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의라는 의견

신원미상 16명 (139-123)은 가묘형태로 만들어놓았답니다. 
사망자 유족에게 천문학적 보상비를 지급하는데, 신원미상은 북괴군 아니고 누굴까요.
 
「망월동 5.18 구묘역에는 오월열사 139기가 있었으나 1994년 5.18민중항쟁특별법이 제정되고 희생자들에 대한 복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이루어지고 1997년 신묘역(국립5.18민주묘지)이 조성되면서 신원미상의 열사들을 제외한 123기가 이장되었으나 역사의 상징성을 알리기 위해 가묘형태로 복원해 놓았다.」 


광주 5.18 폭동에 북한 개입 증거물 

 

구 전남도청 5.18   민주화 운동 전시회 관람 도중 찍힌 5.18 유물 입니다   
중 확성기 옆 좀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국군이나 예비군도 사용안하는 무기 입니다.  바로 저것이 북괴군의 총 입니다 
북한군이 주력으로 쓰던 소련제 기관단총 입니다.  이름 PPSH-41(파파샤) 라고 불립니다  
5.18 단체분들 이 무기에 대해 해명을 해보시죠. 



블로그 http://ohyongtt.blog.me/120127472161


민주화운동이라는 사람들의 반박을 반박 



1) 젖가슴을 도려내었다, 또는 벌거벗기고 대검으로 살해했다. 


이 부분은 워낙 잘 정리해두신 유저분의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정리하자면 

첫번째로 가슴에 대검에 의한 자상을 입은 여성이 존재하며 

두번째로 부녀자를 발가벗기거나 대검으로 살해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며 (19일)
 
세번째로 가슴이 잘린 여학생을 보았다는 증언 또한 실존하며, 관련 유인물은 24일부터 광범위한 배포가 시작되었다는 점.

게다가 두부같은 가슴...구절은 당시 뿌려진 유인물 내용도 아니에요. 전혀 다른데서 나온겁니다. 


2)  군인들에게 술을 마시고 환각제를 복용하게 하였다 

-환각제는 유언비어일 가능성이 절대적이고, 시민들의 착각

-술을 마셨다는 것은 사실. 술을 "마시게 했다" 는 것은 사실이 아님.

-정황상 충분히 술을 지급했다고도 믿을 수 있는 부분이지만, 환각제 내용은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3)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의 씨를 말리러 왔다, 몰살한다 

-실증적 증거는 없음.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중 다수는 전라도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단과 같은 유언비어가 퍼질 만한 뒷 배경이 있었던 것은 사실





"1980년 6월 군종 신부 일행 광주사태 확인 방문 결과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5월 18일 충장로 조흥은행 앞 모 다방에서 공수부대 중위가 데모 학생 7명을 잡아놓고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겠다'고 폭언을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조사자 :육본 군수참모부 운영차장 박춘식, 1군 군종참모 대령 김계춘,군수사 군종장교 중령 김육웅) 

701보안부대, 선무활동 귀대후 언동사항 (1980. 5. 24), 177쪽을 보면 5공병 여단 중령 장○○은 최초 11공수단이 군중들에게 몽둥이로 과격하게 때리고 군홧발로 밟아서 “전라도 새끼들 다 때려 죽인다”고 하여 자극받은 것이 크게 확대된 원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평민당이 87년 12월14일에 발표한 ‘광주의거의 진상’에서는『군중들 앞에서 다음과 같은 계엄군의 언동이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요인이 됐다』고 자료를 열거하고 있다. 하사관급 지휘자가 전라도놈들 몰살시켜버리겠다, 중위계급을 단 지휘관이 데모학생 7명을 무릎 꿇려놓고선전라도 놈들 씨를 말리겠다고 특유의 사투리로 폭언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갑제는 ‘공수부대의 광주사태’에서 “광주 사태 때 3여단 장병들은 『우리는 부마사태를 진압했던 부대다』고 시민들에게 겁을 주기도 했었다.”라고 적었다. 3여단 장교 중에 한명은 '부산 마산과 다르네. 전라도 새끼 다 죽여야 한다"와 같은 말을 하기도 하였다."

- 당시 시위 진압의 폭력성을 감안하여도 이런 유언비어가 정당화되진 않으나, 어떻게 생길 수 있었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바입니다. 


