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자교육의 문제는 깊게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도 관련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경우에 따라서는 정치 문제, 가령 한자 교육을 핑계로 친중국화 세뇌 작업이 될 개연성이 있는지.... 등의 문제)이기도 해서
평소 내가 생각하는 한자교육의 문제, 아니 우리 글에서 의미 파악을 보다 정확하게 하기 위해 한자를 꼭 병기해야만 되는가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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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결론 : 나는 한자의 뜻글자라는 표의문자성에 상당히 회의를 갖고 있고 그래서 굳이 우리 글에서 한자를 병기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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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자의 문제는 워낙 방대한 내용이 될 수 있어서 여기서는 내용을 최대한 줄여서 골자만 정리해서 내 생각을 올리려고 함
1) 보통 우리말에서 한자로 된 단어가 60~70% 라서 뜻글자인 한자를 배우면 의미파악이 입체적으로 된다느니 또는 동음이의어의 혼선을 막는다느니 하는 이유로 한자교육을 주장하는 소리가 있지만 나는 여기에 절대 반대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한자 단어들은 오히려 거의 대부분이 사실은 뜻글자로서 표의적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임
즉, 이 경우는 사실 표의문자라는 한자의 기능이 거의 상실된 경우이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는 한자를 배워봐야 의미파악이 보다 분명해진다거나 동음이의어의 혼선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
사실 이 부분은 내용이 너무 길어지게 되서 여기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왜 그런지 내 생각을 말해보고자 함
이것은 대략 3가지 정도의 경우로 나누어 봐야 하는데
1)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자로 구성된 단어들 중 적지 않은 경우는 이른바 고사성어식의 한자 단어들인데 고사성어라는 것은 잘 알듯이 한자 자체의 원래 뜻만 가지고는 의미 파악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고사성어들이 만들어지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적 지식을 암기해야만 비로소 의미가 파악되는 경우임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니 모순(矛盾) 같은 많은 고사성어들은 단지 한자 하나하나의 뜻만 가지고는 의미파악이 전혀 되지 않고 고사성어들이 만들어진 배경과 사회적 변천과정을 알아야만 비로소 그 의미가 파악이 되기 때문인데
즉 이 말은 거꾸로 말하면 고사성어로 분류되고나 그와 유사한 지위에 있는은 한자 단어들은 한자의 뜻글자로서의 기능, 즉 표의문자성이 거의 소멸된 단어들이기 때문임
더 나아가 고사성어는 아니지만 우리 이름의 성씨나 지명 같은 것도 단순히 한자의 뜻만 가지고 파악될 수 있는 게 아니라 관습이나 관례적으로 사용이 굳어진 것이므로 이를 굳이 한자를 써야만 그 의미가 더 잘 파악되는 게 절대 아님
그러니까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의 성씨인 이(李) 의 경우 이를 굳이 한자인 오얏 리 라는 李 의 뜻을 알아야만 비로소 의미가 더 잘 이해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임
2) 두번째는 한자로 구성된 단어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근대화 과정에서 번역이 된 근대적 단어들이기 때문임
이것도 내용이 매우 길어질 수 있어 간단하게 말하면 근대적 단어들이란 근대화의 과정에서 서양문물에 대한 번역어로서 만들어진 단어들을 말하는데 이 경우는 대부분이 번역어 만들기에 급급하여 한자가 가지는 표의성 즉 뜻 부분은 포기하고 대충 번역자 꼴리는 대로 억지로 식으로 급조된 단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
가령 철학(哲學), 실존주의(實存主義), 화학(化學)이니 자연(自然 :자연보호라고 할 때의 그 자연임) 같은 근대적 단어들의 경우 한자 하나하나의 뜻만 가지고는 이게 도대체 뭔 소리인지 하나도 알 수 없도록 만들어진 단어들이라는 말임
이런 건 심지어 최초의 번역자가 도저히 간단하게 함축적으로 한자로 번역이 않되니까 에이 모르겠다며 자신의 이름 한 글자로 엉터리 번역을 한 것(철학)이라던지 아니면 도저히 번역어가 만들어지지 않아 임의로 의미를 창작하여 만든 것(화학)인데 이것이 어찌어찌 나중에 굳어지게 되어 오늘까지 사용하게 된 경우 같은 것들이어서
이러한 근대화 단어들의 경우는 한자의 원래 뜻과 거의 또는 전혀 무관한 그런 한자가 억지로 들어간 경우이므로
당연히 이 경우는 한자의 뜻글자의 성질이 완전히 상실된 그런 경우이기 때문이고 더구나 이런 류의 근대화적 한자 단어들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한다는 한자어 단어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도 이런 단어들의 경우에 한자로 써야만 의미파악이 입체적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그러함
3) 세번째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일 수 있는 부분인데 한자의 장점이라고 말하는 뜻글자로서의 한자의 뜻 이라는 게 대부분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의 1:1 로의 정확한 의미로 풀이되지 않고 대충 두리뭉실하게 풀이로 들어온다는 점임
그러니까 표의문자로서의 한자가 지니는 뜻이라는 게 원래는 사물 하나에 대해 1:1로 정확하게 의미가 대응되어야만 오로지 뜻글자로서의 표의성이 완전히 발휘되는 것인데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 한자 단어들은 그 뜻이라는 게 어거지로, 대충 꾸겨넣는 식으로 두리뭉실하고 억지스럽게 뜻풀이가 되는 경우라는 것임
한자가 가지는 뜻글자의 뜻 부분이 그나마 우리에게 1:1 정도로 정확하게 전달되는 경우는 숫자(일, 이, 삼, 사...)라던지 또는 위 아래(상 하)라던지 안과 밖(내 외), 아침 저녁(주 야)... 뭐 이런 몇몇 기초적인 개념들 외에는 별로 없다는 이야기인데...
