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나 종교는 힘의 철학에 의하여 작용되어 왔습니다. 정치는 궤변입니다.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으로 전체를 지배하려 하니 거짓말 아니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함석헌, 35쪽)
앞으로의 역사는 달라집니다. 국가주의 철학을 탈피해야 합니다.(함석헌, 36쪽)
씨알의 평화는 내재의 평화, 극소세계의 평화다. 본질적인 평화다. 씨알의 바탕이 평화요, 평화의 바탕이 씨알이다. (함석헌, 45-46쪽)
그러나 그에 따라 지능이 앞선 어떤 분자가 지배욕을 발동시켜 나라를 도둑질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영웅들이란 것이다.(중략)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완전히 하나의 집단지배다. 소수의 몇몇이 짜고들어서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다.(함석헌, 50쪽)
그것이 국가주의다. 좀더 자세 말해서 국가지상주의 혹은 정부 지상주의다. 그들은 말할 때마다 일부러 나라와 정부를 혼동시킨다.(함석헌, 72쪽)
이때까지 인류문화는 정치에서 국가지상•민족지상을 부르짖는 배타적인 국가주의와, 종교에서 저만이 유일한 진리라 주장하는 정통적인 종파주의에 의하여 되어 왔다.(함석헌, 85쪽)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 살아있는 내가 나라야. 한국이 어디에 있느냐? 살아있는 내가 한국이야.(함석헌 1, 27쪽)
인간성, 곧 사람의 정을 믿는다는 말은 종교적인 말로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정신이 곧 하나님의 정신입니다. (함석헌 1, 30쪽)
사실 지금 우리나라의 어려움의 근본원인은 저를 모르고, 제 것을 연구하지 않고 남의 것을 배우려 하는데 있습니다. (함석헌 1, 59쪽)
나를 앎이 하나님을 앎이요, 자연을 앎입니다. 아무도 자연을 찾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앎이 모든 것을 앎입니다. (함석헌 1, 76쪽)
해탈•구원도 역사적•사회적으로 체험돼야만 완전하다 할 것입니다. 이제는 전 인류적으로 그것을 성취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국가와 민족의 껍질을 벗어야 정말 자위하는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만 해서는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죄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의 죄, 국가의 죄, 인류의 죄입니다. (함석헌 1, 85쪽)
세계정부는 반드시 꿈이 아닐 것입니다. 또 꿈이거나 말거나 간에 그것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것이 역사가 빠져나가는 단 하나의 길일 것입니다. 그것을 못 해봐요? 그까짓것은 못해도 동서문명의 통일을 한번 못해봐요?(함석헌 1, 117쪽)
자유사상가를 모나게 하는 국가는 망하고 맙니다. 그건 나도 확신을 가지고 예언하겠어요. 망하고 말겁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판단해보면 압니다. 지금 우리시대는 자유롭게 사상할 수 있는 시대인가. 그것을 인위적으로 자꾸 막으려 하는 때인가?(함석헌 1, 134쪽)
나는 초국가주의에 서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국가라는 것은 성립하는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수천년정도로 내려오는 동안에 자기의 사명을 다하기보다는 인간의 성장을 방해하는 노릇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선진국에서 국가는 지배주의에 기울어지고 있는 정치가를 도와서 민중을 내리누르는 하나의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함석헌 1, 231쪽)
이제 우리 나라를 건지는 단 하나의 길은 민중의 여론에 있다. 이것을 위해 민중은 깨어나야 하고 하나로 단결해야 한다. 단결하기 위해 조직을 가져야 한다. 참 의미의 국민운동이 있어야 한다. (함석헌 2, 25쪽)
독재는 왜 망하고야 마는 가? 힘은 본래 민중에게 있습니다. 민중이 자치를 할 때 나라는 가장 강합니다. 독재주의란 민중의 그 자치권을 빼앗아서 한곳에 모아가지는 것입니다. 중앙집권입니다. 그렇게 하면 힘이 있고 일이 빠르고 능률 있는 듯 해서 그렇게 합니다. 그것은 모르는 소견입니다. 한 곳에 집중했던 힘은 도둑이 들어올 때 쉽게 빼앗길 수 있습니다. 독재하는 나라에 늘 정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꾀 있는 부자가 그 가진 보배를 한 곳에 묻지 않고 여러 곳에 갈라 묻듯이 한 나라의 힘은 한 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분산되어 있을수록 안전합니다. 분산되고 분산되어 각 사람에 골고루 흩어져 있을 때, 모든 사람이 자유자치할 때, 나라는 가장 강합니다. 그것이 천하를 천하에 감춘다는 것입니다. 민중의 가슴 속에 감춘 나라. 그것은 천하 막강의 나라. 곧 하늘 나라입니다. (함석헌 2, 37쪽)
지배자들은 자기네 야심을 감추고 변명하기 위해 ‘국가’를 내세우지만, 국가주의는 결국 폭력주의다. 다른 나라를 내 나라의 대적으로, 수단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지나갔다.
