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득표율 140%
러시아 민주주의의 현실을 보여주는 짤이다.
사실 저때까진 '그나마' 민주주의라는게 조금은 작동하던 시절이었다.
푸틴이 아직 완전히 짜르가 되기 전이다.
보다시피 야당들도 유의미한 득표율을 올렸다.
훗날 증언에 따르면, 저 지역구의 1등 통합 러시아의 득표율은 상부 지시로 적은 수치고
나머지는 야당들의 실제 득표율이었다고 한다.
계산해보면 여당 통합러시아당은 저 지역구(로스토프)에서 고작 12.52%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그렇게 주작을 쳐서 만든게 고작 과반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초대형 시위가 일어났다.
이론상 야당들이 뭉친다면
여당과 승부도 가능해졌다.
푸틴에겐 최악의 정치 위기가 찾아왔다
저때까진 야당이란게 있었다.
그게 소련의 유산과, 여당의 2중대
그리고 미친 또라이 극우당이란게 문제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저때 있던 야당들은 그대로 있긴 있다.
훨씬 약해진 상태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국회는 거수기로 전락했다.
가끔 여당에게
이빨을 들이밀던 제1야당 공산당은 온순한 똥개가 됐다.
공정 러시아당은 대놓고 어용정당이 됐다.
자유민주당?
애초에 지리노프스키라는 광인의 막말 하나로 지지받는 정당이었다.
그 당수가 죽은 이상 아무런 가치가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런 혼파망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는 소련 붕괴당시로 돌아가야 한다.
페레스트노이카와 글라스노스트로 유명한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동구권은 무너졌다.
국내개혁도 방향을 잃어갔다.
동유럽은 그래도 공산화 되기 이전, 자본주의 체제를 굴리던 세대가 살아있었다.
약 45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국경을 통해 알음알음 밀무역을 진행했었다.
폴란드의 경우 미국에 있는 친척들한테 지원도 받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혼란이 있었지만 차차 적응해나갔다.
반면 소련은 아니었다.
소련체제로 살아간지 70년이 지났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평생 살아가던 이들을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개혁하는건 너무나도 어려웠다.
소련이 러시아제국처럼
참피 로판제국이었으면 차라리 쉬웠을거다
정부의 통제가 다 무너지고
밑바닥 시장경제가 알아서 초기 자본주의를 자생시켰을거니.
지금 북한이 딱 그 꼬라지다.
정부공식경제는 무너졌고, 장마당이 사실상 시장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소련은
명실상부 세계를 양분하던 초강대국이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붕괴 직전까지 자국민 대다수가 먹고사는데는 별 지장 없던 국가였다.

(미국의 슈퍼마캣 1980s)
소련인들은 서방을 동경했다.
다양한 상품을 고를 수 있어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압도적인 대중문화에 심취해서, 멋있는 차들을 끌고 다녀서

(레닌그라드의 슈퍼마켓 1989)

(소련의 슈퍼마켓 1980년대)
그들도 상품은 있었다. 못생겨서 문제였지
그들도 먹거리는 충분했었다. 품질이 개판이라 그렇지
극장과 영화관은 그들이 훨씬 많았다.
틀어주는게 재미 없어서 문제지
그들도 차를 거의 공짜에 살 수 있었다.
주문 하면 오는데 10년이 걸리고, 30년째 똑같은거만 줘서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기대했다
우리도 조금 버티면 서방처럼 될 수 있을거라고
우리도 민주주의 하면 서방처럼 잘살 수 있을거라고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처음에는 개혁에 찬성했다.
하지만 엄청난 후유증이 뒤 따랐다.
섣부른 개혁은 그나마 굴러가던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무너뜨렸다.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배급제가 부활했다. 온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고르바초프를 찬양하던 소련인들은 어느새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고르비는 뭘 열심히 하는게 보이긴 했다.
정치적 개혁도 실시됐으며, 소련 설립이후 처음으로 선거다운 선거가 실시됐다.
고르비는 중앙집권제인 소련의 한계를 느꼈다. 지방들이 더이상 말을 안듣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 뿐이었던 '연방'을 진짜 연방으로 만드려했다.
중앙집권제 모스크바 사회주의 제국을 진짜 상당한 권한을 가진 공화국으로 개편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애초에 고르비가 계획한 신 소련연방 체제에는 거대한 허점이 있었다.
각 구성국에 상당한 권리를 주고 연방을 만든다는 계획 자체는 좋다
문제는 한 구성국이 너무 커 버리면 그게 연방일까?
연방정부보다 구성국 수장이 힘이 더 쌔져버린다.
공산당의 1당 독재가 깨진 순간, 소련이 해체될 수 밖에 없던 이유
바로 러시아공화국의 너무 덩치가 컷다.

.
명목상 소련의 구성국들은 동등했다.
각 공화국들마다 수장이 있었다.
이걸 핑계로 UN에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별도 가입시켰다.
거수기로 쓰려고 말이다.
원래는 각 구성국들 모두 가입시키려던걸
미국이 50개주를 모두 가입시키겠다 협박해 타협한 결과다.
문제는 러시아의 덩치가 너무 컷다.
인구의 절반이상, 영토의 절대다수, 핵심 산업 시설 등등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더하면 그냥 소련 그자체였다.
그나마 공산당이 있을땐 괜찮았었다.
어차피 다 평등하게 공산당 밑이니까
그런데 그 공산당이 무너져갔다.
각 지방이 더이상 모스크바의 말에 복종하길 거부했다.
그래서 고르비는 연방제를 들고왔다
각 지역마다 상당한 권한을 주겠다. 그 대신 소련이라는 틀은 유지하자.



