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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 8탄] 아이즈전쟁, 일본 근대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4부-  http://www.ilbe.com/5187199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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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마라. 중국이 깨어나면 세계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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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4대 문명 중에 한곳이자, 로마시대 이후 인류 문명사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나라 중국.

 

그러나 18세기 중엽 영국의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산업화를 추진한 서양열강은 식민지 지배를 기반으로 한 제국주의(帝國主義) 를 표방한다.

이는 19세기 중엽부터 나폴레옹 조차 두려웠던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에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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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청나라)

1840년. '제1차 아편전쟁' : 중국내 영국상인들과의 무역 분쟁으로 인한 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해, 1842년 홍콩을 할양하고 상해를 강제 개항하게 된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① 광저우에 정박하고 있던 애로호의 영국 국기가 바다에 버려지는 사건. ② 불법적인 포교활동을 하고 있던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한 사건.

두 사건이 계기가 되어 영국과 프랑스와 전쟁을 벌여, 베이징이 점령당하고, 황제의 별궁인 원명원(圓明園) 이 방화된다.  

1862년. '태평천국의난'

아편전쟁 이후, 홍수전 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중국 혁명 운동. 사상,종교,정치 등 사회전반의 개혁을 요구하여 광서성에 봉기하고, 국호를 태평천국으로 정한다.

청 정부는 스스로 이를 진압할 힘이 없었기에, 서양열강의 군사력에 의지했고 이는 외세 간섭이 더 심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서양열강과의 두번의 패배와 내세의 난은 세계를 호령하던 중국인과 동양인의 머리 속에 박혀있던 중화사상(中華思想) 송두리째 흔들려버리게 된다.

 

일본(에도막부)

1854년. '미일화친조약' : 미군해군제독 페리에 의해, 별다른 저항없이 '하코다테,시모다항의 개항' '미국선박에 대한 보급' 등의 조약을 체결한다.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 : '나가사키,효고 등의 추가 개항' 및 '재류외국인의 치외법권 인정' 등의 조약을 체결한다.

1603년 에도막부의 시작 이후, 250년간 쇄국정책을 펼쳤던 막부는 서양열강에게 무기력하게 대응한다고 판단한 다이묘들에게 큰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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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조선)

1863년 12월. 이러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조선의 제 26대 왕 고종이 즉위한다. 그의 나이 12세가 됬을 때의 해였다.

당시 조선은 김조순 등의 안동김씨 가문이 순조(純祖),헌종(憲宗),철종(哲宗)시대를 거치며 약 60여년간 세도정치 를 펼치고 있었다.

 

조선의 제 25대 왕 철종이 자식없이 승하하자, 안동김씨 가문과 대립각을 세웠던 풍양조씨 가문의 신정왕후가 대비가 되어 왕위지명권을 갖게된다. 

신정왕후는 안동김씨 가문을 견제하기 위해 흥선군과 정치적 파트너가 되었고, 그의 둘째아들을 왕으로 지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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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파락호(破落戶) 생활 을 했다고 전해지는 흥선군은 조선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대원군' 칭호를

얻게 되었고, 어린 고종을 대신해서 섭정(攝政)을 실시하게 된다. 조선초기의 강력한 왕권통치를 목표로 삼아 붕당정치를 없애는 등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한다.

 

1864년. '서원정리' : 국가보조금으로 유학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6백여 개소의 서원이 붕당정치의 근원이라 보고 47개소만 남기고 전부 폐쇄한다.

1865년. '비변사폐지' :  세도정치 타파를 위해 당시 막강한 권력으로 국정 전반을 총괄한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부활 시킨다.

1886년. '사창제실시' : 마을 단위로 봄에 양식이 떨어진 농민들에게 곡식을 대여해 주고, 가을 추수 때 갚게하는 농민 보호책을 실시한다.  

             '호포법실시' : 호(戶)를 단위로 군포를 징수하는 방법으로, 농민 장정에게 부과하였던 군역의 의무를 양반에까지 확대하였다.

