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일장학회 재산을 토대로 5.16장학회가 만들어졌다?
◇ 김현정>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부일장학회가 어떻게 정수장학회가 된 건지 그 과정을 좀 설명을 해 주시죠. ◆ 김영우> 5.16 쿠데타 직후 저의 선친 김지태 회장께서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부산 문화방송 주식을 다 뺏긴 것은 정부 기관인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확인됐고요. 지난 2월 법원 판결에서도 거듭 확인됐습니다. 다만 법원 판결은 시효가 지났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부일장학회 재산을 토대로 5.16장학회가 만들어졌고 5.16장학회를 이어받은 것이 정수장학회라는 사실은 다 아는 일이 아닙니까? |
- 부일장학회는 애초에 이름만 있지 형체가 없는 소규모 단체에 지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려면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기본 재산 보유가 필수적인 설립 요건인데, 부일장학회는 공익재단으로 설립허가를 받은 적도 없고 기본재산 또한 단 한 푼도 없다. 이는 곧 부일장학회라는 회사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 김지태씨 유족이 부일장학회의 기본재산이라고 주장하는 10만평의 땅은 토지대장과 토지등기부 등본에는 부산일보와 김지태씨를 비롯한 친인척, 회사 임원 등이 소유자로 되어 있다. 부일장학회 명의의 토지는 공부상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일장학회는 장학금조차도 부산일보사의 운영비에서 지출되었던, 단지 부산일보사 내의 한 부서 개념 정도로만 존재했던 회사에 지나지 않았다.(부산일보 자료)
- 그렇다면 합법적 공익법인으로 설립된 5.16장학회가 재단 설립 허가도 받지 않고 기본재산도 전혀 없는 법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았던 부일장학회를 강탈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 억지이다. 다시 말해 부일장학회는 애초부터 인수, 인계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2. 김지태는 단지 밀수를 통한 부정축제 때문에 체포됐다?
◇ 김현정> 그러니까 그게 밀수를 통한 부정축제를 했다? ◆ 김영우> 시계하고 다이아를 끼고 들어왔는데 그것을 저희 어머님이 처녀로 다시 오신 분인데 결혼기념으로 그걸 하나 사줘서 끼고 들어왔는데 그걸 밀수라고 그러고 탈세라 그러고 외화 도피 등등 여러 가지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7년 구형을 했어요, 군사법정에서. 그리고 나서 할 수 없이 쇠고랑 찬 손으로 도장을 찍고 모든 걸 강제 헌납을 했죠. |
- 김지태씨와 그가 소유하고 있던 기업들은 5.16전에도 수차례 밀수 및 탈세 등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언론에 보도된 건만 보더라도 ‘조선방직원면 밀수사건(1951)’, ‘조선견직 세금포탈사건(1959)’, ‘한국생사 탈세사건(1959)’, ‘조선견직 불법선거자금 제공사건(1960)’ 등 각종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 (각종 신문 자료). 이처럼 김지태씨는 탈세, 탈법으로 부정축재를 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그가 5.16후 부정축재자 명단에 오르고 7년형을 구형받은 것은 어찌 보면당연한 일이다.
3. 부산일보와 문화방송의 영향력을 보고 계획적으로 강탈했다?
◆ 김영우> 알아서 헌납이 됩니까? 그 안에 들어앉아 있는데. 여러 사람들이 특히 박정희 대통령께서는4.19혁명 때 부산에 계엄사령관을 했었기 때문에 부산일보하고 문화방송이 얼마나 힘이 있다 하는 걸 뼈저리게 느꼈거든요. 그래서 그걸 뺏으려고 한 것이죠. ◇ 김현정> '계획적으로 덤벼들었다.' 지금 이렇게 보시는 거예요? ◆ 김영우>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 기부 당시 부산일보는 경영상태가 최악이었고, 김지태씨는 구명운동을 통해 이처럼 만성적자로 골치 덩어리인 부실회사를 헌납하고 부정축재자에서 사면을 받았던 것이다.