고르비의 구상은 지지받았다.
보다시피 히틀러의 Ja!! 같은
투표지 조작질은 없었다.
발트3국과 그루지아 아르메니아를 제외한
연방 구성국들은 자치권을 대폭 늘려주는 연방개편에 찬성했다.

가장 반대가 높았던건 우크라이나였다.
우크라이나 서부 3개주는 반대가 80%가량 찍혔다.
서부와 가까운 중부서부
지역도 반대가 40%가량 나왔다.
키예프도 찬반이 45:55로 반대가 더 많았다.
대신 동부에서 몰표가 쏟아졌다.
산업적 핵심은 동부에 있었고 인구도 더 많았기에
잔류가 전체적으론 70%정도 찍혔다
사실 서부3주는 1945년에 편입하기 전까진
몽골침공 이후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던 동네라
저렇게 이질적인 결과가 나온거다
의외로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소련 존속 반대 비율이 높았던건 러시아였다.

특히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경우 찬반이 5:5로 갈렸다.
주로 대도시권에서
소련를 해체하자는 비율이 높았다.
오히려 중앙아 지역은
소련해체에 결사반대했다.
모스크바의 강압적인 명령은 싫지만,
반대로 모스크바의 지원이 없으면 중앙아 경제는 폭망한다.
러시아 도시권 중심으로
변방을 버리자는 이야기가 나오던 것도
저런애들까지 먹여살리기 싫다는 반응이었다.
여튼 소련의 존속은 소련인들의 손에 의해 인정받았다.
각 공화국들은 상당한 권리를 인정받았다.
그럼 러시아 SFSR도
당연히 그런 권리를 인정받아야 하는거 아닌가?
각 공화국 별로 국가수반이 나오면,
러시아공화국도 나와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상당한 권리를 가진 러시아 대통령이 나오면
소련 대통령은 왜 있는걸까?
필연적으로 러시아 대통령과
소련 대통령은 싸울수밖에 없는 위치가 됐다.
공산당 1당독재하에선 괜찮았다.
당내 내부정치논리로 찍어 누르면 된다
근데 둘다 투표로 뽑히면?
상하관계가 어캐 되는건가?
아직까지는 소련 수장에 대한
관성적인 권위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옐친은
2인자로 남을 생각이 없었다.

1991년 8월 18일, 소련 보수파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감금했다.
신연방계획을 철폐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려 했다.
러시아 공화국의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 보리스 옐친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했다. 그리고 군부대에게 쿠데타 세력에 맞서 싸우라 요구했다.
본인이 직접 쿠데타군의 탱크 위에 올라가 국민들에게 맞서 싸우자고 했다.



러시아 국민들은 응답했다.
거리로 뛰쳐나왔다. 쿠데타군을 끌어내렸다.
군부도 편이 갈려 옐친에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쿠데타는 진압당했다.
고르바초프도 복귀했다.
하지만 갑과 을이 완전히 뒤바꼈다.

고르바초프는 옐친 덕분에 겨우 복귀했다.
모든 권력은 옐친에 쏠리기 시작했다.
아직까진 소련 대통령이라는 직위 덕분에 고르바초프가 상급자였다.
하지만 러시아 공화국도 동등한 구성원 아닌가?
당연히 자체 수장을 뽑을 권리와 자치를 할 권리가 있다.
그 러시아 공화국이 소련의 몸통이었고
이젠 군부마저도 옐친에 붙어버린게 문제였다는걸 빼면 말이다.

고르바초프는 빠르게 바지사장이 됐다.
옐친은 소련 내각을 자신의 충성파로 체웠다.
고르바초프가 항의하자 삿대질을 하며 읽으라고 강요했다.
공산당 활동은 불법이됐다. 애초에 쿠데타를 일으킨 주범인데 냅두는게 이상했다.
그와 동시에 소련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본래 고르바초프의 친위 세력이었던 공산당이 대거 쿠데타에 연루됐다.
숙청은 당연했다. 그게 그나마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를 지켜주던 마지막 방어선이었지만 말이다.
관공서에서 적기 대신 각 공화국의 깃발들이 나부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선포하자 옐친은 거추장스러웠던 고르바초프를 치워버렸다.
독립국가연합이 출범했으며, 저항하던 고르바초프는 1991년 12월 25일 하야를 선언했다.
노동자의나라,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공화국을 표방하며 출범한 소련연방은
그렇게 인민들의 선택으로 끝장났다.


인민의 힘으로 출범한 러시아 공화국
공산당도 없어지고 민주주의 선거도 실시했으니 이제 해피엔딩이 됐을까?
그랬으면 이 글이 쓰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블라디미르씨가 어떻게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안락사 시켰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러시아의 영웅,
보리스 옐친씨의 화려하고 위대한 행적을 우선 알아봐야 한다.
다음 글에서 한번 알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