 

이러한 개혁들로 어느정도 민생이 안정되고, 국고도 충실해지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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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865년~1868년. '경복궁중건'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존엄과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 경복궁 재건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건설이 진행되면서, 부족한 공사비를 충족하기 위해서 공공연히 벼슬자리를 팔게 되는 등 비리가 속출하였고, 

1866년 발행된 당백전(當百錢) 은 물가상승을 촉진 시키는 등 경제적 문제를 야기 시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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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조선에 새로운 위협 존재가 등장하게 된다. 바로 러시 였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이후, 베이징조약의 결과로 러시아는 연해주를 얻게 된다.

조선이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게 되자, 흥선되원군은 이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프랑스와의 접촉을 시도하려 하였다.

당시 조선에 체류 중이던 프랑스의 천주교 신부 베르뇌 와의 만남을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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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1873년. 병인박해(丙寅迫害)

그러나 결과적으로 만남은 성사 되지 않았고, 오히려 '흥선대원군은 효를 부정하는 양이와 손을 잡으려한다' 라는 비난여론이 퍼져나갔다.  

커다란 정치적위기를 맞게 된 흥선대원군은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실시하였다.

베르뇌를 비롯해 9명의 프랑스의 신부가 처형 당하였으며, 천주교인은 약 8천여명이 처형당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초강경 조치는 프랑스 등의 서양열강이 조선을 침략하는 계기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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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7월 . '제너럴 셔먼 호 사건'

미국 상인 프레스턴이 이끄는 상선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 가  대동강 하구에 나타나 평양에서 통상요구를 하며 행패를 부리게 된다.

평양 감사 박규수 는 제너럴셔먼호가 모래톱에 좌초 되자, 군인들과 백성을 이끌고 불태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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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8월. 1차 침략

병인박해의 책임을 물어, 프랑스의 로제 제독이 이끄는 군함 2척이 출현한다. 프랑스와 조선군은 격돌하였고 조선은 압도적인 화력에 밀려,

프랑스는 한양의 양화진까지 진출하게 된다.

 

9월. 2차 침략

프리깃함 게리에르(Guerrière)를 포함한 7척의 군함과 600여명의 프랑스 해군은 강화도 상륙을 감행한다.

이들은 외규장각(外奎章閣) 과 강화성을 탈취하는 등, 강화도 대부분을 점령한다.

 

조선의 절체절명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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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0여명의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 정족산성 의 공략을 시도한다.

그러나 양현수가 이끈 조선의 포수 800명은 36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등 수성에 성공하였다. 프랑스군은 약탈한 서적,무기,보물 등을 갖고 청나라로 철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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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의 책임을 물어, 미국은 군함 2척을 앞세우고 강화도에 쳐들어온다.

미국은 위협적인 외교적 수단을 동원하여 개항시키려 하였으나, 강경한 민중과 조선정부에게 결국 아무런 성과없이 철수한다.  

 

양이에 의한 침략을 2번이나 막은? 흥선대원군은 신미양요가 일어난 해에 전국 각지에 척화비(斥和碑) 를 건립하고,

'통상수교거부정책' 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게 된다.  두 양이의 침범과 개항요구에 대응하여 방어에 성공한 조선.

이는 장기적으로 조선의 개혁을 늦추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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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일본(에도막부->메이지정부).

1866년 1월. '삿초동맹체결' : 텐노 중심의 개혁과 막부를 타도를 명분 으로 지방세력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쵸슈와 사츠마가 동맹을 맺고 에도막부에 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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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10월14일. '대정봉환' : 삿초동맹군의 압박에 에도막부 제 15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 는 조정에 정권을 이양한다.  

신정부세력(사츠마+쵸슈가 주축이 된 세력)은 구막부세력과 보신전쟁(戊辰戦争)등의 내전을 겪지만 차근차근 이를 정리해 나간다.