4) 유아/학생들 또한 학살했다. 

-사실입니다. 학살까진 몰라도 분명 학생들도 사실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유아/학생 살해 증거 (새 창에서 링크 열립니다)

5) 임산부의 배를 대검으로 찔렀다, 

- 임산부 살해는 사실이나 대검으로 찌른 기록은 없습니다. 이 사건에 대검 진압 사실이 겹쳐지면서 유언비어가 만들어진 것으로 정황상 보고 있습니다. 

"19일 오후에 광주역에서 시위 진압을 하기 위해 배치되었던 3공수부대는 20일 오전 2시에 주둔지인 전남대로 철수 하였다. 3공수부대는 20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전남대에 배치되었다. 3공수부대는 전남대 정문을 두고 시위대와 밀리고 밀리는 접전을 벌였다. 3공수부대는 오후 1시 경 집단 발포를 하였는데 이 때 임산부 최미애씨가 공수부대원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6) 시위학생을 태운 운전기사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광주사태 전말보고 p.54 쪽 참고, 시위대를 태운 운전기사에 대한 광범위한 폭행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사실

"다음은 공수부대로부터 폭행당한 택시 기사들 중에 한 명인 정영동씨의 증언이다.


19일 청년 3명을 태우고 시외버스공용터미널 앞을 지나는데 공수들이 달려들어 차를 세웠다. 그들은 청년들을 차에서 끌어내려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나를 향해 '이 자식도 데모하고 다니는 놈들을 실어다주니 똑같은 놈이다'면서 상스런 욕을 내뱉고 곤봉으로 후려쳤다. 나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시외버스공용터미널 부근 병원이었다. 상처를 치료받은 후 시외버스공용터미널로 갔다. 동료기사들이 한쪽에 모여 공수들의 만행을 이대로 보아넘길 수 없으니 우리들도 힘을 합쳐 시위를 하자고 했다. '내일 무등경기장에서 기사들이 모여 대대적으로 차량시위를 벌이기로 약속했으니 모두 참석하자'고 말했다.' (구술 : 정영동, 협상대표를 『광주5월민중항쟁사료전집』, No 1022, p. 241)"



- 살해당한 운전기사 또한 실제하는데, 대검으로 추정되는 흉기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며 확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7) 진압에 화염방사기를 사용했다.


-화염방사기를 사용한 것만이라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압 과정에서 화염방사기로 무차별적으로 시민들을 살해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증언에 의하면 화염방사기를 쓴 것은 소수이나, 이들은 타 흉기와 같이 직접적 상해를 입힐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했다고 보는 것이 옮기 때문에, 유언비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3도 화상을 입고 살해당한 사람도 있지만 화염방사기에 의한 것이라 확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아주 특이한 경우는 당시 29살로 80년 5월27일 전남 도청에서 사망한 윤개원 씨다. 사인은 오른쪽 하복부에 선단이 예리한 흉기를 맞자 사망한 것으로 돼 있으나 당시 부검에 참여한 의사는 먼저 전신의 30%에 해당하는 오른쪽 가슴 부위. 복부, 얼굴에 3도 화상을 입은 다음 자창을 입은 것 같다고 기록했다. 기록 대로라면 이미 화상을 입고 실신 상태 혹은 죽은 사람을 계엄군이 다시 칼로 찔렸다는 뜻이 된다. 


황박사는 이에 대해 몸 전체에서 30%를 차지하는 3도 화상을 입을 경우 현장에서 즉사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대단한 화력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광주에는 계엄군이 화염 방사기까지 동원, 시민들을 살상한다는 소문이 나돈 바 있다. 이 자료는 그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88년 광주 청문회 과정에서 당시 계엄군 지휘관들은 화염 방사기를 진압에 사용한 사실은 시인했으나, 물감을 넣어 사용했을 뿐 사살용 화염 방사기 사용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방위병 신분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화염 방사기 공격을 받았다고 하는 최병옥씨(당시 21세)는 간신히 화염을 피하긴 했지만 고열로 얼굴이 익는 피해는 입었다고 증언했다. 


