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유소년기에 겪은 지독한 가난의 기억은 훗날 ‘기아로부터의 해방’을 국정 최우선 가치로 삼게 한 실존적 원체험이었다. 박 대통령은 당시의 처절했던 가난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국민학생 때 수업을 마치고 20리 길을 걸어 집에 오면 배가 무척 고팠어. 어린 마음에 먹을 것을 찾아 부엌에 가서 솥뚜껑을 여는데 아무것도 없는 거야. 하다못해 무말랭이나 장아찌 같은 것도 없고... 할 수 없이 간장을 손가락에 찍어 먹곤 했지. 그때 뒷산에 밤나무라도 있었으면 밤을 쪄서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왜 체구가 작은 줄 알아? 어렸을 때 제대로 못 먹어서 그래.“ (김정렴, 『아, 박정희』, 중앙M&B 1997년 / 318쪽)
“구미 보통학교 6학년 때인가 추석 전날이라고 학교에서 오전수업만 하고 집에 보내줬어. 20리 길을 걸어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데 떡 치고 전 부치는 냄새가 마을 전체에 진동하는 거야. 구수한 냄새에 정신이 없더군. 그런데 정작 우리 집에 들어섰는데 아무 냄새도 없고 썰렁하더군. 시무룩한 얼굴로 부엌을 기웃거리는데 형수가 앞마당의 홍시 하나를 쥐여줬어. 나는 눈물을 참았어. 그날의 슬픔을 나는 잊을 수가 없어.” (중앙일보 2009. 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