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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게이들아....생선글 쓸려고 하다가 영 쓰고 싶은 생선이 없어서 걍 역사글로 때운다..
이제 꽤 지났지만 예전에 5만원권 지폐 만들때 지폐인물을 누구로 할거냐고 할때 김구 광개토대왕 안중근 등의 다양한 인물이 나왔다
근데 그때 여성부 년들이 "왜 우리나라 지폐엔 여자가 없나요? 이거 남녀차별 아닌가요?" 하면서 개 ㅈㄹ을 떨었다..
조폐공사에서는 타협안으로 신사임당을 후보에 올렸는데 여성부 년들은 " 신사임당은 현대 여성과의 지향점이 너무 다르며 업적조차 보잘 것 없다" 라면서
발광을 했지... 이 문제가 한창 이슈로 떠 오를때 난 여성부의 조건에 딱 맞는 인물이 떠 올랐다......대한민국 김치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거든..
그 이름은 솔롱고 올제이후투그..... 이 이름은 몽골명이고 한국에서는 기황후라고 알려져 있다..
지금이야 한국에 외노자로 오는 몽골 놈들이지만 한때는 윗 짤처럼 세계를 호령한 민족이었다 일게이들도 몽고제국을 연 영웅 "징기즈 칸" 의 이름은 알거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좀 개겼던 편인데 결국 징기즈칸의 손자였던 쿠빌라이 칸 때 ㅈ 두들겨 맞고 복속되었다
속국이 되고나서는 우리나라는 원나라에 존나게 삥 뜯기면서 살았는데.. 그 때 뜯기던 품목 중에 "여자" 도 있었는데 이를 " 공녀" 라고 한다.
목은 이색의 글을 보면 이 당시 보지들은 공녀 로 끌려가기를 죽기보다 두려워해 공녀로 정해지면 차라리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만리 이국땅에 끌려가서 뭔 꼴을 당할지 우예 아노? 공녀들은 잘 되어봤자 귀족의 첩 정도이며 운 나쁘면 사창가에서 육변기로 취급받기도 했다
여튼 공녀의 대부분은 일반 서민들이었지만 개중에서는 어느 정도 클래스 있는 집 딸도 있었다 . 레전드 김치년 기황후가 이에 속힌다.
기황후의 집안은 고려 무신 최충헌의 심복 노릇을 했던 이름있는 무신집안이었다
여튼 어느정도 고귀한 집의 자손이었기 때문에 기황후는 사창가에서 보지팔이 하는 신세는 면하고 황궁에 시녀로 들어가게된다.
보통 같으면 평생 시녀살이나 하다가 죽겠지만 이 년이 보통 년은 아니었다 참고로 이 년 전라도 출신 (익산) 이다 홍어+김치년 이랑꼐??
한국 남자들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최악의 조합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몽골 새끼들이 감당하기엔 확실히 버거운 년이었다..
몽골에서도 홍어들의 종특이 빛을 발했는데.. 당시 고려에서는 공녀 외에도 내시들도 납품했었다... 멀쩡한 사내 ㅈ 짤라서 내시 만들어 보냄
그래서 당대 궁내에는 고려출신 환관들도 있었는데 그중 전라도 전주 출신의 고용보라는 환관이 있었다,,, 그리고 종특! 호남향우회가 발동된다..
" 오오미? 시방 전주라고 하셨소??? 나가 그 옆동네 익산 사람이랑꼐!!" 이렇게 기황후는 호남향우회 인맥을 타고 꿀보직인 다과 담당 시녀로 간다
당대 원나라의 황제는 효종이었는데....기황후는 이태원에서 백인 에게 달려드는 김치년마냥 유부남의 애간장을 살살 녹이며 접근을 했다..
효종 또한 어릴때 고려에서 유배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 고려인에 우호적이었기에 기황후의 어장관리질에 홀딱 넘어갔고
결국 기황후는 황제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하고 끝내는 승은을 입는다 ( 떡 쳤다고..) 여자를 알아보는 건 여자라고 했던가?
