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자본 통제와 민족 자본의 형성 토대

박정희 정부의 ‘기득권 정비’는 국내 재벌이나 구권력층을 넘어,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중국계 ‘화교(華僑) 자본’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당시 화교 세력은 고리대금업과 특정 업종의 상권 독점, 그리고 도시 부동산의 대규모 소유로 인해 토착 상권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었으며, 특히 그들의 자본 확장은 서민층의 생계와 자산 형성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화교 세력을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시행했다. 1962년, 전격적인 통화개혁을 단행하여 화교들의 현금 자산을 무력화시켰으며, 부동산 취득 제한, 거주 자격 심사 강화, 각종 허가업 진입 차단, 고강도 세무조사 등을 병행함으로써, 그들의 성장 동력 자체를 뿌리 뽑았다. 이는 그 무렵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겪고 있던 화교 자본의 경제 독점과 그로 인한 사회적 불균형과 혼란을 일찍이 간파한 박 대통령의 통찰력에서 비롯된 조치였다. 당시 동남아시아에서는, 소수의 화교 자본이 국가 경제 전체를 장악하여, 수백 년간 그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이 오히려 경제적 빈민으로 전락하는 구조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었다. 실제로 오늘날까지도, 필리핀에서는 인구의 2% 미만인 화교 세력이 경제의 60% 이상을, 인도네시아에서는 4% 미만이 70% 이상을, 태국에서는 10% 미만이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에 비추어 보면, 박 대통령의 ‘화교 경제력 억제’ 조치는 국내 일부 지식인들로부터 인권 침해나 배타적 민족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화교 자본의 과도한 시장 지배를 제어하고 민족 자본이 성장할 수 있는 보호막을 형성한 선제적 결단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영상 내용 출처: 이재훈, 『박정희는 역사이다』, 1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