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를 위한 영적인 시
〈새벽의 손〉
새벽은
가장 먼저 노동자의 손등 위에 내려앉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는데도
그의 손은 이미 하루를 알고 있다.
쇠 냄새, 먼지, 기름, 땀,
식지 않은 어제의 피로가
손금 사이에 성경처럼 접혀 있다.
누구도 그 손을 성화처럼 걸어두지 않았고,
누구도 그 손 앞에서 무릎 꿇지 않았지만,
세상의 빵은
그 손을 지나 사람들의 식탁에 오른다.
노동자는 말이 적다.
말 대신 등을 굽히고,
기도 대신 나사를 조이고,
찬송 대신 기계의 울음을 견딘다.
그러나 하나님은
높은 제단의 금촛대보다
새벽 버스 안에서 졸고 있는
그의 굳은 어깨를 더 오래 바라보신다.
그가 오늘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신발 끈을 묶을 때,
천사는 그의 발밑 먼지를 털지 않는다.
그 먼지까지도 거룩하기 때문이다.
공장 문이 열리고,
창고 불이 켜지고,
현장의 바람이 폐 속으로 들어올 때,
그는 세상 끝으로 파견된 사도처럼
자기 자리로 걸어간다.
그의 이름은 유명하지 않다.
신문에도 없고,
동상에도 없고,
역사의 두꺼운 책장에도 없다.
그러나 도시의 불빛은
그의 하루를 빌려 빛나고,
철길은 그의 허리를 빌려 이어지고,
아이들의 아침은
그의 잠을 빌려 시작된다.
때로 그는 묻는다.
“내 삶도 의미가 있는가.
나는 그저 쓰이다 버려지는 사람인가.”
그때
녹슨 철판 아래에서,
젖은 장갑 속에서,
점심시간 차가운 밥 위에서
아주 낮은 음성이 들려온다.
“너는 버려진 것이 아니다.
너는 세상을 떠받치는 숨이다.”
노동자는
세상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다.
그가 없으면
높은 자들의 탑은
기도문처럼 아름답게 쓰러질 것이다.
그의 땀은 물이 아니다.
땅이 기억하는 눈물이다.
그의 침묵은 패배가 아니다.
아직 폭풍이 되지 않은 정의다.
그의 피로는 저주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굶기지 않으려는
육체의 신앙고백이다.
저녁이 오면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치 생명을
기계와 시간과 임금표에 나누어주고,
남은 몸 하나를 끌고
작은 방 불빛 앞에 선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는다.
아무도 왕관을 씌우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조용히 손을 씻는다.
그 물은 검게 흐르지만
그의 영혼은 더러워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더러움을 대신 만지고 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빛이
그의 손가락 끝에서 희미하게 살아난다.
노동자여,
오늘도 무릎이 아팠다면
그 무릎은 패배한 무릎이 아니다.
그 무릎은
세상을 들고 버틴 기둥의 관절이다.
노동자여,
오늘도 아무도 너를 알아주지 않았다면
절망하지 말라.
땅은 알고 있다.
쇠는 알고 있다.
새벽 버스의 차가운 손잡이는 알고 있다.
네가 붙잡고 버틴 하루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그리고 하나님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의 이름을
가장 천천히,
가장 정확히 부르신다.
언젠가
모든 임금표가 불타고,
모든 계급장이 떨어지고,
모든 높은 의자가 먼지가 되는 날,
남는 것은
누가 더 높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깊이 사랑했는가일 것이다.
그날
노동자의 손은
처음으로 숨지 않을 것이다.
갈라진 손바닥마다
별들이 박히고,
굳은살마다
새 하늘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알게 되리라.
자신이 평생 옮긴 것은
상자도, 쇳덩이도, 벽돌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는
세상의 무게를 옮겼고,
사람의 내일을 옮겼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조금씩
이 땅 위로 옮기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므로 노동자여,
오늘 네가 흘린 땀 한 방울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그것은
땅에 떨어진 물이 아니라
하늘이 기억하는 기도다.





