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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게이들.
사실 탈북 연재 스토리를 끝으로 더는 일베에 글을 쓰지않으려고 생각했었는데
많은 게이들이 후기를 써달라고 부탁하기에 다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어.
지금껏 내글을 읽고 응원해주었던 게이들에게 감사하고 보잘것없는 한 탈북청년의 자유대한 정착일기를 써볼까 해.
북괴출신의 탈북스토리 (1) 썰푼다.
북괴출신의 탈북스토리(2) 썰푼다
북괴출신의 탈북스토리(3)
북괴출신의 탈북스토리(4)
북괴출신의 탈북스토리(5)
북괴출신이 설명해주는 평양의 명소
북괴출신의 연애 이야기.
북괴출신이 설명하는 전쟁이 날수 없는 이유
http://www.ilbe.com/?document_srl=916807144&mid=jjal
(인증) 민증깐다.
북괴출신의 탈북스토리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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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에서 탈북 합동 조사를 끝마친후 우리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하나원으로 입소하게 돼.
여기가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하나원이야.
하나원에 입소해서 우리는 3개월동안 사회정착 훈련을 받게 되지.
잠깐 하나원에 대하여 설명할께.
하나원은 중국이나 3국을거쳐서 탈출한 탈북자들의 기초정착을 돕기위해 세워진 교육기관이야.
국정원과 기무사의 합동조사를 받은 탈북자들은 여기서 한국생활에 필요로 하는 기초적인 지식과 상식들을 습득하고
기본적인 사회문화와 풍습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지.
3개월간의 학습을 통하여서 이들은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거야.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탈북자들이야.
하나원에는 이렇게 불교뿐아니라 기독교와 천주교 등 많이 종교단체들이 미사를 보고 예배를 드려.
종교를 가진 탈북자들은 대부분이 기독교인이고 일부는 천주교와 불교이지.
사실 북한은 종교에대한 탄압이 극히 심하여 개인적인 종교를 가진다는것은 불가능해.
기껏해봐야 신내림 받은 무당들과 점봐주는 점쟁이들이 비밀리에 활동을 할뿐 제대로 된 종교는 이미 말살되어버렸지.
아이러니한것은 오히려 북한의 특권층들이 유명점쟁이들을 초빙하여 간부 남편의 사주를 보고 점을 보지.
김정일도 현지시찰을 나갈때는 점을 보고 나갔다는 이야기도 있어.
평양에 있는 봉수교회나 불교도 연맹같은것은 모두 가짜이고 외부에 보여주기위한 장치에 불과하지.
북한의 봉수교회.
참고로 어떤 게이가 어찌하여 탈북자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냐고 물었는데 사실 이유는 간단해.
먹고살길이 막막하여 무작정 중국으로 넘어갔을때 이들이 할수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
그러나 한국에서 많은 교회들이 중국과 북한선교를 위해서 선교사들을 파견했는데
유일하게 탈북자들에게 문을 열어준곳이 교회들이였거든.
이리하여 이들은 여기서 성경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여 북한으로 다시 보내져 비밀선교를 하게 하거나 남한으로 들어오는 길을 택하게 돼.
그니고 한국정착 이후에도 많은 교회들이 탈북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하거든.
많은 대형교회들이 탈북자들을 위한 선교부를 따로 두고있어.
사실 냉정한 이사회에서 그나마 이들에게 따뜻하게 보이는것은 교회뿐일거야.
어쨋거나 각설하고 우리는 여기서 3개월동안 집중적인 훈련을 받게 돼.
한국의 풍습과 생활방식 직업을 구하는 방법과 은행통장을 개설하고 경찰서와 구청을 이용하는 일까지 공부하지.
모든것이 재미있고 새로운것이였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것은 아마도 컴퓨터와 운전면허시험 응시 자격이였던거 같아.
컴퓨터는 정말로 정말로 신기했지.
북한에도 컴퓨터 바람이 불어 일본에서 중고로 들어온 컴퓨터들이 붐이었을때가 있었지만 인터넷도 안되고 게임도 할수없는 컴퓨터가 무엇에 필요하겠노.
컴퓨터 삼매경에 빠져서 정말로 재미있었지.
컴퓨터 수업시간에는 메일을 만들어보고 옆자리 친구녀석에게 욕지거리도 써서 보내보고 참 알면알수록 신기하고 또 신기했지.
물론 그땐 게임은 몰랐었어.
나중엔 컴퓨터로 이렇게 글도 쓰고 뭐 니들이 다하는 현자타임도 갖곤 하지만 ㅋ
독수리타자로 한자한자 써보던 편지는 하나원을 퇴소하기 직전에는 분당 400자 정도까지 칠수있었고 컴퓨터로 메일보내기와 확인하기 정도는 식은죽 먹기였지.
니들은 쉬울지 몰라도 처음의 나에게는 쉬운것이 아니였어.
수업이 끝나면 하나원도서실에서 오랫동안 책을 읽었지.
사실 모든것이 궁금하고 알고싶었던거야.
유물론에 기초한 사회중의 공산주의 사상으로 교육받은 나에게 허황하다고 선전해온 온갖 종교는 관심대상이였고 신기한 경험이였지.
불교의식과 천주교의 미사에도 참가해보고 기독교의 새벽예배도 참가해보았지.
