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www.ilbe.com/138160767
2편 : http://www.ilbe.com/138188761
3편 : http://www.ilbe.com/138197403
4편 : http://www.ilbe.com/138829760
5편 : http://www.ilbe.com/138884222
6편 : http://www.ilbe.com/140049483
7편 :http://www.ilbe.com/143723921
그리고 우정호 선수 명복을 빈다. http://www.ilbe.com/145037464
진짜 다녀왔는데, 한 번이라도 말 섞어보고 싶은 프로게이머 및 관계자들을 눈 앞에서 볼 수 있었어.
그런데 거기서 신나서 말 한 번 섞어본다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부의금만 내고 왔다.
그리고 한 번 보강해서 써볼까 했던 장민철편은...
선수 본인의 요청으로 안 하게 되었다.
아무튼 각설하고 이번에는 임재덕이야기.
스타2 종족별로 최강자를 뽑는다면 누가 꼽힐까?
우승횟수로만 하면 테란 정종현 저그 임재덕 프로토스 장민철.
물론 순수 경기력과 포스에선 바뀔 수도 있겠지만 거둔 성과와 상금으로 본다면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런 기록을 가진 임재덕은 서른 하나.
임요환이 늘 주장하던 '30대 프로게이머는 가능하다'는 임재덕에 의해 실현되었지.
현재 시점에서 스타리그 16강에도 이름을 올리면서 무려 31세 로열로더 후보라는 진기록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우승해서 31세 로열로더를 달성한다면 스타판에도 호재겠지.
그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 있는 사람이건 임재덕을 통해 늦은 나이에도 도전은 가능하다는 감동을 얻을 수 있을거야.
어쩌면 진짜 지식채널e에 다룰 만한 감동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임재덕의 프로게이머로서의 인생은 그렇게 순탄치가 않았어.
게임을 좋아하고 잘 했지만 집안의 기대 때문에 대놓고 게임을 할 수가 없었지.
엄청난 실력을 보이며 군소리그에서는 우승기록을 쌓았지만,
집에는 비밀로 해야 했기에. 기대가 있었기에 정식으로 프로게이머가 될 수가 없었어.
그의 수상 기록은 이러하다.
- 2001년 3월 스피드배 우승
- 2001년 5월 게임아이 주장원전 우승
- 2001년 6월 게임아이 주장원전 3위
- 2001년 10월 게임아이 이벤트 저그부분 3위
- 2002년 1월 게임아이 주장원전 4위
- 2002년 5월 게임아이 주장원전 우승
- 2002년 8월 wcg세계대회 국가대표선발전 본선진출
- 2002년 9월 두루넷 게임 패스티발 우승
- 2003년 4월 아이벤처 에버배 준우승
- 2003년 5월 에어워크배 4위
- 2003년 10월 대구게임패스티발 준우승
- 2003년 10월 마유이앤션배 준우승
- 2003년 11월 제주게임패스티발 본선진출
- 2004년 5월 삼성칸배 준우승
- 2004년 12월 강남 대치 파리점 사이버파크 준우승
- 2004년 12월 안산 원곡 파리점 사이버파크 우승
- 2005년 2월 메가웹 스타매치 우승
- 2005년 4월 유니넷배 준우승
- 2005년 5월 키주배틀리그 4회우승
- 2005년 5월 경향 게임스 전국 대학생 게임 패스티발 스타크래프트 우승
- 2005년 7월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3위
- 2005년 7월 이네이쳐배 우승
- 2005년 9월 용인게임패스티발 스타크래프트 전국대회 우승
- 2005년 10월 용산 상공회장배 스타크래프트 챔피언쉽 대회 우승
- 2009년 4월 곰TV TG삼보-인텔 클래식 2008 시즌3 32강
뭔가 잡다하지?
실력은 있었지만 프로가 되지 못한 채 상금사냥꾼으로 전전하던 20대 초중반이야.
비슷한 나이대의 임요환을 보면서 임재덕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저 자리가 내 자리일수도 있었는데.
붙으면 이길 수도 있을텐데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홍진호가 우승하지 못하고 저그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대신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박성준이 결국 저그 우승자가 되었던 날은 소주 한 잔 하지 않았을까?
정식으로 프로게이머가 되지 못한 채 임재덕은 군대에 간다.
