·호쿠리군(北陸道軍) 세 방향으로 에도를 향해 진군했다.

그들이 진군할 때는 관군임을 상징하는 니시키노미하타가 있었다.

 

 3월 15일.

신정부군은 에도성 총공격을 감행할것을 계획했다.

그러나 내란이 조약 국가들과 무역에 악영향이 될 것을 우려했고, 영국 공사 해리 스미스 파크스(Harry Smith Parkes ) 는 신정부에게

에도 총공격의 중지를 요구했다. 외국과의 좋은 관계가 필요한 그들은 에도 총공격의 계획을 중지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들 앞에 막부의 대표로서 찾아온 이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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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 가이슈(勝海舟)

막부의 고위관리이자 사카모토료마의 스승으로도 알려진 그는, 신정부군의 사이고 다카모리와 회담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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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미토번으로 돌아가 은거한 후 근신한다.

2. 저항하지 않는 막부세력에 대해 용서를 받아줄 것.

3. 무기는 일부를 남기고 모두 신정부군에 넘긴다.

 

이 조건을 지켜주면, 에도성을 그대로 넘겨줄 것이며 하나라도 지켜주지 않을 경우 에도는 피의 바다가 될것이라 말한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모두 조건들을 모두 허가하였고, 이 시점에서 마침내 에도막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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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때... 근신 처분을 받아, 아이즈번으로 돌아간 前교토수호직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는 '군사개혁' 을 실시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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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에서 계속.

 

 

 

<3줄 예약>

1. 료마의 대정봉환으로 인해, 양세력은 불만을 가졌고 결국 어떤? 세력에 의해 암살당한다.

2.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정세를 잘 읽는 자인가? 아니면 단순한 겁쟁이인가?

3. 막부세력의 저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