- 1960~1962년의 재무제표에 의하면 부채가 자산의 거의 배(倍)가 되어 자본이 완전히 잠식되어 있었다. 1961년의 경우, 총자산이 2억 6천만환(화폐개혁전)에 부채가4억 5천 7백만환이었으며, 그 해 손실금이 8,268만환이었다. 그때 회사불입 자본금이 20만환이므로 자본이 무려 980배나 잠식되어 자본총액이 마이너스 1억 9,600만환이었다.
- 이 정도의 부실이면 자력으로 회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심혈을 기울여 키웠다는 부산문화방송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설립 후 3년 동안 적자에 허덕이다가 5.16장학회에 인수되면서 비로소 흑자로 돌아선 회사이다. (당시 자료)
4. 김지태는 당시 헌납된 재산이 억울한 강탈이었다고 생각했다?
◆ 김영우> 헌납하고 난 바로 다음 날 풀려났죠. 풀려났지만 아버님이 경제인으로, 언론인으로 아주 모독을 참을 수 없었죠. ◇ 김현정> 그 다음부터는 건강도 안 좋아지고 그렇게 되신 건가요? ◆ 김영우> 그렇죠. 당연히 그렇죠. ◇ 김현정> 그래서 그때부터 계속해서 억울함을 호소하셨던 겁니까? ◆ 김영우> 그럼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50년 이상을 계속 억울하다고 온 세상에 이야기하고 정부가 새로 설 때마다 탄원도 하고 여러 가지 했습니다. |
- 1971년 3월 27일 김지태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나의 기업경영)에서 “요즘 재벌들 중에 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는 국가사회에 봉사하는 당연한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수년 전 부산일보 등 60억원 상당의 재산을 나라에 바쳐 부의 사회 환원을 시도했던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그러면서 기업의 사회에 대한 사명감을 강조하기도 했다.
- 1968년 6월 발행된 ‘김지태사장 창업 35년사’에도 그가 자진해서 헌납한 사실이 적시되어 있다. “군재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김사장은 측근 모씨를 통하여 재산 중 신문사와 방송국을 5.16장학회에 넘기자는 말을 받았다. (중략) 심혈을 기울여 가꾸기는 했으나 신문사와 방송국은 공익사업이므로 누가 경영하든 이 나라의 매스콤 발전에기여할 수만 있다면 된다는 심정으로 김사장은 결국 협상조건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김사장이 경영하던 부산일보와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은 모두5.16재단에 넘기기로 했다.”
- 김지태씨는 생전에 자신이 쓴 <나의 이력서>에서 “내가 운영하던 부일장학회란 공익재단이 5.16장학회의 공영제 운영으로 넘어가서 당초 기약했고 목적했던 사회봉사라는 이상이 확대되고 또 영원할 것이므로 나는 이와 같은 운영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또 만족스레 생각한다”고 밝혔다.
5. 박근혜 전 대표가 아직도 정수장학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 김현정> 박근혜 전 대표와는 상관이 없다고 얘기를 계속 하고 있죠. ◆ 김영우> 계속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계신데 이 사회가 국민들이 그렇게 안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습니까? |
- 정수장학회의 재산은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자산이다. 사회에 환원된 재산이라는 말은 공익법인의 법률에 의거, 사회 일반의 이익을 위해 쓰도록 법적인 제약을 받는 재산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어느 개인이 사적으로 써서도 안 되고 그렇게 쓸 수도 없도록 감독청의 감시 감독을 받게끔 되어 있다.
- 장학회의 기본재산은 주식회사의 자본금과 같은 성격으로 법원에 등기 하게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결산서와 예산서를 감독관청에 제출하며, 그 기금을 사용하려면 교육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자산은 법적으로 어느 누구도 개인이 소유할 수 없게 되어있다.
3줄 요약
1.김지태는 자서전등에서 정수장학회를 자발적으로 내놨다고 했다.
2.정수장학회를 내놨을 당시엔. 부산일보와 MBC의 재산이 거의 없었다.
3.아빠가 고맙댔는데 아들놈이 왜저러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