공군에이스? 당연 아니지. 프로게이머가 아니었으니까.
그냥 현역으로 다녀오고 그 이후 집안과 쇼부를 봤는지 얘기가 잘 됐는지 예비역으로 프로게이머에 도전한다.
위의 기록에서 05~09로 공백이 긴 것이 바로 군입대 때문이지.
그렇지만 임재덕이 결국 원하던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마주한 현실은 기대와는 달랐어.
나이도 있고 수명이 오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 하에 팀플을 시킨 것이지.
박정석과 함께 호흡을 맞춰 KT에서 팀플 저그로 활약한다.
물론 팀전은 개인전과 달라.
팀플 위주로 연습하면서 개인전을 준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09년 예선을 뚫고 본선까지는 오른다.
최근 조지명식에서 엄전김 해설도 회고를 하지.
팀플 게이머인데도 예선에서 기를 쓰고 결승까지 선수들 다 잡아먹으며 오르던 무서운 선수였다고.
우승자 아니면 인정도 안 하는 일베게이들은 결국 까겠지만,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는 것도, 본선을 통과하는 것도 정말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일이다.
그것도 연습시간이 보장되지 않은 팀플 게이머에겐 더더욱...
이후 팀플은 폐지되고 임재덕도 한계를 느끼고,
그럼에도 임재덕은 코치로 기용되지.
계속 실력있는 아마츄어로 보냈던 20대 초중반.
그리고 현역 군인으로 2년 공백을 채웠던 임재덕.
이후 팀플 게이머로 보냈던 시간.
같은 연배의 레전드도 코치 기용 될까 말까인데도,
코치로 기용되었다는 것은 임재덕의 판을 읽은 능력과 지도력을 인정했기 때문일거야.
코치로 활동할 때 팀은 위너스리그 2회 우승하는 등 좋은 분위기였다.
강민이 군대 가기 전에 찍은 '강민의 올드보이'에서도 강민 연습시켜주는 코치로 잠깐 등장하지.
강민하고 임재덕이 같이 붙었는데 편집이 되어서 경기결과는 모른다.
열심히 하던 코치 생활 중에 조작사태가 터지지.
어젠가 오늘인가 네이버 검색어 1위를 차지한 박찬수 찬레기가 임재덕이 지도하던 선수였어.
임재덕은 책임을 느끼고 코치직을 사임하고 재야로 돌아간다.
그렇게 몸담고 싶었던 e스포츠판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제대로 된 뭐 하나 하지 못했던 임재덕.
열정도 실력도 있었지만 뭔가 계속 꼬인 인생이었지.
코치라도 잘해보려 했는데 찬레기 새끼 때문에 끝나버렸지.
짝사랑으로 일관해온 e스포츠에 대한 열정. 그러나 종결.
일베게이들 중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커리어건 연애건 오랫동안 지속되다 결국 끝나버리면 사람은 죽고 싶어져.
20대를 온전히 e스포츠에 바쳤지만 알몸으로 내팽겨쳐진 임재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개인적으로 임재덕을 아는 건 아니지만,
상상하건데 우리가 예상하는 이상의 고통을 겪었을거야.
그때 임재덕에게 접촉한 인물이 바로 강동훈 감독.
지체장애를 겪고 있는 형이 있는데,
그 형이 이스포츠만 보면 너무 좋아해서 이스포츠에 뛰어든 인물이야.
스1 때 코치나 감독을 한 건 아니야.
연습생, 지망생을 모아 커리지 매치를 통과할 수 있도록 스타 과외를 하는 합숙소를 운영하던 인물이지.
임재덕처럼 열정은 있었지만 선수생활을 하지도 못했고 양지에서 활동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많았던 인물.
이 사람은 스2 출시와 더불어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는 생각에 임재덕과 정종현을 끌어들여 IM을 결성한다.
임재덕에겐 어떤 결정이었을까?
마지막이라는 절박함?
혹은 한 번 해보고 안되면 말지 하는 가벼움?
어쨌던 오픈리그 시즌2에서 임재덕은 임요환에 쏠린 관심 속에서 묵묵하게 승수를 챙기며 4강까지 올라가 임요환과 맞붙게 되지.