더군다나 이렇게 의미가 그나마 정확하게 전달된다는 한자 단어들은 기초 개념들인 경우가 많아서 한편 굳이 한자로 쓰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우리 고유어로 대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효용성이 반감되기도 함
한자의 뜻이 두리뭉실하게 뜻풀이가 되는 경우는 너무 너무 많은데 그래서 내가 이것을 AI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는데...
AI의 대답은 한자가 가지는 의미라는 게 원래부터 1:1 식으로 정확, 적확하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두리뭉실하게 대충 뭉개면서 상황에 맞춰서 어거지 식으로 들어오는 것이 한자의 뜻글자의 본질이란다. ㅋㅋㅋ
오늘날 한자의 뜻글자로서의 표의성이라는 게 거의 대부분은 우리에게 그 의미가 정확하게 의미가 전달되는 것이 아닌... 어거지로 맞춰서 들어오는 것인 이상... 그렇다면 어차피 이렇게 두리뭉실하고 어거지스럽게 의미가 전달되는 한자라면 굳이 이것을 한자를 배워야만 뜻글자로서 의미가 더 분명해지는 게 아니라는 말임
다음은 내가 AI에게 물어 본 부분을 복사한 것인데 참조 바람
내가 AI에게 물어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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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자의 의미가 두리뭉실하게 전달되는 이유
A: 한자의 의미가 두리뭉실하거나 모호하게 전달되는 이유는 한자라는 문자 체계가 가진 고유한 구조적 특성과 역사적 변천 때문입니다.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ㄱ. 표의문자의 넓은 의미 확장 (다의성)상징성과 추상성: 한자는 소리를 적는 글자(표음문자)가 아니라 뜻을 담는 글자(표의문자)입니다.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구체적인 사물에서 출발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추상적인 개념으로 의미가 확장되었습니다.
맥락 의존성: 글자 하나에 담긴 뜻이 적게는 몇 개에서 많게는 수십 개에 달하기 때문에, 앞뒤 문맥을 파악하지 않으면 정확한 의미를 알기 어렵고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ㄴ. 한자어의 높은 축약성정보의 압축: 한자는 여러 개념을 단 두세 글자로 압축하여 표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문장이 길어지는 것을 막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지만, 반대로 중간 과정이나 구체적인 수식어가 생략되면서 의미가 두리뭉실해질 수 있습니다.
ㄷ. 음독 위주의 한어 사용 (동음이의어 문제)귀로 들을 때의 모호함: 우리말에서 한자를 사용할 때는 뜻(훈)이 아니라 소리(음)만 빌려 씁니다. 이로 인해 소리는 같지만 뜻이 전혀 다른 동음이의어가 무수히 발생합니다.예컨대 말로만 "사정"이라고 하면 이것이 일의 형편(事情)인지, 용서해 달라고 빌어보는 것(事情)인지, 개인적인 사생활(私情)인지 한자를 직접 보거나 전후 사정을 깊이 따지기 전에는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ㄹ. 일상 언어와의 괴리 (직관성 부족)어원 인지의 한계: 현대 한국어의 상당수가 한자어 기반이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한자를 직접 쓰거나 배우지 않는 '한글 전용' 세대입니다. 단어의 실제 '한자 뜻'을 머릿속으로 분해해서 이해하기보다는 단어 통째로 느낌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아 의미가 흐릿하게 전달됩니다.
ㅁ. 번역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왜곡
중국어 고유 정서의 잔재: 한자는 고대 중국의 문화와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문자입니다. 이를 한국어나 현대적 개념으로 1:1 매칭하여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래 한자가 가진 미묘한 뉘앙스(어감)가 완전히 살아나지 못하고 뭉뚱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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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한다...