『차를 타고 가던 중 공수부대의 공격을 받고 인근 주택 화장실로 피신했다. 이미 3명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까지 쫓아온 공수부대가 갑자기 화장실 창문에 화염 방사기를 대고 불을 뿜어냈다."



추가로, 북한이 유언비어를 제조하였고 광주 시민들이 이에 반응하여 5.18을 일으켰다고 하는 어이없는 주장이 종종 나오는데, 사료로 제시되는1990년 조선녀성 등에서 소개되는 삐라의 내용은 광주에서의 소문 또는 사실을 확대해석한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북한의 유언비어 제조론 근거로 광주에서의 유인물 배포자가 밝혀지지 않음을 들지만 1) 1980년 당시 이미 북한이 대략적 내용뿐 아니라 정확한 사정을 파악할 만한 자료를 제 5 공화국에서 (민주화운동을 폄하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배포했으며 2) 공수부대의 무차별 진압에 당하지 않기 위해 배포자들이 몰래 유인물을 뿌린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5.18 광주 광역시 사료 총서, http://asegaew.egloos.com/m/3285674 참고) 


객관적인 시각 






이에대한 5.18민주화운동 단체의 의견


통일신문 기사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얼을 되살려야 한다. 그래서 올곧은 민족사의 맥을 복원하고 이어가야만 한다."

5.18광주민주항쟁 32주년을 맞아 18일 오전 11시 서울광장에서 '5.18민중항쟁 제32주년 서울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이해동 '행동하는양심'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 민족사의 맥"이라며 "3월 독립운동, 4.19혁명으로 이어져 5.18항쟁에 이르는 살아있는 우리 역사의 맥이다. 이 맥이 끊기면 안 된다. 이 맥을 이어 사는 것이 오늘 올곧게 책임있게 살려는 우리들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 18일 5.18 광주민주항쟁 32주년 서울기념식에서 이해동 이사장이 추모사를 읽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해동 이사장은 "우리 현대사는 상당한 흠결을 갖고 있다. 기억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서는 안되는 것을 잊는 망각현상이 우리 역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오늘에 이른다"면서 친일, 독재, 분단,수 구 세력을 지목하며 비판했다.

그는 "우리 역사가 바로 서려면 항일세력이, 민주세력이, 평화통일세력이, 개혁세력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주도하는 역사의 주류가 되어야 한다"며 "그러나 그 역의 현상이 반세기가 넘도록 이어져 온 것이 우리 역사의 서글픈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진실이나 정의나 정직함, 성실함은 발붙일 자리가 없어지고 남을 짓밟고 일어서는 것이 능력이고 당연시되는 비리와 부패를 불러들였다"며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동안 바른 방향이 잡히는가 했더니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역주행으로 올바른 민족사가 망가지는 현실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5.18운동의 얼을 되살려 내야만 한다. 그래서 올곧은 민족사의 맥을 복원하고 이어가야만 한다"며 "광주의 함성, 투쟁, 피흘림, 승리를 기억하고 회상함으로써 왜곡된 민족사를 바로잡고 서민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것이 광주 영령을 참으로 추모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서울기념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광주를 방문, 영상 메시지로 기념사를 대신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5.18의 의미를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박원순 시장은 "5.18 광주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크나큰 원죄이고 동시에 마음으로부터 기념하는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이라며 "그 동안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되는 이런 발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만 그때 입었던 많은 희생자들의 상처는 아직 남아있고 광주시민들의 고통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며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광주항쟁을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도 "80년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흘린 피와 눈물은 우리나라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밑거름이 됐다"며 "이를 통해 일반 국민들이 역사의 발전을 이뤄내는 주체로서, 역사의 중심에 서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강의 기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바꾼 커다란 업적이지만 현재 번영과 풍요에 민주화가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세계에 당당히 서는 품격높은 국가가 될 수 없었다"며 "5.18 정신을 계승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국민의 의지를 다지자"고 5.18 항쟁을 기념했다.

  
▲ 송경동 시인의 시를 박래군, 송경동, 정동열 씨가 낭송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가수 안치환 씨가 기념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기념식에는 송경동 시인의 시를 박래군, 송경동, 정동열 씨가 낭송했으며 가수 안치환 씨가 기념공연을 펼쳤다. 이와 함께, 5.18기념 서울청소년대회를 통해 글, 그림, 사진 부분에 수상한 학생들을 시상하는 자리도 마련다.