그 당시 임요환을 빠는 여론은 장난이 아니어서,
마치 임요환이 우승이라도 확정지은 듯 TVN에서 '임요환의 날개'라는 다큐까지 틀어줄 정도였지.
그 상황에서 임요환은 임재덕에게 아무 것도 못해보고 다 막히며 4:0으로 패배하고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딸렸던 임재덕은 리그브레이커로 욕을 먹게 된다.
이후 우승까지 했지만 아무래도 반응은 싸늘했지.
아무튼 2대 저그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다.
보지 않고도 상대의 의도를 간파하기에 '명탐정'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지.
피지컬은 딸려도 경험이 있어서 젊은 게이머들을 압살할 수 있다는 올드의 가능성은 임요환이 아닌 임재덕에게서 나와.
좀만 불리하면 임즈모드를 남발하고 자원을 남기는 저축테란하는 임요환과 달리,
임재덕은 정말로 30대임에도 피지컬을 상쇄하는 판단력과 통찰을 보여주며 인기를 얻어간다.
그러던 중 임재덕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는 레전설 경기를 만들게 된다.
김승철이라고 요새는 LOL에 빠져서 부진해서 존나 싫지만 기흉을 앓으며 수술도 여러 번 겪으면서도 정말 잘하는 테란선수가 있었거든.
32강 김성제와 띠동갑 매치를 할 때부터 압살하면서 가능성을 보이고,
갓초원이라고 불렸던 강초원과 레전드 명경기를 만들었던 선수.
이후 4강까지 올라와서 임재덕과 맞붙기 이전,
8강에서 임재덕의 팀 후배였던 당시는 포스가 장난 아니었던 황강호를 끝없이 뿜어나오는 바이오닉 물량으로 압살해버렸던 인물이지.
인문군 테란.
테란의 패러다임을 바꿀 거라는 평까지 들었던 충격과 공포의 경기였지.
임재덕 역시 반대편에서 저징징을 위치더니 저그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경기를 선보였다.
대군주로 점막을 뿌리고 가시촉수를 박아 연결체를 공격하는 꿀밤러쉬.
저그도 벙커링 같은 짓을 할 수 있다는 홍진호가 기뻐할 만한 빌드.
그 당시를 그린 만화.
(출처 : http://keska.tistory.com)
화제를 모은 김승철과 임재덕의 매치.
임재덕은 김승철이 황강호에게 시전한 인민군 테란에 알고도 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2:2로 동률상황에서,
거의 김승철에게 압도당하다가 때마침 나온 감염충으로 GSL 역사 중 가장 드라마틱한 역전을 만들어낸다.
짧으니까 그냥 봐. 전부 다 보고 싶으면. http://www.gomtv.com/483112 여기 가고.
임팩트가 얼마나 컸는지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임재덕의 아이디인 'NesTea'가 올라갔다.
심지어 그 당시 임재덕은 트위터를 하지도 않았고.
이게 계기가 되어 IM팀은 코카콜라(네스티 생산하거든)의 후원을 받게 되었고.
그 이후 IM팀이 LG-IM으로 거듭나는데는 임재덕의 해외지명도가 큰 작용을 했을거라고 주관적으로 판단한다.
이후 임재덕은 3회 우승자가 되었고.
최초로 저그 100승 달성을 했고.
10회 코드S진출로 '임재덕상'이라는 걸 받기도 하고.
(이후 10회 연속 진출자는 임재덕의 이름을 딴 상을 받게 되지. 영원히)
31세의 나이로 로열로더 후보가 되었다.
임재덕을 찬양하는 이유는 졸렬갑 정종현과 달리 능욕경기나 압살 경기보다,
어떻게든 끝없이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면서 드라마틱한 승리를 펼쳤기에.
우승횟수 이전에 명경기와 감동을 많이 만들어 냈기에.
그리고 31세라는 나이에도 기량을 펼치기에.
(문성원이 저그 압살하던 시절에 문성원 의료선 플레이에 한 기에 일꾼도 잃지 않도 모두 수비해낸 위업도 보였지.)
언플만 해대며 핑계만 대며 거품 양산하는 임요환보다,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원하던 꿈을 결국 이뤄낸 임재덕이 나는 더 좋다.
스타리그에서 앞으로 깨지기 힘들 최고령 로열로더 기록을 만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