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나찌’로서 ‘원불교’(비주체사상파 민족해방) 민중혁명세력에 대하여,
-NCCK는 ‘토착화신학’ 축출 이전엔 ‘국제복음사기단’ 의혹 못 지워-
 
 

 
70년대에 NCCK의 민중신학 세력은 영남 보수 세력에 파시즘 낙인을 찍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90년대 김영삼 정권 때에 군사정권에 파시즘으로 낙인찍었지만, 진짜 정통 파시즘은 우리다. 운동권들이 상당히 집단적으로 그 이야기를 했다. 공산서적에 관습적으로 ‘소련’과 유럽공산세력에 적대적인 세력을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파시즘’이란 표현과 달리, 실제로 문화작동 측면에서 자신들이 더 적합하다는 이야기였다.
 
칼 바르트는 히틀러 파시즘과, 스탈린 볼셰비즘이 사실은 같은 원리에 있다고 지적했다.([칼 바르트의 정치신학], 울리히 단네만, 이신건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1991) 필자는 칼 바르트의 인식을 확장하여 이렇게 까지 본다.
 
<히틀러 파시즘>=<스탈린 볼셰비즘>=<모택동 문화혁명>=<원불교(비주체사상파) 민족해방공산운동>
 
우리는 비주체사상파 민족해방세력이 ‘K-나찌’임을 지적하는 것은 지천에 천지삐가리로 근거자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보궐선거로 당선된 정근식 교육감의 ‘친일 비판’과 친북친중좌파의 아버지 신채호의 씨족종교 사상에 입각한 단죄는, 그 자체로 히틀러 파시즘과 모택동문화혁명 공식의 현재적 재림임을 알 수 있다.
 
그게 아니라!! 고 보는 유일한 근거는, 친북친중좌파의 아버지 신채호 선생은 동학 공산파의 ‘조상신’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단죄할 수 없고 해서는 안된다는 씨족적 도덕률 뿐이다. 그 씨족 밖에서는 ‘신채호 조상신’이 그 자체로 ‘히틀러 우상’으로 동일시될 뿐이다.
 
비주체사상파 민족해방세력은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 씨족정신이 ‘코어’에 있다. 그 외부를 단죄하여, 조선시대 사색붕당정신과 그 연장선으로 볼셰비키 공산혁명 권력론을 사용한다. 볼셰비키 권력론에 깔린 종족주의는 그 자체로 히틀러 파시즘과 만난다.
 
히틀러 파시즘의 게르만족,----------유대인 증오
모택동문화혁명의 홍위병,-----------정적 증오
비주체사상파 민중혁명론에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비 공산마을 증오
 
일베정게 노인들도 상당수가 ‘주체사상 몰라’ ‘공산주의 몰라’ 그러나 동학사상에 미치광이로 빠졌기에, 중국공산주의와 소련공산주의에 상당히 빠진 분들이 있다. 이분들의 공통분모는 ‘기독교 증오’다.
 
조선시대 사색당쟁은 유교경전을 군사정권 지배자처럼 읽는 방식만이 아니다. 일본유교와 통하는 영역만 강조하지 않았다. 중국공산당 모택동주의와 연결되는 유교해석도 있었고, 그 영향으로 일제 강점기 공산운동도 있다.
 
필자는 조갑제기자를 ‘사쿠라’라고 부른다. 이렇게 보수유권자가 30년을 민중혁명세력에 거의 짓이겨지는데, 조갑제는 철저하게 신앙적으로 무관심하다. 그리고, 언제나 ‘북한’ ‘북한’ ‘북한’ 그러고 ‘억압받는 북한주민’이야기한다. 조갑제 입술에서는 ‘원불교’(사탄교) 성향의 비주체사상파 민중혁명 공산파에 고통 받는 보수유권자는 안 보인다. 그 이유는 뻔하다. 임현택 전 의협회장은 정치성명서에서 임종석 스타일을 밝혔었는데도, 꾸준히 조갑제는 신실하게 임현택 의협회장을 지지했다. 조갑제기자도 판단의 중심에 ‘종족주의’가 있다. 조갑제기자도 ‘파시스트’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
 