황후 타나리시는 기황후의 본성을 간파했는지 그녀를 존나게 갈궜는데 채찍질을 하고 인두로 살을 지질정도로 가혹하게 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씨발... 때려서 맘을 고쳐먹으면 김치년이 아니제... 황제의 총애를 받던 기황후는 황제에게 쪼르르 달려가 온갖 모함질을 하며 둘 사이를 갈라놨다
결국 이후에 일어난 한 역모사건에 타나리시의 집안이 관련되어 있자 타나리시는 역모에 가담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다 요시 그란도 시즌!!
타나리시가 사망하고 빈 황후자리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 때 기황후는 아들을 출산한다 (이가 원나라 12 황제 아유르시리다르 다)
황손 출산으로 기황후는 공석인 황후자리에 후보로 떠오른다 물론 보빨남 효종도 강력 지원했음 그러나 당대 실권자 매그라트 바얀의 반대로 무산된다.
원래 몽골제국은 철저한 계급 사회로 이민족 출신이 황후가 될수 없었거든... 결국 기황후는 후보에서 재인되고 후투그가 황후가 된다
아따! 이럴리가 없당께 재검표랑께!!! 기황후는 당연히 빡쳤고 이후에 효종에게 가서 바얀의 뒷담화를 까게된다.. 바얀이 자신을 능멸했다니 하면서..
보빨러 눈에는 뵈이는게 없제 반복되는 기황후의 이간질에 효종은 승상 바얀을 내 쫒는다 요시!! 요시!! 그란도시즌!!
승상 바얀을 내 쫒자 더 이상 기황후에게 태클질을 걸만한 간 큰 놈들은 없었다 바얀이 축출된지 2달 후에 기황후는 제2 황후로 봉해진다
이는 원나라 역사상 최초의 이민족 황후로서... 전례를 깰 만큰 기황후의 세력이 막강해졌음을 의미한다..
효종은 기황후 보빨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신하들은 최고권력자 바얀이 ㅁㅈㅎ 되고 알아서 기었으며 1황후인 후투그는 유순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원나라 황실은 기황후의 치마폭에 휩싸였다.. 이 여세를 몰아 기황후는 고려출신의 환관 을 중심으로 자정원당 이라는 정치세력을 결집했다
그리고 고용보를 자정원사 로 임명해 원나하 황실의 재정을 장악했다..여기서 또 새로운 호남 향우회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름은 박불화 였으며 기황후와 동향 출신이었다 " 아따 동향사람끼리 이러면 쓰겄소 ㅎㅎ" 여튼 이 박불화를 동지추밀원사 자리에 임명해 군사를 관장하게
함으로서 경제권과 군사권을 양손에 쥐고 흔들었다 또한 남편인 효종을 압박해서 아들을 황태자로 임명시키고 그 짝으로 고려인 권씨를 황태자비로 삼는다..
여기까지만 놓고보면 기황후의 삶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한 여성의 성공 스토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치년 종특이 발현되는건 이제부터 시작이제..

기황후가 올라가서 고려에 행한 패악질을 생각해보면 국가관념 없는 현대 김치년을 아주 빼다 밖았다고 본다...
기황후는 집권 후에도 고려에 여전히 공물을 요구했는데 일부에서는 공녀를 면제 해줬다는 설이 있는데 구체적 근거도 없거니와
이후에도 공녀기록이 계속 나오는걸로 보아 걍 구라인듯..... (기황후 이후로 고려 공녀가 몽골귀족 사이에 유행이었다고 한다)
또한 고려에 남은 기황후의 가족들은 기활후 빽을 업고 온갖 갖은 지랄을 다했다... 기황후의 오빠는 기식 기철 기원 기주 기륜등이었는데
기식은 일찍 죽었으니 넘어가고 나머지 4형제 는 원나라에 붙어서 고려 사회를 좀 머겅ㅆ는데 충목왕의 개혁정치를 좌절시키기도 했고,
충혜왕이 원나라로 압송하는데 앞장을 섰으며, 각지에 농장을 개설하여 백성들을 수탈했하고 토지를 약탈하기도 했다 특히 특히 기철 이놈은
왕 앞에서도 신하의 예를 취하지 않고 도리어 아예 대놓고 고려왕 자리를 노렸다... 미친놈... 과연 홍어 새끼들 답다...
