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 진영은 수십 년에 걸쳐 “박정희는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한 친일파이며, 해방 후에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프레임을 끈질기게 반복하며 대중의 무의식 속에 각인시켜 왔다. 이렇게 반복된 낙인은 교육과 언론, 출판과 대중문화의 여러 통로를 거치며 하나의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졌다. 그 결과 ‘박정희는 친일파였다’는 주장은 더 이상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박정희를 판단하는 출발점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이념적 선입견이나 감정적 적대감이 아니라 실증적 사료와 생애 전체의 맥락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로 매도하려는 좌익 진영의 끊임없는 시도는 역사적 실증보다는 이념적 증오에 기반한 확증편향의 전형이다.
박 대통령의 생애를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살펴본 사람이라면 그의 행적이 ‘친일’이라는 편향된 프레임과는 정반대라는 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민족의식 고취와 극일(克日)을 위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면모는 문경보통학교 교사 시절부터 대통령 재임 기간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박정희 제자들의 육성 증언 -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강력한 의지와 교육 방식
박정희의 교사 시절을 회고하는 문경보통학교 제자들의 육성 증언은 박 대통령을 ‘뼛속까지 친일파’로 매도하는 허위 프레임을 불식시키는 생생한 역사적 증언이다. 일제의 서슬 퍼런 압제 속에서 기세 좋게 일본 천황의 사진틀을 부수고 버젓이 태극기를 가르치며 왜군을 격퇴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들려준 교사, 그가 바로 박정희 선생님이었다.
〈‘박정희 선생님’에 대한 문경보통학교 제자들의 증언〉
권중연 제자(1926년생) : 일본 사람들하고 일본말 하지 마라. 일본말 할 것이 뭐 있나? 한국 사람이 일본말 하지 말아야지. 나한테 조선어 배우지 않느냐?
정순옥 제자(1926년생) : (일제강점기였기에) 한국말을 못하게 했습니다. 일본 선생하고 같이 있을 때는 한국말을 하지 말더라도, 우리끼리 있을 때는 우리말로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인섭 제자(1925년생) : 일주일에 한 시간씩 조선어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교과서 이야기는 별로 안 하시고 한산섬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긴 이야기, 전투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이용규 제자(1930년생) : 당시에는 역사 이야기를 못하게 돼 있는데, 배짱이 좋아서 그런지 유리창 다 열고 칠판에 태극기를 그려 놓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나가실 때 지우지도 않고 나가셔서 우리가 지우고 그랬습니다.
이응주 제자(1922년생) : 왜놈들이 한국인을 자기네 사람으로 만들려고 일본의 시조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2)’를 학교나 집에 걸어 두고 그 앞에서 절하고 손뼉치며 기도하게 했어요. 어느 날 선생님이 당직이셨는데 그걸 때려 부쉈어요.
당시는 일제 말기, 즉 조선인을 완전한 일본인으로 만들려 했던 민족말살정책(황국신민화)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로, 우리말 사용이 금지되고 우리 역사 교육이 철저히 통제되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인 교사가 학생들에게 민족혼을 가르친다는 것은 한마디로 목숨을 건 저항이었다. 따라서 이 기억들은 단순한 개인적 회고를 넘어 박 대통령의 내면에 깊이 각인되어 있던 뜨거운 민족의식과 언젠가는 조국을 되찾으리라는 숨은 열망을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귀중한 역사적 증거이다.
본문 출처: 이재훈, 『박정희는 역사이다』, 20~2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