(에도막부-소극적개혁 VS 삿초동맹-적극적개혁의 싸움에서 삿초동맹이 승리를 거둔것이다.)

 

이후 일본은 메이지유신 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하게 된다.

  

1871년 8월29일. 폐번치현 廃藩置県 : 295개의 번을 폐지하고, 지방통치기관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부(府)와 현(縣)으로 일원화한 행정개혁.

1871년 9월23일. 단발령 斷髮令

1876년 3월28일. 폐도령 廃刀令 :  사무라이의 특권신분의 보장이었던 칼의 휴대를 금지한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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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때 중요한 역할을 맡는 인물이 있으니 이토 히로부미(文)이다. 쵸슈번의 하급무사 출신인 그는 막부말 개혁파 중 한명인 요시다 쇼인 의 제자였다.

삿초동맹 체결 후, 사츠마번 명의로 7,300정의 신식총을 구입할 당시 책임자였던 그는,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 의 주축 멤버로 해외를 시찰하였고,

1878년 유신삼걸 이라 불리우는 오오쿠보 도시미치(通) 가 암살 당하자, 그를 계승해 내무성의 내무경(卿) 직임을 역임했다.

 

이와쿠라 사절단 - 이와쿠라 토모미, 오오쿠모 도시미치 등의 106명으로 구성된 외국사절단으로, 미국과 유럽을 둘러보고 근대화 정책의 방향성을 찾기위해,

2년간에 걸쳐 서구를 순방한다. 정한론을 주장했던 사이고 다카모리 와 갈등을 빚었으나, 사이고 다카모리는 실각되고 이들을 중심으로 개혁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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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렵 중국(청나라).

1861년. '신유정변' : 청나라 함풍제가 서거한 이후 서태후가 등장한다. 서태후는 공친왕 혁흔과 손을 잡고, 정권을 잡은 후 개혁정책을 추진한다.

1861년. '양무운동' : 서양의 문물과 기술을 받아들이는 자강(自强) 운동 시작된다. 군수산업 부문에서 시작된 양무운동은, 교통과 교육, 광공업 등의 부문으로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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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때 중요한 역할을 맡는 인물이 있으니 이홍장(李鴻章) 이다. 이홍장은 안후이성 허페이 출신이다.

1864년 장쑤순무 로 발탁되어 회군(淮軍)을 거느리고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난을 통해서 그는 서양열강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절실히 느낀다.

이후, 1870년 직례총독(直隸總督) 겸 북양 대신(北洋大臣)ㆍ내각태학사(內閣太學士) 등을 역임하는 등, 군인,외교관,교육가,사업가로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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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 을 내세우며 양무운동의 선두주자가 된다.

안칭(安慶)에 군사무기제작소를 설립, 샹하이에 강남제조총국 설립하는 등, 부국강병을 특히나 중시하여 1880년대 즈음에는 북양,남양,복건 3군데에서

함대를 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적지 않은 군대가 상당히 현대화 된 수준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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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대한민국(조선)

이러한 급변하는 동아시아의 정세 속에 조선에는 하나의 태풍의 눈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명성왕후(明成王后) 이다. 여흥 민씨 출신인 그녀는 경기도 여주에서 민치록의 딸로 태어났다.

8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살았으나 어려서부터 총명하다고 주변에 알려졌다.

16살이 되던 해 그녀는 흥선대원군의 부인 부대부인 민씨의 추천으로 고종의 비(妃)로 간택된다.

 

그녀가 왕비가 되는데 커다란 힘을 실어준 흥선대원군. 자신이 간택한 며느리와의 길고 긴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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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 계속

 

[3줄요약]

1. 서양열강에 의해 급변하는 동아시아, 일본과 중국은 서양에 의해서 강제 개항이 이루어졌다.

2. 조선은 서양열강과 전투를 벌여 2번이나 이겼다.

3. 일본과 청나라는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던 반면,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개혁이 늦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