이렇게 날 뛰어도 고려의 왕들은 기씨 일족에게 빌빌 기면서 살수 밖에 없는데 뒤에 기황후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반원적 성향을 띈 공민왕이 즉위하자 공민왕은 자주 를 외치며 기철을 비롯한 친원파들을 모두 노짱 곁으로 보내 버린다...
당연히 기황후는 여기에 분노했고 고려를 원수로 여기고 고국을 명망 시키기 위해 갖은 지랄을 부리게 된다... 아니 아예 효종을 부추겨서 고려왕을 폐위하는
명을 내리고 그것도 모자라 고려 왕의 모가지를 따오라며 군대를 보냈다.. 군대는 평안도까지 들어오나 최영/ 이성계라는 당대 고려가 자랑하는 원투천치로
격퇴당한다 이 일로 기황후는 고려에 대해 더욱 더 분노를 불태웠으며 아들인 태자에게 " 왜 애미의 원수를 풀어주지 않느냐" 면서 바가지를 긁는다..
이때 기황후가 아들에게 바가지를 긁은 이유는 아들이 황제로 오른 뒤에 자신의 염원인 고려멸망을 이뤄주길 위해서일거다
왜 아들이 황제로 오르냐고?? 이 년은 욕심이 끝이없는지 박불화를 비롯한 자신의 추종세력을 등에 업고 남편의 폐위를 모색한다
즉 지 남편 황제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아들 앉히겠다는 말이지... 기황후가 이런 움직임을 보이자 드디어 바보 병신 효종도 김치년의 실체를 알아챈다
남편 잡아먹을 년이라는거지... 결국 효종은 그제서야 기황후를 멀리하기 시작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기황후의 세력은 축출이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이 즈음에 제 1황후가 병으로 사망하였는데 사망한 후투그의 유품 중 옷을 본 기황후는 " 정후(1황후) 가 옷 꼬라지가 이게 뭐냐?" 하면서 비웃었다고 한다....
후투그는 성품이 검약한 사람이라서 사치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김치년이 보기에 얼마나 같잖았겠냐?
여튼 정후가 죽었으니 이제 기황후가 정후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제 김치년의 실체를 알아선 효종은 이를 거부했으나
기왕후의 측근들이 쉴새없이 상소를 올리며 괴롭히자 결국 정후에 봉해졌다.. 황후에 오른 기황후는 계속해서 남편을 폐위시키려고 입에 거품을 물었으며
결국 기황후에 동조한 황태자 선위지지파와 반대파로 날려서 원나라 황궁의 개싸움이 시작되었다 이 싸움을 계기로 원나라의 통치력이 크게 반감되었고
그때까지 몽고족의 치세에 눌려 있었던 한족이 이 기회를 틈타 반란을 일으켰으며 그중 주원장이란 자가 원나라의 수도를 탈환 명나라를 세운다....
씨발 나라 말아먹었노??? -_- 이후에 기황후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북쪽 구석으로 쫒겨난 뒤로는 기록이 없는데... 그의 아들 아이유시리다라는 즉위해
원나라 소종이 된다 하지만 이미 국세가 기울어버린 원나라는 그 뒤 서서히 운지를 계속하여서 결국 멸망한다.
기록을 보아하나 행적을 보아하나 기황후는 상당히 예쁜 인물인듯한데 남아있는 당대 초상화를 보면 기황후 모습은 윗짤과 같다
씨발...... 행동거지만 그런게 아니라 생긴것도 김치년 순도 100%고..... 저 시대에는 저게 먹히는 얼굴인가보다..
동국보지지에 의하면 기황후의 묘가 경기도 연천에 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에 의해 심히 파손되었고 그 실체도 분명치 않다
그 당시 기황후가 고려로 돌아왔다는 설도 있지만 여말 의 정세를 보았을때 고려에 그토록 개판을 부린 기황후가 돌아오기는 힘들었을것이다..
3줄요약
1 기황후 김치년에 홍어임
2 원나라가서 황후자리에 오르고 고국에 온갖 패악질 저지름
3 나라 말아먹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