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정의)세계 최초의 영화용 촬영기를 알아보자.Film : http://www.ilbe.com/5140223183

(영게 부흥 운동) 스탠리 큐브릭을 알아보자! (완) : http://www.ilbe.com/5200192683

(2차 영게 부흥 운동) 프레임, 시점의 기능을 알아보자! .feat 히치콕 : http://www.ilbe.com/5299064523

(3차 영게 부흥 운동) 최초? 최초?!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영화를 알아보자.1.color : http://www.ilbe.com/5305681051

(4차 영게 부흥 운동) 내 휴대폰 바탕화면을 알아보자! feat.Lorde : http://www.ilbe.com/5307691353

(5차 영게 부흥 운동) 누벨바그의 신화 카이에 뒤 시네마를 알아보자 feat.앙드레바쟁 : http://www.ilbe.com/5308805778

(6차 영게 부흥 운동) 엄지로 할리우드를 정복한 사이니, 로저 에버트를 알아보자! .feat 시스켈 : http://www.ilbe.com/5313191201

(7차 영게 부흥 운동) 스콜세지와 아카데미의 악연에 대해서 알아보자! : http://www.ilbe.com/5358601518


아 갑자기 너무 귀찮다 ㅋㅋㅋ

여튼 이 글은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대화'라는 책을 읽고 쓰는 정보글임을 미리 알린다.

그리고 저기 위에 feat.스코세이지라고 적은 것은 내가 스콜세지와 스코세이지를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둘의 영문 표기법에 따른 한글 이름이 매우 다양해서 농담으로 적어본거 ㅠㅜ

좆 노잼이노;;

그리고 이 글에서는 스콜세지의 필모 전체를 보지는 않을꺼다.
그의 인생에서도 중요한 영화와 사건을 다룰 것이다.

단, 그의 인생이 졸라게 복잡하고 뒤죽박죽이니 총 2부로 나누고 (2부는 하루에 똥 3번 싸는 날에 씀)
이번 글에는 그가 만든 전설적인 작품인 '택시 드라이버'를 만들기까지의 과정만을 쓸꺼다.


좋았어!
인생 낭비를 시작한다!


1. 1차 성징

martin-scorsese.jpg


프로필상 163cm의 작은 키를 가지고 있고
선천적으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일게이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어떻게 훗날 할리우드를 손에 쥘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감독이 되었을까?

1942년 스콜세지는 미국의 코로나에서 태어난다.

그곳은 좋은 도시가 아니였을뿐만 아니라 위험하기도 했다.


스콜세지의 가정은 아버지가 마피아와 친구였으며
그들에게 보호받는 존재였다.

이렇듯 스콜세지의 '범죄'라는 부분은 공상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에서 반영된 부분이였다.

그 이후에도 많은 이사를 다녔지만
그의 아버지와 마피아와의 인연을 계속 되었고
심지어 스콜세지 가정이 세를 들고 살던 집의 주인마저도
스콜세지의 아버지를 마피아로 여기여 그들을 쫒아냈다.

허나 가정적인 사생활 부분이 오로지 그의 영화에 반영된 부분은 아니였다.
그가 살던 도시들에서의 그의 가장 큰 기억들은 골목길을 지나치다가
'탕! 탕! 탕!'하는 소리가 들리면 누군가 한명은 죽어있던 것이다.

스콜세지는 신체적으로 일게이를 닮았기에 그는 범죄조직과는 멀었고
이러한 범죄를 오로히 3자의 입장으로써 관찰했기 때문에

그가 만든 영화들에서도 '살인'이나 '죽음'은 '사건'에 머문다.
많은 영화들에서 죽음을 감정선의 폭팔로 묘사하는 것과 다르게 말이다.

결국 스콜세지는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극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점점 영화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던 것이다.


2. 2차 성징

martin-scorcese-oscar-nominations-photo-GC.jpg 
(스콜세지의 고등학생 시절)


스콜세지는 이러한 환경에서 그리 모범적으로 자란 것은 아니였다.

그는 기독교 가문의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다니는 것을 개을리 했다.

