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1971년부터 2014년까지의 사건 관련 요약
1971년 동아일보에서 충청남도 보령군의 도서에서 50여명이 납치되어 혹사되고
이듬해인 1972년 동아일보에서 또 보령 도서에서 소년들을 데려와 혹사시키고 탈출 못하게 감시, 매질한 사건이 드러났다.
1977년 동아일보에 전라남도 완도군 주민들이 어린이들을 유괴하여 10년간 강제노역을 부담시킨 사건이 보도되었다.
1989년 7월 13일 MBC가 구직자들이 납치되어 전라남도 신안군,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노역당했던 것을 보도하였다.
1999년에도 전라남도 신안군 섬노예가 보도되었다.
2004년 전라남도 신안군 노예가 1월, 3월에 보도되었고, 6월에는 신안군 '노예 44년'이 보도되었다.
2005년 9월 12일 목포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면서 인신매매를 하던 일당 2명이 잡혔다고한다.
2006년 그것이 알고싶다, 긴급출동 SOS24에 보도되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었다.
2011년 11월 18일에 MBC, YTN 등의 매스컴을 타고 신안군 섬노예 뉴스가 보도되었다..
목포 직업소개소를 통해 브로커들이 노숙자들을 꾀어내 150만 원 정도로 팔아넘기며 이들은 신안 앞바다에서
무임금으로 어업이나 염전업에 부려먹히고 탈출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놀랍게도 브로커들이 노예 노숙자들을
물색하는 장소는 가까운 목포시 뿐 아니라 멀리 구포역 일대까지 물망에 있다고 한다. 어렵게 탈출해도
역 부근의 택시기사 대부분이 조직을 형성하고 있어 도로 팔아 넘겨진다고 한다.
2012년 4월 9일에는 군산에서 2대째 대를 이어 섬노예 인신매매를 하는 일당 6명이 적발되었다고 한다.
2012년 7월 18일 11년의 섬노예 생활 이후 1억 500만원의 손해보상을 받은 피해자가 나왔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되게 일했음에도 1년에 1000만원도 안되는 보상을 받은 셈이다.
2014년 2월 6일에는 2014년 염전노예 사건으로 기사화 되었으며, 극적인 사연 떄문에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4년 2월 11일 새로 벌어진 조사에서 실종되었던 지적장애인 한 명이 염전에서 일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다만 기사내용에 따르면 제대로 된 임금지급과 처우 등에 있어 '노예'라고 하기까지는 애매한 모습이라고.
그밖에 임금체불 등의 의혹이 드러나기도 했으며 앞으로 더욱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하니 다른 성과를 기다려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2014년 2월 12일 MBN 시사 마이크에서 피해자와의 인터뷰가 있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 18명의 임금체불이 드러났다. 최장 10년의 임금체불까지 있다고.
2014년 2월 10일부터 3월 1일까지 대한민국 경찰청에서 직접 전국의 염전양식장, 축사, 장애인 시설 등을 수색해서
총 370명의 의심사례를 적발했다. 전라남도가 223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도 29명, 서울특별시에서도 25명을 찾아냈다.
체불액 총합이 12억 2천여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여기서 찾아냈다는 섬노예 370명이 사실은 단순 가출자, 수배자 등 착취와는
별 관계없는 건수가 대다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3월 3일 전라남도 신안군의회 부의장 신의도 염전에서 임금체불이 있어 자택 압수수색 후 입건되었다.
2014년 3월 30일 JTBC 보도의 집중취재에는 피해자 인터뷰에서 바로 앞의 파출소에 신고를 못한 이유에 대해
"파출소 경찰이 가해자와 아는 사이라 다 알려준다."라고 진술했다. 파출소 경찰은 "왜 신고를 안했는지 모르겠다.
원래 정상이 아닌 사람들이다. 다른데 가봐야 노숙자 할 사람들이다."라며 피해자들을 비웃었다.
해당 지역 사람들은 피해자들이 없어 인력이 부족해 염전을 가동할 수 없다는데 불만을 터뜨렸으며,
자정 결의대회에서도 인권교육이 시작되자 절반 이상이 자리를 떠났다. 한편, 피해자들은 오랜 감금과 착취에
경력이 없고 나이가 많아 다른 곳에서 채용되지 못했고, 염전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2. 2014년 이후 기타 사건 관련내용
문제가 공론화 되자 전남지방경찰청에서 섬노예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겠다고 공지를 했다.
어이없게도 조사기간까지 알려주며 그 830개의 섬들을 단 2주간 조사한다고 한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염전주들에게 피해자를 숨기거나 해서 증거를 인멸할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2014년 2월 12일 관할 경찰이 사건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묵인했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감찰팀을 파견해 조사 한다고 한다.
감찰 결과 "앞으로나 잘하라."라며 관련자 15인 전원 징계없는 서면경고에 그쳤다.
2014년 2월 12일 신안군에서 이러한 불법 노동을 시키는 염전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사 내에 직업소개소가 갑이며 자신들이 을이라고 하소연 하는 주민들의 경우 장애인을 고용한다 해도
열악한 환경과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요구할 필요가 없으며 박형기 회장의 폭언과 폭행은 20년전 이야기라는 둥의
말도 안되는 주장 그리고 결정적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내세우며 강력한 대책이라고 포장한다는 비판이 많다.
2회 적발시 영업정지라는 것은 한번 걸려도 6개월 영업정지로 끝내겠다는 소리인데 이건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이다.
게다가 2회 이상 걸리더라도 염전 등록을 안 하거나, 타인 명의로 하거나 본인이 토호일 경우 경찰에게 뇌물을 주는 등 방법은 많다
3. 주의 사항
[1] 주로 정신/지적장애쪽, 경/중증이상
[2] 보통 1인여행자가 걸릴 가능성이 높으며 이경우 뜨내기 여행자를 유인하는
유인책이 역전, 터미널등에 어슬렁거린다는 반쯤 도시전설인 이야기가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섬나라의 실상을 알고 있었고 경고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무관심이 섬나라 작은 사회를 방치하고 지역토호를 배부르게 하고
사회 소외계층의 피해를 키웠다해도 잘못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3줄 요약
1. 1971년부터 2014년까지 그들이 한짓거리를 한번 보자.
2. 우리의 무관심이 섬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들었다.
3. 더이상은 안된다. 독립시키든 잡아죽이든 무엇이든 행동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