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중국 송나라 시절. 당시 황제는 태종이었다.
이 아저씨가 송(宋)태종.
태종은 재상으로 여단(呂端)이라는 인물을 전격 발탁한다. 이것은 놀랍다 못해 쇼킹하기까지 한 인사였다. 왜냐하면 여단은 과거에 급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대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 국무총리가 된다는 이야기. 여단이 그렇다고 무슨 뛰어난 장군으로 공을 세워서 재상이 된 것도 아니다. 송나라가 특히나 문인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거급제자 출신의 관료들이 ㅂㄷㅂㄷ하며 들고 일어날 것은 뻔했다. 그러나 태종의 결심은 단호했다. 그는 말단 관리 출신 여단을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여단.
태종이 가장 신임하는 신하들조차도 여단에게 난색을 표했다. 한 신하가 솔직한 의견을 밝혔다. 여단은 기쁜 일에 기쁜 표정을 짓지 않고 슬픈 일에 슬픈 표정을 짓지 않으니 사람됨이 아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태종은 여단은 감정 조절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일축했다.
다른 신하가 또 의견을 냈다. 여단은 평소 행동이 야무지지 않고 실수가 많은 소위 고문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태종은 "여단은 큰 일을 할 때에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빈틈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게 바로 여단대사불호도의 의미이다.
평소 행동은 이런 식이지만...
그래도 태종은 여단을 믿었다.
태종이 여단이라는 인물에게 주목한 것은 그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직 전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 주변 일은 칠칠맞아도 중요한 일에는 빈틈이 없었다. 태종이 여단을 높이 평가한 계기는 바로 자신의 동생에게 도성을 떠나는 게 어떻겠냐고 개인적으로 권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태종이 형제들 중에서 나이가 많아서 왕위에 오르기는 했어도 선왕의 유언장에서 태종의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라고 썼노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떠돌았다. 따라서 신하들은 누구 밑에 붙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명의 관리 여단이 과감하게 나서서 골육상쟁이 벌어지기 전에 태종의 동생에게 도성을 떠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일이라고 권한 것이다. 태종 동생 입장에서는 선왕의 유언이 자기에게 유리하다 해도 실제 왕으로서 병권을 장악한 사람은 태종이니 형제간에 다툼이 벌어지면 나라는 나라대로 쑥대밭이 되고 자신의 생명도 보존하기 어려울 것 아닌가. 그 점을 지적하며 태종의 동생에게 도성을 떠나는 게 낫겠다고 간하니 태종 동생도 받아들였다. 대담하면서도 놀라운 일을 해낸 그 사람이 여단이었다.
그 다음에 여단은 고려(당시 왕은 성종)에 사신으로 파견나간 적이 있었는데 고려에서 주는 뇌물을 모조리 거부하여 그가 행동은 좀 칠칠맞아도 자기관리가 철저한 인물임을 증명한다. 여단을 늘 주시하고 있었던 태종은 여단을 자신의 둘째아들의 가정교사로 채용한다. 태종은 둘째아들을 태자로 정했던 것이다.
물론 여단에게도 불행이 있었다. 태종의 둘째아들이 갑자기 병사한 것이다. 가정교사이자 측근이었던 여단에게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여단은 말단으로 강등되었다.
아아... 태자마마...
그런데 여단에게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것을 맡다 보니 자연히 돋보이게 된 것이지만. 흉년으로 피폐해진 지방에 내려가 구휼책을 펼칠 특별 관리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다들 병을 핑계대거나 혹은 가정사 핑계를 대며 왕명을 피했다. 태종은 기가 막혔는데 그때 여단이 자원한 것이다. 그는 (태자를 죽게 내버려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지 하겠다고 나섰다.
기특한지고!
그리하여 여단은 다시 신임을 회복했다. 그리고 여단의 실무 능력을 확인한 태종은 여단을 최측근으로 두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여단을 재상으로 발탁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태종이 여단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 있다. 불구소절대지약우(不拘小節大智若愚).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지혜가 큰 사람은 멍청해보인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태종은 고문관 여단을 기어코 재상에 앉힌다.
여단은 재상이 되어서도 고문관 짓을 계속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아무도 그를 놀릴 수 없다는 점이었다. 사실 권력의 특성상, 기침만 해도 밑의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높은자리에 있는 사람은 여단처럼 둔한 편이 훨씬 낫다. 여단은 아첨하는 말을 들어도 시큰둥했고 비난하는 말을 들어도 시큰둥했다.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미루지도 않으며 자신의 권력으로 아랫사람을 괴롭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물욕이 없었다. 처음에는 왜 저런 고문관에게 중책을 맡기냐고 수군거리던 대신들이 "여공은 참으로 재상의 그릇입니다"하고 탄복하게 되었다.