그러한 행동을 그의 가정에서는 그가 올바르게 크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그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는 교회는 고사하고 전체적으로도
사춘기 시절의 많은 반항기를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존재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영화 감독의 꿈이 없던 것이다.
그저 영화는 문화에 한 종류로써 사랑했던 것이였다.

그리고 그가 영화라는 나름 고급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 감독이 된다고 가정했을때
가정에서도 시선은 곱지 않을만했다.

그의 고등학교 졸업 성적은 하위 25%
그리고 영게에서도 까일만할 특기를 가지고 있을정도... '극장 중간 입장충'

이렇게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ㅎㅌㅊ에 수렴하는 그가 영게 허세충들의 '롤모델'이
된 것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 없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그는 확실하게 영화로 진로를 잡은 것도 아니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그에게 가정에서는 기독교의 '신부'가 되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허나 그는 자신이 신부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다고 생각했는지
반항심인지는 모르겠으나 '뉴욕대'의 영화과를 갔다.


그게 바로 그의 영화 인생의 시작이나 다름이 없다.


3. 뜻밖의 여정

ZZ2DDB817F.jpg 
(어쩌다가 간 대학교에서 추후 연설을 하고 있는 스콜세지 ㅋㅋㅋㅋ)


이렇듯 스콜세지는 매우 위태로운 사회인생의 첫 시작을 밟으면서 동시에 심리적인 안정을 취해가고 있었다.

그는 이 대학교에서 영상 교육의 첫 시간을 공부하고 난 다음

바로 모든 진로를 접고 영상쪽에서 일을 하기로 마음으로 굳게 결정했다.

허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스콜세지는 지금과 같이 극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였다.
바로 '다큐멘터리'로 그는 영화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스콜세지는 당시에 생각하기를 '극 영화보다 다큐멘터리는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로써 그의 영화 인생 시작은 사실상 '다큐멘터리'로 시작하지

허나 그의 첫 작품이 다큐멘터리인 것은 아니였어

반은 허구고 반은 진실인 영화를 만든 것이지

하여튼 그의 첫 영화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작품이 세상에 공개됬어

C0068-01_copy.jpg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 (Who.s That Knocking At My Door) 1969년작

이 영화는 첫 작품이라 효율적으로 만들어지지 못한 탓에 거의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제작됬어

거기에다가 추후 수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작품은 67,68,69년작이다. 라고 각각 주장하고 있어

허나 내가 참고하는 책에서는 69년이 맞다고 보기 때문에 69년으로 잡을께

이 작품은 처음 작품을 만드는 감독치고는 나름 호평을 받았어
물론 그의 별명답게(맨날 실패하는 영화를 고집하는 감독) 상업적으로는 실패한 것 같아


허나 이 작품에서 굵직한 감독들에게 눈에 띄였고
이로써 스콜세지의 명성을 높여주는 작품들에 관여를 하게됬지 (주로 편집으로써)

그러다가 정말로 쐐기골이나 다름없는 작품에 관여하게 되었어.


wKCaFaoo6852NUnTjH3l5PugG1A.jpg

우드스탁 1970년작 (영제는 포스터 참조)


이 다큐멘터리는 1969년에 미국의 우드스탁에서 약 50만명의 젊은이가 모여서
락 페스티벌을 하는 것을 기록한 영화야 (다큐는 영화의 실사주의의 한 종류다.)

이 영화는 다큐임에도 불구하고 스콜세지가 현란한 편집을 주도하면서
감독보다도 스포트 라이트를 받은 작품이야

이 작품으로써 스콜세지는 편집으로 매우 큰 명성을 안겨줬어

허나 이 작품의 초창기에는 편집을 주도하고 이름을 올렸지만
그의 편집 스타일과 넘치는 자신감으로 인한 주제넘치는 관여는 곧 그를 우드스탁 작업에서
퇴출시키기에 이르렀지

