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CIA가 종결한 ‘원조 빨갱이’ 프레임

2015년 9월 16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던 1급 기밀문서 『대통령 일일 보고(PDB: President's Daily Brief)』 1만 9,000쪽을 기밀 해제했다. CIA와 FBI를 비롯한 미국의 모든 정보 자산이 총동원되어 작성된 이 문서는 ‘오직 대통령을 위한 보고(For the President's Eyes Only)’라는 분류 등급이 말해주듯, 당시 미국의 최상위 정보 보고서다. 54년 만에 공개된 이 기록 속에는 5·16 거사 직후, 미국이 박정희를 어떻게 검증하고 평가했는지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담겨 있다.

당시 새뮤얼 버거 주한 미국 대사의 보고를 토대로 작성된 CIA 분석은 건조하지만 명확했다. CIA는 5·16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봉기(5·16)의 동기는 애국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반(反)공산주의적인 것이다(The motivations of the revolt are patriotic, nationalistic, and anti-Communist).”

이어 보고서는 박정희의 사상적 정체성에 대해, 국내의 그 어떤 정치적 해석보다도 단호하고 명료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혁명 지도자들 가운데 기회주의자나 공산주의 잠복 세력이 있을 수 있지만, 박정희는 그런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there may be some opportunists and Communist sleepers among the revolutionary leaders; Pak Chong-hui is not in this category).” (CIA, 『대통령 일일보고(PDB)』, 1961. 7. 19.)

이는 냉전 시대, 전 세계 정보망을 가동해 공산주의자를 검증하고 색출하는 데 가장 철저하고 엄격했던 미국 정보기관이 내린 최종 판단이다(1). 당시 한국 사정에 정통했던 CIA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공산주의와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고 확언하자, 케네디 대통령은 그를 둘러싼 '공산주의 전력' 의혹에 대한 의구심을 비로소 거두고 박 의장을 미국으로 공식 초청했다.

그럼에도 좌익진영은 이 명백한 1차 사료를 여전히 외면한 채 "박정희는 남로당 군사총책으로 활동했다"거나 "변절한 기회주의자였다"라는 소위 '원조 빨갱이' 프레임을 고수하고 있다. 평소 현대사의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미국 기밀문서를 '숨겨진 진실'이라며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던 그들이, 유독 박정희의 결백을 입증하는 이 결정적 사료 앞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철저한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러한 명백한 자기모순을 무릅쓰면서까지 집요하게 색깔론을 고수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팩트가 아니라, 대중의 인식 속에 박정희를 고립시킬 정치적 낙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냉전 시대 가장 의심 많고 철저했던 조직 CIA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박정희가 기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라고 확신했을까? 국내 수사 기록이 대부분 소실된 침묵의 공간에서 미국이 확인한 ‘실체적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지금부터 그들이 내린 판단의 근거들을 추적해 본다.

[주석] (1) 냉전기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공산주의 확산 저지'라는 절대적 목표 아래 전 세계 곳곳에서 가혹할 만큼 철저한 사상검증과 정권 전복 공작(covert operation)을 전개했다. 특히 5·16 거사 불과 한 달 전인 1961년 4월, 케네디 행정부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반미(反美) 노선을 걷자 공산화 진전을 저지하기 위해 '피그스만 침공(Bay of Pigs Invasion)'을 감행했다. 이는 당시 미국이 자신의 안보를 위협하는 '공산주의 의심 세력'에 대해 얼마나 과민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외에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수카르노 정권의 친(親)공산주의 행보를 견제하기 위해, 1965년 수하르토가 주도한 군부 쿠데타와 그 뒤의 대규모 반공 숙청을 외교·정보망과 자금·장비 지원으로 뒷받침했고 ▲콩고에서는 초대 총리 루뭄바가 소련 쪽으로 기운다는 의심만으로 암살용 독극물을 현지에 운반하는 등 정권 제거를 목표로 한 암살 공작을 시도했다(미 상원 처치위원회 보고서). 이는 미국이 공산주의 성향이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지도자는 사실상 제거 대상으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박정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4년 8월 10일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박정희는 숙군의 회오리에서 살아남아 장군으로 승진하고 군의 요직을 두루 거쳤음에도, 그에 대한 미국의 감시 눈초리는 한순간도 끊이지 않았고, 특히 5·16 직전부터 '거사설'이 나돌기 시작하자 미국은 그를 위험한 '요시찰 인물'로 지목하여 집중 감시했다고 한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미국의 집요한 감시 속에서도 박정희가 CIA로부터 '공산주의 혐의 없음'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냉전기 기준으로도 얼마나 철저하고 지속적인 신원 검증을 통과한 것인지를 입증한다.

본문 출처: 이재훈, 『박정희는 역사이다』, 269~271페이지

※ ‘원조 빨갱이 박정희’라는 프레임은 그 형성 과정부터 남로당 사건의 실체, 군 수사 기록과 관련자 증언, 미국 정보기관의 평가까지 함께 살펴보아야 정확한 진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다루어야 할 내용과 사료가 방대한 관계로, 이번 글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에 나누어 연재하겠습니다. 다음 편에서도 익숙한 통념 뒤에 가려진 기록들을 하나씩 확인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