독재주의는 국가주의의 끝장이다. 국가주의를 완성하면 거기까지 갈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그 내포한 모순이 나온다. (함석헌 2, 162쪽)
세상을 그르는 말 중에 국가지상이라는 말처럼 심한 것도 없다. (중략)국가도 그렇다. 국가지상이라, 나라 밖에 없다는 사상이 한때 우리를 이끌어 주었다.(중략) 그러므로 국가는 우리의 고마운 소학선생이 됐다.
그 결과 인간은 자라서 이제 그 소학시대를 지나게 됐다.(함석헌 2, 222쪽)
국가지상주의가 범하고 있는 죄악의 초점은 그것이 개인의 양심을 지배하려는 데 있다.(함석헌 2, 225쪽)
국민과 정부가 하나가 못되는 원인은 돈과 권력 때문이다. 부정부패가 뭐냐? 돈과 권력이 골고루 퍼져 있지 못하고 어느 한 곳 또는 몇 곳으로 치우쳐 있슴이다. 몸의 각 기관이 골고루 발달하고 모든 세포가 다 같이 영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건강한 신체인 것과 같이, 돈과 권력을 고루 가질 수 있는 국민이 건전한 국민이다. (함석헌 2, 272쪽)
결론적으로 국가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국민들이고 국민을 떠나서 국가는 존립할 수가 없다. 국가는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존립하는 것이다. (장을병, 31쪽)
냉소주의적 법률관이 아니라 헌법을 근거로 차분히 권리를 다져나가는 이를 테면 계몽주의적 법률관은 먼저 종교인들에게서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법을 도외시하는 사람은 결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양건, 62쪽)
여기서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는 국토방위•국가안보•국가이익이라는 이 모든 것이 결국 인간을 위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간을 해치며 인간성을 잃도록 조장하는 결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을 국가구성의 한 부분으로 보는 위험한 물량주의 사고방식, 국가안보라는 이념을 내세워 그리고 거기에 절대성을 부여하여 일체의 반론을 금지하는 폐쇄적인 국가주의, 경제발전을 위해 인간은 도구로 전락되어도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경제제일주의,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법의 이념을 가지고 인간을 짓누르고 있다면 그것은 현대의 또다른 우상인 것이다. 가치관의 전도, 그릇된 질서의 정당화, 이것이 바로 현대의 새로운 우상이다. (함세웅, 98쪽)
기독교의 일부에서는 교회학교와 교회의 폐쇄를 각오하고서 우상과 싸우는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한국기독교의 주도권은 일제와 타협한 소위 혁신교단 무리들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해방후에도 반 민족행위를 행했던 종교가들에 의해 기독교의 주도권이 행사되었으므로, 얼마간은 기독교가 예언자적 사명을 망각하고 정치에 농락당하는 경지에 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만열, 190쪽)
자유당과 기독교의 밀착은 밑없는 늪과 같이 깊었다. 이것은 자유당의 몰락이 기독교에도 심각한 위기를 가져다 주었음을 의미한다. 일제에서 해방된 한국의 기독교는 식민지 잔재의 청산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내부적으로 해결할 역량이 없었고 반민특위와 같은 외부적 도전에도 이를 받아들여 정리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했다. (김용복, 203쪽)
결론적으로 보면 유신체제 하에서 한국교회는 한편으로는 성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생기는 사회적 부조리하에서 극심한 비인간화 현상에 예민한 선교적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한국기독교회로 하여금 유신체제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자리에 서게 하고 민주화운동에 참여케 하였으며 나아가서 사회선교, 즉 사회참여의 노정에 서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신정권은 종교의 자유를 협의한 것으로 해석하여 종교의 사회참여를 제지하려 하였고 나아가서 종교의 본질•선교의 본질을 구명하려는 시도까지 하였다.(김용복, 230쪽)
나찌스 정책이 내건 ‘긍정적 기독교’가 무슨 의미냐는 질문이 많았지만 히틀러나 나찌스는 한번도 여기에 분명한 답을 해준적이 없다. 히틀러는 줄곧 교회 지도자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반공의 센티멘트를 잘 파악하여 “국제공산주의의 침투를 막고 민족적 대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가톨릭이나 신교가 나찌스를 지지해주어야 한다”고 호소하며 다녔다.
이 정략에 넘어간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히틀러와 나찌가 기독교를 박멸시키려는 공산혁명의 위협에서 교회를 보호하여, 국가와 교회가 소원해진 바이마르 헌법 시대보다 교회를 국가에 밀접하게 만들 것이라는 망상까지 하면서 히틀러 집권 초기 나찌스들의 폭행과 불법 처사들 마저 혁명 초기의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고 변호하게 까지 되었다. (이삼열, 264쪽)
‘독일적 그리스도인’운동은 히틀러와 나찌스에 절대 복종하고자 했던 교회사람들로 구성되었고 이들은 기독교와 국가 사회주의 이념을 거의 동일시하는 데까지 나갔다. 그리고는 신문 방송 등 나찌스의 선전도구가 된 매스콤들이 전해주는 이데올로기들을 아무 비판없이 퍼뜨리며 기독교 나찌당원들같은 모습을 보였다.(이삼열, 26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