비주체사상파 민족해방파가 보수세력에 파시즘이라고 단죄한 부분보다, 비주체사상파 민족해방파가 파시즘에 들어가는 부분이 훨씬 더 센 강도에 속한다. 그리고, 아시아문화에서 ‘고대’와 ‘중세’의 신분노예제 속의 유불선 문화를 미화하는 모든 행위는 ‘파시즘’으로 판정해도 무난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저학력 일반인 대중들에 무차별적으로 썼던 비주체사상파 민족해방파와 이를 곧이곧대로 믿어준 해외의 기독교사민주의 좌파세력은, 큰 잘못을 범한 것이다.
 
NCCK조직은 미국 공화당과 연결된 미국 복음주의와 심리적 동일시를 했다는 입장으로서 비난 받는 문제와는, 다른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미국 공화당 배경의 기독교인, 미국 민주당 배경의 기독교인 양측에 중립적으로 바라보면서도, NCCK조직에 근원적이며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는 부분은 ‘토착화신학’ 부분이다. 이 조직이 ‘약자’라고 말하는 것은, 박헌영이의 해방공간의 민중민주주의 조직의 씨족주의가 먼저 있는 파시즘에 포획된 비 성서적 행각 아니냐는 것이다. 즉,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이냐 아니냐로 먼저 가르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NCCK조직은 토착화신학파. 즉 민중신학파를 조직내에서 신앙적 정죄하고 숙청하기 전까지는, 원불교 (호남동학) 꼭두각시 허깨비 조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자유진영 국가는 법을 믿는 사람들에 손해가지 않는다는 의미로서 법을 집행한다. 정상적인 교회조직은 성경을 믿고 행하는 사람에 하나님 나라 공동체 신앙이 손상되지 않는 차원의 정죄를 한다. 명분적 허구가 해방신학이고, 실제는 호남 동학으로 모택동식 인민민주주의 아니냐는 반론은 실증적 근거가 투명할 것이다.
 
김일성의 고려연방제는 어느 순간 중단됐다. 원불교 백낙청이 중국식 지방자치안에서 남북이 하나되는(즉 남한체제를 소멸시키는)통일안을 작동시켰다. 원불교(사탄교) 백낙청의 분단체제론 통일안에서 ‘남북연합체’는 남로-북로 씨족 종족연합이다. 그야말로 ‘極惡’한 지옥을 일반국민에 선물하고, 원불교 공산라인끼리만 極樂을 보겠다는 심뽀인 것이다.
 
이승만 이용사업, 박정희 이용사업측은 언제나 북한, 북한, 북한 그러고 원불교 박지원파의 악행에 대해서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안한다일 수도 있다) 이렇게 사쿠라주의에 투철한 사람들을 보수의 입이라고 30년간 거의 종신토록 강요당하는 유권자는 기본권이 제한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나치’의 반대편은 무엇인가? 예수님 계명은 씨족을 넘어서 서로 사랑이다. 그 신앙 감정 위에 서양철학 합리성이 대인관계를 평가하는 사회 구축이다. 귀족이 다시 말해서 원색적 감투지향을 포기하는 곳에서만, 나치의 반대말이 있다. 조선시대 종족전쟁 감투권력 확보의 신인 노론 양반 후손들이 포기할 가망이 없다.
 
‘종족주의’로 퇴화하는 곳은, 자유민주주의 특유의 이성문화의 퇴락이다. NCCK는 민중신학 집단에 대한 합리적 청산과 정죄와 분리 없이는, 결코 기독교조직으로서 하나님과 이웃에 신뢰를 못 받을 것이다. 원불교 동학조직꼭두각시 아니야? 이 부분은 너무 증거가 많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인정은 인정이 아니라, 이분들도 복음사기 피해자 아니야? 하는 측면으로 다시 설명될 부분이다.
 
‘약자’라고 말하는 표현에서 먼저 종족주의가 작동하는게 지난 3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