4) 한자를 써야만 수많은 동음이의어의 혼선을 피한다는 주장도 일견 그럴싸 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다음 2가지 점에서 나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도 생각함
하나는 어느 언어라도 동음이의어는 많이 발생하기 나름이어서(영어에서도 동음이의어가 얼마나 많냐) 이를 구별하려면 단어 하나하나가 아닌 문장과 문맥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은 동음이의어 혼선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이고
둘은 우리 말에서 동음이의어를 만들어내는 주범이 (100% 는 아님. 밤이나 배 같은 고유어에서도 동음이의어가 있기 때문) 바로 그 한자어 때문이라는 점임
그러니까 게이들이 보통 동음이의어라고 생각하는 단어들을 생각해보면 거의 다 그것들이 한자어로 된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슴
가령 구축이라는 단어는 동음이의어가 최소 4개 이상인데 모두가 한자어인 경우이고 이것은 우리가 한자를 읽을 때 훈독이 아닌 음독으로만 읽기 때문에 이런 식의 동음이의어 혼란이 벌어지는 것임
構築 (쌓을 구, 쌓을 축) : 시설, 시스템, 네트워크, 기반 등을 쌓아 올리거나 마련하는 행위
驅逐 (몰 구, 쫓을 축) : 사람, 물건, 세력 등을 몰아서 쫓아내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해군 군함의 구축함의 구축이 이 의미임)
부동산 용어 (舊築) : 지은 지 오래 된 주택이나 아파트를 가리키는 것
의학 용어 (拘縮) : 근육이나 관절 등이 굳어서 움직임이 제한되는 현상인 구축(Contracture)
뭐 이런 식인데...
결국 수많은 동음이의어를 만들어 낸 주범이자 원흉이 바로 한자라는 말임
아니...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한자의 글자 하나하나가 원래 그 한자가 만들어질 때의 오리지널 의미에서 계속 의미가 확장되어 지금은 하나의 한자 글자라도 그 뜻이 적게는 몇 개에서 많게는 수십 개로까지 의미가 확장되었는데(이건 어떤 한자 글자라도 옥편을 찾아서 그 뜻을 알아보면 ¹,²,³,⁴,..
하는 식으로 뜻풀이가 여러 개로 계속 나타난다는 점에서 쉽게 알 수 있슴)
이건 다시 말하면 그 확장되는 의미 하나하나가 이미 동음이의어 라는 말이니까 한자라는 글자 하나하나가 표의성은 약화될대로 약화된, 이미 동음이의어로 되어 버렸다는 말임
예를 들어(AI에 긴급 조회한 사례임)
數 >> 셀 수: 數學(수학), 자주 삭: 頻數(빈수/빈삭), 촘촘할 촉: 數罟(촉고 - 촘촘한 그물)
降>> 내릴 강: 下降(하강), 항복할 항: 投降(투항)
惡>> 악할 악: 善惡(선악), 미워할 오: 嫌惡(혐오)
便>> 편할 편: 便利(편리), 똥오줌 변: 大便(대변)
쉽게 말해 위의 한자 글자들은 뜻은 물론 심지어도 이미 여러 개로 분화한 동임이의어 + 이음이의어 단계까지 와 버린 글자들이어서 이런 한자 글자 를 종이에 써서 보인다고 할 때 이를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경우는 뜻과 발음이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은 물론 이걸 어떻게 발음해야 할 지조차 모르게 큰 혼란을 초래한다는 말임
결국 동음이의어의 주범이 한자(우리는 한자를 음독하므로)인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원인 제공자인 한자, 그것도 오늘날 글자 하나하나가 또 다시 수많은 동음이의어가 되어 버린 그 한자 글자를 다시 끌어와서 동음이의어 문제를 해결한다고...??
차라리 (한자로 구성된)동음이의어들이 여럿 있을 때 그 하나하나의 단어들을 우리 고유어로 따로따로 대체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보다 옳바르고 근본적인 동음이의어 문제의 해결책일 수 있겠는데 말이야
그래서 동음이의어(그것도 절대다수 대부분은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들) 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하나하나 글자 자체가 이미 수없이 많은 동음이의어화되어 버린 한자 글자를 다시 끌고 온다는 것은 동음이의어 혼란에 대처하는 근본적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미봉책에 가까운 근시안적인 방법일 수 밖에 없는 것임
그리고 더 생각해보면... 어차피 한자를 써서 동음이의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는 글자의 문제일 뿐 우리가 귀로 듣는 것은 음독, 즉 한자의 음만 듣고 그 발음만 들리는 거라서 최소한 귀로 듣는 부분에서는 동음이의어의 문제가 한자어를 쓴다고 달라지는 것은 전혀 아닌 것임
결국 한자를 써야만 동음이의어의 혼선을 피한다는 주장은 원래 동음이의어를 만들어낸 원흉 거의 대부분이 한자어였기 때문에 이것은 결국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원인 제공자를 다시 불러내서 문제 해결사로 쓴다는 처방이기 때문에 나는 이 주장도 마냥 맞다라고 이야기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함
대충 이런 정도로 짧게 한자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 보았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