기념식을 마무리 하며, 200여명의 참석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5.18정신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 서울기념식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한편, 서울기념식에 앞서 오전 10시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김황식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정부주관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황식 국무총리는 "5.18민주화운동은 공포와 탄압에 맞서, 우리나라 현대사의 물꼬를 민주화의 방향으로 틀어 돌린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30여년 전 당시와 비교해 놀랄만큼 발전했지만, 아직도 대화와 타협을 거부한 채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고 법과 원칙을 경시하는 행태 등 고쳐가야 할 것이 많이 남아있다"며 "5.18정신을 이어받아 지역과 계층, 이념으로 나눠진 갈등과 대립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등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꽃피워 품격있는 일류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깨우친 10대~20대 사이의 블로거 


주화 운동이 벌써 32주년을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민족의 쓰린 기억인 5.18민주화 운동 ... 여러분은 이 5.18민주화 운동이 왜 일어났는지 아시나요??

 

대부분의 요즘 10대,20대 들은 모를꺼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중에 한명이구요. 허나,, 이건 우리

 

모두가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과거는 과거일뿐 이라며 내팽게칠일이 아니랍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마음깊이 새겨야 하고, 반성하고 5.18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합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의 이 자유로움 도 없을테니까요.

 

저도 이 운동에 대해서 알게된건 얼마 안됩니다만,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울화통이 터져서 말이죠.

 

원래 저는 우리나라의 과거를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패배의 역사라고도 불리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특히 현대사가 정말 싫엇죠. ㅎㅎ 그래도 대한민국의 피가 흐르는 대한남아로써 알아둘건 알아둬야

 

했기에 어쩔수~ 없이 역사에 대해서 배워가기 시작했답니다.

 


5.18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계기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와 폭압정치에 눌려 있던 국민들이 또 다시 전두환이 군부대로 정치를

 

장악하여서 유신체제 유지와 폭압정치를 다시 시행하려 했기에 이에 분노하여서 국민들이 5.18

 

운동을 벌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학생, 일반일들 모두가 일어서서 민주화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군부대는 처참하게 곤봉과 대검

 

등으로 국민들을 하나하나 희생시켰답니다. 무력으로 국민을 움직일수는 없는데 말이죠...

 


아무 저항도 없는 일반 시민이나 학생들을 보이는데로 폭행하고 사살하고 이게 같은 민족이 맞는지

 

정말 의문이 생기는 사진입니다. 도데체 사람이 어떻게 이럴수 있을까요~??

 


그렇게 무력 앞에서는 어쩔수 없이 무너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남아 있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 들지 않앗습니다.

 

민주화3.jpg 민주화4.jpg 민주화5.jpg 민주화6.jpg

전국 곳곳으로 민주화운동은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습니다. 무력 앞에서도 당당히 민주화를 외치며

 

그렇게 민주화를 지켜왔던 분들이 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지 않나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5.18민주화 운동뿐이 아니라, 여러 많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한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답니다. 그냥 모르고 지나가기엔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부끄럽잔아요??



여기까지 자료 스크랩좀 해봤다 

근데 뭐가 맞는건지는 모르겠다. 

사람 시각이란게 자신의 생각과 비슷하게 보는것같은데 

518운동.jpg   11231.jpg

이 두사진만봐도 위아래의 컨셉이 확연히 다른것같다

조중동 vs 한겨례 사진을 내가  고등학교 다닐시절에 각자의 시각차이를 배울때 비교짤을 본적이있는데

찾아볼라니 찾을수가 없네


위짤은 군인들의 무서움을보여준다

아래짤은 민간인들이 무장한 모습이다


이것처럼 어떻게 보느냐 어떤것을보느냐 어떤사진을 메인으로 내새우느냐에따라 

정말 차이가 많은걸 알수있을것같다 

내생각은 항상 시위가 그러하듯 몇몇 시위 선동자들이 사람들을 이끌어 나갔지만

그걸 선동자와 민간인을 구분않고 발포해버린 전두환도 나쁜것 같다

일베인이고 수꼴이고 난 박정희를 빨지만 전두환은 별로다.

그리고 5.18은 폭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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