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어딨었냐고?
미국식 연방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는 고대부터 로마공화정을 알고
중세에 기독교 성과물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주자대전과 송자대전을 들이판 세계 참피온 국가다.
주자대전 송자대전 판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임금을 고의 병신 만드는 조선후기 권력구도 복원에서 시작됐다.
글로벌 엘리트들은 한국 보수에겐 닭짓 매니아일 뿐이다.
종합해보면, 18세기 정치적 태동기의 미국은 근대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궁정파 사상과 고전적 공화주의에 기반한 지방파 사상 간의 공존적 긴장구도 속에서 정치적 알력과 사상적 대립 등을 반복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같은 공존적 긴장구도의 존재는 미국 연방헌법의 비준을 둘러싼 연방주의자와 반연방주의자 간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매우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13개의 ‘연합주’들을 보다 공고한 형태의 연방으로 결성하기 위해 연방헌법의 비준을 지지한 연방주의자들과 강력한 연방정부에 의한 과도한 권력남용을 경계하여 연방헌법의 비준을 반대한 반연방주의자들 간의 열띤 논쟁은 근대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궁정파 사상과 고전적 공화주의에 기반한 지방파 사상 사이에 존재했던 대립과 갈등의 양상을 가장 가시적인 형태로 확연하게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간의 대립과 갈등이 ‘패러다임의 충돌’ 혹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앞서 밝힌 것처럼, 건국 초기의 미국은 다양한 패러다임들이 활발한 상호 작용 속에서 공존하고 있는 패러다임의 다원주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사이에 존재했던 공존적 긴장구도는 다양한 정치사상들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발생한 정치사상들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The Struggle for Hegemony)이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즉 건국 초기의 미국에서는 근대적 자유주의 대 고전적 공화주의, 궁정파 사상 대 지방파 사상, 연방주의자 대 반연방주의자라는 가시적인 중첩적 대립구도 속에서 자유주의-궁정파 사상-연방주의자 진영과 공화주의-지방파 사상-반연방주의자 진영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전개되었던 것이다.(최돈위, 73-7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