그리고 동시에 이 기점으로 그에게 작은 슬럼프가 오기도 했지

그 결과 그는 71년의 첫 이혼이라는 악재가 겹쳐서 엄청나게 힘든 시기를 겪었어

병원을 다니기까지 하면서 매우 힘들었지만

그의 영화 친구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다시 영화에 몰두해

그러다가 공황시대라는 작품을 발표하지



Boxcar_Bertha_(1972).jpg

공황시대 1972년작


이 작품은 정말 천운이 따른 작품이였어

당시 슬럼프를 막 탈출하고 있던 스콜세지에게 '편집'이 아니라 '연출'을 부탁받은 작품이였지

이 작품은 '로저 코먼'이라는 개씹쿨가이가 부탁한 작품이였는데

그는 스콜세지에게 일을 주겠다고 말을 하고
한 6개월동안 잠수탔어

허나 알고보니 신혼여행을 갔다온 것이였지

그 결과 6개월후

로저 : 스콜세지 있나요?
그에게 연출을 주려고 합니다.

스콜세지의 지인 : 좆까고 있네 ㅋㅋㅋㅋㅋ


그리고 스콜세지는 자신의 일을 하러
스튜디오에 갔는대 알고보니 ㄹㅇ 이러면서
당황+뻘쭘을 겪었어

하여튼 이 작품을 통해서 스콜세지가 편집뿐만 아니라
연출에도 좋은 인물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지

그런만큼 내가 참고하고 있는 책에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네 ㅇㅇ


(잠만 똥좀)

(잠만 케잌좀)


mean_streets_lead.jpg

비열한 거리 1973년작


이 작품은 정말 대단한 작품이야

서로 평생 똥꼬를 빨아주는 인연의 시작이기도 ㅇㅇ


이 작품은 정말 그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작품이야

바로 아주 큰 비평적인 성공을 크게 거둔거지

전에도 비평적인 성공을 거두지 않았냐고?

물론이야, 허나 이 작품은 내가 전에 다루었던 할리우드의 평론가 '로저 에버트'도
'이 감독은 향후 10년 이내로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이 될 것이다.' 라고 말을 했을 정도로
그의 스타일이 크게 반영된 작품이자,
그의 스타일이 인정받은 작품이지

(그리고 이 스타일은 자전적인 요소에서 발생한 스타일임에 근본을 두기도하지
93년에는 이 작품이 자신이 살던 도시에서의 삼촌과 아버지를 그린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을 해 ㅇㅇ)

그리고 드니로 성님과 긴밀한 관계를 시작하는 첫 작품이나 다름이 없지
(아마 스콜세지를 알고 있다면 드니로도 알듯)

여튼 이 작품은 스콜세지 팬이라면 꼭 보기를 권해 ㅇㅇ

그만큼 그의 근본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니 말이야.
(재미있는 점은 스콜세지는 이 작품을 더 잘 찍을 수 있었다면서 약간 부끄러워하는 눈치다.)


alice_doesnt_live_here_anymore_ver2.jpg

앨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 1974년작


이 작품은 조금 특이한 작품이야

그는 비열한 거리를 통해서 이미 자신의 자전적인 영화를 만들었으니
자신의 출신성분하고 동떨어진 작품을 만들기로 도전했어

물론 지금은 자신의 출신성분이 반영된 영화가 주로 이루기는하지만

이 경우에는 스콜세지가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도전해본 작품인 것 같아
장르도 드라마고 ㄷㄷ

허나 내가 참고하는 책에서는 거의 500페이지의 가량의 스콜세지 정보를 담고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단 4장만 이 영화를 소개하고 있어

스콜세지 본인에게는 별로 기쁜 기억은 아닌가봐 ㅋㅋㅋㅋㅋㅋ (제 3자가 보아도 흑역사)

허나 이 작품을 통해서 스콜세지는 다양한 장르에서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었고
이 점은 스콜세지에게 쏠쏠한 재미를 보여줬지

그러나 역시 스콜세지는 다음 작품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영화를 발표해


바로 이 영화는


taxidriver1.jpg

택시 드라이버 1976년작

You Talking To Me?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지명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지명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지명

결과 : 0관왕

(아카데미 영알못 ㅁㅈㅎ)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