마냥 신기하고 궁금했었어.
진화론을 배워온 나에게 하나님이 6일동안 만든 세상에대한 창조론과 사람도 부처가 될수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참 재미있었지.
엄청난 질문을 했던것 같아. 그시절의 난 말 그대로 꼴통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건 도서관에서 읽은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이였는데 분노로 치를 떨었지.
김정일의 요리사를 했던 일본출신의 요리사가 쓴 수기였는데 참으로 분노했었다.
수백만 국민을 굶어죽이면서도 그처럼 호화생활을 즐기던 그 개새끼를 어찌 용서할수있겠니.
거기다가 국민을 봉으로 알고 그토록 우상화와 개인숭배를 일삼았던 희대의 사기꾼놈이었는데 분노안할 탈북자가 어딧겠노.
흘러간 20여년이 참으로 허무해 보였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가 불쌍하고 또 불쌍했지.
그 자유를 알아가는 시간동안 난 운전면허 시험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어.
당시 남자들에게만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할수 있는 자격을 주었는데 많은 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지.
운전면허를 따서 운전해보고싶었던 욕망은 참으로 컷었고 공부를 하면서도 멋지게 운전하는 내모습이 상상돼 흥분되군 했었어.
내가 가진 운송도구라는것은 기껏해봤자 자전거 뿐이였고 어디한번 제대로 된 여행을 가기도 힘든 북한에서 살아온 나에게
내차를 가지고 운전도 하고 멀리에 있는 바다도 보러간다는것은 상상 그자체로도 즐겁고 흥분되는 것이였지.
운전면허 시험을 보기 사흘전부터는 밤잠을 새워가면서 공부를 했었어.
갑을병정식의 시험방식은 북한의 시험방식에 비해 많이 생소했고 영어가 많이 나오는 시험문제집은 어려웠지만 고생고생하면서
공부한덕에 나는 100점만점에 95점으로 시험을 패스하게돼.
참고로 그때 나랑 시험본 사람들이 근 100명가까이됬으나 합격한 사람은 5명도 안됬었어.
정말로 날아갈듯 기쁘더라.
기껏 필기서험이나 통과한것이였지만 난 대한민국에서 와서 처음으로 본 시험은 멋있게 통과한거야.
(그래 난 할수있어. 무엇이든 할수 있을거야) 라고 다짐하면서 새 조국에서의 정착 생활을 기대했지.
가끔씩 우리는 지방에 있는 산업공단들과 여러가지 공장시설들을 견학하고 둘러보았는데 참으로 대단하더라.
집채만한 기계들이 돌아가는 공장들과 그 큰 기계들을 버튼하나로 조작하는 기술자들, 여태껏 본적도 없이 어마어마하게 큰 상선을 만드는 조선소와
눈에도 잘안보이는 전자회로로 이루어진 멋진 휴대폰과 전자기계들..
난 대번에 알았던거야.
참으로 멋진 세상에 왔구나. 내가 바로 내가 미군의 군화를 닦아주면서 겨우겨우 먹고산다고 배운 그 대한민국의 멋진 세상에 왔구나.라고 말이야.
모든것이 풍요롭고 자유로운 세상. 누구의 눈치나 권력에 아부하면서 살지않아도 되는 세상. 내가 노력하면 충분히 보상받는 세상!!
이것이 탈북자가 처음으로 본 대한민국의 모습이었고 내가 누릴수 있는 자유이였던거야.
눈물나게 감동스러웠던 대한민국!!!
자유를 찿아서 죽음을 무릎쓰고 온 이곳은 정말로 내삶을 가치있고 존중받을수 있는 삶으로 바꿀수있는 새세상이였어.
물론 모든것이 그렇게 환희롭고 즐거운 정착생활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여기에는 최소한 내가 사랑하고 갈구하던 자유와 출신성분과 집안 배경이 아니더라도
노력하면 이를수있는 꿈이있는 곳이었지.
시간이 흘러 우리는 모두 퇴소하게 되였고 나는 어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가면서 참으로 감개무량하게 더 새로워진 눈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보았어.
이 자유를 허비하지 말자. 내가 가진 자유는 공짜가 아닌거다. 난 이자유를 누릴 자유와 동시에 가치있게 누릴 의무가 있는 사람인것이다.
이런 생각들과 여러가지 희망을 품고 나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로 온거야.
8평정도 되는 작은 임대주택에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 생활을 시작하게 돼.
가끔 윗집에서 아이 욕하는 소리와 화장실 물내리는 소리도 다 들릴만큼 좁고 방음이 안된 낡은 주택이였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참 소중한 집이였어.
남이 버린 중고tv를 가져오고 중고품상점에서 작은 침대와 냉장고를 사가지고 우리는 엄마와 나 동생 이렇게 셋이서 새 생활을 시작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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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
1. 하나원 입소.
2. 하나원에서의 학습과정.
3. 집으로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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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쓰려고 생각했는데 자세한 설명과 함께 쓰니 너무 길어서 힘들겠더라.
이것도 몇편에 나누어 쓸 생각이고 지루한 게이들은 안 읽어줘도 돼.
앞으론 나의 취직 경험담과 그 과정에 느꼈던 여러가지 생각들을 쓸거야.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