간신: 헤헤헤 재상 나으리~ 오늘 스타일이 사시네요.
여단: 너 오늘까지 조사해오라고 한 거 다 했냐? 안하면 감봉이다.
간신: 시발... 저 새키는 말이 안 통해.
그러나 태종과 여단의 황금콤비도 결국 끝을 맞게 되었다. 태종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태종은 자신의 셋째아들을 태자로 지목한다. 그러나 막상 태종이 세상을 떠나자 태종의 맏아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태종의 맏아들은 성격이 포악하여 일찌감치 태자 순위에서 밀렸는데 이제 자기가 장남이라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대신들 중에 어린 태자보다 장성한 장남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아 대세는 장남 쪽으로 기울 것처럼 보였다.
폐하. 저기 맏아드님께서 계시지 않사옵니까? 왜 셋째 아드님을 태자로 삼으셨습니까?
태종: 그 새키는 내 아들이지만 내가 봐도 인간이 덜 되었어. 황제 되면 나라 말아먹을거다.
ㅋㅋ 지랄하네. 내가 장남인데. 야, 옥새 가져와!
이때 칠칠맞게 보이는 여단이 나섰다. 그는 순순히 태후에게 가서 옥새를 받아올테니 같이 가자고 태종의 장남을 꼬신다.
여단: 그야 물론이죠. 같이 가시죠. 제가 태후마마께 말씀드려서 옥새를 받아올게요.
크하하하하하하 이제 내가 정말로 황제가 되곘구나!
...미친놈 걸려들었군.
장남이 아무 생각없이 여단을 따라가자 여단은 몰래 왕궁의 수많은 방들 중 하나로 유인하고 내시들로 하여금 태자를 감금하게 한다. 그리고 곧바로 태후를 접견하러 간다. 왕궁 밖에서 벌어진 반란에 대해 들어 알고 있던 태후는 떨면서 여단에게 묻는다.
"어찌하면 좋겠소?"
"이런 일을 내다보시고 승하하신 황제폐하께옵서 태자마마를 지목해두신 것 아닙니까. 마땅히 그분의 유언을 따라야지요."
그리고 여단은 옥새를 넘겨받자마자 곧바로 반란군측에 가담한 대신들과 태자편에 선 대신들 모두를 불러모아 회의를 소집하였다. 반란군측에 가담한 대신들은 장남이 여단을 따라간 것을 보았으니 모든 일은 순조롭게 풀렸으려니 하고 군소리 없이 따라왔다. 그런데 여단이 옥새를 보여주면서 태종의 유언장을 읽는데 장남이 아니라 셋째아들이 황제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양쪽 세력의 대신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에서 명명백백하게 재상이 유언장을 읽고 또 태후로부터 받아온 옥새까지 보여주니 반론을 하고 싶어도 할 도리가 없었다.
선황폐하의 유언에 따라 태자마마를 황제로가 모시게 되었습니다!
장남을 제쳐두고 셋째아들을 황제로 옹립하는 일에 대해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아가리 닥쳐 씨발년아. 법과 절차 앞에서 네 그 얄팍한 개소리가 통할 거 같어?
ㅋㅋㅋ 새 황제페하 만세!!!
여단의 기지로 반란은 순식간에 진압되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송나라 진종이다.
태종의 말대로 여단은 큰 일에서는 조금도 빈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진종이 황제가 되었을 무렵에는 여단은 고령이 되어 건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결국 여단은 병을 이유로 재상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진종은 여단이 재상이든 아니든 항상 그를 아버지처럼 대했다. 그리고 여단은 천수를 누리고 편안히 눈을 감았다. 진종은 여단의 죽음을 아버지의 죽음만큼이나 슬퍼하였다.
세줄요약
1. 행동이 좀 칠칠맞다고 얕보지 말라. 대신 그의 주어진 일을 어떻게 하는지 그 자세와 능력을 보라,
2. 칭찬에 둔하고, 비난에 둔하고, 뇌물에 둔한 사람은 워낙 그릇이 커서 어리석게 보인다.
3. 그리고 가능하다면 너희들도 송태종처럼 뛰어난 인물을 발탁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